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의 유물
바흐만 교수님의 딸이 보낸 편지를 여러 번 받은 끝에, 귀중한 연차를 써서 그녀를 만나보기로 한 어스스피릿.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그녀는 이 결정 때문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정말 춥네.
지금 바로 노크하면 더 이상 떨고 있지 않아도 되잖아.
……그쪽이랑은 잘 모르는 사이라서, 조금 그래.
그렇게 오래 같이 지내 놓고, 여전히 낯을 가리는구나. 왠지 안심이 되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이젠 네가 내 동료가 됐다는 게 더 신기해.
휴, 됐다. 동료로서 도와줄게.
무슨 일이야?
……
바흐만 아가씨. 이쪽은 당신이 초대장을 보냈던 어스스피릿, 글레이셔에요.
어? 아,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글레이셔에게'라고 적힌 상자를 발견했거든. 그래서 계속 초대했던 거야.
한참 지나긴 했지만 드디어 왔네.
집에 가는 길에 겸사겸사 왔어. 바흐만 교수님이 대체 어떤 물건을 남겨주신 건지 보고 싶었거든.
들어와.
상자의 자물쇠는 우리가 이미 억지로 열었어. 우리도 뭔지 몰랐는데 상자를 열어서 안에 있던 편지를 읽은 뒤에야 당신에게 주려던 거라는 걸 알게 됐거든.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 하는 물건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몰라. 확인한 뒤에 알려주면 좋겠어.
뭐야? 종이 한 장이랑 돌 하나?
이거야 원, 그렇게 먼 길을 왔는데 겨우 종이 한 장에 돌 하나라고?
이건 아츠 유닛 억제기의 제작 도안이야. 기술 이론에 대해서만 조금 적혀있고 완성까지는 한참이네.
교수님이 오리지늄 아츠를 가르쳐주고 나서, 나는 일부 광물의 진동을 들을 수 있게 됐어. 감염자가 된 뒤로는 잡음만 들렸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치료받고 병세가 안정된 뒤로 소음이 사라졌어. 그리고 나는 다시 들을 수 있게 됐지. 심지어 더 '선명하게' 들리게 되었어.
하지만 그때는 우리 둘 다 어쩔 줄 몰랐어. 교수님은 광석병이 내 능력을 더 강하게 해준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교수님은 내가 1년을 꽉 채워서 일하면 쓸만한 억제기를 하나 만들어준다고 하셨지.
아츠 유닛?
라이타니엔에서 아츠 유닛과 관련된 물건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을 텐데? 그런데 심지어 엄마가 직접 연구했다고?
단순한 '억제'라면 원래 작게 들리던 소리가 아예 안 들리게 되지.
그래서 오리지늄 아츠에 익숙하면서도 광석 진동 주파수를 이해하는 사람이 각기 다른 파장을 수동으로 조절해야만 해.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말이야.
엄청 대단한 것 같아, 아쉽게도 완성하지 못한 것 같지만.
하지만 지금 나한테는 그런 억제기가 필요해…… 바흐만 교수님이 여기까지 해내셨다면 내가 이어서 연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다른 하나는? 저 돌은 뭐지?
비콘 스톤이야.
설명해 줘.
어떤 암석은 오리지늄에 의한 변질 작용이 쉽게 일어나기도 해. 그 결과 오리지늄을 품은 변성암이 생성되지.
그것들은 내 오리지늄 아츠에 격렬한 반응을 보여. 소리굽쇠의 도움을 받으면 비교적 멀리서도 변성암을 느낄 수 있지.
바흐만 교수님은 반응이 가장 격렬한 몇 개를 비콘 스톤으로 삼아 장소를 표시하는 데에 사용했어.
원래 교수님과 함께 답사를 갈 때는 항상 몇 개씩 가지고 가서 일정 간격으로 하나씩 놓고는 했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말이야.
그럼 만약 다른 사람도 이런 방식으로 같은 길을 갔었다면 비콘 스톤이 섞이게 되지 않나?
지금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그리고 각자 다른 주파수를 보내는 비콘 스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섞일 리도 없고, 누가 왔다 갔는지까지도 알 수 있어.
엄청 편리한 오리지늄 아츠 같네.
본질적으로는 물체를 약하게 진동시키는 것뿐이야. 오리지늄 아츠의 출력 빈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건 부차적일 뿐이지. 광물의 성분에 대한 이해도야말로 오리지늄 아츠의 핵심이야.
그럼 이건 왜 너한테 남겨두신 거지?
단서일 수도 있어. 이 도시에서 이 비콘 스톤의 주파수를 따라 오리지늄 아츠로 수색해 보라는 걸 거야.
파커…… 이 정도의 오리지늄 아츠는 괜찮겠지?
공공안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사람들의 이목도 끌지 않는다면 상관없을 거야.
찾았어. 흐릿한 느낌의 단서가 도시 밖으로 향하고 있어.
가보지 않을래?
지금?
아니면? 내일 떠날 거잖아. 시간이 되겠어?
안 돼도 어쩔 수 없지. 이제 알았으니 다음에 다시 찾아봐도 돼.
게다가 바흐만 교수님은 항상 내게 '호기심은 파멸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어.
이곳이 이동도시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도시 밖이라면 다음에 왔을 땐 못 찾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쉬러 온 거야.
이게 어떻게 일이야. 찾아만 낸다면 그건 당신 거잖아? 조금만 더 움직이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어스스피릿, 가도 돼. 방금 호텔에 연락해 봤는데 아직 방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최소한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대.
하아…… 정말 대단한 작업 효율이네……
좋아. 그럼 지금 출발하자.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끝났으면 좋겠네.
도시 밖에 이런 곳도 있었네?
이곳에 있는 게 확실해?
그래. 신호는 이쪽으로 향하고 있어.
음…… 커다란 동굴에 안쪽에는 갱도도 하나 있네. 동굴 벽을 지탱하는 버팀목은 낙석에 덮여있어.
뭐야? 설마 이 동굴이 엄마가 당신에게 남긴 물건이라는 거야?
이 동굴은 이미 오래전에 과도한 채굴을 진행했던 곳 같아. 게다가 교수님이 개인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은 적 없고.
앞쪽에서 신호가 느껴져.
아무래도 붕괴된 곳 아래에 묻혀 있는 것 같아.
아래에? 미리 알았으면 작업 도구를 조금 가져올 걸 그랬네.
상관없어. 내게 맡겨.
어스스피릿은 소리굽쇠를 바닥에 세웠다. 그러자 희미하고 이상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붕괴된 곳이 액체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액체가 끓는 것처럼 격렬하게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표면에 복잡한 무늬가 그려진 철제 상자가 위로 떠 올랐다.
엄청 귀한 물건이 들어있을 것 같은 상자네!
아무래도 싸구려는 아닌 것 같군. 좋았어.
잠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알려줘서 고마워. 드디어 바흐만 교수가 남긴 모든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군.
바흐만 아가씨?! 당신이 꾸민 짓이야?
미안. 더 빨리 손을 떼고 싶었는데 남편이 모든 물건을 제대로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고 해서.
달링, 이걸 팔아버리면 이제 떠날 수 있겠지? 당신이 예전에 말했던 대로 컬럼비아로 가서 즐겁게 지내자.
윽!
쯧! 제대로 맞추라고. 아니면 저 여자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들 생각이야?
이게 무슨 짓이야? 미쳤어?!
내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또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는 모를걸.
그리고 결국 바흐만은 집과 쓸모없는 돌덩어리들만 잔뜩 남겨놓고 떠나버렸지. 쓸만한 건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지만 드디어 마지막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넌 필요 없어. 입이 늘면 내 몫이 줄어들 뿐이니까.
그걸 팔아 번 돈으로 컬럼비아의 광산 산업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지.
봐 봐. 이동도시 밖의 버려진 광산이라니,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잖아.
멈춰!
글레이셔, 존경하는 우리 글레이셔 님. 림 빌리턴의 몇몇 회사가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냈는데 전부 거절했다지?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너는 살려주마. 나의 충직한 부하로서, 이인자의 자리를 주도록 하지.
지금은 새로운 직업을 찾고 싶지 않아. 연봉은 얼마 안 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의 각종 복지는 나 같은 감염자에게 꽤 매력적이거든.
가끔 삶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본 건가?
복귀 시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휴가라던가.
가끔은 이불 속에 누워서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는 나날.
그런 삶을 누리고 싶지 않나?
그런 삶을 누가 원하지 않겠어?
그럼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내가 아주 긴 휴가와 엄청난 권력을 주지.
으윽……
그때도 바흐만 아가씨에게 그렇게 말했던 거야?
인정할 수밖에 없네. 네 말은 젊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매력적이겠어.
하지만 내가 그동안 일하면서 알게 된 게 있지. 바로 당신이 말하는 것 같은 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조건이 너무 좋은 일은 대부분 거짓말이거든.
흥.
하지만 내가 내건 조건 중에는 네 생명도 있지. 나에게 맞서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상사 뒷바라지를 하는 건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만으로도 벅차. 모처럼 온 유급 휴가이니, 나도 하고 싶은 일 정도는 있다는 거야.
너무 아파…… 흑……
입 다물어! 시끄러워 죽겠네!
얘들아, 우선 저 여자부터 없애버려라!
화살을 쏠까요?
멍청아! 네 조준 실력으로? 그냥 괴롭히는 거잖아! 그냥 깔끔하게 보내 줘!
좋아, 칼로 직접 보내주마!
……잠깐만! 왜 움직일 수 없는 거지…… 뭔가가 내 발을 잡고 있어!
아니야! 너 지금 가라앉고 있다고!
이 길은 막다른 길이야.
살려줘! 가슴까지 가라앉았어! 숨도 거의 안 쉬어져!
내 손을 잡아!
빌어먹을!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글레이셔, 이게 내 제안에 대한 너의 대답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마음대로 생각해.
생각이 바뀌었다. 저 셋 모두 죽여버려.
……잠깐만! 난 아직 아무것도……
전부 석궁으로 바꾼다. 여기서 전부 처리해버려!
알겠습니다.
우선 저기 카프리니부터 처리해! 녀석을 죽여서 이 아츠부터 멈추라고!
내 소꿉친구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댈 생각하지 마.
쯧,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잊을 뻔했군.
대장, 이곳은 너무 좁아. 저 앞쪽의 방패가 화살을 전부 막아버린다고. 저 카프리니의 오리지늄 아츠 때문에 건너갈 수도 없어.
쯧…… 성가시군……
구경이나 하라고 너희들을 부른 것 같냐! 어서 방법을 찾아!
알았다.
흥, 그럼 이걸 한번 받아봐라! 방금 동굴 입구에서 찾은 폭약이다! 이걸 화살에 묶으면!
소용없어!
무슨? 우리 머리 위를 조준하고 있잖아?
너희는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광산이 붕괴돼서 죽은 거다! 완벽한 결말이군!
조심해!
바흐만 아가씨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거대한 검은 그림자였다.
타이어 크기의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얀 손 하나가 그녀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손에 닿는 순간, 돌덩이들은 모두 가느다란 모래로 변해 버렸다. 마치 폭포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모래 먼지가 손의 온기를 머금고 그녀의 얼굴로 떨어져 내렸다.
무표정한 카프리니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부축하고 다른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어머니에게서 나던 것과 같은 향기가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것은 흙과 푸른 풀의 향기였다.
20년간 느껴보지 못했던 안도감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괜찮아?
고마워…… 당신의 오리지늄 아츠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던 거야?
간단한 계산일 뿐이야.
다행이네. 이번에는 늦지 않았어.
이번에는 더 깊은 곳이잖아!
큰일이다. 이곳이 무너지려고 해!
저놈들, 우리를 생매장하려는 건가?
파커, 내 옆으로 와!
우선 도망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바흐만 아가씨는 다리를 다쳤어! 게다가 입구는 그 녀석들이 막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
날 믿어!
잠깐만! 어스스피릿!
너의 모니터링 팔찌, 경고등이 빨개졌어! 멈춰! 큰일 날 거라고!
걱정 마. 오류일 뿐이니까.
이게 뭐야…… 해골?
안 보는 게 좋아. 놀랄 거야.
나한테 바짝 붙어!
하하하! 전부 죽어버려라!
처음에는 돌멩이들이 각기 다른 색의 모래알이 되어 흩날리는 별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점차 모래알이 굵어지기 시작하며 봄비처럼 부슬부슬 바닥을 두드려댔다.
그다음에는 저 멀리 있는 돌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며 바닥을 무겁게 때렸다.
'유사화'의 영향을 받은 발밑의 바닥은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삼키지 않았고, 오히려 치솟는 파도처럼 세 사람을 부드럽게 받쳐줬다.
어스스피릿?!
난 괜찮아. 조정 중일 뿐이야! 코와 입을 막아! 이 먼지들이 몸에 들어가선 안 돼. 잘못하다간 오리지늄 아츠가 풀린 뒤에 병원에 가야 할 판이야!
떨어지는 돌들과 바닥의 모든 성분을 분석해서 각기 다른 주파수로 진동시키고 있는 거야? 이건 '간단한 계산' 정도가 아니잖아……
살짝 삐끗하기라도 하면……
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하지만 지금 저 여자는 움직이지 못해! 발사! 일제 사격이다!
큰일이야!
그렇지 않아.
흩어지던 모래들이 갑자기 다시 원래의 바위 모습으로 돌아왔고, 떨어져 내리면서 멀리서 날아오는 모든 화살을 막았다.
뒤이어 방패 같은 바위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마치 호수에 떨어진 것처럼 한쪽으로만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 물결은 넘실거리는 파도가 되어 광산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을 덮쳐갔다.
물결이 그들의 발에 닿는 순간, 호수 같았던 바닥은 다시 원래의 딱딱한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뭐야 이건…… 움직일 수가 없잖아!
파커, 녀석들을 묶고 경찰을 불러줘.
알았어.
잠깐만! 저 여자라고 결백할 것 같나?
유언장 위조에 재산 탈취까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 저 여자만 내 모든 계획에 동참했다고. 공범이나 마찬가지야.
널 이용해서 마지막 유산을 찾으라는 것도 저 여자가 낸 아이디어라고!
유언장 위조에 재산 탈취?!
……
바흐만 아가씨,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 엄마는 나를 조금도 사랑해 주지 않았어. 같은 한 배에서 태어났어도 오빠는 어릴 때 항상 엄마와 함께 있었지.
나는? 나는 아무것도 없었어…… 최소한 재산이라도 조금 더 주는 게,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 방금 전에도 저 녀석과 합심해서 날 이용하려고 했잖아?
우리 엄마가 당신을 많이 돌봐줬으니, 당신도 내가 끔찍한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좀 도와줄 수 있는 거잖아?
애초에 죽이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봐, 난 이제 막 졸업했어. 그리고 이제 일을 찾아야만 해. 하지만 이 돈이 있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 매일 원하는 만큼 늦잠을 잘 수 있다고.
……응석받이구나.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은 일 년에 한 번만 집에 돌아가잖아? 당신같이 일만 아는 사람들이 가정을 생각하기나 해? 당신 같은 사람들은 차라리 지겨운 삶에 매몰되는 편이 어울린다고.
쓸데없이 참견할 생각 없어. 그리고 당신에게 비친 바흐만 교수님의 모습을 옹호할 생각도 없고.
하지만 당신이 나를 그렇게 평가할 자격은 없어.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평가할 자격은 더더욱 없고.
그래. 나는 집에 잘 돌아가지 않아.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일하는 것 외에 시간이 있다면 재앙정보전달자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
왠지 알아?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게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 그러는 걸로 보여?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 집은 이동도시 밖에 있어. 엄청 가난하고 낙후된 도시지.
그곳이 바로 내 고향이야. 이동하지 않는 곳이지. 근처에 이동도시가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아. 하지만 이동도시는 언젠가는 떠나고, 그들은 우리를 데려가 주지 않아.
내가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해서 우리 가족을 이동도시에 데려오지 못했는데, 어느 날 재앙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난 재앙정보전달자야.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 외에 이 재앙과 관련된 문제를 더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모르겠어.
어쩌면 당신은 자신이 우리 대부분의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문제 자체에서 눈을 돌릴 거라면 그런 유치한 우월감도 버려.
적어도 이 유산은 내가 노력해서 차지한 거야!
내가 여기 있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저 레너드가 이번 일에 있어서는 당신보다 훨씬 노력했다고.
내 이름은 루이스……
닥쳐! 네 이름이 뭔지는 관심 없으니까!
평소에 항상 조용하던 카프리니가 소리쳤다.
하지만 무너진 동굴에서는 아무런 메아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주위를 맴돌던 해골들도 작게 웅얼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알았어.
……하아……
바흐만 아가씨, 내가 알기로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아주 사랑했어.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더 좋은 삶을 선물하기 위해 혼자 그렇게 일한 거지. 대학교수, 지질 전문가, 재앙정보전달자에 피아니스트까지 말이야.
당신의 오빠는 어릴 때 밥도 제대로 못 먹었고, 여러 병에 걸렸었어. 바흐만 교수님은 당신이 당신의 오빠처럼 될까봐 두려워했지.
당신에게 풍족한 삶을 선물하고 라이타니엔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줬지만…… 지금 같은 미성숙함을 초래하고 말았지.
그게 뭐 어쨌다고? 그렇게 많은 걸 줬다해도 집에 돌아오지도 않았잖아. 일이 아무리 바빠도 휴가는 있을 거 아니야?
사실 교수님은…… 언젠가 휴가를 내고 당신을 보러 가려고 했었어.
그런데 그때 내가 야외 조사를 하다가 동굴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버렸지……
처참한 모습이었다고 들었어. 드러난 오리지늄에 몸이 긁혀 상처투성이였다더군.
간단한 조치를 취한 뒤에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급하게 로도스 아일랜드로 데려갔어. 그러니…… 전부 내 탓이야.
만약 그때 교수님이 돌아왔다면, 당신이 교수님에게 당신의 생각을 말했었다면, 어쩌면 교수님도 더 일찍 퇴직해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이 모든 건 내 탓이야. 그때의 내 호기심이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할 수 있지.
바흐만 교수님의 가르침 대로네. '호기심은 파멸의 시작이다.'
잘못한 걸 알았으면 이제 내게 신경 꺼. 알았어? 그냥 알아서 살게 내버려 두란 말이야.
경찰을 불러서 저 녀석을 넘긴다면, 저 녀석은 당신을 공범으로 지목할 거야. 그래도 저 녀석을 그냥 놔주라는 말이야?
저 사람은 전과가 있어. 내가 사람을 시켜서 특별한 방법으로 데려온 거야. 위조한 증거를 모두 태워버리기만 한다면 저 사람은 도시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을 거야.
지금은 그게 최선의 방법이겠네.
너! 이 악랄한 여자 같으니라고!
네가 먼저 날 배신한 거잖아!
지금 내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반드시 너를 죽여버릴 거다!
그래서, 지금 내게 결정하라고 하는 거야?
미안하다고 했지? 더는 내 평범한 삶을 빼앗지 마.
미안하다고는 생각해…… 바흐만 아가씨.
하지만 결정은…… 윗사람의 몫이지. 나는 그냥 평범하게 일하면서 내가 받을 대가만 제대로 받고 싶어.
게다가 이건 당신 집안의 일이잖아? 나는 뜬금없이 말려든 것뿐이라고. 내 휴가를 방해했으니 추가 수당이라도 줄 거야?
뭐?! 이 죽다 만 더러운 감염자가……!
당신을 병원에 데려가서 부상을 치료해 줄게. 그리고 당신의 오빠에게 연락할 거야. 이 결과에 동의하는지 보자고. 그 사람이 동의한다면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난 법원의 판결에 맡길 거야.
나를, 내 인생을 망칠 셈이지!
어쩌면 당신은 이미,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렸을지도 모르지.
파커, 각자 움직이는 편이 효율적일 것 같아. 일을 마치면 바흐만가의 입구에서 만나자.
기다려!
알았어.
저쪽 일은 끝났어.
와우, 글레이셔 여사께서도 이성을 잃을 때가 있네.
크, 크흠. 난 냉정한 상태라고……
그냥 감정을 편하게 풀어놓은 것뿐이야. 이것도 휴가의 의의 중 하나라 할 수 있지.
……
뭐 보고 있어?
바흐만 저택 말이야, 저번에 왔을 땐 정원의 화초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집 밖의 담장도 깨끗했던 것 같아. 겨우 몇 년 지났다고 이렇게 망가질 줄이야……
교수님은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했어. 하지만 결국 원하던 것과는 반대로 돼버렸네.
집안의 기둥이라면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좋겠지.
어스스피릿, 이제 모니터링 팔찌에 대해 설명해 줘.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은 본함에 보고해야 하니까.
방금 내 뒤에 있던 거 봤어?
그냥 희미하게 윤곽만 보였어. 그것도 생명체야?
맞아.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오리지늄 아츠를 개방하면 조금 더 선명해지지. 방금 전과 같은 상태에서는 더 쉽게 볼 수 있고.
내 오리지늄 아츠는 애초에 출력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해. 진동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매우 적어. 그래서 나머지 에너지는 전부 쓸모없어지거든.
매번 아주 조금만 사용하니까 나머지는 마치 열기처럼 주위로 퍼져나가.
언제부터인지 그런 생명체가 찾아와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먹어 치우더라고.
로도스 아일랜드 아츠 전문가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녀석의 몸속에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냈어.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에너지가 다시 내 몸으로 되돌아오거든.
그래서 모니터링 팔찌의 경고등이 빛난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모니터링 팔찌의 데이터는 조금 손봐야겠네. 아니면 박사님과 켈시가 난리를 치면서 각종 검사를 진행할지도 몰라. 그러다 출근을 못 해서 월급까지 못 받게 되면 최악이니까.
알았어.
넌 예전부터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니 믿을게.
고마워, 파커.
엥? 평범한 귀성길일 줄 알았더니, 꽤나 위험한 일을 당했구나.
맞아. 엄청 힘들었어. 그냥 가는 김에 바흐만 교수님의 딸을 만나보고 싶었을 뿐인데, 귀찮은 일을 사서 했을 줄은 몰랐지.
맨날 튀긴 것만 먹지 말고. 자, 여기 야채도 좀 먹어.
가끔 이런 걸 조금 먹으면 꽤 즐겁거든. 감자튀김 먹을래?
기분이 정말 나쁜가 보네.
자신에게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 게다가 식당의 감자튀김은 튀긴 지 너무 오래돼서 전부 눅눅해져 버렸다니까. 대체 그걸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네.
그래서, 그 상자는 대체 뭐였어?
우르수스 북쪽에서 채집한 지질학 샘플이 들어 있었어.
좋아. 아무래도 또 바빠지겠네.
그렇지도 않아. 바흐만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그건 아직 탐사되지 않은 땅에서 채취된 건데, 그곳은 아마 평생 걸려도 조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셨어.
언젠가는 내게 이것들을 맡기겠다고 했었거든. 하지만 벌써 준비해뒀을 줄은 몰랐네.
너희 같은 연구원들이 호기심을 억누르는 건 꽤 힘든 일 아니야?
하지만 나는 다른 취미도 많으니까. 업무가 끝나면 굳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흥미 있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지.
그리고 이건 교수님과 했던 약속이니까.
내가 해야할 일은 닥터 켈시와 박사에게 보고한 뒤에 이걸 잘 보관해달라고 말하는 거야.
……방금 생각났는데, 이번 일 아직 보고를 안 했네.
휴…… 아무래도 또 바쁜 오후가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