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옛 추억
돌봄을 부탁받은 아이가 역으로 자신에게 아픈 과거를 마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줄은 메테오는 꿈에도 몰랐다.
등장 오퍼레이터: 메테오
11:00 P.M. 날씨/폭우
메테오의 숙소
비가 많이 오네, 너무 추워. 난방을 틀어야겠다.
으음……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더라? 이거였나? 이 동그란 걸…… 이쪽으로 돌리면……
됐나? 하아, 전자 기기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네. 벽난로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엇, 벌써 시간이…… 미나는 언제 퇴근하려나? 메딕 오퍼레이터들은 참 힘들겠어, 숙소를 같이 쓰면서도 온종일 얼굴 몇 번 못 보고.
메테오, 나야.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해.
미나, 야근 아니었어? 뭐야, 뭘 두고 간 거야?
내가 아니라 지아나. 계속 울면서 너만 찾아,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지아나? 무슨 일인데? 어디 아픈 거야? 잠깐만 기다려, 옷만 갈아입고 바로 의료부에 갈게.
그런게 아니라, 그냥 천둥소리에 놀란 것 같아.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넌 일단 진정해.
아…… 알겠어. 지아나랑 먼저 이야기 좀 해도 될까?
그래. 지아나, 메테오 언니가 너랑 통화하고 싶대. 이리 와봐.
메테오 언니, 나 무서워…… 흐흑…… 언니 어디야?
괜찮아, 지아나. 언니는 지아나가 제일 좋아하는 스노위라이스 밀크를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을게.
자, 착하지~ 울지 마, 지아나. 지금 메테오 언니 찾으러 가자.
흐흑…… 미나 언니, 나…… 나 무섭지 않아…… 울지 않을 거야.
그래 그래, 우린 금방 도착할 거야.
미나, 날도 추운데 옷 든든히 입혀주는 것 잊지 않았지?
당연하지, 의료부에는 따뜻한 어린이용 꽃무늬 스웨터가 언제나 비치되어 있거든.
양말 같은 것도 꼭 챙겨.
네네. 저기 메테오, 나 쟤를 챙겨야 하니까 먼저 끊을게. 이따 봐.
응, 기다리고 있을게. 조심히 와.
지아나는 왜 저리도 서럽게 우는 거람, 속상하게……
애가 춥지 않게 온도를 더 올려야겠어.
한 달 전
의료부
메테오, 당분간 이 아이를 돌봐줄 수 있을까? 부탁해!
폐허에서 발견한 아이인데, 천장이 무너질 때 부모가 아이를 품에 감싼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이제는…… 혼자 남았지만……
아이고, 불쌍해라. 나는 상관없긴 한데…… 왜 굳이 나한테? 의료부에 간호 전문가들이 많잖아.
사실 요즘 의료부는 일이 너무 많아. 말하기 창피하지만, 인력이 부족해서 네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어.
아, 맞다. 잠깐만……
이건……
아이의 진단서야. 심리학과 의사는 아이와 자주 함께 있어주는 게 좋다고 했는데, 나는 항상 곁에 붙어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래? 그럼 네가 바쁠 때 내가 돌봐줄게. 마침 요새 한가한 편이거든.
고마워, 메테오. 가족을 잃은 아픔을 받아들이기엔 아이가 너무 어려…… 네가 돌봐주면 금세 회복될 거야.
나 칭찬해 주는 거야? 어쨌든 고마워. 그나저나 아이는 지금 어디 있어? 볼 수 있을까?
물론. 나 따라와, 이쪽 병실에 있어.
저 아이야?
응응.
지아나, 약 잘 먹었어? 오늘은 누가 널 만나러 왔어.
응, 나 오늘 말 잘 들었어. 미나 언니…… 뒤에 있는 사람은……
언니는, 누구야……?
지아나, 이 언니는 메테오야. 앞으로 나랑 같이 널 돌봐줄 거야. 두려워하지 마. 이 언니는 인내심도 많고, 다정해서 네가 무척 좋아하게 될 거야.
미나 언니, 흐흑…… 나, 난 괜찮아. 언니가 바쁜 거 알아, 착하게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하…… 우리 지아나 이젠 철까지 들었네. 그런데 언니는 왜 그게 가슴 아프지.
메테오,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일 끝나고 바로 돌아올 테니, 여기 같이 있으면 돼.
응, 이따 봐.
언니…… 아, 안녕. 난 지아나라고 해, 여섯 살이야!
엇, 꼬마야. 그러니까 나는……
나, 난 약도 잘 먹고 편식도 안 해. 그, 그리고 장미꽃 접기도 배웠어. 언니는 장미꽃 좋아해? 다, 다 언니한테 줄게!
쓰읍…… 크흠, 지아나 맞지? 반가워, 난 메테오라고 해. 메테오 언니라고 불러도 괜찮아.
……
……메테오 언니?
사실 나 알아…… 미나 언니 찾으러 자주 왔잖아…… 언니를 본 적 있어. 말투가 다정해서…… 나……
괜찮다면 날 언니라고 생각해도 돼.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었거든.
저, 정말 그래도 돼?
되고말고.
흐흑……
메테오 언니, 난…… 으아앙……
왜 그래? 괜찮아, 뭐든지 이 언니한테 다 말해봐.
인형…… 내 인형을 못 찾겠어.
그렇구나. 미나한테 이야기해봤어? 언니가 안 찾아준 거야?
미나 언니가 바빠서…… 귀찮게 굴면 안 되니까……
괜찮아, 아니면 언니가 다른 곳에서 찾아볼게.
괘, 괜찮아. 안 찾을래. 그러니까 가지 마, 언니…… 제발…… 제발 나 혼자 두지 마.
알았어, 무서워하지 마. 언니랑 같이 새것 사러 갈까?
흑흑…… 새것은 필요 없어, 언니만 있으면 돼. 언니…… 나랑 같이 있어 줘, 혼자는 싫어.
걱정하지 마. 어디 안 가고 네 곁에 있을게.
흐어어엉……
그래, 그래. 언니가 함께 있어 줄 테니 이젠 무서워하지 마.
지아나는 왜 맨발이야! 미나야, 얘 양말 안 신겨줬어?
그게 아니야! 널 만나러 간다는 소리에 스웨터만 후다닥 입고 문밖으로 뛰쳐나갔지 뭐야. 잡을 수도 없었다고.
흐어엉…… 메테오 언니, 나 무서워. 소리가 너무 커서 혼자 못 자겠어.
천둥소리를 말하는 거야? 정말 나쁜 녀석이지. 우리 내일 박사한테 가서 천둥을 혼내주자.
으응, 흐으윽……
빨리 들어와.
난 됐어. 여기 칫솔, 우유 다 마시면 꼭 이를 닦으라고 해. 그리고 여기 수건이랑 양말, 장갑 인형이랑 깃털 머리끈이야.
알겠어. 그런데 너 하는 짓이 꼭 엄마 같아.
엣? 그렇게 말하니까 꼭 진짜 같잖아. 뭐, 좋아. '엄마'는 일을 해야 하니까 지아나는 얌전히 있어요.
자, 지아나. 미나 언니한테 인사해야지.
흐으윽…… 미라 언니, 안녕.
미라가 아니라 미나! 뭐 됐어, 빨리 돌아가야 해. 잘 자, 메테오.
안녕, 내일 봐.
흐흑…… 내, 내일 봐.
지아나, 내 잠옷 자락에 콧물 비비지 마.
안 그랬…… 쓰흡.
거봐, 휴지 가져다줄까?
앗, 메테오 언니…… 또 흘러내려!!
아악, 안 돼! 휴지는 어디 있더라? 여기 있네! 자, 빨리 닦아!
됐다. 얼른 이불에 들어가, 발도 집어넣고.
언니네 이불은 엄청 따뜻해, 장미꽃 향기도 나.
푸흡, 바보.
메테오 언니도 누워.
안아줄까?
응.
이야기 들을래?
응, 좋아.
다 듣고 나면 얌전히 자는 거야. 천둥 치는 거 이제 안 무서워?
응……
……메테오 언니, 사실 그날…… 그날도 오늘 같은 날씨였어. 엄마, 아빠랑 언니 모두가 점점 차가워졌어. 그, 그래서 너무 무서워서……
……지아나는 그날 있었던 일 때문에 천둥을 무서워하게 된 거야?
흐흑…… 역시 난 언니처럼 강해질 수 없나 봐.
괜찮아, 지아나. 언니도 지난 일 때문에 무서워할 때가 있었거든.
정말? 하지만 메테오 언니는 언제나 용감해 보여.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
일단 그 일을 무서운 괴물이라고 생각해. 그러고 나서 자신을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상상하는 거야.
그 담에는? 어떻게 한 거야, 언니?
그건 말이지, 천천히 이야기로 들려줄게.
이야기? 어떤 이야기?
아주아주 오래전, 머나먼 카시미어의 넓은 숲속에 커다란 낙엽 더미가 있었답니다. 그 안에……
뭐가 있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꼬마 사냥꾼이 있었어요……
나랑 같네. 나도 이불 속에서 떨고 있어.
그래? 음, 확실히 발은 아직도 차갑네.
좀 더 가까이 와, 더 꽉 안아줄게.
아직도 추워?
이젠 안 추워.
그럼 계속해 볼까?
우리 불쌍한 꼬마 사냥꾼은 길을 잃어 홀로 산속을 헤매고 있었어요. 사나운 북풍은 꼬마 사냥꾼의 얇은 옷깃을 파고들었고, 차가운 빗방울은 부드러운 머릿결을 적셨어요.
저 멀리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하는 천둥소리가 들렸어요. 마치 꼬마 사냥꾼의 굶주린 배가 울부짖는 고통의 꼬르륵 소리처럼.
무서워……
아니죠. 더 무서운 건 교활하고 커다란 짐승이 희미한 냄새를 따라 꼬마 사냥꾼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는 거예요.
짐승은 젖은 진흙 속에 코를 박은 채, 거친 나무껍질을 스치며 지나갔답니다. 수풀, 늪, 개울가, 어떤 곳도 놓치고 싶지 않았죠.
그리고 어느 고목 아래에서 기어이 냄새를 맡은 짐승은…… 마침내 발견했답니다! 작은 발…… 하나를!!
꺄악! 언니, 나 놀랬잖아! 내 발 놔줘!
헤헷, 이제 발이 따뜻해진 것 같네.
흥, 언니 배 위에 발 올려놓을 거야.
그래. 앗, 그런데 우리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짐승이 사냥꾼을 발견하고 발을 막 잡으려고 한데까지.
아, 맞아. 낙엽 더미 속에 숨어있던 꼬마 사냥꾼은 겁에 질린 채 머리를 움켜쥐었어요. 짐승의 거친 숨소리와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흙탕물이 튀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어요.
크응…… 크응……
철퍽…… 철퍽……
꼬마 사냥꾼은 무서워서 숨도 쉬지 못했어요. 눈에서는 커다란 눈물방울만 뚝뚝 떨어졌어요.
짐승은 꼬마 사냥꾼을 며칠이나 쫓아다녔어요. 지금까지 어떻게든 위험을 모면해 왔지만, 오늘만큼은 이 불쌍한 소녀에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어요.
포기하면 안 돼, 꼬마 사냥꾼!
맞아요, 포기하면 안 되죠! 짐승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순간, 꼬마 사냥꾼은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곤, 여기서 끝이냐고 자신에게 되물었어요.
꼬마 사냥꾼은 침착하게 화살통에서 마지막 화살을 꺼냈어요. 그리곤 낙엽 사이로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그 짐승을 마주했어요.
꼬마 사냥꾼은 이제 안 무서운 거야? 왜?
꼬마 사냥꾼은 할아버지가 불러주던 노래가 떠올랐답니다.
어떤 노래? 언니가 불러 줘.
꼬마 사냥꾼이 아기였을 때 할아버지가 품에 안고 이런 노래를 불러줬대요. “♪귀여운 우리 아가, 부드러운 달빛 아래, 어둑한 숲속에서, 짐승에게 쫓긴다네♪”
“♪앞으로 달려가다, 막다른 길에 들어서면, 용감히 뒤로 돌아, 활을 들어, 화살을 얹고, 활시위를 당기거라♪”
그 찰나, 달빛이 방향을 가리켰고, 대지가 어깨를 받쳐줬어요. 꼬마 사냥꾼이 활시위에서 손을 떼자, 화살은 휘몰아치는 북풍과 함께 짐승의 가슴에 정통으로 꽂혔고, 짐승은 결국 쓰러졌답니다.
메테오 언니! 그럼 짐승은 그렇게 죽게 된 거야?
맞아, 굳은 결심과 용기로 꼬마 사냥꾼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두려움을 안겨준 짐승을 쓰러뜨렸어. 나도 그렇게 자신을 두렵게 했던 과거를 물리칠 수 있었고.
그러니까 우리 지아나도 용기를 내서 두려움을 마주하면, 아무리 절망에 처해도……
하지만 메테오 언니…… 난, 내 과거를 쓰러뜨리고 싶지 않아! 무서울 땐 나쁜 일도 생각나지만 즐거웠던 기억도 함께 떠오르거든.
그래도 그런 일이 떠오르면 지아나는 괴롭지 않아?
응, 괴로워. 그리고 눈물도 나. 그런데 가슴도 함께 따뜻해져. 메테오 언니가 없었을 때 그런 추억들이 내 곁에 있어 줬어.
아아…… 그, 그런 거야? 네 짐승은 널 잡아먹을 생각이 없나 보다. 하.하.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짐승도 꼬마 사냥꾼을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을 거야.
그,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 짐승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걸 꼬마 사냥꾼은 어떻게 알아? 무서워서 도망치기만 했지, 한 번도 돌아서서 물어보진 않았잖아.
하지만 짐승은 꼬마 사냥꾼을 계속 쫓고 있었는걸. 잡아먹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있었을까?
아니야, 메테오 언니는 꼬마 사냥꾼이 무섭고 춥고 배고프다고 했지, 짐승에게 쫓겨서 다쳤다고는 안 했잖아.
어쩌면 짐승은 길이 험해서 외로운 꼬마 사냥꾼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짐승을 죽이지 마. 부탁이야, 언니.
……
메테오 언니…… 왜 아무 말도 안 해?
지아나가 말을 잘못한 거야?
아니, 옛날 일이 생각나서……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추억이야?
맞아. 예전에는 생각하면 왠지 괴로워져서 가급적 떠오르지 않도록 억누르곤 했지.
그렇게 하면 안 돼, 메테오 언니.
그래, 네 말이 맞아. 꼬마 사냥꾼도 틀렸고, 나도 틀렸어. 왜 짐승을 죽이려고 했을까, 또 왜 그걸 봉인하려 했을까?
집을 떠난 후 보냈던 수없는 밤, 황야든 숲이든, 고통과 즐거움, 슬픔과 외로움…… 돌이켜보니 내가 보냈던 모든 순간에 녀석도 함께했어. 그리고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
(언니의 말은 알 것 같지만, 모르겠어……)
(쓰읍…… 하아……)
지아나, 나…… 새로운 결말이 떠올랐는데, 들어볼래?
응!
그럼 이제 누워서 이불 속에 푹 파묻히는 거야.
누웠어, 눈도 감았어. 언니, 얼른 이야기해 줘.
마지막의 마지막…… 우리의 꼬마 사냥꾼은 비수를 뽑아 들었지만, 그 날카로운 칼날은 짐승의 심장을 향하지 않았어요.
대신 자신의 옷자락을 베어서 짐승의 상처에 조심스레 감아줬답니다.
그리곤 짐승의 부스스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설 수 있겠어, 친구야?”라고 물어봤어요.
짐승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어요.
그러자 꼬마 사냥꾼이 또 물었어요. “미지의 모험을 떠날 건데 동료가 필요해. 같이 갈래?”
이번엔 침묵을 깨고 기분 좋은 듯 그르렁거리더니, 이내 채찍처럼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어요.
녀석의 달리기는 너무 빨라서, 등에 올라탄 꼬마 사냥꾼은 마치 바람을 탄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꼬마 사냥꾼은 더는 외롭지 않았어요. 그렇게 둘은 태양을 향해 달려갔답니다.
하아암…… 메테오 언니…… 졸려.
새근…… 새근……
자는 거야?
새근…… 새근……
미나는 바보였어……
미나는 네가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아나 너는 과거를 대처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안 그래?
(볼 뽀뽀) 고마워, 지아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