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눈보라가 대신 전달한 것

눈보라가 대신 전달한 것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빙원 구조 작업 중, 카니팔라트는 마을과 외부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맡게 됐다.

등장 오퍼레이터: 카니팔라트


생존자A

오늘이…… 며칠…… 째지?

생존자B

……모르겠어…… 한 닷새 정도?

생존자A

……뭘 보는 거야……?

생존자B

저쪽에…… 파울비스트 둥지가…… 있어……

생존자A

아직도…… 그런 걸…… 볼 힘이 남았어……?

생존자B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어……

생존자A

뛰어내리고…… 있다고……?

……쿠웅!

멀리서 갓 부화한 파울비스트가 찬바람에 젖은 털을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눈을 떠 절벽에 걸린 둥지를 바라보았다.

그 파울비스트의 어미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짐승들을 피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새끼 파울비스트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비행을 배우기 전까지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야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틀대며 둥지에서 나온 파울비스트가 힘없는 날개를 펼치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뛰어올랐다……

쿠웅! 몰아치는 바람에 파울비스트가 절벽 옆면에 부딪혔다.

쿠웅! 아래로 굴러떨어진 파울비스트의 몸이 뾰족한 얼음 조각에 베였다.

쿠웅! 파울비스트는 끝내 눈 속으로 추락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눈은 충격을 줄여주지 못했다. 파울비스트는 천천히 목을 가누며 얼어 죽기 전에 어미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형제자매의 시체를 지나치는 파울비스트의 등 뒤로 또 한 마리의 파울비스트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카니팔라트

(사미어) ……다시 품으로 돌아가 자연을 살피기를.

생존자A

……

카니팔라트

보다시피 이번 구조는 잘 이뤄질 거라는 점괘 결과가 나왔어…… 조금만 더 힘내면 이곳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카니팔라트

다들 괜찮아? 눈보라가 약해졌으니…… 콜록, 우리도 어서 출발하자. 여기 더 있다간 얼어 죽을 거야.

생존자B

……

카니팔라트

아니면 나랑 함께 길을 찾아볼 사람? 그럼 남은 사람은 충분히 휴식한 후에 우리가 남긴 흔적을 따라오면 될 텐데……

생존자A

……

카니팔라트

믿어줘. 점괘 결과대로라면…… 콜록, 우리는 무사할 거야!

카니팔라트

언제까지 이렇게 망가진 GPS 기계만 지킬 수는 없어…… 부탁이니까 내 말을 믿어줘. 계속 기계를 고치다간 여기서 얼어 죽고 말 거야. 지금 당장 길을 찾아야 해!

생존자B

……


빙원 주민A

(사미어) 너희 뭐 하는 거야?

빙원 주민B

(사미어) 멈춰! 한 번만 더 그 신수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탐험가A

어엇, 뭐라는 거지?

탐험가B

모르겠어. “멈춰”라는 말만 알아들었어. 이 물을 마시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이 잎을 뜯지 말라는 뜻인가?

탐험가A

그렇다기엔 우릴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탐험가B

우선 내려놓자……

빙원 주민A

(사미어) 점괘 도구는 가져갈 수 없다!

탐험가A

뭔데? 무슨 뜻이냐고? 바닥에 놓는 것도 안 돼?

빙원 주민B

(사미어) 당장 이곳을 떠나!

탐험가B

죄송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카니팔라트

(사미어) 잠깐만! 진정해! 저들은 악의가 있는 게 아니야!

빙원 주민A

(사미어) 외지인이 점점 더 많이 오고 있다고. 더는 이곳을 지나가게 둘 수 없어.

카니팔라트

(사미어) 하지만 저들이 가져온 물건이 유용하긴 하잖아……

빙원 주민A

(사미어) 그래봤자야. 질병도 자연의 일부일 뿐, 우리에게도 그걸 해결할 능력이 있어…… 하지만 외지인들을 존중할 줄을 몰라.

카니팔라트

(사미어) 점괘를 존중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점괘 도구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뿐이야. 내가 미처 그 얘기를 전달하지 못해서……

빙원 주민A

(사미어) 저들은 언제나 제멋대로 굴기 일쑤야. 저들이 우릴 존중하지 않는 한, 우리도 저들을 존중하거나 돕지 않겠어.

카니팔라트

……점괘 도구는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신수로부터 비롯된 거라서.

카니팔라트

신수는 우리에게 집이나 다름없어. 다음부터는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내게 먼저 물어봐 줘.

탐험가A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요……?

카니팔라트

외지인이 신수의 잎을 땅에 버리는 건 여러분의 가족이 낯선 사람에게 머리를 밟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카니팔라트

낯선 사람이 가족의 머리를 밟는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탐험가A

아, 이 나무가 집이라고요……?

카니팔라트

응, 우리 마을을 보살펴줬거든. 우리는 줄곧 이곳에서 지내며 음식과 살 곳을 제공 받아……

카니팔라트

우리는 신수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로 점괘를 보고 그 인도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이 함부로 점괘 도구를 만지는 걸 허락하지 않고.

탐험가A

(속삭이며) 진짜일까……? 점괘는 노점상의 사기꾼들이나……

탐험가B

(속삭이며) 제발 입 좀 다물어. 도대체 여기 오기 전에 뭘 공부한 거야? 건들지 말라는 건 그냥 내버려두라고.

탐험가A

(속삭이며) 물어보는 것도 안 돼? 하나라도 더 알아가면 우리 연구에 도움이 될 거 아니야……! 이것이 어떻게 사람들을 인도하는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확인해보면 좋잖아……

탐험가B

너 참 똑똑하다, 어휴……

탐험가B

(어눌한 사미어) 카니팔라트 씨?

탐험가B

저희도 연구를 위해 이곳에 온 것뿐이니 더 이상의 갈등은 없었으면 해요.

탐험가B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먼저 알려주실래요?

카니팔라트

음…… 마을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다른 점괘 도구도 함부로 만지면 안 돼. 그리고 먹을 만큼만 사냥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되고.

카니팔라트

짐승도 자연의 일부거든. 자연에게 부탁하면 보살핌을 받을 수 있지만…… 욕심을 부리면 자연이 지금까지 준 것들을 다시 앗아갈 거야.

카니팔라트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어미든 절대, 절대로 사냥해선 안 된다는 거야.

탐험가B

알겠어요. 그럼……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 전엔 죄송했다고 전해주시겠어요?

카니팔라트

(사미어) 대장, 주의해야 하는 문제를 설명해줬더니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해.

카니팔라트

(사미어) 곧 길을 나선다고 하니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올게.

빙원 주민B

……

빙원 주민B

(사미어)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저들만 같았어도,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반대하진 않았을 테지.

빙원 주민B

(사미어) ……부디 저들이 약속을 지키기를.

빙원 주민A

(사미어) 이걸 저들에게 줘.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게 되면 하늘로 쏘아 올리라고 해. 그럼 우리가 가서 도울 테니.

카니팔라트

(사미어) 응!


카니팔라트

실망하지 마. 좋은 점괘 결과가 나왔잖아? 게다가 그 화살을 쏘아 올린 덕분에 내가 여러분을 찾을 수 있었고.

카니팔라트

두 사람도 화살을 쏘기 직전까지도 우리가 화살을 못 볼 거라고 생각했잖아? 그런데 내가 이렇게 나타났고! 점괘 결과도 마찬가지일 테니 나를 믿어줘.

생존자A

점괘 결과가 좋다 한들 GPS 기계가 망가졌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카니팔라트

……아니, 점괘 결과가 틀릴 리 없어.

생존자A

그럼 점괘로……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카니팔라트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여기서 기다릴 수는 없잖아. 어쨌든 나가봐야 길을 알 수 있을 거야!

생존자B

……

카니팔라트

내가 구하러 왔으니 두 사람도 나를 믿고, 점괘 결과를 믿어줘.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해. 이렇게 하자, 내 손을 잡아볼래?

생존자A

네……?

카니팔라트

우리 마을에선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눈 속에 묻어줘…… 그들은 빙원의 일부가 되었을 테니 자연도 우리를 보호해 줄 거야.

생존자B

자연이 우리를 보호해줄 거라는 말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카니팔라트

직접 보고 듣고 나면, 내 말이 믿어질 거야……

카니팔라트

자, 내 손을 잡고 눈꽃을 보며 정신을 집중해봐. 그리고 눈을 감으면……

카니팔라트는 귓가를 맴도는 나긋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카니팔라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릴 거야. 그들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다시 우리와 함께할 테니까.

똑! 허공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카니팔라트는 눈을 뜨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카니팔라트

한번 해볼래?

생존자A

……정말 들릴까?

생존자B

정말 들린다 해도 그게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카니팔라트

기분은 나아질 테니까 속는 셈 치고 해봐. 어쩌면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 이 망가진 기계를 버리고 나와 함께 길을 찾아 나서게 될지도 모르잖아?

생존자A

……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려 카니팔라트의 손을 잡은 생존자가 반신반의하며 흩날리는 눈꽃을 바라봤다.

생존자A

알겠어요…… 근데 어떤 눈꽃을…… 봐야 하죠?

카니팔라트

어느 눈꽃이든 고르면, 그 순간부터 녹기 시작할 거야.

카니팔라트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이니 집중해야 해!

생존자B

……아무래도 안 보이는데……

카니팔라트

마음을 가다듬으면 볼 수 있을 거야.

카니팔라트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

카니팔라트

지금이야……!


쉿…… 바스락, 바스락……

도망치는…… 사냥감…… 날아가는…… 화살……

휴…… 광…… 수집……

가져가자……

타닥! ……이번엔…… 타닥! 아주 성공적이야……


카니팔라트

……었지?

카니팔라트

다들? 들었지?

생존자A

……“수집”……

생존자B

……“이번엔 아주 성공적이야”……?

생존자A

말도 안 돼. 이건…… 닉의 목소리잖아……! 너도 들었지?

생존자B

닉이 말한 건가? 하지만 닉은……

일행은 주저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카니팔라트

저쪽……

카니팔라트가 눈보라 속에서 언뜻 보이는 크레바스를 가리켰다.

카니팔라트

목소리 들었지? ……그 사람은 아무래도 빙원의 일부가 되었나 보네.

카니팔라트

……나도 기억나. 좋은 연구원이었지.

카니팔라트

(사미어) ……다시 품으로 돌아가…… 자연을 살피기를.

일행은 잠시 침묵한 후 카니팔라트를 따라 눈을 감았고, 어설프게 축복문을 읊었다.

생존자A

(사미어) 다시 품으로 돌아가……

생존자B

(사미어) ……자연을 살피기를.

생존자A

그럼……

생존자B

……

생존자A

아까 말한 점괘 결과대로…… 정말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카니팔라트

자, 이쪽으로 와서 내 손바닥에 숨을 내쉬어봐.

생존자A

이번엔…… 또 뭘 하는 거죠?

카니팔라트

길을 찾는 거야.

카니팔라트

모두의 숨결로 스노우볼을 만들면, 그게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줄 거야.

카니팔라트

내 스태프의 매듭 끈에 담긴 의미도 마찬가지야. 누구나 태어나면 부모님이 직접 엮은 매듭을 받게 되는데, 그 매듭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주거든.

생존자B

그다음에는요……? 그냥 한 번 불기만 하면 돼요?

카니팔라트

그다음에는……

카니팔라트

스노우볼이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찾아줄 거라고 믿으면 돼.

카니팔라트

(사미어) ……고맙습니다……

카니팔라트는 바람을 피하던 동굴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동굴 밖으로 스노우볼을 굴렸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축복문을 읊고, 오리지늄 아츠를 시전했다.

스노우볼이 몇 번 흔들리더니 이내 굴러가기 시작했다.

카니팔라트

자, 스노우볼이 길을 안내해주고 있으니 어서 출발하자.

생존자A

더는 못 가요……

생존자B

장비마저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졌어요. 더 이상 가는 건 위험해요!

생존자A

……난 연구하러 온 거지, 죽으러 온 게 아닌데……

카니팔라트

스노우볼이 인도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버텨줘!

카니팔라트

여기서 멈추면 금세 눈에 뒤덮일 거야. 그러니 나를 믿고…… 따라와, 응?

카니팔라트

스노우볼이 녹고 있어, 얼른 따라와 줘……!

카니팔라트

제발 믿어줘. 스노우볼이 녹아서 사라지기 전에 길을 찾아야 해……

생존자A

……그렇다기엔 길이 안 보이잖아요!

생존자B

우리……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지 않나요?

생존자B

이 스노우볼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그 말…… 못 믿겠어요.

카니팔라트

앗……!

그 순간, 빙원에 옅은 흔적을 남기던 스노우볼이 빠르게 녹아내리더니 이내 빙원의 일부가 되었다.

카니팔라트

실패했어……

카니팔라트

어느 한 사람이라도 스노우볼의 인도를 믿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게 되거든……

생존자A

그럼…… 길을 잃은 건가요?

생존자B

하아……

카니팔라트

가까이 붙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해! 여기서 멈추면 안 돼!

카니팔라트

걷는 데 체력을 써야 하니 대화도 최대한 안 하는 게 좋겠어……

카니팔라트

으으…… 몸을 숙여!

카니팔라트

절대 밧줄을 놓지 마…… 몸을 숙이고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가는 거야!

카니팔라트

밧줄을 놓치면 안 돼! ……


......

인자한 목소리

이런…… 이것 좀 봐. 불도 안 끄고 가버렸잖아.

원망하는 목소리

제 활은요? 제 신발은요?

원망하는 목소리

하나도 못 찾겠어요. 설마 그들이 제 물건을 전부 가져간 건 아니겠죠?

원망하는 목소리

어머니, 저희 매듭은 지붕에 매달아 기념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인자한 목소리

카닉은 그 매듭끈을 자신의 아츠 스태프에 묶은 모양이구나…… 그래, 느껴져.

인자한 목소리

아, 고드름은 다리가 나았는지 모르겠네. 그들의 어머니가 먼 곳으로 떠났으니, 몇 년 동안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 거야.

원망하는 목소리

안 되겠어요. 적어도 제가 다녀갔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집에 뭔가를 남겨야겠어요.

한 무리의 파울비스트가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은 뾰족한 부리와 발톱으로 책상과 의자, 선반을 더듬었고, 그릇을 뒤집고 잘 정돈된 서랍을 여닫으며 놀았다.

그 바람에 집안에는 온통 파울비스트의 깃털이 흩날렸다.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목소리

음, 이 정도면 됐어요!


생존자A

……저 왔어요……

생존자A

……어머니, 어머니가 끓여주신 국이 먹고 싶어요……

생존자A

후아…… 진짜 맛있다……

생존자B

……우리 집은 어딨지? ……

생존자B

집에 가야 하는데…… 저도 집에 보내주세요……

생존자B

제발요……


인자한 목소리

아이고, 이 녀석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놓으면 어떡하니……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목소리

헤헤, 그치만 조금 전에는 제가 살던 곳 같지 않았는걸요…… 이제야 좀 티가 나네!

카니팔라트

……어…… 누가 얘기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소리에 파울비스트 무리가 놀라서 흩어졌다. 파울비스트들이 창밖으로 날아올랐고, 그러자 큼직한 깃털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카니팔라트의 시야를 가렸다.

흩날리는 깃털 사이로 그의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다.

딸랑. 빙원의 고목에는 붉은 매듭이 묶여 있었고, 덜 엮인 실은 눈 속까지 늘어져 있었다.

눈에 겹겹이 찍힌 발자국은 마치 가로로 자라난 나무 같았고, 매듭은 그 뿌리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매듭

……

카니팔라트는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삼나무는 어떻게 삼노끈이 되고, 색이 입혀졌으며, 어떻게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해 엮어지고, 나무에 걸리고는…… 끝내 눈보라를 뚫고 그의 손으로 돌아온 것일까.

가볍게 흔들리는 매듭 아래에서 카니팔라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카니팔라트

……내 아츠 스태프에 묶여 있던 매듭이 왜 여기 있지?

그는 까치발로 매듭을 풀은 후, 자신의 아츠 스태프에 다시 묶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나뭇잎을 타고 연못으로 떨어졌다.

연못에는 광석 하나가 잠들어 있었다. 카니팔라트가 내려다보자 수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그의 눈은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광석

……

카니팔라트

눈이 안 보이지만 알 것 같아. 너와 내 눈은…… 정말 닮았어. 그렇지?

카니팔라트가 광석을 건져내자, 광석이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그는 물밑으로 가라앉은 광석을 뒤로 한 채 나머지 조각을 아츠 스태프에 끼웠다.

수많은 깃털이 허공을 채우자 앞이 보이지 않았고, 귓가에 어렴풋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건 집에서 들리는 소리 같기도, 할머니와 아버지가 나지막이 투덜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집에는 더 이상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카니팔라트

……돌아온 거야? 이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거지? 지난 몇 년간 다양한 곳을 돌아다녔어. 그동안 겪은 일을 들려줄게……

카니팔라트

지금 난 거대한 함선에서 일하고 있어.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는 곳이지……

카니팔라트

이 옷도 함선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거야!

카니팔라트

이 밧줄도, 그 사람들이 새롭게 만들어준 거고. 전에 준 옷과 밧줄은 이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있어!

카니팔라트

앞으로도 잘 보관했다가 중요한 날에만 입을 거야……

카니팔라트는 눈을 가린 깃털을 들추며 힘겹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발밑의 나뭇가지, 얼음, 연못을 뛰어넘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는 따뜻한 깃털 뭉치를 껴안듯 허공에 손을 휘적였다. 그 순간, 그는 온기를 느꼈다.

광석과 매듭은 반짝였고, 아츠 스태프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인자한 목소리

카닉, 아츠 유닛에 박힌 광석은 네 어머니가 널 위해 끼워둔 거란다. 그건 네 눈이지. 내 가르침을 기억하느냐?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목소리

그건 네가 눈보라를 뚫고 찾아야 할 사람과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단다.

카니팔라트는 들고 있던 아츠 스태프를 꼭 쥐었다. 눈보라 속에서 아버지와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를 향한 할머니의 미소는 여전히 따뜻하고도 자상했다.

인자한 목소리

네가 빙원에서 영원히 녹지 않는 눈꽃을 보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나일 거란다. 네가 하늘에서 영원히 날고 있는 파울비스트를 보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나일 거야.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목소리

우린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목소리

……다시 품으로 돌아가 자연을 살피기를…… 고마워.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목소리

……정말 고마워.

카니팔라트가 입술을 달싹였다.

카니팔라트

……할머니, 내가 어릴 때 나뭇가지 사탕 만들어줬잖아, 그거 어떻게 만든 거야?

카니팔라트

그 맛이…… 너무 그리워……


찬바람이 마을을 휘감자 매듭과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빙원 주민A

……바람의 소리가 달라졌군.

빙원 주민B

나도 들었어.

빙원 주민B

빙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늘 변하는 법. 우린 그저 바람의 선택을 따르면 될 뿐이지.

빙원 주민A

외지인일까?

빙원 주민B

……아니, 바람은 외지인의 소리를 대신 전달해주지 않아.

녹아내리지 않은 눈꽃이 갑자기 날아왔고, 이내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았다.

눈꽃

……

빙원 주민A

……바람의 소리가 또 달라졌군.

빙원 주민A

며칠 전 빙원에 들어온 컬럼비아인들을 위해서인가……?

빙원 주민B

……이런 적은 처음이군.

빙원 주민B

……빙원이 그들을 받아들인 건가?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다들 바람 소리를 들었지?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아들에게 준 광석이 '눈을 뜬' 모양이야.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우린 구조대 대원이잖아.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어서…… 가보자!


카니팔라트

콜록……

카니팔라트

콜록, 콜록……!

카니팔라트

……어?!

카니팔라트

(언제 눈 속에 파묻힌 거지?)

카니팔라트

(어서 올라가야 해……!)

카니팔라트

콜록, 콜록……! 내 광석이…… 빛나고 있어?


카니팔라트

(조금만 더 가면……)

카니팔라트

(팔다리가 안 움직여……)

카니팔라트

콜록…… 더는 무리야……

카니팔라트

할머니……

콰직.

카니팔라트의 머리 위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아빠처럼 눈보라에 묻혀서? 역시…… 꿈에 아빠와 할머니가 나온 이유가 있었어……

콰직, 콰직.

아마 곧 눈과 얼음이 머리를 짓누를 것이다. 그럼 사지에 마비가 오고, 콧속으로 눈이 가득 찰 게 분명했다. 그렇게 빙원과 하나가 되어 바람이나 눈이 될 것이다.

카니팔라트의 의식이 점차 아득해졌다. 따뜻한 깃털 뭉치를 다시 본 것 같기도 했고, 따스한 할머니의 손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카니팔라트

……아직 사탕에 관한 답을…… 듣지 못했는데……

콰직!

얼음이 부서졌을 때, 카니팔라트는 그 무엇도 보거나 듣지 못했다.

???

어서! 손을 이쪽으로 뻗어!

???

카닉? 카닉!

???

들려? 잠들면 안 돼! 정신 차리고 이쪽으로 손을 뻗어!

카니팔라트

……할머니?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정신 차리라니까!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내가 잡았어!

카니팔라트

윽……!

카니팔라트

콜록……! 엄마? 여길 어떻게……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조금 전에 느꼈어! 네 눈이……

어머니가 눈 속에서 카니팔라트와 그의 아츠 스태프를 꺼내 올렸다. 아츠 스태프의 끝 부분에서 카니팔라트의 눈동자 색과 비슷한 광석이 빛나고 있었다.

카니팔라트

콜록, 콜록……! 좀 전에…… 꿈을 꿨는데…… 아빠랑 할머니가 나왔어……

카니팔라트

엄마, 엄마 몸이……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바람이 너희의 목소리를 전해줬어. 무슨 일이 있든…… 난 내 아이와 다른 어머니의 아이들을 구할 거야.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다른 사람들은?

카니팔라트

저쪽에…… 있어……

생존자A

콜록…… 고맙습니다……

생존자B

……이게 꿈은 아니겠지……

카니팔라트

저들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마을까지 전해진 거야……?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그래, 우리 모두 들었어. 눈보라가 대신 전달한 너희의 이야기를.

카니팔라트의 어머니

……빙원이 너희를 구하기로 선택한 거야.

새끼 파울비스트가 날아와 사람들 머리 위를 맴돌며 깃털 하나를 떨어뜨렸다.

그 깃털을 주워든 마을 사람들은 눈을 감고 묵념했다.

빙원 주민A

(사미어) ……고맙습니다.

빙원 주민B

(사미어) 다시 품으로 돌아가 자연을 살피기를…… 고맙습니다.

생존자A

콜록……

생존자A

카니팔라트 씨, 여러분…… 저희를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생존자B

이게 아까 말한 좋은…… 점괘 결과……?

생존자B

내가…… 살아남다니……

생존자A

저기…… 여러분의 신수가…… 저희의 감사도…… 받아줄까요?

카니팔라트

(사미어) 저들이…… 신수에 감사를 표해도 되냐고 하는데?

빙원 주민A

(사미어) ……그래. 빙원이 너희를 구하기로 선택한 이상 문제없겠지.

카니팔라트

……여러분의 감사 인사를 받아줄 거야.

생존자A

……

생존자A

(사미어) 다시 품으로 돌아가 자연을 살피기를……

생존자B

(사미어) ……고맙습니다.

새끼 파울비스트

(울음소리)

카니팔라트가 고개를 들자 햇빛이 빙원을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게 비추었다. 눈보라가 멎은 하늘에서 깃털 하나가 흩날렸다.

그 깃털은 팔랑팔랑 나부끼며 카니팔라트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카니팔라트

(사미어) 고맙습니다……

파울비스트가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