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의 심정
죽어가는 마을 주민을 살리기 위해 자진하여 산에 올라가 약을 구하기로 한 엔시아. 하지만 갑자기 닥친 눈보라 때문에 발이 묶였고,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 도움을 청한다.
후……
저쪽 바위틈이면, 거리는 충분할 것 같은데……
바이스 오빠, 오빠는 언제 와?
주인님의 출발 전 예상에 따르면, 아마 3~4일은 더 지나야 할 거예요.
엥~ 아직 한참 남았잖아~
어? 설마 저거 오빠인가……?
……아냐, 혹시 언니?!
성녀님은 만주원에 가신지 몇 개월 안 되셔서, 업무 때문에 바쁘실 거예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가서 문 열어 드릴게요.
어~? 타르야 할머니, 여긴 어쩐 일이야?
좋았어!
이제 거의 다 왔어!
동굴은 별로 높지 않으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티어 스톤?
하늘색의 광석으로 성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서만 생산되죠. 쉐라간드 신의 눈물이 굳어진 거라는 전설이 있어요.
한 발짝만 더!
반년치 티어 스톤을 비축해두고 있었는데, 가을이 되자마자 다 써버려서 타르야 할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졌다고? 온 산을 다 뒤져도 티어 스톤을 찾을 수가 없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아가씨, 전설에 따르면 티어 스톤은 한 번에 한 움큼만 채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쉐라간드 신께서 흘린 눈물의 양이란 거죠.
만약 동굴에서 손에 쥐지 못할 만큼 너무 많은 양의 티어 스톤을 가지고 나가면, 티어 스톤은 사라진대요.
사실 타르야 할아버지가 쓰고 계셨던 티어 스톤은 엔시아 님이 채굴하신 겁니다. 2년 전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겠지만 말이죠.
내가 그랬던가? 아! 기억났다!
바이스 오빠, 타르야 할머니를 차로 모셔 가, 그리고 남은 티어 스톤이 없는지 찾아봐.
그럼 아가씨는……
난 집에서 찾아보려고. 전에 채굴한 티어 스톤을 장식용으로 어디 놔둔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
다른 거랑 착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진, 진짜야. 찾으면 타르야 할아버지 댁에서 약을 달이고 있을게.
바이스 오빠도 티어 스톤을 얻으면 나한테 보고하지 말고, 타르야 할아버지 댁으로 바로 와.
아가씨, 제발 신중하게 행동하세요.
무…… 물건 찾는 거 갖고 유난은! 얼른 가봐.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잖아.
네.
저는 차에 시동 걸러 갈게요. 타르야 할머니 절 따라오세요.
엔시아는 고개를 들어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많이 낀 것도 아닌데, 창밖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바이스 오빠는 역시 감이 좋아.
타르야 할아버지의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니었다면, 한시도 내 곁에서 안 떨어지려 했겠지.
하여간 걱정이 지나치다니까. 폭설은 저녁에나 올 거 같아 보이네, 동굴은 그리 멀지 않으니까 절벽을 타고 올라가면 금방일 거야.
도착!
이제 동굴에서 티어 스톤을 캐볼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엔시아는 눈을 감고 우뚝 솟은 성산을 향해 경건히 묵례했다.
채굴 완료! 딱 한 움큼 캤네.
아까는 바이스 오빠한테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그나저나 티어 스톤은 정말 예쁘네. 다음에는 진짜 장식용으로 좀 캐갈까?
내가 2년 전에 캐 간 흔적이 석벽에 아직도 남아있네.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
엔시아는 동굴 입구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타르야 할아버지 댁에서 굴뚝 연기가 희미하게 보였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할아버지, 제가 티어 스톤을 가지고 갈게요!
추워!
갑자기 웬 바람이야?!
젠장, 눈보라가 생각보다 빨리 불기 시작했네.
절벽을 타고 내려갈 수 없겠어. 동굴에 들어가서 눈보라가 그치길 기다릴까……
아냐, 언제 그칠 줄 알고. 할아버지가 티어 스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른 길을 찾아서 내려가자.
후…… 이쪽은 걸어갈 순 있지만, 방향이……
이 나무…… 내가 지나온 길이야……
일단 로프로 길을 표시해두자. 이러면 적어도 같은 곳으로 돌아오진 않겠지.
이 길은…… 우리 집이랑 반대 방향인데.
아 하필 눈이 지금 오다니.
집이랑 더 멀어진 것 같아……
동굴은 산과 호수가 만나는 곳이었는데, 호수 쪽으로 너무 멀리 와버렸어……
……여긴 페일로쉬 가문 영지잖아.
통지도 없이 남의 영지를 들어오면……
오빠는 그녀에게 두 가문에 대한 일을 말해준 적 없지만, 엔시아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는 오빠가 쉐라그에서 돌아온 후, 페일로쉬 가문과 실버애쉬 가문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빠는 집을 나서기 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페일로쉬 가문은 상대도 하지 말라고 엔시아에게 당부했다.
쉐라그는 지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며,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큰 산사태를 불러올 수 있을 정도였다.
페일로쉬 가문에 발각되기 전에 돌아가서, 눈이 그치길 기다린 뒤에 절벽을 타고 내려갈까……
아냐. 아직 눈이 그칠 기미가 안 보여.
그리고 사람 목숨이 걸렸는데, 더이상 꾸물거릴 수 없어!
……그나마 다치진 않아서 다행이야……
어, 저기 마을이 있네?
그리고 호수도.
산등성이를 걸은 지 한참 지났는데, 길이 끝나질 않아……
조금 전까지 보이던 호수는 왜 안 보이지……
산을 내려가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길이 너무 길어……
그 순간, 엔시아는 기적처럼 눈보라 속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잠깐만!
내 말 들려?! 여기야! 여기!!
그 사람은 엔시아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녀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쉐라간드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혹시 사냥꾼이야? 여기서 산기슭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해?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어.
한 시간 반? 그렇게 오래 걸려?
지름길은 없어?
있긴 한데, 눈보라 때문에 못 지나갈 거야.
등산 용품은 있어! 피켈, 로프, 하켄까지 다 가지고 있어!
음…… 그럼 시도해 볼 만하겠네.
저쪽 뒤로 돌아가면 방금 지나온 호수가 나오는데, 거기에 사람이 다니기엔 좀 가파른 샛길이 있어. 눈에 덮여 있을 거니까 잘 찾아봐.
고마워! 혹시 이름이……
엔시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쉐라간드 신이 행인의 모습을 감춘 듯, 그녀의 시야에는 휘몰아치는 눈보라만 남아있었다.
사라졌어?!
일단 그쪽으로 가보자!
성공이다!
이 정도면 적어도 1시간은 줄였어! 어디서 버든비스트라도 빌려야 할 텐데……
멈춰라! 거기서 뭘 하고 있지?
!
아, 그, 난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그냥 평범한……
응? 넌 실버애쉬 가문의 막내?
아, 그게 여기엔 사정이……
흥, 자세한 얘기는 가주님께 드려라!
하인이 가져온 차와 다과가 테이블 위에서 향기를 풍기고 있지만, 응접실에 들어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차를 들지도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말 죄송해요! 페일로쉬 영지를 침범할 생각은 없었어요!
침입자들은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
……정말이에요.
그럼 집 앞에서 눈 구경을 하다 발을 잘못 디뎌서 호수까지 왔나?
아뇨. 동굴에 티어 스톤을 채굴하러 왔어요. 근데 다 캐고 나오니까 눈이 내렸고, 집으로 가려면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그럴 날씨가 아니라 반대 방향인 호수로 오게 된 거예요.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데 눈보라가 칠 때까지 티어 스톤을 캐고 있었다고?
더 들을 필요가 없겠군.
진짜예요. 제발 믿어주세요……
실버애쉬 가문의 막내딸이 내 페일로쉬 영지에 침입한 일로 소란을 피우고 싶진 않군.
네 오라비가 돌아오면 직접 설명해라. 그 녀석이 납득한다면 나도 널 놓아주지.
(오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니?!)
(타르야 할아버지한테는 시간이 없는데!)
(약만 보내는 거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면 아크토즈 씨가 또 무슨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해올 텐데, 오빠만 더 난처해지면 어떡하지……)
(할아버지는 실버애쉬랑 페일로쉬 가문의 대립이랑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실버애쉬의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
(오빠, 진짜 미안! 문제가 생기면 내가 끝까지 책임질게!)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표정이군?
……
호수에 무단 침입한 건 정말 죄송합니다. 어떤 처벌이든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전 사람을 구하기 위해 티어 스톤을 캐러 왔어요……
시시한 변명이군, 엔시아 실버애쉬.
하지만 사실이에요! 산에 사는 타르야 할아버지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 티어 스톤이 있어야 나을 수 있어요! 그래서 산에 오른 거예요!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어요. 대신 제 가방에 있는 티어 스톤을 타르야 할아버지에게 보내주세요. 제발요!
……
티어 스톤을 채굴했다면, 가방에 든 걸 보여줘라.
흠…… 확실히 티어 스톤이 맞군. 하지만 너무 큰 거 아닌가?
동굴에서 나올 때 손으로 쥐어 봤는데 한 손에 다 들어갔어요.
실버애쉬 가문에 쉐라간드 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녀석이 있어 다행이군.
산에 사는 타르야 앞으로 보내면 되는 건가?
네!
흠.
일단은 도와주지.
가장 빠른 버든비스트를 준비해라! 엔시아 실버애쉬 양과 함께 산으로 가겠다!
(살았다……)
(……잠깐만, 누구랑 같이 가?!)
아크토즈 씨, 저랑 같이 간다니요……?
네 말이 사실이라면, 영지를 넘어온 일은 경황이 없어 저지른 실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페일로쉬는 이런 시시콜콜한 일을 따지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곳이 아니지.
조금 전까지는 엄청 따졌으면서……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십년감수했네……
정말 고마워요, 아크토즈 씨!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티어 스톤을 구한 것도, 사람을 구한 것도 너니 고마워할 필요 없다.
아니요, 꼭 감사드리고 싶어요! 우리 집에서 몸 좀 녹이고 가실래요? 야카 아저씨가 곧 오실 거라 아마……
아크토즈는 견고한 바위처럼 조용히 선 채, 잔뜩 흥분한 채 말을 잇는 엔시아를 바라보았다.
……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신경 쓸 필요 없다.
……아크토즈 씨.
또 뭐지?
사실, 오빠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저희 자매랑 교류한 적은 별로 없어도 지금처럼 거리를 두진 않았던 거로 기억하거든요.
이 상황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분명 네 오빠일 거다. 네게는 악의가 없겠지만 그것 또한 네 오빠의 계획이 아니라는 법은 없지.
책략에 있어서는, 녀석을 이길 수 있다 확신할 수 없으니까.
다른 사람 눈에는…… 오빠가 그렇게 재수 없는 사람인가요?
그 녀석의 권모술수까지는 용인할 수 있지만, 전통을 짓밟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바깥의 것들이 전부 나쁜 건 아니잖아요! 타르야 할아버지 병도 바깥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더 빨리……
……
엔시아는 말을 하던 중, 아크토즈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페일로쉬 가주는 약간의 수고만으로 자신과 가까워져 있었다.
네가 네 오빠와 다른 부류의 인간이란 건 알겠군.
하지만 너희는 같은 실버애쉬야.
……
그쪽도 별수 없는 페일로쉬고요.
그야 당연하지.
하지만 절 도와줬잖아요.
그럼 널 억류하고 타르야를 죽게 내버려 둬야 했나?
아뇨!
그냥…… 이해가 잘 안 돼서요.
그럼 계속 고민해 봐라. 시간은 많으니까.
이만 가지.
그리고 가방을 잘 챙겨라. 또 흥분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저건…… 엔시아 아가씨? 돌아오셨군요!
바이스 오빠? 나야! 여기 있어!
엔시아 아가씨,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다시는 이런 위험한 짓 하지 마세요!
난 멀쩡하니까 진정해. 그리고 티어 스톤도 잘 가지고 왔잖아, 작은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별일 아냐.
하…… 아가씨도 정말 주인님처럼 고집이 세네요.
헤헤.
아직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주인님이 이번에 출국하신 건, 티어 스톤 자원 개발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자원?
전에 주인님이 빅토리아의 과학자들에게 연구를 의뢰했는데, 티어 스톤의 치유 효과는 티어 스톤에 함유된 특수한 물질 때문인 걸로 밝혀졌죠.
그런데 그 물질은, 한 번에 얼마나 채굴했느냐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해요.
티어 스톤 채굴과 정제 작업을 산업화하면, 쉐라그의 경제를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구할 수 있어요.
아가씨가 그런 위험한 곳에 가서 티어 스톤을 채굴하실 필요도 없어지고요.
바이스의 말을 듣고 있던 엔시아는 동굴에서 본 광경을 다시금 떠올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티어 스톤이 암벽에 박혀 있는 모습은 황홀했으며, 쉐라간드 신의 눈물이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타르야 할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그녀는 티어 스톤을 2번 채굴했고, 그 흔적은 동굴에 선명히 남아있다.
연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흔적들과 함께.
엔시아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오빠의 채굴 계획과 동굴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우리 오늘 저녁으로 뭐 먹을까?
야카 형님이 오늘 메인 메뉴는 고기 스튜라고 하셨어요. 정말 기대되네요.
조금 전까진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
식욕이 있다는 건 건강하다는 신호죠. 그럼 등산 가방 정리하시고 오세요. 전 주방에 가서 돕고 있겠습니다.
알겠어!
바이스 오빠, 그리고 있잖아……
!!!
당신은 그때 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갑자기 휙 사라지는 게 어딨어!
그래서 다시 왔잖아? 그리고 이건 네 편지야.
편지?
언니가 보낸 거잖아?!
내 소개를 할게. 나는 성녀님의 시녀장 키야르라고 해.
언니의 시녀장?!
설마 내가 산에 오를 거란 걸 알고 언니가 보낸 거야? 그래서 길도 알려준 거고?
물론 아니지. 아까는 물건을 사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거야.
그럼 언니한테는 내가 눈 오는 날 산에 오른 건 비밀로 해줘!
언니는 만주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편지에서 확인해 봐야겠네……
후, 잘 지내는 것 같아.
키야르 언니, 편지 전해줘서 고마워! 내가 야카 아저씨한테 얘기해서 저녁 식사를 같이……
쉿. 난 여기 몰래 들어왔어.
몰래? 왜?
내가 성녀님의 시녀장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바이스가 어떻게 하겠어? 분명 당신 오빠한테 보고가 들어갈 거야.
만주원 사람이 가주가 없는 틈을 타 몰래 네게 편지를 전해줬다는 사실이 당신 오빠 귀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의심이나 할 걸!
아……
하아.
그러니 가주님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어.
키야르 언니, 편지에 적혀 있진 않지만, 언니는 분명 아직 오빠가 많이 미울 거야, 그렇지?
솔직히 좀 그런 것 같아.
언니는 결국 아크토즈 씨랑 같은 쪽에 서게 될까?
네가 나보다 성녀님과 함께 지낸 시간이 길잖아. 실버애쉬 가문의 장녀로서 성녀님께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비록 성녀님이 가주님께 화가 많이 난 상태긴 하지만, 당신은 그 두 사람 모두의 동생이잖아.
그렇지 않았다면 이 편지도 없었을 거고.
하지만 언니는 이제 만주원의 성녀님이잖아. 언니가 날 보호하려 해도 이런 상황에선……
오늘 아크토즈 씨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처럼.
상대가 누구든 권력과 이익에 관련된 일이라면……
……
그걸 걱정하고 있었구나.
일단 기운부터 차리고 기쁜 일을 떠올려봐.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건, 성녀님이 말씀하신 밝고 귀여운 여동생과 거리가 멀다고.
……응.
그리고 성녀님은 감정에 휘둘리는 분이 아니야. 쉐라그 성녀의 어깨에 올려진 짐이 무겁다는 건 그 누구보다 성녀님 자신이 잘 알고 계시니까.
하지만 성녀님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가주님뿐만 아니라 네게도 달려있어.
너는 가주님의 부속품이 아니니 원하는 길을 가도록 해. 그럼 그 길이 가주님과 성녀님께 영향을 줄 거야.
확신할 순 없지만, 네가 고른 길이 두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될 수도 있지.
……!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난 먼저 돌아갈게. 바이스한테 들키면 꽤 귀찮거든.
이렇게 급하게? 아직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는데……
앞으로 만날 기회가 많을 거야.
그럼 또 봐, 엔시아.
잘 가, 키야르 언니!
엔시아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펼쳐진 편지를 다시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반 정도 정리했을 때, 가방 속에서 생소한 촉감이 느껴졌다.
엔시아는 안쪽의 물건을 꺼내서 자신 앞에 두었다.
사탕 2개였다.
하나는 페일로쉬 가문 응접실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내온 사탕이었고,
다른 하나는 꽤 옛날까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바로 어렸을 때 먹어봤던, 만주원에만 있는 사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