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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포푸카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평온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어른들은 항상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등장 오퍼레이터: 포푸카, 오키드


이 의사

좋은 결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악화될 조짐은 보이지 않아요.

오키드

알겠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 의사

오키드 씨의 상태와 비교하면, 포푸카의 데이터는 훨씬 낙관적인 편이에요.

이 의사

그렇다고 경과를 소홀히 지켜봐도 될 만큼 좋은 건 또 아니지만요.

이 의사

적어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점에서, 포푸카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이제는 오키드 씨가 포푸카를 본받아야겠네요.

이 의사

……

이 의사

이제는 광석병과 함께한 시간이 그 아이의 인생 전체와 비슷해져 버렸네요……

오키드

가끔은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

오키드

얼마 전에 같이 잡지를 볼 때 포푸카가 말했거든. 자기가 다 크면, 내게 옷 디자인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이야.

오키드

포푸카가 다 크는 게 먼저일지…… 아니면 내가 먼저……

이 의사

자꾸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이 의사

그런 생각은 적게 하는 게, 오키드 씨 병세에도, 포푸카에게도 좋으니까요.

오키드

……

이 의사

하아.

포푸카

이 언니, 전에 포푸카한테 준 색칠 놀이책 다 칠했는데, 새로운 거 없어?

이 의사

음? 이렇게나 빨리? 포푸카 정말 대단하네.

포푸카

포푸카는 버블이랑 같이 그렸거든!

포푸카

그리고 빈 곳에다가는 그림 그리고 있는 포푸카랑 버블도 그렸어!

이 의사

와, 둘 다 정말 대단하구나.

이 의사

자, 여기 새 색칠 놀이책.

포푸카

고마워, 이 언니!


포푸카

버블, 포푸카가 새 색칠 놀이책 받아왔어!

포푸카

어라…… 버블이 놀이방에 없네?

포푸카

그럼 포푸카는 나중에 버블이 돌아오면 같이 그려야겠다.

환자복을 입은 소년

너도 병실에서 몰래 빠져나온 거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포푸카

어? 넌 누구야?

환자복을 입은 소년

난 엘빈이야. 여기는 어디야? 장난감이 정말 많네.

포푸카

포푸카의 이름은 포푸카야,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놀이방이고.

포푸카

길을 잃은 거야? 포푸카가 다시 데려다줄까?

엘빈

싫어. 여기 오고 나서부터 계속 병실에만 있었단 말이야. 다들 밖에서 못 놀게 하는걸. 네 손에 있는 그건 뭐야?

포푸카

이 언니가 포푸카한테 준 색칠 놀이책이야.

포푸카

같이 색칠 놀이 할래?

엘빈

난 그런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그래도 돼?

포푸카

당연히 되지!

포푸카

이 언니가 색칠 놀이책은 재밌으려고 하는 거니까, 책상만 안 더럽히면 아무렇게나 그려도 된다고 했어.

포푸카

봐봐, 이건 필라인토비, 이건 작은 괴물이야. 아직 빈 곳도 많이 있지? 포푸카는 전에 버블이랑 같이 여기에다가 로도스 아일랜드의 모두를 그렸어.

포푸카

아, 버블은 포푸카의 좋은 친구야.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

포푸카

자, 여기 크레파스 상자! 포푸카는 항상 제일 밝은 색부터 골라.

엘빈

제일 밝은 게 어떤 거야?

포푸카

(진지하게 크레파스 상자를 뒤적인다)

포푸카

이거! 이 빨간색, 엄청 밝지? 포푸카는 이게 좋아.

엘빈

이건 거의 다 닳아서 없어질 거 같은데.

포푸카

응! 좋아하니까, 포푸카가 여러 번 썼거든.

포푸카

짧아졌다는 건, 이 크레파스가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는 거야.

엘빈

그럼, 나도 열심히 일한 색깔을 쓸래.

포푸카

오! 노란색도 좋지! 필라인토비가 해님처럼 변할 거야.

엘빈

(열심히 크레파스칠을 한다.)

엘빈

이거, 선 밖으로 칠하면 안 되는 거야?

포푸카

음, 조금은 삐져나가게 그려도 괜찮아. 너무 반듯하게만 그리면, 필라인토비가 심심해할 거니까.

엘빈

정말?

포푸카

응, 포푸카가 예전에 엄청 반듯하게 그렸더니, 이 언니가 “이미 일하기 시작한 필라인토비 같네.”라고 했어.

엘빈

풉, 그럼 좀 삐뚤게 그려야겠다. 난 일하기 싫거든.

포푸카

사실 일하는 건 꽤 재밌는걸?

포푸카

그런데 많이 힘든 것도 맞아. 포푸카는 예전에 일할 때, 포푸카랑 오빠, 언니들을 자꾸 아프게 했거든.

포푸카

그래도 포푸카, 이제는 일을 아주 잘하게 됐어.

엘빈

일? 네가? 나랑 비슷한 나이 같아 보이는데…… 일은 어른들이 하는 거잖아.

엘빈

우리 엄마, 아빠도 출근해야 하니까, 병실에서 나랑 같이 못 있어 주거든.

엘빈

그나저나, 왜 필라인토비한테 이렇게 두꺼운 옷을 그려주는 거야?

포푸카

이건 방호복이야. 포푸카도 임무를 나갈 때, 엄청 두꺼운 옷을 입는 일이 있거든. 이 필라인토비도 두꺼운 옷을 입으면, 다칠 걱정은 없잖아?

엘빈

그럼 내가 칠한 이 필라인토비는 뭘 해야 하지? 커다란 모자를 그려주긴 했는데, 이건 다치는 걸 막아주진 못할 것 같아.

포푸카

음…… 이 아이는 임무를 안 해도 되니까, 책상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면 되지.

엘빈

매일매일?

포푸카

매일매일. 그리고 싶은 건 뭐든지 그리면서 말이야.

엘빈

그럼, 얘한테 색을 잔뜩 칠해줘야겠네.

엘빈

왜냐하면 앉아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뭔가 대단해 보이거든.

엘빈

우리 엄마랑 아빠가 바로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야.

포푸카

어……

포푸카

그러네. 오키드 언니도 그렇고, 의료부의 언니 오빠들도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보고서를 많이 쓰는 것 같아.

포푸카

응,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다 대단해.

이 의사

엘빈? 여기 있었구나. 입원동 선생님이 또 네가 몰래 나갔다고 하시더라.

엘빈

으아, 들켰다.

이 의사

이건…… 포푸카랑 같이 색칠 놀이 하고 있었구나.

이 의사

아주 잘 그렸네.

이 의사

여기 이건…… 방호복을 입은 필라인토비니?

포푸카

맞아! 임무를 나가는 필라인토비야. 엄청 대단해.

엘빈

이건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필라인토비인데, 이 아이도 대단해요.

이 의사

매일 책상 앞에 앉는다고……?

엘빈

네, 포푸카도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다 대단하다고 했어요.

엘빈

우리 엄마랑 아빠도 그렇거든요. 그리고 여기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선생님들이랑, 그리고 또, 또……

포푸카

그리고 오키드 언니네도 그래!

이 의사

그렇구나……

이 의사

혹시 이 페이지를 선생님한테 빌려줄 수 있겠니? 선생님이 너희들 대신 잘 보관해 주고 싶어서 그래.

엘빈

어? 뺏어가는 거예요?

이 의사

뺏어가는 게 아니라 소장하는 거야. 나중에 너희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게 말이야.

포푸카

로도스 아일랜드의 캐비닛처럼?

이 의사

응, 비슷해.

포푸카

엘빈, 우리가 그린 그림이 정말 대단한가 봐. 로도스 아일랜드의 캐비닛에도 엄청 대단하니까, 대단한 물건만 들어가거든.

엘빈

그렇구나…… 그럼 좋아요.

이 의사

자, 엘빈,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해. 오늘 넌 이미 오랫동안 몰래 나와 있었단다.

엘빈

그럼 다음에 또 놀러 와도 돼요?

이 의사

오늘 검사하는 데 엘빈이 잘 협조해 주는지를 한번 봐야 할 거 같은데. 가자, 곧 채혈할 차례야.

엘빈

저 착하게 있을게요!

엘빈

포푸카 안녕, 다음에 또 보러 올게.

포푸카

좋아.

포푸카

색칠 놀이책이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았잖아.

포푸카

음…… 다음에 엘빈이 오면 다시 같이하자. 포푸카는 먼저 숙제해야지.


이 의사

오키드 씨 팀은 외근 나갈 때마다 방호 조치를 잘하고 있으시죠?

오키드

당연하지.

오키드

그 포푸카 팔에 생긴 찰과상은……

이 의사

괜찮아요. 상처에 감염은 없었고, 단순한 찰과상일 뿐이네요.

오키드

내 잘못이야. 이번 전술 계획에 조금 빈틈이 있었거든.

이 의사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 의사

검진 결과도 나왔는데, 지난번과 비교해서 큰 변화는 없어요.

이 의사

활성 오리지늄과 세포 구조의 결합 속도는…… 여전히 뚜렷하게 줄어들지는 않았고요. 억제제 효과는 괜찮긴 하지만, 그렇다고 호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오키드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호전'에 대한 기대는 접었어.

오키드

하지만 포푸카 나이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시작한 것치고, '변함없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 좋은 소식이긴 하네.

이 의사

이번 결과도 오키드 씨가 직접 포푸카에게 전해줄 건가요?

오키드

응, 대략적인 상황만 전달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너무 자세히 알게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거든.

오키드

검진 결과서 한 장을 들고 가서, 아이한테 자기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오키드

……

오키드

저기 혹시, 포푸카가 무슨 '획기적인 치료법' 같은 걸 기다려 볼 기회가 있을까?

이 의사

……

이 의사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의사는 '기회'라는 두 글자에 기대어 밥벌이를 하면 안 되는 법이죠.

이 의사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저희는 매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오키드

난 가끔, 포푸카처럼 아주 어릴 때 광석병에 감염되는 것과……

오키드

아니면 나나 미드나이트처럼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뒤에 병에 걸리는 것 중, 과연 어느 쪽이 포푸카에게 더 나은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해.

오키드

……물론, 가장 좋은 건 병에 걸리지 않는 거겠지만.

이 의사

하하…… 누가 안 그러겠어요.

오키드

만약 내가 포푸카 나이에 감염되었다면, 그 후의 인생은 좀 더 제멋대로, 더 자유로웠을까?

오키드

하지만 내가 본 현실은, 이렇게 어린아이가 병에 걸리게 되면, 오히려 제약이 더 많아질 뿐이더라고……

이 의사

맞아요, 어른들로부터의 제약이죠.

이 의사

저희는 아이들한테 이건 안 된다, 저건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줘야 하니까요.

이 의사

하물며 저 아이는 지금 임무까지 수행해야 하죠.

오키드

그래서 난 포푸카가 임무 외에는, 그저 평범한 아이처럼,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일들을 하기를 바라고 있어.

오키드

임무로 외근을 나가는 것과 이런 제약을 이해하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오키드

지금 포푸카는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돌아오면 돌봐줄 사람이 있다'라는 것만 알면 돼. 난 포푸카가 그 토대 위에서 조금만 더 독립적일 수 있으면 좋겠어.

이 의사

그렇죠, 남은 건 저희가 짊어져야 할 몫이니까요.


포푸카

……

포푸카

(원래는 이 언니한테 피 뽑고 나서 팔에 대고 있는 솜뭉치를 얼마나 누르고 있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포푸카

(나중에 다른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봐야겠다. 포푸카, 이런 건 잘 기억해야 해.)

포푸카

(음…… 일단은 포푸카가 조금 더 누르고 있을까.)


포푸카

이제 피가 멈춘 것 같아.

포푸카

솜뭉치 버리는 곳……

포푸카

아, 찾았다. 의료용 쓰레기통.

포푸카

오키드 언니랑 이 언니 이야기가 다 안 끝났나? 포푸카는 여기서 오키드 언니를 기다려야지.

포푸카

이번 임무 보고서를 마무리해 볼까.

포푸카

오키드 언니를 그리고, 그다음엔 스팟 오빠. 으음, 스팟 오빠는 방패를 들고……

포푸카

너무 동그랗게 그려진 것 같아. 지우자.

포푸카

그다음엔 아주 무섭게 생긴 사막 도적들.

포푸카

미드나이트 오빠가 요렇게 요렇게 하고, 캐터펄트 언니가 저렇게 저렇게 하니까, 사막 도적들이 날아가 버렸었는데.

포푸카

날아가는 건 어떻게 그려야 하지?

포푸카

캐터펄트 언니가 슈슈슉하고 탄약을 엄청 많이 발사하는 걸 그려 넣고…… 마지막엔 다 같이 즐겁게 임무를 마쳤으니까, 웃는 얼굴을 그려야겠다.

포푸카

맞다, 사막이 엄청 더워서, 미드나이트 오빠가 내내 투덜거렸었지. 오빠 얼굴에 땀방울도 좀 그려줘야겠어.

포푸카

포푸카가 팔에 상처를 입은 것도 그려야 하나?

포푸카

일단은 그리자. 그 옆에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포푸카를 또 그리고…… 빠르게 돌고 있는 징징이도!

포푸카

응, 이러면 포푸카가 다음엔 다시 안 다칠 거라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거야.

포푸카

좋아, 보고서 다 썼다……

엘빈

포푸카! 역시 여기 있었구나.

포푸카

엘빈? 또 병실에서 몰래 빠져나온 거야?

엘빈

아냐! 오늘은 잠깐 나와 있어도 돼.

엘빈

오늘 해야 할 검사 다 끝내고 선생님한테 포푸카랑 놀고 싶다고 했더니, 놀이방에 가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어.

포푸카

잘됐다! 임무를 잘 마쳤다는 건, 엘빈이 이제 다 컸다는 뜻이야.

엘빈

근데 뭐 그리고 있어? 새로운 색칠 놀이책이야?

포푸카

이건 내가 외근을 마치고 나서 써야 하는 임무 보고서야.

엘빈

외근? 그게 뭐야?

포푸카

밖에 나가서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임무야.

엘빈

오! 그거 네가 저번에 말했던 '일'이구나.

엘빈

포푸카 정말 대단하다, 밖에 나가서 나쁜 놈들도 혼내줄 수도 있다니.

엘빈

이게 네가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모습이야? 와, 포푸카 너 엄청 큰 전기톱도 있네?!

포푸카

응! 징징이도 아주 대단해.

엘빈

이런 게 '보고서'라는 거구나. 나도 그려보고 싶다.

포푸카

엘빈도 와서 그려볼래? 보고서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기록하는 거라 아주 간단해.

포푸카

포푸카가 종이를 찾아줄게…… 자, 이게 엘빈의 보고서야. 오늘 무엇을 했는지 그려봐 봐.

엘빈

하지만 내가 오늘 한 것은 병실에서 링거만 맞다가, 여기 잠깐 놀러 오는 걸 허락받은 것뿐인데.

포푸카

그걸 그려도 돼.

엘빈

이것도 임무라고 할 수 있어?

포푸카

음……

포푸카

포푸카는 그것도 임무라고 생각해. 의사 언니, 오빠들이 엘빈한테 잘 협조해야 한다고 했는데, 엘빈은 그걸 해냈으니까. 그것도 임무를 해낸 거지.

포푸카

엘빈은 잘 협조했어?

엘빈

……조금은.

포푸카

그럼 그 조금을 그려봐.

엘빈

(진지하게 종이에 끄적인다)

엘빈

하지만 보고서에 그릴 게 여전히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나 하나뿐인데.

엘빈

아니면 저번에 병실에서 몰래 빠져나갔던 일도 그릴까?

포푸카

어?! 몰래 나갔던 건 기록하면 안 돼!

포푸카

근데…… 어차피 저번에는 잡히기도 했으니까.

포푸카

그럼 '몰래 나가는' 건 좀 작게 그려봐. 아주 아주 작은 선 하나를 그리는 거야.

엘빈

그러면 괜찮은 거야?

포푸카

응, 잘 알아보지 못하게 그리면, 그렇게 나쁜 건 아닌 척할 수 있거든.

엘빈

하하, 너 정말 똑똑하구나.

엘빈

나도 나중에는 포푸카처럼 여기서 일하고, 외근을 나가서 나쁜 놈들을 혼내주고 싶어.

포푸카

그러려면 우선 병을 잘 치료해야 돼. 그리곤 포푸카처럼 힘이 세거나…… 아니면 오키드 언니처럼 똑똑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스팟 오빠처럼 크고 단단한 방패가 있어야 가능해.

포푸카

물론 의사 언니, 오빠들이 허락해 줘야 하지만.

포푸카

그러고 나면 엘빈도 보고서를 많이 쓸 수 있을 거야.

포푸카

근데, 지금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아.

엘빈

그냥 생각하는 것뿐인데, 그걸 보고서에 써도 되는 거야?

포푸카

포푸카는 괜찮다고 생각해. 오늘 한 일들이랑 엘빈이 하고 싶은 일들, 모두 여기 그릴 수 있어.

포푸카

그렇게 하면 엘빈이 나중에 이걸 다시 봤을 때, 예전에 자기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걸 알게 될 거고,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포푸카

포푸카도 보고서에 A6팀이 다 같이 서서 즐겁게 웃는 모습을 자주 그리거든. 실제로는 캐터펄트 언니가 맨날 오키드 언니한테 혼나긴 하지만 말이야.

환자복을 입은 소년은 멍하니 눈앞의 하얀 종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구석에 작은 원 하나를 천천히 그렸다.

엘빈

이게 바로 '나중'이야.

포푸카

어? 이렇게나 작아?

엘빈

왜냐면 '나중'이 얼마나 클지 아직 잘 모르니까, 일단은 작게 그리려고 해. 그러면 종이에 '나중'이 천천히 커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있을 테니까.

포푸카

……

포푸카

그럼 포푸카도 '나중'을 하나 그려야겠다.

이미 완성된 외근 보고서 한쪽 구석, 포푸카는 그곳에 작은 원 하나를 그리고는, 그 옆에 진지하게 작은 원 네 개를 더 그려 넣었다.

포푸카

이렇게 하면 포푸카의 '나중'도 천천히 커질 거야.

포푸카

오키드 언니, 캐터펄트 언니, 스팟 오빠 그리고 미드나이트 오빠의 '나중'도 있어.

포푸카

언니랑 오빠들은 가끔 보고서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거든. 포푸카 생각엔 그게 아마 '나중'을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엘빈

그럼 눈살을 찌푸린 일을 그릴 거야?

포푸카

응, 하지만 포푸카는 그런 일은 작게 그릴 거야. 슬픈 일을 너무 크게 그리면, 언니랑 오빠들이 보고 나서 심각한 표정을 지을 테니까. 그럼 안 되지.

엘빈

……

엘빈

그러고 보니 엄마랑 아빠가 예전에 날 보러 오셨을 때, 두 분이 서류들을 잔뜩 들고는 그걸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셨던 적이 있어.

엘빈

그런데 매번 종이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는 절대 안 알려주시더라고.

포푸카

아마 엘빈 부모님도 여기 있는 의사 언니, 오빠들처럼 슬픈 일을 종이에 적어서 문 안쪽에 넣어두는 걸 거야. 그렇게 하면 우리는 좋은 것들만 볼 수 있으니까.

엘빈

너는 그러면 화 안 나? 너한테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는 거잖아.

포푸카

음……

포푸카

포푸카는 다들 사실대로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해. 단지 '오늘은 뭘 해야 할지', '내일은 뭘 해야 할지'에 대한 부분만 말하는 것뿐이지.

엘빈

하지만 그럼 그 커다란 서류 뭉치들은?

포푸카

그건 어른들의 보고서야.

포푸카

어른들에겐 어른들만의 아주 아주 긴 '나중'을 적어야 하는 보고서가 있어. 아이들에겐 오늘 그리고 조금의 '나중'만 적으면 충분한 아이들만의 보고서가 있는 거고.

엘빈

네가 하는 말은 너무 어려워서…… 난 잘 못 알아듣겠어.

엘빈

엄마랑 아빠가 나더러 나중에 퇴원하면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학교에도 가야 한다고 하셨어. 엄마 아빠는 항상 많은 걸 계획하는데, 난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또 물어보지도 못하겠더라.

엘빈

그에 비해 포푸카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무척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포푸카

왜냐하면 포푸카는 몰래 본 적이 있거든.

포푸카

종이가 아닌 언니, 오빠들의 얼굴을 말이야. 보고서를 보고 있을 땐 눈살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지만, 포푸카가 들어가면 웃으면서 오늘도 포푸카가 정말 착하다고 말해 줘.

엘빈

응, 그건 우리 엄마랑 아빠도 그래.

포푸카

그래서 포푸카는…… 언니랑 오빠들이 문 안쪽에서 이미 눈살을 찌푸렸으니까, 문밖에서는 포푸카가 언니 오빠들이 웃게 할 만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

엘빈

방금 네가 그린 이 그림들처럼?

포푸카

맞아. 그러면 언니랑 오빠들이 포푸카의 보고서를 넘길 때, 포푸카가 오늘 임무를 마친 거나, 포푸카가 오늘 착하게 공부한 것 그리고 포푸카가 모두랑 함께 웃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엘빈

그럼 우리가 '나중'을 그리는 건, 어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야?

포푸카

절반은 맞아.

포푸카

나머지 절반은, 정말로 '나중'이 찾아왔을 때 “봐, 네 자리를 미리 남겨뒀어.”라고 말하기 위해서야.

엘빈

오오! 정말 멋진 말이네. 나도 기억해 둬야지!

엘빈

나도 나중에 포푸카처럼 대단해져서 엄청 큰 전기톱을 들 수 있게 되면, 여기로 일하러 와서 지금 포푸카보다 훨씬 더 멋진 말투로 그 말을 해야겠어.

포푸카

헤헤.

포푸카

그때쯤이면 포푸카도 다 컸을 테니까, 오키드 언니를 도와서 같이 옷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포푸카

오키드 언니는 매번 작은 가위로 천을 자르는데, 포푸카에겐 징징이가 있으니까, 한꺼번에 엄청 많은 옷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엘빈

그러면 나도 엄마, 아빠를 위해서 좋은 것들을 더 많이 그려야겠다.

엘빈

그래야 나중에 부모님이 내 보고서를 넘길 때, '오늘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네'라는 걸 먼저 보실 수 있을 테니까.

남자아이는 자기 종이에 있는 작은 '나중'의 테두리에 다시 색을 한 겹 칠했는데, 그 한 겹의 테두리엔 마치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오키드

포푸카…… 여기 있니?

포푸카

아, 오키드 언니다.

오키드

의무실 밖에서 기다리기로 한 거 아니었어? 어쩌다 놀이방에 와 있는 거야.

포푸카

(작은 목소리로) 어라, 포푸카 깜빡 잊어버렸어.

포푸카

그래도 포푸카가 여기서 외근 보고서를 다 썼어!

엘빈

포푸카가 저한테도 보고서 쓰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그리고 둘이 같이 아주 많은 '나중'도 그렸고요.

엘빈

앗,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아, 난 이만 병실로 돌아가야겠다. 안녕 포푸카, 다음에 또 놀러 올게!

포푸카

그래, 다음에 또 같이 보고서 쓰자.

오키드

'나중'에 대한 보고서라고……?

오키드

……

오키드

그래, 오늘 보고서도 다 썼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서 씻고 자자.

오키드

안 그러면 내일 새로운 보고서를 그릴 기운도 안 생길 거야.

포푸카

응……

오키드

그리고 내일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렴. 네 몸 치수를 재 줄게.

오키드

요즘 시간이 좀 나서 포푸카 새 옷을 만들어 줄까 하거든. 포푸카도 같이 해볼래?

포푸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