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호신 부적

호신 부적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이제 막 정식 오퍼레이터가 된 미르는 치료를 거부하는 한 노부인을 진료하게 되는데, 단순히 치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미르, 수수로, 히비스커스, 가비알


로도스 아일랜드 우르수스 임시 거처

가비알

하암…… 너무 졸려. 어제 새벽 4시까지 일했는데, 바로 또 조회야? 좀 봐주라.

가비알

수수로, 너는 왜 전혀 졸려 보이지 않지?

수수로

우리는 학교 때부터 환자와 의료행위는 무조건 최상의 컨디션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배워왔으니까……

히비스커스

그래서 아침부터 에스프레소 석 잔을 마신 건가요? 그건 건강에 좋지 않아요, 수수로 씨.

수수로

크흠, 히비스커스 씨도 왔네. 그럼 조회를 시작할까.

히비스커스

잠시만, 본함에서 새로운 동료가 막 도착했어요. 어서 들어와요, 미르 씨.

미르

아, 안녕하세요. 저는 요번에 정식 오퍼레이터가 된 미르입니다. 제 본명인 애들레이드라고 불러도 됩니다.

히비스커스

수습에서 정식 오퍼레이터가 되자마자 저희 거처로 배정받았어요. 미르 씨, 이쪽은 가비알 씨예요.

미르

가비알 씨, 안녕하세요.

가비알

안녕, 그냥 가비알이라 불러도 돼.

가비알

잘 왔어, 덕분에 우리도 좀 수월해지겠네. 아 제발, 인사부에 메딕 오퍼레이터를 더 뽑으라 하면 안 돼? 제대로 자본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

히비스커스

모집 중이래요. 저번에 인사부에 물어봤어요. 가비알 씨도 참,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새로 온 동료가 놀라면 어쩌려고요.

미르

괜찮습니다. 저, 저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 켈시 선생님도 의료진의 업무가 힘들 테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그러시더라고요.

히비스커스

하아,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여기 업무량이 어지간히 많은 게 아니거든요.

히비스커스

아, 맞다. 잊을 뻔했네요. 옆에 있는 분은 수수로 씨예요. 앞으로 미르 씨에게 업무를 배정해 줄 거예요.

미르

안녕하세요, 수수로 씨. 앞으로 자, 잘 부탁드립니다.

수수로

긴장할 거 없어, 미르 씨. 시작부터 어려운 일을 주진 않아. 어쨌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미르

네, 네! 고맙습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세요.

가비알

너는 우리 부담을 덜어주러 온 거니까, 고마운 건 오히려 이쪽이라고.

수수로

크흠, 가비알 씨,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우선 오늘의 업무를 얘기해 볼까.

가비알

내가 담당한 난민들은 병세가 순조롭게 억제되고 있어. 각 지표도 정상 수치로 회복 중이고. 문제가 없다면 몇몇은 다음 달쯤에 바로 퇴원할 수 있을걸.

수수로

히비스커스 씨는?

히비스커스

제 쪽에도 대부분 환자는 괜찮은데, 딱 한 분만 상황이 좀……

수수로

누구지?

히비스커스

루바 씨요.

가비알

아, 그 사람……

수수로

그 사람인가……

미르

그분은 병세가 심각한가요?

수수로

루바 씨의 상태는 그리 심각하지도 않고 얼마든지 대처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분이 계속 치료에 비협조적이야.

미르

네? 병을 치료한다는데 싫다는 사람도 있나요?

가비알

그 사람은 미신에 푹 빠져 있어서 그래. 우리가 온 첫날부터 마을 도사 말로는 자기가 70세를 넘길 수 없다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하더라고.

미르

그런 말을 믿을 수나 있을지……

히비스커스

하지만 루바 씨는 그걸 믿어 의심치 않아요. 아주 사소한 일도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인다니까……

수수로

내 말이. 지난 금요일에 함께 산책하고 있었는데, 바닐라가 데려온 까망이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어.

수수로

그리고는 검은 원석충을 보면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서, 임종이 코앞까지 왔다고 하더라고.

가비알

아,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고만 있었구나.

미르

(작은 목소리로) 어쩌면……

히비스커스

이 일을 어떻게 하죠……

수수로

곤란한데……

미르

저기, 수수로 씨, 제가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수수로

미르 씨가 해보고 싶어? 우리에게 있어 루바 씨 같은 환자는 치료 능력뿐만 아니라, 소통 능력도 요구하거든.

미르

미신이라면 저도 고향에서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대응하는 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요.

히비스커스

미르 씨,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가비알

됐어, 미르한테 맡겨 보자. 우리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잖아?

수수로

글쎄……

미르

저, 저를 믿어주세요, 수수로 씨.

수수로

미르 씨가 경험이 있다면 일단 부탁하는 수밖에 없겠네. 가비알 씨, 미르 씨에게 루바 씨의 진단 기록을 보여줘.

미르

잘 부탁드려요, 가비알 씨.

히비스커스

결정이…… 너무 성급한 거 아닐까요? 수수로 씨, 좀 더 상의해 보는 게……

수수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정말 없잖아……

수수로

이렇게 하자. 미르 씨, 루바 씨와 접촉하는 동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즉시 우리한테 알려줘. 우리도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미르

저를 믿어줘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비알

좋아. 그럼 나 따라와, 미르.

수수로

히비스커스 씨, 아까 뭔가 망설이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지?

히비스커스

저기, 수수로 씨, 어떡하죠. 좀 걱정돼서…… 전에 켈시 선생님과 미르 씨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미르 씨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수수로

무슨 특징?

히비스커스

미르 씨도…… 약간 미신을 믿는 편이래요.


로도스 아일랜드 임시 병실

미르

루바 씨의 병실이 여기인가……

???

됐어, 가져가. 안 먹어!

미르

죄송한데, 안에 무슨 일이 있나요? 루바 씨가 화난 것 같은데요……

메딕 오퍼레이터

하아…… 당신 이제 막 여기 온 거지?

메딕 오퍼레이터

아까 부주의로 소금통을 넘어뜨렸는데, 우르수스 사람은 그런 일을 금기시하나 봐. 불행을 가져온다면서 계속 화만 내고 있어.

메딕 오퍼레이터

아무래도 좀 있다가 오는 게 좋겠어, 엄청 화를 내고 있거든.

미르

괜찮아요, 인사하러 온 것뿐인데 뭐.


노부인

안 먹는다고 했잖아, 왜 또…… 응?

미르

안녕하세요, 루바 씨.

노부인

너는?

미르

저는 수수로 씨가 배정한 새로운 담당 의사 미르라고 합니다. 앞으로의 치료에 아무쪼록 잘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노부인

나가, 가는 김에 약도 그대로 가져가! 나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고. 이 노파는 그냥 조용하게 가고 싶을 뿐이야!

미르

루바 씨, 저기, 약은 가져오지 않았는데요.

노부인

그럼 뭐 하러 왔는데? 너도 이 노파에게 미신 따위 믿지 말라고 설득하러 온 거야?

미르

아뇨, 아니에요. 저는 말주변이 없어서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해요……

노부인

흥, 그럼 병문안이라도 온 거야?

미르

제, 제가 작은 선물을 가져왔어요. 고향에서 가져온 부적 같은 건데, 오랫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 족장님 말로는 행운을 가져온다고 해서.

미르

(목에 건 부적을 벗어 노부인에게 건넨다)

미르

조금 낡았지만 사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노부인

아주 작아 보이는데…… 어쨌든 고마워, 아가씨.

미르

할머니, 이 부적은 아주 용한 거예요. 이 부적 덕분에 저는 여러 번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거든요.

노부인

요즘 젊은이는…… 항상 과학이니 사실이니 운운하면서 이런 걸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처럼 어리석고 고집 센 시골 노파나 이런 걸 믿지.

미르

저, 저도 사실 미신이라고 자주 한 소리 들어요. 실험실에 들어갈 때면 꼭 왼발부터 들이거든요. 아니면 나쁜 일이 생기니까. 그리고 방에는 꼭 파울비스트 장식품을 놓아요. 재물 운이 들어온다고 해서……

미르

여기 와서 그것 때문에 솔직히 많이 부끄러웠어요. 다들 전문 의대를 졸업했는데, 이런 근거 없는 말은 바보 같다고 생각하니까.

노부인

걔들은 운명을 믿기에 아직 너무 어려. 내 나이쯤 되면 거역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노부인

어렸을 때 점쟁이한테 들었는데, 나는 일생이 고난이랬어.

노부인

그때 나도 당연히 믿지 않았지. 하지만 결국은?

노부인

마을에 재앙이 들이닥쳤고, 유일한 딸내미마저 잃어버렸어. 그리고 이 나이에 이런 병까지 걸리다니, 이 늙은 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있기엔 글렀어.

노부인

우리 미카야…… 너는 어쩜 그리도 매정하게 엄마만 남겨두고 먼저 가버린 거냐.

미르

(노부인의 손을 잡으며) 할머니……

노부인

흥, 뭐야, 이런 얘기 해서 짜증이라도 난 게야?

미르

아뇨, 아뇨, 할머니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요. 따님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할머니가 이렇게 미인이신데 따님도 엄청 예뻤을 것 같아요.

노부인

……요 녀석, 아까는 말주변이 없다면서.

노부인

아무튼, 미카는 확실히 우리 마을 자타공인 미인이었지. 예쁜 금발 머리는 마치 실크처럼 매끄러웠어.

노부인

내 사랑하는 미카야. 미카가 사라진 후 내 마음은 늘 텅 빈 것처럼 살아갈 기운이 없었어.

노부인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그저 하루하루를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야.

미르

할머니, 그럼 새콤한 애플파이 드실래요?!

노부인

깜짝이야! 갑자기 그렇게 큰 소리로 나를 놀래 죽일 일이라도 있냐? 애플파이는 또 뭔데!

미르

저희 식당에서 사과로 새롭게 개발한 음식인데요, 새콤달콤해서 식욕을 많이 돋워 주거든요.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가서 좀 가져다드릴게요.

노부인

하아. 이 할머니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구나…… 그냥 얘기만 나눠 줘도 충분해.

미르

할머니, 그럼 계속하세요. 제가 듣고 있을게요.

노부인

……사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카는 사과를 제일 좋아했지. 단 건 싫고 신 것만 골라 먹더라고. 하하하.

미르

할머니, 저는 신 걸 못 먹어요. 이가 빠질 것 같아요.

노부인

하하, 우리 미카는 이빨이 튼튼했지……


미르

할머니, 어제 밤새 눈이 와서 아침 공기가 엄청 상쾌하거든요.

노부인

이리 일찍부터 나를 찾아와도 괜찮아? 일에 지장은 없어?

미르

괜찮아요, 할머니, 저는 업무가 그다지 많지 않아요.

노부인

의사들은 모두 바빠서 이 노파의 수다를 들어줄 시간이 없을 텐데.

미르

히힛, 할머니, 설마 저 보기 싫으신 건가요?

노부인

요 녀석이……

노부인

솔직히, 너랑 있으면 마음이 훨씬 편해져.

미르

실은 저도 어제 돌아가고 나서 계속 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노부인

왜, 뭣 때문에…… 이 늙어빠진 할머니를 무슨 생각할 게 있다고?

미르

할머니는…… 저희 할머니랑 많이 닮으셨어요. 할머니를 보면 어렸을 때 저희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르거든요.

노부인

……내게 손녀딸이 있다면 아마 너랑 비슷한 나이였겠지.

노부인

너는 너희 할머니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미르

그럼요. 제 약제 기술은 전부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거예요. 저를 데리고 숲에서 약초를 알아보는 방법도 가르쳐줬고요.

미르

그리고, 길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 덕분에 지금은 어디 가든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거든요.

노부인

허…… 고향이 그리웠구나, 아가씨?

미르

네, 많이요. 정말 고향이 그리워요.

노부인

이 할매도 그래.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구나…… 우리 미카도 이젠 없고……

미르

할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미카 씨는…… 아마 미카 씨도 돌아오고 싶을 거예요.

노부인

얘가, 헛소리는!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온다는 거야?!

미르

할머니, 화, 화내지 마세요. 우리 부, 부족 사람들은 다 그, 그렇게 믿고 있어요.

미르

우, 우리 부족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초목의 인도를 받고 푸른 선경에 다다라, 다시 대자연의 일부가 될 거라고 믿어요.

미르

그래서 누군가 죽으면 우리는 강가에 모여 쪽배를 띄워, 그 위에 촛불을 가득 밝혀 강물에 흘려보내거든요. 그들이 돌아오는 길을 비춰달라고.

노부인

……아가씨, 정말 그렇다면, 우리 미카가 돌아올 수 있다면, 미카는…… 무엇으로 변할까?

미르

할머니, 미카 씨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늘에 있으면 아마 반짝이는 별이나 잔잔한 바람으로 변하겠죠. 호수에 있으면 작은 눈송이나 가는 빗방울로 변하고……

미르

땅 위에 있다면…… 아마 부드럽고 귀여운 풀잎으로 변할 수도 있어요.

노부인

하지만 이 한도 끝도 없는 세상에서,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다는 게야?

미르

우…… 우리는 찾을 수 없어요. 그들이 우리를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죠.

미르

그래서 우리 부족의 장례식에서는 족장님이 모두와 함께 초혼의 춤을 추거든요. 이렇게 해야만 떠나간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노부인

아가씨……

노부인

그 춤, 출 수 있니? 우리 딸, 미카를 위해…… 한 번 춰줄 수 없을까?

노부인

……이 노파는 딸이 보고 싶구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딸을 만나고 싶구나.

미르

……

미르

네.

미르 자신은 아마 모르겠지만, 그녀의 춤사위는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발이 하도 둔해서 손동작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보리를 키질하는 아낙네의 동작이 미르보다 훨씬 우아하고 조화로울지도 모른다.

루바 씨의 눈에 비친 미르의 모습은, 마치 눈밭에서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덕이는 파울비스트와도 같았다. 동작이 너무 재미있고 웃겼다.

하지만 루바 씨는 웃지 않았다. 미르가 눈밭에서 두 팔을 흔들며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쌀쌀한 아침 바람에 루바 씨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흐르는 공기가 뺨을 어루만지는 것을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시울이 시큼해지는 걸 느꼈다.

노부인

아가씨……

미르

(털썩) 앗, 너무 많이 돌았더니 어지럽네요……

미르

할머니, 왜요, 왜 그러세요?

노부인

이만 돌아가자…… 갑자기 새콤한 애플파이가 먹고 싶구나.


한 달 후

노부인

애들레이드, 왔니? 퇴원하기 전에 다시 보게 돼서 정말 기쁘구나.

미르

할머니, 병세가 많이 안정됐어요. 음식에 주의하시고 약도 제때 드셔야 돼요. 당분간 병이 악화되지는 않을 거예요.

노부인

알았다, 애들레이드. 한 달 동안 이 늙은이 때문에 고생이 많았구나.

미르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아, 맞다. 제가 식당에서 애플파이를 포장해 왔어요. 길에서 드세요.

노부인

애들레이드, 정말 고맙구나. 이 노파가 뭘 좋아하는 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고.

미르

자, 할머니, 제가 배웅해 드릴게요.

노부인

좋아.

노부인

애들레이드, 이 할머니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살아나갈 기운이 전혀 없어서, 매일 고목처럼 누워 있으면서 빨리 세상을 떠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노부인

너를 만나게 돼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다.

노부인

지금은 말이야, 마치 미카가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저 멀리 있는 설산, 눈앞의 소나무, 꽃이며 풀이며, 비나 눈이 모두 우리 미카 같아.

노부인

모두 아름다운 것들이라 더 많이 보고 싶더구나. 아니, 계속 봐야지.

노부인

그래서 건강하게 살면서 계속 보기로 했단다.

미르

할머니,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미카 씨도 기뻐할 거예요. 몸조리 잘하세요. 앞으로 다시 뵐 기회는 별로 없겠지만 부디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노부인

어머, 얘 봐. 눈가가 빨개졌잖아.

미르는 미소를 지으며 노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눈길만 걸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에야 노부인은 그동안 주저해 왔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

노부인

애들레이드, 이 할머니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솔직하게 얘기해 주렴.

노부인

네가 이야기해 준 것들…… 정말이니? 아니면 거짓말이니?

미르

할머니, 저는……

노부인

솔직히 말하렴, 난 그냥 네 생각을 듣고 싶구나.

미르

저도 모르겠어요.

미르

어렸을 때부터 제가 아플 때마다 족장님은 늘 약을 달여줬거든요. 그 약만 마시면 저는 금방 좋아졌어요.

미르

저는 계속 대단한 약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효능도 믿어 의심치 않았죠.

미르

나중에 로도스 아일랜드에 와서 정식으로 의학 지식을 배우고 선진적인 약학법도 배운 뒤, 바로 그 약의 성분을 연구 과제로 제출했어요.

미르

하지만 결과는 실망이었죠…… 그 약은 딱히 이렇다 할 효능도 없는 평범한 허브 음료였으니까요.

미르

그래서, 후속 연구를 전부 중단하고 모든 자료를 서랍 깊숙이 잠가두고 다른 약물의 개발을 진행했어요.

미르

하지만 아플 때나 다쳤을 때면, 저도 모르게 그 약을 달여 먹었죠.

미르

나중에는 실험이 잘 안돼도 마시고, 밤에 잠이 오지 않아도 마시고, 심지어 길 가다 넘어져도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마셨거든요.

노부인

효능이 없는데도 마시다니…… 아가씨, 인간은 정말 어리석구나. 뻔히 거짓인 걸 알면서도 여전히 믿고 싶어 하니까.

미르

할머니,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노부인

그러게 말이다…… 왜 그럴까.


미르

하모니아, 그게 정말이야? 이 춤을 추면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거야? 푸른 선경은 정말로 존재하는 거야?

하모니아

애들레이드……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없어. 나도 답을 몰라.

미르

그런데 왜 장례식에서는 꼭 족장님과 함께 초혼의 춤을 계속 추자고 고집해?

하모니아

왜냐면 나도 그게 정말이길 바라니까. 나도 언젠가는 떠난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니까.

하모니아

그래서 기꺼이 춤을 추는 거야.

하모니아

이 세상은 고난과 문제로 가득 차 있어. 무력한 자는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 도울 수밖에 없고, 무지한 자는 물어볼 데 없으면 자신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어.

하모니아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을 허망한 사물에 의존함으로써, 애써 위안을 구하는 것뿐이야.

하모니아

그래서 우리는…… 미신을 믿는 것이고.

미르

하지만 하모니아……


미르

믿으면 가짜라도 진짜가 되는 거겠죠……

노부인

됐다, 그만하렴. 이 나이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서 뭐 하게. 오래 살았다고 싫증 난 것도 아니니까.

노부인

아가씨, 작별하면서 딱히 선물할 것은 없지만, 이건 우리 집 그이가 내게 남겨준 구슬 목걸이야. 부디 받아줬으면 좋겠어.

미르

안 돼요, 할머니. 받을 수 없어요.

노부인

받아. 비싼 것도 아니야.

미르

마음만 받을게요…… 의료부 규정상 환자의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되니까요.

노부인

이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난 네가 늘 건강했으면 좋겠어.

떠나가는 루바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애들레이드는 눈을 비비면서, 문득 어릴 적 하모니아와 나란히 앉아 멀리 강기슭을 바라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밤, 두 달의 은빛은 울창한 숲을 내리비추며 새파란 잎사귀 사이를 통과했다.

밤바람은 장례식의 구슬픈 소리를 실어 왔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함께 모여 촛불을 실은 쪽배를 강물에 흘려보냈다.

그 불빛이 모여 깊은 밤하늘을 밝게 비췄고, 빛나는 띠가 되어 강가의 사람들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