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육백 파운드

육백 파운드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런디니움의 눈 내리는 어느 밤. 로셸은 회사에서 보상금 600파운드를 받아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락락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폭설은 아니었지만 축축하고 무거운 눈이었다.

이 눈이 언제까지 내릴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회사 대표

그거 들고 얼른 나가.

초췌한 노동자

금액이 맞는지 세보고 가겠습니다.

회사 대표

총 600파운드야. 뭘 그리 유난을 떨어? 게다가 연합 오리지늄 공업 같은 대기업이 이까짓 돈을 떼먹을 것 같아?

초췌한 노동자

다 세면 가겠습니다.

회사 대표

마음대로 해. 나도 급한 일은 없으니까.

회사 대표

철도가 폐선 된 지도 벌써 2년이군…… 보상금 정산 동의서에 제일 늦게 작성한 사람이 바로 너야.

초췌한 노동자

……58, 59, 60.

회사 대표

(깊은 한숨 소리)

회사 대표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군.

회사 대표

동의서도 작성했고 돈도 다 확인했으니 이제 넌 우리 회사와 아무 관계도 아니야. 나가봐.

초췌한 노동자

……

회사 대표

뭘 꾸물거리는 거야? 나도 이제 퇴근 시간이라고.

초췌한 노동자

잠깐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회사 대표

뭘, 돈 말하는 거야? 펜스 한 닢도 더는 못 줘.

초췌한 노동자

회사가 약속했던 것에 대해서요.

초췌한 노동자

영화관, 대중목욕탕, 어린이집, 작업장의 탄산수 자판기…… 이뤄진 것도, 이뤄지지 않은 것도 있죠.

초췌한 노동자

예전에는 이미 손에 넣은 것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했어요.

회사 대표

추억팔이는 집에 가서 해. 얼른 나가라고!

초췌한 노동자

회사에서 대표님께 약속한 건 뭐였습니까?

회사 대표

……

회사 대표

……나가, 제발. 부탁이다.


오랫동안 수리되지 않은 가로등은 꺼져 있거나 희미하게 깜빡거렸고, 그 불빛에 상업 지구 쪽 밤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

멈춰.

노동자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하자 작은 칼 하나가 그의 허리께에 닿아왔다.

강도

돈 내놔.

초췌한 노동자

돈 같은 것 없어.

강도

방금 돈 받은 거 알아. 내놓으라고.

초췌한 노동자

……

강도

꾸물거리지 마.

초췌한 노동자

기관차 사무소 어느 작업장 소속이지? 점검 쪽인가?

강도

그걸 어떻게……

강도

……이게 아니지. 상사처럼 이러쿵저러쿵 캐묻지 말고 돈이나 내놔! 안 그러면 찌르겠어!

초췌한 노동자

잠깐 얘기 좀 할까? 정말 힘든 일이 있는 거라면 돈을 빌려줄게.

강도

빌려준다고? 내가 빌려본 적이 없을 것 같아? 요즘 같은 상황에 누가 환자에게 돈을 빌려주겠어?

강도

네가 빌려준다 한들 내가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초췌한 노동자

돌려줄 때까지 기다릴게……

강도

웃기지 마!

강도

셋 셀 동안 돈과 목숨 중 어느 쪽을 지킬지 결정해.

강도

하나…… 둘……

강도

……

강도

……셋!

강도

자, 다 셌어. 날 열받게 하지 마!

강도

내 폐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어. 이런 목숨 따위 아깝지 않아! 얼마든지 널 찌를 수 있다고!

강도

당장 돈 내놔!

강도

빨리!!

노동자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도는 들고 있던 칼을 휘둘러 노동자의 옷을 베었다.

칼끝에 뭔가가 닿은 느낌이 전해지자 감전이라도 당한 듯 강도가 칼을 슬쩍 뒤로 뺐다.

강도

너……

강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동자는 품속에서 얇은 봉투를 꺼내 어깨 너머로 그것을 건넸다.

강도는 사면받은 죄수처럼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낚아채며, 히스테리적인 환호성을 질렀다. 노동자가 몸을 돌렸을 때, 강도는 이미 보상금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600파운드와 함께 말이다.

노동자는 얼마간 제자리에 서 있다가 천천히 길가로 걸어갔다. 바지 주머니를 한참 뒤적인 끝에 담배를 꺼내 든 그는 하나 남은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였다.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취하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어둠 속에선 붉은빛이 빛나고 있었다.


초췌한 노동자

로셸, 아빠 왔다.

초췌한 노동자

로셸?

초췌한 노동자

로셸 락웰!

초췌한 노동자

얘가 어딜 간 거지? 벌써 날도 저물고 이제 눈도 온다는데, 찾으러 가야겠군……

로셸

……아빠.

초췌한 노동자

왜 이렇게 늦었어?

로셸

이웃한테 들었는데……

로셸

강도에게…… 돈을 뺏겼다면서.

초췌한 노동자

……

로셸

정말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셸

얘기를 듣고 그곳에 다녀왔는데 아무도 없었어.

로셸

누가 그런 거야?

초췌한 노동자

……

로셸

다른 구역의 강도가 이쪽까지 올 리는 없고, 분명히 경공업 구역의 사람일 거야, 틀림없어.

로셸

게다가 아빠가 오늘 보상금을 받은 것까지 알고 있었잖아!

로셸

반드시 그놈을 잡아서……

초췌한 노동자

로셸, 그만해.

로셸

그게 무슨 뜻이야?

초췌한 노동자

몇 마디 나눠봤는데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야.

로셸

아빠!

로셸

좋은 말로 얘기했다면 우리도 빌려줬겠지. 그렇지만 이건 강도질이잖아!

로셸

만약 그 사람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었던 거면 지금쯤 아빠는……

초췌한 노동자

그럴 사람이 아니었어.

초췌한 노동자

그럴 사람이었다면 뒤에서 바로 망치로 머리를 후려쳤을 거야. 몇 달 전 사건처럼 말이야.

로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초췌한 노동자

건강이 무척 안 좋은가 봐. 그런데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초췌한 노동자

다 같은 동료인데, 잠깐 판단이 흐려졌던 거겠지. 형편이 나아진다면……

로셸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초췌한 노동자

틀림없이 올 거야.

초췌한 노동자

기억나? 몇 년 전 네 생일 때 기관차 사무실 모두가 남는 부품으로 드론을 만들어 줬잖아. 무려 하늘을 날 수 있는 걸로.

로셸

당연히 기억하지.

초췌한 노동자

기관차 사무소뿐만 아니라 경공업 구역 모두가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초췌한 노동자

그 사람도 분명 돌려줄 거야.

로셸

하지만……

초췌한 노동자

뭐야, 이 아빠를 못 믿겠다는 거야?

로셸

그,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오늘 오후에 클라크 아주머니가 먹을 게 없다고 음식을 나눠달라고 했었거든.

로셸

아빠도 알겠지만 그 집은 아이가 다섯이잖아.

초췌한 노동자

……알고 있지.

로셸

아빠가 보상금을 받아올 줄 알고 갖고 있던 빵을…… 전부 아주머니한테 줬어.

초췌한 노동자

……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지은 지 몇 년밖에 안 된 집이라 아직은 그럭저럭 아늑했지만, 창 틈새로 들려오는 윙윙 소리로 두 사람은 눈발과 바람이 더 거세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로셸

클라크 아주머니한테 가서 아직 먹을 것이 남아 있는지 물어보고 올게.

초췌한 노동자

이 눈보라에 무슨.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

로셸

……

초췌한 노동자

내일 나가서 보일러공을 구하는 공장이 있는지 알아보면 돼. 정 없으면 막일이라도 해야지.

로셸

하지만 아빠는 허리가……

초췌한 노동자

괜찮아. 아픈 곳 하나 없는 노동자가 어딨겠어?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야.

초췌한 노동자

아빠 걱정은 말고 일찍 자.


몇 년 후

자경단 대원

락락, 여기 부상자가 한 명 더 있어!

락락

지금 간다! 로버트슨 아저씨?!

로버트슨

……

자경단 대원

로버트슨 씨, 일어날 수 있어요?

로버트슨

(고개를 젓는다)

자경단 대원

락락, 들것을 가져올게. 아저씨를 부탁한다!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다른 부상자는 없는 거야?

로버트슨

……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로버트슨

(고개를 젓는다)

락락

말 안 해도 괜찮아. 곧 들것이 오니까 조금만 더 버텨!


자경단 대원

락락, 살카즈가 왜 이 거리에서 폭행을 저지른 건지 알아냈어.

락락

무슨 이유야?

자경단 대원

놈들이 경공업 구에 '작업 금지령'을 내렸대.

락락

작업 금지령?!

자경단 대원

놈들이 점거한 공장 말고 다른 곳에서는 일을 못 하게 하나 봐.

락락

그러니까 사람들을 강제로 자신들 공장에서 일하게 하고, 이를 거역하는 노동자들은 굶겨 죽이겠다는 거잖아?

자경단 대원

맞아.

자경단 대원

이 사람들이 폭행당한 것도 살카즈의 공장일이 아닌 다른 일을 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었어.

락락

가족이 없는 노인이나 환자들은?

자경단 대원

놈들이 그걸 신경 쓸 것 같아?

락락

이 마족 놈들!

락락

(심호흡한다)

락락

너는 가벼운 부상자들 치료를 해줘. 아직 약이 남아 있으니까 아마 아껴 쓰면 될 거야.

락락

난 로버트슨 아저씨한테 가볼게.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오후 약이야.

락락

어때, 앉을 수 있겠어?

로버트슨

……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로버트슨

……

락락

아저씨, 약은 잘 먹어야 해.

락락

어, 오전 약도 안 먹은 거야?

로버트슨

왜…… 나를 챙기는 거냐?

락락

엥?

락락

런디니움 노동자라면 누구든 도와야지.

락락

아빠가 그랬거든. 경공업 구역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라고.

락락

게다가 로버트슨 아저씨는 기관차 사무소 소속이니까……

로버트슨이 침대보를 꽉 움켜쥐었지만 그 모습을 락락은 미처 보지 못했다.

로버트슨

……사람을.

락락

뭐라고?

로버트슨

사람을…… 바꿔줘.

락락

사람을 바꿔 달라고?

락락

간병인을 바꿔 달라는 말이야?

로버트슨

(고개를 끄덕인다)

락락

……

락락

알겠어.

락락

바로 다른 사람을 불러올게. 그래도 약은 꼭 먹어. 알았지?

로버트슨

(눈을 감는다)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로버트슨

……

로버트슨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경단 대원

락락, 부상자들 상태는 어때?

락락

많이 호전돼서 오늘 중으로 다들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락락

다들 떠나면 우리도 이동해야 돼.

자경단 대원

……그러게.

자경단 대원

그러고 보니, 로버트슨 씨가 아까부터 계속 침대를 두들기던데?

자경단 대원

물이나 식사, 약을 가져가도 고개만 흔들지 그렇다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아니라고 하고. 아파서 말도 못 하고 침대만 두들기네.

자경단 대원

내 생각엔 널 찾는 것 같아.

락락

지금 가볼게!

락락이 빠른 걸음으로 텐트로 들어갔을 때, 로버트슨은 여전히 힘없이 침대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뜨고 락락의 모습을 확인한 후, 드디어 두들기는 소리가 멈췄다.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날 찾은 거야?

락락

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 있을게.

로버트슨

(침대를 툭툭 친다)

락락

앉으라는…… 말이지?

로버트슨

……

나무판을 몇 장 이어 만든 침대는 건장한 성인이 눕기에는 조금 비좁은 크기였다.

락락은 행여나 로버트슨을 깔고 앉을까 침대 가장자리를 더듬어봤지만, 딱딱한 침대만이 만져질 뿐이었다.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나 여기 있어.

락락

요즘 약도 제때 잘 먹는 것 같네.

로버트슨

……

락락

다행이야. 그래야 금방 나을 수 있어……

로버트슨의 입에서 뭉개져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뜻만은 분명했다.

락락

하긴, 내가 괜한 말을 하고 있네……

락락

그럼 옛날이야기나 할까?

로버트슨

……

락락

아빠가 살아 있을 때 철도는 경공업 구역의 혈관이라고 말했었어.

락락

철도를 따라 원료가 끊임없이 공업 구역으로 운반되고, 작업장과 공장을 거쳐 제품이 된 뒤, 다시 철도를 따라 공업 구역을 떠나 런디니움과 빅토리아로 향하게 된다고……

락락

제품은 혈관 속을 흐르는 피고, 철도 노동자는 철도를 구성하는…… 구성하는 뭐였더라……

락락

맞다. 세포라고 했어.

락락

세포들끼리 허물없이 지내고 협력해야 피가 잘 통하고, 세포도 그 과정에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고 했었지.

락락

그걸 듣고 난 아빠한테 이렇게 말했어.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는 경공업 구역의 맥박 소리냐고 말이야.

로버트슨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락락

아빠는 잠깐 고민하더니 맞는 말이라고 칭찬해 줬어.

락락

그 후로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 대화가 떠올라. 그러다 보니 기차 소리가 시끄럽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달까, 마치 내 심장 소리처럼 느껴져서……

락락

덜컹, 덜컹……

로버트슨은 락락이 흉내 내는 기차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락락

시간이 흘러 경공업 구역의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철도까지 폐선 되었지……

로버트슨

(숨을 세게 들이쉰다)

로버트슨

쿨럭, 쿨럭……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락락

미안. 얘기하다 보니……

로버트슨

……

락락

슬픈 이야기는 그만할까?

락락

맞다, 이거 봐!

락락

내 드론이야. 락 11호라고 해.

락락

왜 11호냐면, 1호부터 시작해서 벌써 11번째 드론이거든.

락락

대장님이 다양한 부품을 덧대 만든 거라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들에는 못 미치지만, 이 안에는 내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어서 도움이 꽤 되는 편이야.

락락

자경단 설립 이후 이 드론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진작 살카즈에게 붙잡혔을지도 몰라.

락락

이건 로버트슨 아저씨와 아빠의 기관차 사무소 동료들 덕분이야.

로버트슨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락락

기억나? 내가 어렸을 때, 생일날 기관차 사무소 사람들이 남는 부품으로 드론을 만들어준 거. 그 코어 엔진을 로버트슨 아저씨가 만들었었잖아.

락락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 드론, 별로 높이 날진 못했지만 틈만 나면 집에서 날리곤 했어.

락락

저 회전하는 프로펠러를 보면서, 어른이 되면 더 크고 좋은 드론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어.

락락

그럼 아빠도 밤낮없이 보일러를 지키지 않아도 되고, 로버트슨 아저씨도 점검을 위해 오르내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락락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면서, 일이 끝나면 함께 나가서 가볍게 맥주도 마시고……

로버트슨

(잔뜩 뭉개진 목소리)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로버트슨의 기침 소리가 락락의 말을 끊었다.

락락은 로버트슨의 촉촉해진 눈가를 발견했다.

락락

이 얘기도 그만하자! 난……

로버트슨이 재차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했지만…… 겨우 내뱉은 목소리조차 심한 기침에 묻히고 말았다.

기침이 조금 잦아들자 로버트슨이 침대를 두들겼던 손을 힘겹게 들어 자신의 안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적인 끝에 그가 꺼낸 것은 돈더미가 든 비닐봉지였다.

락락

돈……?

락락

이걸…… 나한테?

로버트슨

(고개를 끄덕인다)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이건 아저씨가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이잖아! 그런 건 못 받아!

로버트슨

(침대를 툭툭 친다)

락락

이러지 마, 아저씨. 이 돈 절대 못 받아.

락락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우선 맡아두고 있다가, 가족들이 오면 전달해줄게.

로버트슨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락락

하지만!

로버트슨이 탁한 눈동자로 락락을 간절히 바라봤지만 그녀의 단호한 태도는 오히려 그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는 포기했다.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을 가다듬은 뒤 다시 손을 안주머니에 넣었고, 이번에 꺼내 든 것은 얼룩진 편지 봉투였다.

락락

편지…… 봉투?

락락

걱정하지 마, 편지라면 받을게. 하지만 이 돈은……

로버트슨

(힘껏 침대를 내리친다)

락락

……그 뜻이 아니라고?

락락이 편지 봉투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이미 아주 오래전 땀으로 번져버린 글씨가 휘갈겨져 있었다.

락웰, 보상금 600파운드.

락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후 로버트슨이 있는 힘껏 비닐봉지를 찢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지폐가 땅에 흩어졌다.

10파운드, 5파운드, 1파운드. 그 사이로 반짝이는 동전들도 보였다.

그건 회사에서 지급한 보상금이 아니라 펜스를 한 닢 두 닢 모아온 돈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로버트슨이 살카즈에게 맞게 된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유였다.

락락

로버트슨…… 아저씨?

로버트슨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로버트슨은 노동자답게, 온몸의 힘을 모두 소진한 뒤 고요히 잠들고 말았다.


이 노후해가는 경공업 지구에 벌써 몇 번째 아침이 찾아왔을까.

살카즈의 작업 금지령은 효과가 있었다. 먼동이 틀 때부터 공장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이 그 방증이었다.

얼마 전까지 살카즈 무리는 사람을 보내 노동자들을 감시했다.

하지만 살카즈는 이내 깨달았다. 좀비처럼 침묵한 채 일터로 향하는 저들은 보는 눈이 없어도 절대 규칙을 어길 일이 없으리란 것을 말이다.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저항에 더 많은 인력을 동원하기 위해 살카즈는 더 이상 노동자들을 감시하지 않았다.

가난과 굶주림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감시자였다.

과묵한 노동자

……

과묵한 노동자

저건…… 뭐지?

늙은 노동자

……드론인가?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드론 한 대가 노동자들을 향해 날아왔다.

첫 번째 노동자의 머리 위까지 날아온 드론의 화물칸이 열리자 지폐 몇 장이 팔랑팔랑 흩날리며 떨어졌다.

늙은 노동자

돈?

드론이 휘청 흔들거리며 노동자들 머리 위로 날아갔고, 화물칸의 지폐와 동전들이 무겁고 신비로운 눈처럼, 모든 노동자의 몸에 고르게 흩뿌려졌다.

이 눈의 가치는 노동자가 반평생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보상금과 같았다.

600파운드였다.


살카즈 두목

샅샅이 뒤져!

살카즈 두목

오늘 오전에 놈들의 거점을 알아냈으니 아직 도망치지 못했을 거다!


살카즈 병사

보고드립니다! 사람도 물건도 없었습니다. 발견된 건 이것뿐입니다.

살카즈 두목

……공업 부품 케이스? 떡하니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갔다고?

살카즈 두목

어이, 한 번 쏴봐. 내용물이 뭔지 확인이나 해보자고.

살카즈 병사

예!

살카즈 병사

소리로는 빈 상자인 것 같습니다!

살카즈 두목

열어봐!

살카즈 병사가 조심스럽게 부품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폭탄도, 독약도, 위협 목적의 단검조차 들어 있지 않았다.

잔뜩 구겨진 더러운 편지 봉투 한 장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두목이 편지 봉투를 열어봤으나 속은 텅 비어있었고, 마치 누군가가 커터 칼을 사용했는지 뒷면 한 귀퉁이가 반듯하게 잘려있었다.

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편지 봉투를 불빛에 비춰보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얼룩 말고 보이는 건 몇 방울 눈물 자국이 전부였다.


몇 년 후

유쾌한 노동자

어? 남에게 돈을 주는 게 이게 처음이 아니라고?

락락

맞아. 지금껏 남은 돈을 몇 명에게 줬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인걸. 뭐, 어차피 가지고 있어도 쓸 곳이 없는데.

유쾌한 노동자

그, 그럼 받는다? 고마워.

락락

고맙긴요.

유쾌한 노동자

그나저나 참 특이한 습관이네. 어쩌다 그런 습관이 생겼어? 처음 남에게 돈을 주게 된 계기가 뭐야?

락락

첫 계기?

락락

자경단이 막 창설됐을 때, 아빠의 오랜 동료를 구한 적이 있는데……

락락은 고개를 들고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녀의 눈빛이 이제 막 공사를 마친 길가의 신축 건물에 닿았다. 허물어져 가는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건물의 옥상에는 거대한 네온사인이 세워져 있었다.

'연합 오리지늄 공업 - 런디니움 공업 진흥 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