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용병
파프리카가 속한 용병대가 런디니움을 향해 나아간다.
등장 오퍼레이터: 파프리카
어떻게 됐어?
아직도 뒤따라오고 있어.
그 아이의 고집은 너도 잘 알잖아.
……조금만 더 설득해 봐.
그림, 너도 참 바보 같다니까.
이제 와서 후회할 거면, 그때 여자애는 왜 데리고 나왔어?
시끄러워.
암시장 쪽 문제가 심각해. 양쪽 거물이 서로를 죽이네 마네 하고 있는데, 이제 물건도 없으니 우리 탓으로 돌리겠지.
데려오지 않았다면 걔는 벌써 죽었을 거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쫓아내도 갈 곳 없는 건 똑같잖아.
……가는 길에 마을을 찾으면 어떻게든 먹고 살 방법이 있겠지.
진짜 그렇게 생각해?
진심으로 그 아이를 위한다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줬어야지. 그 녀석, 아직 한 번도 피를 본 적이 없잖아? 사냥할 때 조금 묻는 피 말고, 진짜 피 말이야.
……
그림, 현실을 봐. 런디니움으로 가는 동안 계속 그런 일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아이도 살카즈잖아.
……됐어, 적당히 해.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이런 말 네가 처음이 아니라고, 아마 또 다른 누군가도 같은 조언을 하겠지.
내가 파프리카 그 녀석한테 너무 물렁한 건가? 하긴,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
몇 년 전, 막 합류했을 땐 그냥 애기였는데. 부모도 없이, 자기랑 할머니를 보살펴야 했고.
어린앤데 챙겨줄 수밖에 없지 않겠어.
나도 어릴 때는……
먹을 게 없어서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죽은 사람들의 옷에 달린 장식을 떼고 다녔지. 봉투 가득 채우면 먹을 것과 바꿀 수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애들 처지도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네. 우리 때보단 나아졌지만.
적어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있잖아. '컬럼비아는 살카즈에게 불공평하다'라는 말을 외칠 수도 있고, 그런데 그 아이가 뭘 알긴 알까?
런디니움에 가는 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할까?
하, 알 리가 없지.
그 녀석은 진정한 카즈델도 본 적이 없는데.
바보, 멍청이……
자꾸 어린애 취급하면 진짜 화낼 거예요!
어이.
……! 기습 공격?!
기습 공격이었다면 이미 죽었겠지.
아…… 뭐예요, 괜히 겁주지 마세요.
괜히 겁줄 정도로 한가하진 않거든. 지가 놀라놓고선 왜 남 탓을 해?
전 의료 담당이라 전투엔 소질이 없는걸 어떡해요.
게다가 조금 전엔 다른 생각을 하느라 더 놀랐던 거예요……
뭐,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지금 여전히 그림한테 화난 상태야?
……흥, 당연하죠!
이런 시기에 떠나라고 하다니, 그림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흠.
저도 용병이자, 용병대의 일원이라고요. 그런데 무슨 근거로 절 쫓아낸다는 거예요?
왜 런디니움에 같이 가면 안 되는데요? 지금껏 저도 얼마나 많은 임무에 참여했는데요!
이번엔 좀 달라.
저는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런디니움이 좀 멀긴 해도 보수는 넉넉하잖아요!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그림이 돌아왔던 그 날, 당장 출발해야 한다고 얘기할 때 모습이에요. 그렇게 흥분한 그림은 처음 봤어요……
평소에는 시큰둥한데, 그날은 뭔가 달랐거든요. 게다가 이번에 이기기만 하면 앞으로 좋은 날이 올 거라고도 했죠.
근데 그게 정말인가요?
……글쎄.
난 돈 말고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하긴, 그건 그렇죠.
그림은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용병은 돈만 벌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 할머니를 잘 모실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다 똑같아요. 다른 건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요……
그 돈을 받으면…… 할머니께 새집을 마련해 드리고 싶어요. 지금 사는 곳은 빗물이 새서 그런가 비 오는 날이면 무릎이 쑤신대요.
참, 그림한테도 더 좋은 생일 선물을 주고 싶은데……
생일을 챙겨주려고? 그림이 생일같이 무의미한 날을 기억하기나 할까?
무의미하다뇨! 생일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매년 생일을 챙기지 않으면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자신이 나이를 먹었는지 잊어버리게 될 거예요.
정말 무서운 일 아닌가요?
……그런가?
무슨 대답이 그래요, 영혼이 없잖아요.
하여간 말로는 이길 수가 없다니까.
조금 전 그 얘기를 그림에게 직접 들려주면 동의할지도 몰라…… 아니다, 어쩌면 네가 오는 걸 더 반대할 수도.
네? 그게 무슨 뜻이죠……?
(잘 달래서 보낼까 했더니만……)
(됐다, 관두자.)
아니야. 난 이만 앞쪽으로 가볼 테니 계속 따라오도록 해.
뭐야, 난 말을 하다 마는 사람이 제일 싫은데……
진짜 수상하네……
……
궁금해하는 파프리카를 뒤로 한 채 용병은 이미 떠났다. 앞쪽의 대원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파프리카의 눈에는 가장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파프리카가 고개를 숙이고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털실로 짠 쨍한 색감의 손가락 보호대였다.
그림은 분명히 색이 너무 화려하다며 싫어하겠지……
화려하면 좀 어때, 예쁘기만 하면 되지.
……또 날 쫓아내려고 하면……
선물이고 나발이고 안 줄 거야!
……!
(무슨 소리지?)
(……)
(……착각인가?)
……
누구야? 당장 나와!
핫!
——!
맞혔다!
넌 누구야?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기……!
잠깐…… 도망치지 마!
헉…… 허억……
자, 잡았다……!
……고작 여자애한테 들키다니.
……그럼 여자애한테 잡힌 넌 뭔데?
도망칠 생각 말고 어서 불어! 정체가 뭐야?
하, 순진하긴. 실력은 인정하지. 너네 살카즈가 이쪽으로 특출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 봤자 네가 멍청한 어린애라는 건 변하지 않아.
이 자식이……!
(……참자, 파프리카. 상대는 지금 날 도발하고 있어. 말려들지 않도록 침착해야 해……)
경고하는데 쓸데없는 말로 시간 끌지 마!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어!
……
공짜로 한 수 가르쳐 주지, 살카즈 꼬마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라니까!
상대가 시간을 끌고 있단 사실을 눈치챘다면 더는 꾸물거리지 말았어야지.
그게 무슨……
대화는 끝났어?
뭐 그렇게 할 말이 많다고.
이런! 어, 어느 틈에……
……시작하자고!
제길! 너무…… 비겁하잖아!
(무리야. 양쪽에서 공격하면…… 피할 수가 없는데!)
윽!
눈 감지 마! 상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무기로 막아!
으윽!
쳇, 성가신 녀석이 왔군……
다른 놈은 신경 쓰지 말고 네 사냥감에 집중해.
다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전투 중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무기를 놓지 마!
네, 넵!
날 무시하지 말라고!
지금이야! 공격해!
흐압!!
으윽!
아…… 아하하! 무시하지 말라더니……
그건 내가 할 말이라고! 이 나쁜 놈들, 감히…… 날 무시했겠다!
어이, 꼬마야. 어딜 노린 거냐?!
뭐 하는 거야?!
내가 가르쳐 준 걸 그새 까먹은 건 아니겠지? 항상 급소를 노려야 한다고 했잖아!
아, 알고 있어요……!
이야아압……!
헉…… 허억……
후……
겨우 해치웠네……
그림!
봤어요? 제가 이 나쁜 놈들을 처치했어요!
……
그림……?
왜 그래요? 화, 화났어요?
전에 내가 뭐라고 했지?
상대를 무시하지 말고, 인정사정 봐줄 것 없이 급소를 노리라고 했어요……
근데 넌 어떻게 했어?
그게…… 일부러 급소를 피해 공격한 게 아니라…… 어……
그림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만약…… 내가 죽으면 어쩔 건데?
하지만, 하지만 그림이 죽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야.
으으……
아직 살아 있는 거야?
그게…… 시, 실은 기절만 시켰거든요……
왜 그냥 죽이지 않고?
그야……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 차라리 묶어버리는 게 어떨까요?
그럼 이 일을 보고하러 가지 못할 거예요……
……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꼬마에게 내가 뭘 가르칠 수 있을까?
'진정한 살카즈 용병'이 되는 법을 가르쳐야 할까? 내가 보고 들은 원칙을 알려줘야 하는 걸까?
그런 걸 가르쳐 주면 이 아이도 내가 지금껏 봐온 수많은 살카즈로 성장해 결국 나처럼 되지 않을까?
그건 내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이 천진난만한 살카즈에게 미래가 없을 지도.
파프리카.
네?
잘 봐.
노련한 용병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패배자의 목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검붉은 피가 무릎 보호대와 신발에 튀자 파프리카는 마치 그 뜨뜻한 피에 피부가 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대, 대체 왜……
암시장에서 우릴 노리고 온 놈들이잖아.
아까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면, 저기 누워 있는 건 너일 거야.
……알아요!
저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품었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림이 없었으면, 정말 위험했을 거예요……
……
그리고 한 명 남았어요…… 저 사람은 내 사냥감이니, 내가 직접 처리할게요.
……
……
(저 사람을 죽여야 해…… 그래, 죽이는 게 맞아.)
(그냥 찌르기만 하면 돼. 파프리카, 긴장하지 말자. 아주 쉬운 일이야……)
……하아……
뭘 망설이는 거지?
마, 망설이지 않았어요……!
(망설이지 말자…… 용병으로서…… 적을 죽이는 것뿐이야!)
(망설일 것도 없잖아? 그, 그러니까……)
지금 바로…… 죽일게요!
……
그만해.
네? 하지만 아직……
넌 죽일 수 없어.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믿어주세요!
아니, 넌 아무것도 몰라.
이런 놈들조차 처리하지 못한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넌 용병 일을 할 수 없어.
넌 금방 죽을 거야. 전장에서 죽는다면 나름 괜찮은 결말이겠지. 하지만 어쩌면 으슥한 곳에서 홀로 죽는 바람에 내가 가서 네 시체를 처리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전 용병이에요!
그림이 그랬잖아요, 우리 같은 용병은 언젠간 모두 죽는다고!
우리 같은?
하, 넌 사정이 다르지……
네?
……그림, 나도 가끔은 두려워요……
뭐가?
그림이 말한 대로 오늘 여기 쓰러질 사람은 나였을지도 몰라요. 그림이 오지 않았다면 저들처럼 죽었겠죠.
아마 내 시신은 한참이 흐른 후에야 발견될 거고, 이 소식이 마을에 계신 할머니의 귀에 들어갈 때까진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전에 프레드 때도 그랬잖아요. 아직 그 일을 기억해요.
이별이란 아주 흔한 일이지.
네…… 알아요. 그림이 늘 하는 말이잖아요.
난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에요. 정말로요.
하지만 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됐는데도 할머니가 계속 기다리실까 봐 무서워요.
……
이번은 그렇다고 치자.
그림……! 잠깐만, 나 정말 할 수 있어요……
소란은 이 정도로 충분해.
명심해. 계속 우리를 따라온다면 언젠간 직접 누군가를 죽여야 할 날이 올 거야.
네…… 알고 있어요……
진짜 아는 거 맞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어쩌면 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파프리카.
런디니움 가는 건 포기해. 넌 아직 부족하니까.
하지만……
이번에 이기기만 하면 앞으로 좋은 날이 올 거라면서요!
나도 싸울 수 있어요, 도울 수 있다고요!
이건 단순한 전투가 아니야.
내가 이번 임무에 모든 걸 걸 수 있는 이유는, 직접 봤기 때문이야.
뭘 봤는데요?
우리 살카즈에게 돌아갈 집이 있는 모습을.
집……
어쩌면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일말의 가능성만 있다면 맞서 싸울 생각이야.
하지만 넌 달라. 넌 선택할 수 있어.
선…… 선택이요?
잘 모르겠어요……
모두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저 혼자 어딜 갈 수 있겠어요?
마을로 돌아가 예전처럼 지내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까요?
……
나는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알고 있다.
살카즈이기에 용병이 되기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에 몸을 바치기로 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이 길을 걷는 건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이었다.
이 아이는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한다.
난 반박하지 않았다.
그건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직접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 죽음을 마주해 본 적이 없으니까.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나 아니면 이 아이.
생각해 봤는데…… 이번 런디니움 임무가 지금껏 해온 다른 임무보다 훨씬 어려운 거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그림도 언제 어디선가 세상을 떠나게 되겠죠……
그래.
……그럼 내년 생일 선물은 준비하지 않을게요.
받아요, 올해 선물이에요.
……손가락 보호대?
화려하다는 말 금지! 시간 낭비라는 말도 금지! 필요 없다는 말도 금지!
……
그, 그림이 죽더라도 절대 슬퍼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살카즈에게 이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죽지 않는다면…… 한 대 얻어맞거나, 보수를 받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뭐가 됐든 다 괜찮아요. 허탕 치고 돈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그냥……
임무가 끝난 후에 모두가 함께 돌아올 수 있다면 좋겠어요……
……순진한 생각이군.
살카즈 애들은 다 너처럼 순진한 건가? 내가 아는 살카즈는 이런 모습이 아닌데.
왜 또 혼내요?
살카즈는 주변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지도 못해요?
그래도 전…… 제가 살카즈라고 생각해요!
……
그런 살카즈는 전장에서 죽기 마련이지.
……하지만 난 네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이만 가자.
그게 무슨…… 앗,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