스토리뭇산을 향해 쏘는 마지막 화살

뭇산을 향해 쏘는 마지막 화살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추모식 당일, 조안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유품을 얻게 되었다. 사고를 당하기 전, 아버지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내 그녀는 사건이 자신의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장 오퍼레이터: 스노우헌터


그날, 쉐라그의 아침 바람 한 줄기가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날아갔다.

그분께서 비춰주신 평온처럼, 바람은 산들을 향해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더는 이 대지를 밟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분의 품은 여전히 망자가 한평생 겪어왔던 고단함을 달래주신다.

더는 그분과 함께 햇볕을 쬐지 못한다 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눈이 되기를 택했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한다, 마치 떠나간 이들의 마지막 뜻을 찬양하듯이.

우리는 그분께 예배드린다, 마치 떠나간 이들이 눈앞에 있는 듯이.

이 순간, 그분은 우리에게 이 작별을 선사하시며, 우리의 상처와 눈물을 닦아 주신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과 두려움까지도 함께 닦아 주신다.

우정과 행복, 존경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의 이름으로, 그분은 그들과 함께 걸으실 것이다.

또한,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실 것이다.

……

그 재앙으로부터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재앙이 지나간 역 근처에는 희생자들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꽃을 든 아이들도 최대한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어른들과 함께 그 앞에 꿇어앉았다.

“쉐라간드 신이시여……” 기도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이어졌다. 서 있는 군중 속에서 수도사가 천천히 추모비의 덮개를 벗기자,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이 드러났다.

만주원 수도사

마지막으로…… 저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망자들을 위해 기도드리며, 그들이 쉐라간드의 품속에서 산들과 함께 편히 잠들기를 바랍니다……


저 멀리 떠들썩하던 시장도 순간 아무 소리 없이 고요해졌고, 조안나는 두 손을 모은 채 기도에 몰두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넌 상처와 죽음을 보려 하지 않는구나. 네 크로스보우는 이미 사냥감을 겨누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지. 너는 그 결과를 두려워하고 있어.”

“만약 네 눈을 가린다면, 넌 무엇을 보게 되겠니?”

“그건 쉐라간드가 약속한 풍요야. 그분이 네 팔을 고정해 주신 건, 네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목표를 명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거지. 쉐라간드는 이미 사냥감의 숙명을 정해두셨어.”

“하지만 나는 너에게 그런 숙명을 겪게 하진 않을 거야. 설령 그분이 네게 병의 고통이라는 시련을 내리셨다 해도.”

“넌 분명 나아질 거야, 반드시…… 만약 그분이 네게 어떠한 계시도 남기지 않으셨다면, 내가 그분을 대신해 약속할게. 우리 가족은 언제나 함께 있을 거야.”



북적이는 사람들이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그 소란이 지나간 뒤에야, 시장 거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추모식이 끝난 뒤, 조안나는 도시를 배회했다.

눈 위를 밟는 작은 짐승은 발톱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주인을 따라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구정물을 피해 다녔다.

조안나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 얌전히 있어. 여긴 사람이 많으니까, 아무 데나 돌아다니면 안 돼.

조안나

나도 네가 배고픈 거 알아. 좀 이따 도착하면 그때 먹을 거 줄게.

기념품 가게 사장

여기다가 노란색 페인트를 칠해서 포인트를 좀 줘 봐, 밝은색이 사람들 눈에 더 잘 띄니까. 그리고 천장에도 페인트칠 좀 해야겠더라.

기념품 가게 사장

그 나무 조각상들은 전부 지하실로 옮기고. 이제 더는 납품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 팔면 그만큼 재고가 하나 줄어드는 셈이니, 가격을 올려야겠어.

기념품 가게 사장

주문해 둔 새 간판이 완성까지 닷새나 더 걸린다고?

기념품 가게 사장

늦어! 될수록 빨리해달라고 해. 새로운 여행객들이 이제 며칠 후면 도착한단 말이야……

조안나

분명 이 편지엔 근처라고 쓰여 있는데…… 대체 어디지?

기념품 가게 사장

여기, 문 앞에 걸어! 그건 그리샤 씨의 화살이니까, 제일 눈에 띄는 곳에 걸어야지.

조안나

이 화살은……

조안나

아버지의……

기념품 가게 사장

어이구, 우리 가게 전단지를 들고 계시네요. 이리 들어와서 구경해 보세요. 아직 인테리어는 덜 끝났지만, 물건도 정품이고 가격도 정말 저렴해요.

조안나

여기 사장이 쓴 편지를 받아서 온 건데, 당신이 이 가게 사장이야?

조안나

난 그리샤의 딸이야.

기념품 가게 사장

아…… 그러고 보니, 확실히 편지를 보냈었네…… 그런 일이 있었어.

조안나

편지에는 아버지가 남긴 물건을 여기에서 보관 중이라고 적혀 있던데.

조안나

이 화살도 그중 하나인 건가?

기념품 가게 사장

음…… 맞아. 그리샤 씨가 네게 전해 달라고 한 거야. 다만 그리샤 씨가 남긴 주소가 너무 불분명해서, 나로서도 편지가 제대로 전달될지 도무지 확신을 못 했거든. 그래서 이렇게 눈에 띄는 곳에 걸어둔 거야.

조안나

이건 보통 화살이 아니야. 사냥꾼끼리 서로 사냥감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을 때 쓰던 거야. 이것 봐, 여기 안에 쪽지를 넣을 수 있도록 작은 통이 묶여 있잖아.

조안나

어쨌든 이 화살을 이곳에 걸진 말아줬으면 해. 우리 집 물건은 외부인에게 전시하기 위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기념품 가게 사장

알겠어. 아가씨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좋아, 치우도록 하지.

조안나

아버지가 또 어떤 물건을 남기셨어?

기념품 가게 사장

짐승 가죽 한 상자, 짐가방 하나 그리고…… 나도 구체적으로는 잘 기억이 안 나는군.

기념품 가게 사장

이쪽으로 와. 전부 지하실에 뒀으니까.


“추위에 맞서려 하지 마. 호흡을 이용해서, 추위를 집중력으로 바꾸는 거다.”

“정신을 집중했을 때, 쉐라간드께서 네게 사냥감을 내리실 거야. 화살의 결과는 굳이 생각할 필요 없어. 그건 오직 그분의 결정이니까.”

“아빠가 항상 네 옆에 있을 순 없어. 앞으로는 너 스스로 그분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설령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분의 의지를 받들어야 해.”

“그분은 우리 사냥꾼이 돌아갈 곳이야. 설사…… 그분이 우리를 향해 계속 침묵하신다 해도, 그분을 부르는 것을 멈추진 말거라. 설령 그분을 놀라게 하는 한이 있어도, 그분을 깨워야만 해.”

“나도 쉽지 않다는 건 알아. 하지만, 조안나, 우리 천천히 해 보자꾸나……”


기념품 가게 사장

그리샤 씨의 물건은 전부 여기에 있어.

기념품 가게 사장

여긴 공간이 작아서 몸을 옆으로 해야만 들어올 수 있지. 아무도 이 물건들을 신경쓰지 못하게 하려고, 내가 일부러 이곳에 둔 거야.

조안나

이건……

조안나

……아버지의 석궁? 가족 말고는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무기였는데.

기념품 가게 사장

떠날 때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게 맡겼지.

조안나

그리고 이 짐승 가죽은 내가 어릴 때 아버지랑 같이 사냥해서 얻은 전리품이야. 아버지가 줄곧 잘 보관하고 계셨구나.

조안나

어째서 이것들까지……

기념품 가게 사장

보아하니, 그리샤 씨는 아무래도 사냥꾼 일을 그만둘 준비를 했던 거 같은데?

기념품 가게 사장

그러고 보니 전에 나한테 납품을 그만두겠다고 했었거든.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없이 그저 이 물건들을 맡기기만 했지.

기념품 가게 사장

참 아쉬운 일이야. 그리샤 씨가 만든 나무 조각상은 자주 매진이 될 정도로 우리 가게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었는데, 지금은 재고조차 거의 남지 않았어.

기념품 가게 사장

어쩌면 그 당시 시국이 불안정하다 보니, 타지에 쉐라그 전통공예품을 팔아서, 아가씨를 위해 돈을 더 많이 저축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안나

잠깐…… 아버지가 당신과 거래를 끊었다고? 대체 언제부터?

기념품 가게 사장

아마도, 재앙이 오기 일주일 전쯤이었을 거야.

조안나

이상하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진 분명 나한테 계속 납품하러 간다고 말했었는데……

기념품 가게 사장

거 봐, 맞다니까, 내 말처럼……

조안나

그러면 이 물건들은 왜 여기에 남기신 걸까?

“고롱고롱……”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가 뭔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는 듯, 상자 옆으로 다가가 짐승 가죽을 만지작거렸다.

조안나

네게 먹을 걸 주는 걸 깜빡했네, 자.

조안나

응? 먹기 싫어?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는 먹을 것엔 신경도 쓰지 않고 짐승 가죽 상자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뒷걸음을 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조안나

왜 그래,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 왠지…… 적의 냄새라도 맡은 반응인데.

조안나

설마 이 짐승 가죽 때문이야?

조안나는 제일 위에 놓인 짐승 가죽을 살펴보았다. 그 위의 구멍들은 그녀의 사냥 솜씨가 아직 미숙하던 시절에 화살을 빗맞혀 생긴 자국이었다.

기념품 가게 사장

좋은 재료인데, 아깝군……

이어서 중간에는 한 장의 모피가 있었다. 그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으며, 털의 질감도 매우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그건 아버지가 처음으로 조안나의 무기를 사용해 얻은 전리품이었다. 그녀도 얼마든지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맨 아래에선 싸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조안나는 상자에서 한 장의 민둥민둥한 짐승 가죽을 꺼냈다. 그것은 병들어 쓰러진 늙은 짐승의 가죽이었다. 과거 그녀는 그 짐승이 죽었을 때,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

조안나

잠깐, 이 위에 그려진 건……

조안나

……지도?


“쉐라간드시여……”

“당신의 자손들은 위기에 처한 이 순간에도, 여전히 당신께 가장 깊은 믿음을 보내고, 가장 선한 희망을 바치는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의 병세는 전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복용하는 약의 양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숙명을 당신의 독실한 신자에게 부여하시는 겁니까?”

“저는 사람들에게 동정받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이제 더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저 하나뿐이고, 저에게는 당신뿐입니다, 쉐라간드시여.”

“그 아이 역시 당신의 자식입니다. 그 아이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겁니까? 저희더러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저는 당신께, 그리고 산들에 답을 구하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독실한 신자를 저버리신다면, 우리가 대대로 당신을 따르던 의미가 대관절 무엇이겠습니까?”

“정녕 당신의 계시가 이렇게 잔혹하다면, 제가 믿을 것은 이제 …… 오로지 저 자신뿐입니다.”



기념품 가게 사장

이 물건들은 가져가도록 해, 아가씨. 내 가게에 이런 금지품들을 둘 수는 없어.

기념품 가게 사장

이건 그냥 평범한 지도가 아니야. 실은 빅토리아 군이 성에 들어오던 시기 전후로, 이런 것들이 도시 곳곳에서 발견됐었어.

기념품 가게 사장

제기랄, 이 지하실에선 내가 언제 모아뒀는지도 모르는 것들이 자주 튀어나온다니까, 분명 쉐라간드께서 내 탐욕을 벌하고 계신 걸 거야……

기념품 가게 사장

근처 거리의 옷 가게에서도 이런 물건이 잔뜩 나왔는데, 지금까지도 간첩을 숨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서, 아직 가게 문도 못 열고 있지……

조안나

그러니까, 아버지가 이런 걸 남긴 이유가…… 빅토리아인들의 작전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거야?

기념품 가게 사장

그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아가씨. 난 쓸데없는 추측은 더 하지 않을 거야. 우리 가게와 그리샤 씨는 그저 거래 관계였을 뿐이니까……

조안나

……말도 안 돼. 아버지가 쉐라간드의 가르침을 어기고, 쉐라그를 배신하셨다고……

조안나

아버지가 그런 터무니 없는 일을 하셨을 리 없어……

기념품 가게 사장

지금은 뭐라 단정할 수 없지. 누군가 혐의를 뒤집어씌웠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리샤 씨가 뭔가 착각했을 수도 있어. 아무튼……

기념품 가게 사장

그 소동 속에서 꽤 많은 쉐라그인이…… 아이고, 이거 또 내가 괜한 소릴 했군. 방금 말은 없던 걸로 해줘.

조안나

……

조안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조안나

아버지의 일은, 다른 사람에겐……

기념품 가게 사장

물론이지. 우리 가게도 괜한 유언비어는 꺼리니까. 그러니 오늘 아가씨는 아예 여길 다녀간 적이 없는 거야. 그렇지?

기념품 가게 사장

이 물건들은 가져가.


조안나의 몸은 거리를 걷고 있었지만, 정신은 마치 텅 빈 방 안에 홀로 있는 것처럼 나가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그 추모비 앞을 지나쳤지만, 그의 죽음이 거짓된 베일에 덮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샤, 독실한 쉐라간드의 신도이자, 자신의 신앙에 단 한 번도 일말의 의구심조차 가진 적 없던 아버지.

그런 그가 쉐라그의 배신자일지도 모른다니.

그녀는 이 베일을 걷어낼 힘조차 없었다.

쉐라그 남성

역이 곧 무너지려고 할 때, 그 남자가 한 번에 그 아이들을 밖으로 밀어내는걸, 내가 가까이서 이 두 눈으로 봤다니까.

쉐라그 남성

곧이어 너희가 들었던 그 굉음이 났지. 무너지는 천장에 묻히기 전에, 그가 쉐라간드께 기도드리는 것까지도 내가 봤어.

쉐라그 여성

쉐라간드 신이시여…… 왜 불운은 늘 선량한 사람들에게만 닥치는 겁니까……

쉐라그 남성

이번 재앙을 겪고 나니까, 쉐라간드께서도 항상 쉐라그를 보살펴 주시진 않는 것 같더라고.

쉐라그 여성

그분도 어쩌면 휴식이 필요하실 수도 있고, 우리와 함께 슬퍼하시기도 하실 거야.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게 너무 많을 뿐이지.

쉐라그 남성

그저 계속 살고 싶은 게, 많이 바라는 거야?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쉐라그 여성

그 '아마'라는 말은 하지 마. 나라도 그런 일은 못 했을 거야.

쉐라그 남성

쉐라간드 신이시여……


멀리 있는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북적였고, 조안나의 마음속은 잡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아버지가 조안나의 병 때문에 그 길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조안나

만약 쉐라간드를 저버리는 게 날 치료할 수 있는 길이였다면…… 죄를 지은 건 바로 나 자신이겠지.

어쩌면 “그런 사람은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어!”라며 분노하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쳐 봤지만, 되돌아오는 건 그저 자책뿐이었다.

조안나

아버지의 배신을 용서하고 싶지만, 난 그런 거 못 해.

조안나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더더욱 못 하겠어. 심지어 나한텐 그렇게 생각할 자격조차 없으니까.

조안나

어쩌면 아버지가 남긴 그 화살 속엔 참회가 담겨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증거들을 보면, 이제 아버지란 사람을 잘 모르겠어.

조안나는 추모비 위의 이름을 바라봤다. 지금은 그 이름이 너무나도 눈에 거슬려 보였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이름인 것만 같았다.

조안나는 화살을 꺼내 들어, 화살촉으로 아버지의 이름 위를 긁었다.

그러자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가 조안나의 뺨을 핥았고, 조안나는 현실에서 한줄기 온기를 느꼈다.

쉐라그 꼬마 아이

언니.

쉐라그 꼬마 아이

얘 만져봐도 돼요?

조안나

……너희는?

쉐라그 어린아이

야, 놀지 말고 빨리 가야지. 엄마 아빠가 우릴 구해준 아저씨의 이름도 여기 돌덩이에 새겨져 있다고 했잖아.

아이들은 까치발을 들고 추모비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쉐라그 어린아이

너무 높아서 위에 쓰인 글자가 잘 안 보여. 누나, 우리 대신 좀 봐줄 수 있어……?

조안나

누구를 찾고 있는 건데?

쉐라그 어린아이

이름이 아마…… '그리샤'?

쉐라그 어린아이

맞아, 그 이름이야.

조안나

정말…… 그게 너희 은인의 이름이야?

아이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진심 어린 눈빛을 반짝였다.

조안나

어떻게 된 일이지?

쉐라그 꼬마 아이

찾았다! 아마 이거야……

쉐라그 꼬마 아이

근데 왜 이렇게 긁힌 자국이 많지?

쉐라그 어린아이

누나, 뭐 하는 거예요?

조안나는 순간 멍해져서, 손에 있던 화살을 떨어트렸다.

쉐라그 어린아이

잠깐, 왜 그리샤 씨의 이름을 긁은 거예요?

조안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아이들의 눈빛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조안나

나…… 나도 그리샤 씨의 이름을 찾으러 왔거든. 표시를 좀 하고 싶어서……

쉐라그 어린아이

누나도 그리샤 씨가 밖으로 밀었어? 근데 그때 우리 근처에 누나는 없었는걸. 거짓말 아니야?

조안나

나는 그냥…… 그리샤 씨랑 아는 사이야.

조안나

좀 물어볼 게 있는데, 그리샤 씨가 어떻게 너희 은인이 된 거야?

쉐라그 어린아이

그건 재앙이 닥쳤을 때 있었던 일 때문이야. 모든 어른이 기도 중이어서 우리도 따라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큰 소리로 거기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고 외쳤어.

쉐라그 꼬마 아이

그런데 우리가 무서워서 못 움직이니까…… 아저씨가 달려와서 우릴 밖으로 밀어냈어.

쉐라그 어린아이

덕분에 난 넘어져서 앞니가 깨져버렸지.

조안나

그다음엔……?

쉐라그 어린아이

그다음엔…… 역이 무너졌고, 그리샤 씨도 사라졌어.

쉐라그 어린아이

어른들은 그리샤 씨가 쉐라간드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말해줬어. 우리는 며칠 후에 산 위로 올라가 아저씨를 위해 기도할 거야.

쉐라그 꼬마 아이

언니도 그리샤 씨를 알면, 우리랑 같이 갈래?

조안나는 아이들의 따뜻한 손을 잡고, 그들을 품 안에 안았다.

조안나

이런 사실을 알려줘서 고마워…… 나도 꼭 갈게.

그녀의 얼굴에 다시금 따뜻함의 흔적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묘비는 위에 눈이 가득 쌓인 채로 주위의 나무와 함께 산골짜기를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다.

“착한 우리 딸, 아빠가 어떻게든 널 낫게 해줄게. 아빠를 꼭 믿으렴……”

“아빠가 쉐라간드를 완벽히 버린 척해야만, 그들과 거래했었던 후회를 떨쳐버릴 수 있었고, 그래야만 네 병을 고칠 돈을 마련할 수 있었어.”

“그분이 주시는 벌은 달게 받을 거야……”

조안나는 마음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이런 말투로 이렇게 말하셨을 것이다.

조안나

아버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분명 많은 고민이 있었을 거야.

조안나

이게 현실일지도 몰라.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쉐라간드의 자비를 받는다 해도,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곤 장담 못 하지.

눈 위에는 아버지가 남긴 화살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화살대에 붙어 있는 작은 통 안에는 딸과 아버지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조안나

아버지가 마지막에 전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든, 난 이해할 수 있어……

조안나

그게 참회든, 하소연이든, 이 편지를 쓰는 건 아버지에게 더할 나위 없이 힘든 일이었겠지……

멀리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겨우 아버지를 마주할 용기를 냈던 이 순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끊겨버렸다.

만주원 수도사

어서 돌아오거라. 계속 말썽부렸다간 바로 수도원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기도드리게 할 거야.

만주원 수도사

장난은 그만 치고, 똑바로 줄 서. 좋아, 우리가 방금 연습했던 찬송가를 다시 복습해 보자……

앳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얻어낸 노래였다.

가지 끝에 앉아 있던 파울비스트가 놀라 날아올랐다. 조안나는 아버지의 화살을 뽑아 들었다.

조안나

쉐라간드 신이시여,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버지를 버리지 않으셨고, 우리 가문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조안나

아버지는 당신의 뜻을 따라, 이 아이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조안나

어쩌면…… 제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아버지를 대신해 당신께 사죄드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안나

하지만 제 나약함을 용서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의 고통과 자책을 차마 마주하려 하지 못했습니다……

조안나는 그 화살을 들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석궁에 걸었다.

조안나

쉐라간드 신이시여…… 부디 이걸 아버지의 마지막 참회로 삼게 해 주소서.

그녀는 산을 향해 아버지가 남긴 화살을 쏘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