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계기
바벨과의 협동 임무를 마치고 림 빌리턴의 광산 구역으로 복귀한 새비지. 그는 오리지늄 광부들의 안전을 지키며, 자신의 운명이 바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등장 오퍼레이터: 새비지
2:03 P.M. 날씨/맑음
아이언 로봇 시티 외곽 광산지역 26호 갱도
수고했어, 요한. 채굴 작업은 끝난 거야?
후우……
힘들어 죽겠네. 나 좀 끌어 올려 줘.
엇, 이거 깨끗한 옷인데……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다음 타임엔 너도 내려가야 할 거잖아.
무슨 일이야?
보안요원이 왔어. 아래 상황을 물어보더라고.
상황은 무슨…… 그동안 우리가 언제 사고 친 적 있었어?
보안요원한테 직접 내려가서 다음 타임의 작업반장이랑 얘기하라고 해.
난 가서 씻어야겠으니까, 보안요원들이 날 기다리겠다면 잠자코 기다리라고 해.
……엇, 이게 누구야.
꼬마 아가씨로군. 긴 여행이 끝난 건가?
오랜만이야, 고집불통 영감님.
여행은 무슨…… 일하러 간 거였다고!
정색하긴…… 알아, 바벨에 파견 나가선 인수인계하러 간 김에 큰일을 했다지.
그래서, 세상 구경 좀 했나?
별거 없던데? ……그냥 장소만 바뀐 것뿐이니까.
게다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흥, 여전하구나. 이제야 네가 돌아온 것 같아.
윗선인지 바벨 쪽인지 어디서부터 문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내내 협력 잘하다가 갑자기 그렇게 끝내버리니, 참.
……솔직히 말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됐다. 집에는 다녀온 거냐?
인사드리고 왔지.
언제 돌아온 거니?
사흘 전에……
흠, 네 예전 동료들은 전부 승진했던데, 이제는 소환 명령이나 받는 수하가 된 거냐?
다들 뭐가 그리 급한 건지…… 바벨 쪽 일은 전부 처리했고?
그게……
……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
캐묻고 싶진 않지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
모처럼 집에 돌아와서 옛 동료들을 만나는 게 안 기쁜 게냐?
나도 잘…… 모르겠어.
당연히 만나고 싶긴 해. 특히 고향의 광산은 내게 그리운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빨리 끝나버린 것 같아.
(휘파람을 불며) 아직 좋은 자리를 못 받았나 보군.
아니면 마음이 안 떠나는 누구라도 만나고 온 거냐?
마, 마음은 무슨! 그냥 친구거든!
윽…… 게다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대단한 임무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 '물건'을 쉴 새 없이 캐느라 2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으니.
인부들도 밖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다들 수군거리더라.
작업량이 확실히 적진 않으니까. 하지만 난 평범한 업무를 담당했을 뿐인걸.
이번 협력 건은 림 빌리턴에서 바벨로 운송하려는 '물건'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담당 보안요원이 필요했던 거였어.
그래야 본사에서 채굴한 선체와 코어를 '바벨'쪽에 계속해서 건네줄 수 있을 테니까.
난 그저 보안요원으로 선발돼서 바벨과의 합동 프로젝트 일부에 투입된 게 전부인걸.
그러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이거지?
(쓴웃음을 지으며) 알잖아, 내가 어떤지……
넌…… 에휴…… 여전하구나, 중요한 순간에 어리버리한 건.
뭐, 괜찮아. 살카즈 일은 알아서 하겠지. 중요한 순간에 어리버리하게 구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고.
바벨에서 널 끌어들인 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예전엔 광산에서 평생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바깥세상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으니 바깥세상에 대해 몰라도 된다고.
림 빌리턴을 떠나 바깥세상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 게 아니었나?
처음엔 떠나기 싫다고 그렇게 투덜대더만……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그냥……
하, 하하……
영감, 나…… 동족 친구를 알게 됐어.
사방이 온통 살카즈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바르게 자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잖아.
하지만 그 아이는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어.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참고, 버티는 법을 배우더라고.
배워야 할 지식이 산더미라서, 매번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어.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고, 림 빌리턴의 옛날 이야기를 유독 좋아했었지.
토끼로구먼. 어디 출신이라더냐?
……림 빌리턴.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래서……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왜 이렇게 걱정이 되는 건지……
흥, 대충 보이는구먼……
왜냐면 넌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게로구나.
……응.
맞아, 지켜주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거기에 더 머물 이유도, 그 아이를 이끌고 갈 힘도 나한텐 없으니까.
지금은 림 빌리턴으로 돌아와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
네 사명은 이미 찾은 것 같은데?
그렇게 거창한 게 아냐. 내가 바벨에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사람들이 날 고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백수가 됐을걸! 하하……
정말이지 넌……
됐다. 이젠 할 일을 해야지!
광산에서 일하는 우리 인부들의 목숨은 모두 너희 보안요원에게 달려있지 않느냐.
특히 넌 사람들을 안심시켜 주곤 하지.
적어도 지금의 우리에겐 네가 필요해.
……응, 알겠어.
이상하네…… 영감, 오늘따라 유독 말이 많네?
흥, 그럴 수밖에. 이제 막 세상을 돌아보고 온 네 앞에서 함부로 아는 체할 수는 없으니까.
하하, 농담도 참……
그래서?
먼 곳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카우투스의 아름다운 전통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으음? 아름다운 전통이라니?
쯧쯧…… 선물 말이다. 기념 선물 챙겨왔겠지!
림 빌리턴을 떠나는 게 여의치 않았던 내겐 바깥세상을 돌아볼 기회 같은 건 없었지만, 너희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많지 않느냐. 그런데도 선물을 깜빡하다니……
히히, 속았지? 설마 내가 잊었겠어.
다음에 외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닥치는 대로 사 왔지.
자, 빅토리아에서 아주 핫하게 잘 팔린다는 보청기야. 특별히 준비한 거라고!
암, 이래야지. 우리가 얼마나 알고 지냈는데.
이게 있으면 애들이 하는 말도 더 잘 들리겠구먼. 하여간 이놈의 직업병……
네에~ 네에~ 그럼 나, 내려가서 검사하고 올게.
후, 익숙한 느낌이네.
숨이 턱턱 막혀올 만큼 답답한 보호복, 무겁고 딱딱한 안전모, 계속 닦아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흐르는 땀……
이렇게 고된 환경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오리지늄을 캐야 하다니.
동족들은 점점 깊어지는 갱도 안에서 하나둘씩 사라져 갔지.
과거에는, 이곳이 내 삶의 전부였는데, 다른 동족들처럼……
지나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모두 여기서 보내야 하는 걸까?
아냐, 아냐! 생각이 많아져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어. 열심히 일해야 해, 적어도…… 요한 영감 같은 사람들의 목숨이 지금 내 손에 달려 있으니까.
……
하지만…… 자꾸 생각이 나는걸……
아미야, 잘 지내고 있어?
동족이 없는 삶에 익숙해졌니?
조금…… 걱정돼, 네가.
널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넌 잘 지낼 수 있을까?
림 빌리턴으로 돌아온 뒤로 연락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네.
아미야……
박사와 켈시…… 모두들 널 잘 보살펴 주고 있을 거야. 그렇지?
그 사람들 곁에서 넌 강해질 거야. 너만의 사명을 짊어진 채.
내게도…… 책임져야 할 일이 남았어.
하지만 네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줄게.
같은 길을 향해 걷다 보면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분명 그럴 거라고 믿어.
......
2년 후
1:34 P.M. 날씨/무더위
아이언 로봇 시티 외곽 광산지역 27, 28, 29호 갱도
모, 모두 물러나!
곧 분진이 폭발할 거야……
헉, 으윽!
사, 살려줘. 쿨럭, 쿨럭……
진정해. 모두 산소통부터 착용해!
살려줘, 살려……
......
경보음?! 무슨 일이지?
위험 경보…… 갱도에 사고가 난 게 분명해!
자세히 보고해!
크, 큰일 났습니다. 27, 28, 29호 갱도에서 활성 오리지늄 분진이 폭발했습니다!
뭐?!
에잇……! 그래서 이런 날씨에는 작업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망할 놈의 생산량 때문에……
29호 갱도…… 설마 아니겠지……!
인명 피해는? 현장은 어떻게 됐어?!
무, 무너진 갱도 안에 사람이 묻혔어. 부상자를 확인해야 해!
*림 빌리턴 속어*! 새비지!
알고 있어!
부탁한다.
내가 현장을 통제할 테니 넌 사람들을 구조해.
……방호복 입어. 바로 출발한다!
하아, 하아……
차, 찾았다……!
영감, 괜찮은 거지? 영감!
…… 요한 영감!
조금만 버텨! 내 손 잡아!
쿨럭……!
윽…… 으윽……
영감, 조금만 버텨…… 내가 구해줄게!
밖으로 끌어내, 어서!
…… 요한 영감, 정신 차려! 자면 안 돼!
300미터 밖에 의료 막사가 있어요!
빨리 뛰어!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번 광산 사고를 담당하게 된 합동 응급구조팀입니다.
난 림 빌리턴 광업 회사의 보안 담당이고, 하아, 하아…… 부상자를……!
네, 즉시 부상자를 확인하겠습니다.
먼저 정보를 등록해 주십시오. 즉시 연락할 수 있는 가족이나……
그런 건 회사에서 처리할 테니까 치료부터 좀!
으음?
토마스, 남아서 접수랑 등록 좀 처리해 줘.
네!
남은 사람은 날 따라와. 아직 안에 부상자가 남았어!
네!
참, 당신은……
저와 다른 두 동료는 이번에 나온 응급구조 자원봉사자예요. 로도스 아일랜드 제약회사 소속이죠.
(로도스 아일랜드?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그렇구나, 로도스 아일랜드. 영감을…… 부탁해.
……꼭 살려 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구해야 해!
수고했다, 새비지.
인원수는 맞아?
시신도 죄다 찾아냈더군. 부상자 12명, 중상자 3명, 사망……
그럼 됐어.
내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지.
……현장의 오리지늄 분진 농도를 봤을 때, 부상자는 매우 위험한 상태일 거다……
……
어디 가게?
영감 보러 구조 본부 좀 다녀올게.
참, 이번 구조 활동에 참가한 자원봉사자 중에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이 있던데, 거긴 어디지? 들어본 적 있어?
로도스 아일랜드? ……처음 들어보는데. 신생 회사인가 보지.
가 봐. 간 김에 로도스 아일랜드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
안녕하세요, 혹시……
아, 보안부 소속이셨군요! 지난번 첫 부상자를 데려온 것도 그쪽이었죠?
새비지라고 불러. 환자를 만나러 왔는데.
방금…… 요한이라는 환자가 들어왔을 거야.
아, 요한 씨 말이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메딕 오퍼레이터가 이미 응급 처치했습니다.
……지금 상태는?
네, 오리지늄 결정이 팔뚝과 옆구리에 파고드는 바람에 방호복이 터지면서 분진을 흡수한 것 같아요. 흡수한 함량이 꽤……
그러니까, 이미 감염됐다는 거야?
그…… 네, 맞아요.
젠장…… 결국 못 막았나 보네.
하지만 요한 씨는 응급 처치를 받으셨어요. 로도스 아일랜드의 약을 주사한 덕분에 감염이 확산되는 걸 피할 수 있었죠.
응? 하지만 그 정도 상처를 입은 데다, 활성 오리지늄 결정이 상처에 직접 파고든 거라면……
보호자분이 뭘 걱정하시는지는 압니다.
새비지라고 불러. 로도스 아일랜드의 약을 주사해서 감염이 확산되는 걸 막았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야?
네, 새비지 씨. 현재 구조 본부로 이송된 환자들에게 부상과 감염 상태에 따라 응급 약물을 사용하고 있어요.
환자가 과다 출혈이라서 아직 위험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자의 오리지늄 감염 증상은 모두 억제했습니다.
전부…… 억제했다고?
네, 전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아무리 효과 좋은 약이라도 당장 인부들에게 쓸 수는 없었을 텐데.
림 빌리턴의 의료 기관에서 쓰는 저가 오리지늄 감염 치료제를 감염된 인부들에게 썼을 때는 별 효과가 없었는데……
로도스 아일랜드는 어떻게……
자원봉사자 맞아? 이렇게 비싼 약을, 그것도 대량으로 제공하다니…… 대체 너희는……
엇! 그,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하지만 이건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난 요한 씨를 이제 곧 만나게 되실 거예요.
아냐…… 감염자가 된 인부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어.
더 싸구려 취급을 받으며 더 이상 캘 것도 없는 갱도에 박혀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해야 하겠지.
……죄송해요. 환자가 이송됐을 때는 이미 대부분……
사과해야 할 건 나야. 미안, 최선을 다해 줬는데…… 정말 미안……
새비지 씨……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켈시 주임님께선 어떤 상처도 아물 수 있고, 광석병 감염도 막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지만……
일단 감염자가 되면, 사람들은 무작정 증오심과 편견을 드러내죠.
맞아, 켈시는 분명……
……
……으응?
당신네 주임 이름이 뭐라고?
켈시요.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의 모든 메딕 오퍼레이터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시죠.
켈시…… 주임……
설마……!
지, 지휘관…… 로도스 아일랜드의 지휘관……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엇, 그게……
알려줘, 부탁해.
이름은……
저희의 보스, 로도스 아일랜드의 현임 지휘관의 이름은……
'아미야'라고 합니다.
……아…… 미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 아미야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나이가 겨우……
네, 맞아요. 저희 지휘관은 무척 젊죠.
하지만…… 같이 일해보면 나이를 초월하는 지혜와 힘, 의지를 지닌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새비지 씨…… 혹시 아미야 씨와 아는 사이인가요?
아…… 응, 우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야.
혹시…… 아미야와 연락이 될까? 내 이름을 들려주면 바로 알 텐데.
알았어요. 엄청 친한 친구가 있다고 말하신 적 있었죠, 지금은 림 빌리턴에 있는 것 같다며……
저, 정말 아미야가 맞구나…… 지금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어?
지금 로도스 아일랜드의 전달자에게 연락해 볼게요. 그리고 새비지 씨,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새비지는 혼자서 림 빌리턴의 광산 구역을 지켰다. 한순간도 떠나지 않은 채.
새비지는 방황하며 깊게 고민했다.
남은 인생을 아마도 림 빌리턴에서 조용히 보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새비지의 투지와 결심을 흔든 건 생각처럼 어렵지 않았다.
자신과 온종일 함께 지내던, 사랑스러운 이름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순간……
새비지는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이미 알고 있었다.
보름 뒤
아이언 로봇 시티 외곽지역, 구조 본부, 감염자 병동 안
감염자가 됐다는 걸 깨달은 순간…… 죽어서 받게 되는 위로금으로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 말 하지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게다…… 참……
처음 생각난 게 뭔지 아니? 어떤 표정으로 가족들을 만나야 하나 하는 거였단다.
마누라랑 아이들은 내가 화내는 걸 좋아하지 않지. 근데 울먹거리는 걸 더 싫어하거든.
하지만 가족들을 만났을 때, 내가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영감답지 않게 왜 그래?
이 근방에서 영감보다 더 낙천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영감마저 잔뜩 기죽은 모습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가면, 다른 분들은 또 어떻겠어?
암, 그렇고 말고!
얼굴을 구긴 요한 씨를 보면 다들 기분이 상할 거라고!
흥, 먹여 살릴 애들이 없으니 그 고충을 알 리 없지. 사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줄 알어!
우리도 고생길이 훤하다고……
쯧! 새비지, 녀석들 말 받아주지 마라.
림 빌리턴에서 계속 일해봤자 가족들 먹여 살리기 어려울 게다.
병이 낫는 대로, 컬럼비아로 가서 '대개척'에 참가할 거다.
영감…… 정말 떠날 거야?
림 빌리턴에서 광부로 일하는 동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이젠 감염자가 됐으니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구나,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림 빌리턴의 광산이 금방 바닥을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똑같은 나날을 보내는 것도……
새비지.
누구나, 그리고 모든 시대는 짊어져야 하는 사명과 책임을 지니고 있단다.
광부로 일하는 나를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었단다. 림 빌리턴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하지만 몇 년 전 림 빌리턴을 떠났다가 돌아온 넌 달라졌더구나.
……응.
어린 네가 평범한 토끼가 아니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단다. 모두들 저마다의 사명과 책임을 지고 있지.
네 해머가 우리를 구했다. 앞으로 넌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될 게야.
지켜줘야 할 사람이 있으면, 떠나려무나. 나처럼 말이야.
……
……
허허, 네 표정을 보니 이미 결심이 선 게로구나.
영감, 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취급하진 말아줘.
다만,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뿐이야.
친구를 지켜줘야 해.
마침내…… 다시 찾았어.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됐어.
미약하지만, 친구를 위해서 모든 걸 다 바치고 싶어.
흥, 모든 걸 바친다고 할 만한 일 같은 게 어디 있다 그래? 그게 다 혈기라는 거다.
하하…… 가족을 위해 갱도에 들어가고, 이제는 가족을 위해 떠나겠다고 말한 게 어디의 누구시더라? 영감도 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바치려고 하는 거 아냐?
어디가 같다는 거야? 나야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늬예~ 늬예~
말하는 버릇하고는…… 쯧쯧쯧……
언제 떠날 생각이냐?
오늘. 마지막으로 영감한테 인사하고 출발할 생각이었어.
그동안 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어서…… 정말 고맙구나.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더는 안 뺄게.
영감, 내가 구해줬으니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해.
하여간 너란 아이는……
잘 가려무나.
잘 있어, 영감.
(……잠시만 안녕, 림 빌리턴.)
미안, 기다렸지.
새비지 씨, 작별 인사는 다 하신 건가요?
영감도 진짜…… 집에 가서 확실하게 인사드리라고 끝까지 잔소리하더라.
어제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드렸더니 엄마는 다음에 집에 올 땐 짝을 데려오라며 잔소리만 하고……
……일하러 가는 건데 말이야!
하, 하하.
유쾌한 분들이네요.
본함에 연락해서 입사 신청서는 이미 통과시켜 놨어요. 이건 채용 계약서입니다.
업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함에 도착한 후 확인하시면 돼요. 로도스 아일랜드에 합류하신 걸 축하드려요, 새비지 씨.
그럼…… 새비지 씨, 행운을 빌어요.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찾았어.
아미야, 넌 어떻게 변했을까?
지휘관이 되다니, 정말 대단해.
기다려 줘, 아미야.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사명도 다 짊어지겠어.
네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이야. 들어줄래?
네가 겪은 즐거운 일도, 힘들었던 일도…… 내가 겪었던 즐거운 일도, 힘들었던 일도……
만나서 마음껏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