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이 밝아올 때까지
루멘이 다친 전달자를 대신해 소포를 전달하기로 하고, 그 소포로 인해 조용했던 그란파로가 소란스러워지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루멘
……“안전성을 고려했을 때, 연결 장치로 사용할 수 있는 건…… 현재로서 가장 대체하기 쉬운 재료……”
흠, 예상 재료 소모 견적이 틀린 것 같은데……
……아니지. 이건 예전의 메모니까, 틀렸다면 분명 두 줄로 그어두셨을 거야.
그럼…… '이베리아의 눈'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거지?
이베리아의 눈이 빛나면 그란파로의 모든 집에서 창밖으로 빛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하하, 아마 전설 속에나 있는 얘기겠지만.
다음은 조명 강도 테스트인데…… 도표가 잘 그려져 있으니 그대로 따라 하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이 마을엔 실험용 재료가 없는 것 같은데……
……!
잠시만요! 지금 나갈게요!
부랴부랴 노트를 캐비닛에 대충 쑤셔 넣은 젊은 간병인이 옆에 있던 램프를 들고 급히 예배당 문가로 향했다.
밤이 깊었는데 어쩐 일로 이 예배당에……
……저, 전달자 씨?! 대체 무슨 일이……
……우선 부축해 드릴게요, 천천히 들어오세요.
잠시만 누워 계세요. 깨끗하게 빨아둔 거즈가 옆에……
우선…… 문부터 닫아줘, 빨리.
앗, 네.
……상처가 깔끔하게 가죽 벨트까지 같이 잘렸네요……
다행히 제가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며칠 여기서 쉬셔야 할 것 같은데……
후……
……고비는 넘긴 건가.
그, 그러게요. 그래도 제때 오셨어요. 상처가 감염되기라도 했다면, 저도 손쓸 방법이 없거든요……
내가 왜 다쳤는지 묻지 않다니, 정말 이상하군.
아니면 그게 이 마을 사람 특징인가?
저, 저는 얼른 지혈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갑자기 물어보니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른 마을 사람들이 어떤지도 잘 모르고요.
그란파로에는 외지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거든요. 떠난 이들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요.
그란파로는…… 이런 곳이었군. 바다와도, 재판소와도 가깝고.
하하, 맞아요. 다른 전달자분들도 오래 묵지 않으시죠.
……앗, 죄송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전달자분들은 늘 떠나기 바쁘셔서 이렇게 예배당에서 쉬시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나는…… 크흠, 참. 혹시 그란파로에 대해 잘 알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계속 여기서 살았거든요.
하지만 옛날에 일어난 사건, 광장, 광장에 있는 조각상, 바다에 대해서는…… 아저씨한테 들은 게 전부예요.
그 정도도 충분해.
후우, 이렇게 치료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이건 그란파로로 보내진 소포야. 그런데 정확한 주소와 수취인 이름은 없고 '문에 하얀 꽃이 꽂혀 있는 집'이라고만 적혀 있어.
하얀 꽃이 꽂혀 있는 집이요? 그런 집은 없었던 것 같은데……
부탁할게. 이런 몸으로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포 주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거든.
하지만…… 얼른 주인을 찾아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아, 걱정 마시고 제게 맡겨주세요.
진짜 무겁네요……
날이 밝는 대로 찾아볼게요.
참, 담요를 두 개 더 가져올게요. 낡긴 했지만 따뜻할 거예요.
고마워.
……조심해야 해.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은 날이 갈수록 건성이라니까! 이러다가 괜히 재판소 놈들의 눈길을 끌기라도 하면 지난 20년간의 내 노력이 수포가 될 거라고!
나보고 냉정하게 이치를 따져보라는데, 개뿔…… 재판소 놈들이 언제부터 이치를 따졌다고!
후우, 남은 국은 전부 네가 먹거라. 난 너무 짜서 입에 안 맞아…… 너도 마찬가지다. 괜히 주의를 끌지 않도록 조심해.
알겠어요, 티아고 아저씨. 그리고 다음엔 더 잘 끓여볼게요……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큰일은 아니고, 할 일 없는 놈들이 또 그란파로 곳곳을 캐묻고 다니는 모양이야.
쯧, 재판소에 쪼르르 달려가 보고할 줄만 아는 선교사들이 뭔 냄새를 맡은 건지.
설마 자기들이 찾는 게 이 그란파로에 없다는 걸 모르는 건가? ……딱 봐도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
……
……예배당 쪽엔 별일 없고? 요즘도 네 부모님이 남긴 노트를 읽고 있니?
네…… 읽다 보면 너무 재밌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예요.
남들 앞에선 절대 노트를 읽지 마라. 그 노트, 에기르어로 쓰여있었잖니.
알겠어요, 티아고 아저씨. 조심할게요.
……후우.
처음엔 그것들을 여기서 가장 위험한 곳에 숨겨두면 오히려 재판소 놈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난 그저 그 도둑놈들이 그란파로의 모든 걸 앗아가지 못하길 바랐을 뿐이라고.
그걸 누가 읽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지.
그래도 그 자료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니, 그 정도면 나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
아저씨, 이것 좀 맡아주실 수 있나요?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오늘 저녁 예배당에……
티아고 씨, 보고할 일이 있어요! 재판소가 그란파로를 노리기 전에 정리할 일이 생겼다고요!
(작은 목소리로) 조르디!
아, 알겠어요……! 우선 방에 가서 문을 잠그고 있을게요……
그 선교사 두 명 있잖습니까, 알아보니까 저희 마을 사람이 아닌 전달자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골치 아프게 그 전달자가 에기르인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크흠, 저희가 에기르인을 의심하는 건 아니니 그런 표정은 짓지 마시죠.
어쨌든 조금 전에 예배당에 다녀왔는데, 선교사에게 당한 전달자가 그곳에서 쉬고 있더군요.
……예배당에서?
걱정 마세요, 조르디가 예배당을 떠난 후에 그 선교사를 데려갈 생각이니까요. 누구도 조르디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정이 있는데 그런 수상한 일에 휘말리게 둘 수는 없죠.
그리고 선교사들이 전달자의 짐을 확인했는데,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허, 오해였다니!
……어찌 된 일인지 대충 알겠군.
앞으로 며칠 동안은 잠자코 지내는 게 좋겠어. 누구도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말자고.
며칠만 참으면…… 이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잊히게 될 거고, 재판소 놈들도 더는 귀찮게 굴지 않겠지.
네, 가서 사람들한테 전달하겠습니다.
……
에기르인이 보낸 수상한 물건이라……
조르디가 문 뒤에 두었던 짙푸른 벨벳에 싸인 소포를 들어 올려 냄새를 맡았다.
그는 티아고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릴 만한 짠 냄새가 이 소포에서 새어 나온 건지, 사계절 내내 습한 그란파로의 공기 중에서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잡혀갈 만큼 나쁜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잖아.
티아고 아저씨가 수년 전만 해도 그란파로에 에기르인이 많이 살았다고 했어. 어쩌면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모르는 누군가가 보내온 물건일지도 몰라.
그러니…… 받는 사람이 누군지 직접 봐야겠어!
후…… 광장 동쪽 거리는 다 훑어봤고.
내일 새벽엔 다른 곳을 찾아보는 거야. 티아고 아저씨 말대로라면 그 선교사들은 아침 7시부터 순찰을 시작한다니까, 우선은 어서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래도 사흘이나 지났네. 선교사들도 아마 떠날 준비 중이겠지.
'문에 하얀 꽃이 꽂혀 있는 집'이라…… 근데 마을 대부분이 집을 하얗게 칠해둬서 하얀 꽃으로 장식하지 않을 텐데.
아니지 잠깐, 조금 전에 지나친 그 집, 문 앞에 하얀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
아, 내가 잘못 봤네.
꽃이 아니라…… 책이잖아?
이건…… 뭔가 좀 수상한데? 내가 기억하기론 이 집 꽤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데, 책은 새것이야.
좋아, 문을 두드려보자.
……아무도 없는 것 같네.
흠, 역시 답이 없어. 생각이 너무 과했나……
난 이쪽으로 갈 테니, 넌 저쪽을 둘러봐.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문을 박차고 들어가라고.
이 마을에서 조사를 안 한 건 이 근처뿐이야.
(처음 듣는 목소리야. 말투도 낯설고…… 아무래도 선교사들인가 봐.)
(얼른 숨어야겠어!)
(이쪽으로 돌아가면 마주치지 않겠지.)
(여기서 들키면 티아고 아저씨한테 완전 민폐인데……)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어.)
좋은 아침이에요, 젊은 선교사님. 이 마을에선 외부인을 보는 일이 정말 드문데 말이죠.
(그 문이…… 열렸다고? 게다가 목소리도 어딘가 낯익은데.)
별말씀을요. 제 나이에 벌써 재판관이 된 사람도 있는걸요.
그런데 당신은 이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재판소의 판결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희의 신앙을 믿고 계시나 보군요.
전 그저 책을 통해 재판소가 어떤 위험에 맞서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랍니다.
이 마을에 선교사님을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저쪽으로 가서 찾아보세요.
무슨 단서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뇨, 지금까지 수상한 점은 없었어요. 그랬으니 제가 여태껏 이 조용한 마을에서 정착해 마음 편히 작업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죠.
전 단지 바다가 저쪽에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답니다.
마을 밖에 있다라…… 무슨 뜻인지 이해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처럼 평범한 선교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군요.
……
안녕, 예배당의 조르디.
……아,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이 소포의 주인이세요?
맞아요, 가져다줘서 고마워요.
휴…… 다행이에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네? ……아뇨, 제가 아마이아 씨를 의심할 리가 없잖아요.
아마이아 씨는 이 그란파로에서 아는 게 제일 많으시고, 그리고 티아고 아저씨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얘기하시던걸요.
괜찮으면, 들어와서 보실래요. 마음이 좀 편해질 거예요.
더 이상 집에 보관하기 어려운 책과 원고를 넣어두려고, 이 버려진 집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했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훗날 누군가 여기 와서 그란파로를 둘러보다가 이베리아 바깥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잖아요.
당신이 들고 온 소포도 다 책이에요.
이 글자를 알아볼 수 있겠어요? 전부 에기르어인데.
음, 대충 읽을 수는 있어요……
……그렇다면 이 소포는, 정말 에기르인이 보낸 거네요?
글자를 알아볼 수 있다면, 편하게 읽어보세요.
아, 이건 연극에 관한 책인가 봐요…… 무대장치 같은 내용이 담겨 있어요.
이 책은 극장 건축을 다루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 그려진 설계도는 정말 멋진데요?
아마이아 씨, 혹시 연극을 연구하시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전 그저 번역가일 뿐인걸요.
이 책들은 제 친구가 집에서 찾아낸 골동품이에요. 그 재난 이후 몇몇 에기르인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쓴 것들이죠.
재난이요?
아아,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무튼 그 친구가 이베리아어로 번역해달라며 이 책들을 제게 보냈어요.
에기르어는 이 육지에서 보존될 수 없으니까요. 그뿐이에요.
아, 에기르어를 모르는 선교사들이 보면 오해할 법한 책이네요……
……에기르인의 처지를 슬퍼하시는 거죠?
어쩌면…… 근데 꼭 에기르인 때문만은 아니에요.
사실 전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거든요, 아하하……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가 에기르인을 대표할 수 없다는 건 저도 알아요.
다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에기르인들의 삶은 어떤가요?
다른 지역이라…… 흠, 조르디. 당신은 이 마을의 유일한 에기르인이니 혹시 번역 일을 좀 도와주지 않을래요?
당신이 도와준다면 저 낡은 사전을 하나하나 뒤적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네……? 아뇨, 이렇게 어려운 작업은 제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 당신이 하고 싶을 때 그때가 언제든 찾아와요.
물론 지금은 여기서 읽고 싶은 책부터 마음껏 읽어도 되고요.
글은 때때로 사람을 속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한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하죠.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당신이 궁금해하는 바깥세상도 포함되어 있다는 건 당연한 이치겠죠?
아, 찻주전자를 어디에 뒀더라? 앉으세요, 조르디. 여기 있다 보면 어쩌면 관심 있는 걸 찾게 될지도 몰라요.
저는……
죄송한데 오늘은 예배당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다친 전달자가 계시거든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지금은 간병을 해야 해서요.
저 아이…… 왜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지?
아직 꿈에서 본 적이 없는 걸까? 날개가 돋은 채로 파도가 부서지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조르디? 어딜 다녀온 거냐?
7시 전에 돌아오기로 약속했잖니. 선교사들이 오늘 떠나니까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아, 아저씨…… 죄송해요.
부상자만 한 번 살펴보고, 바로 안으로 들어갈게요.
다른 애들이 너 대신 부상자를 살폈다. 네가 안심하고 집에 숨어 있을 수 있도록 말이지.
앗, 다음에 꼭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그럼 오늘은 여기 숨어 있을게요. 그럼 괜찮을 거예요.
보세요, 저 여기 있을게요. 문이 닫히면 이 램프로 책을 읽으면 돼요.
그 램프…… 아직도 쓸 수 있는 거냐?
노트에 적힌 대로 손을 좀 봤어요. 제대로 고쳐진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켜지긴 해요……
……
“티아고, 우린 '이베리아의 눈'을 재건할 테니까 너희들은 언덕에 멋진 건물을 세우도록 해.”
“단단한 지반을 찾았어. 건물을 세우면 사람들이 황금의 시대의 이베리아를 떠올리게 될 거야.”
“우리가 돌아올 때쯤이면 그란파로도 지금처럼 우중충한 모습이 아니겠지. 등대의 빛이 우릴 비출 거고, 재판소도 이곳에 와서 건물을 세울 거야.”
“티아고,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건물을 세우거든 한편에 이 램프를 걸어둘 자리를 만들어줄래?”
“그럼 나도 건물을 세운 공이 있는 거잖아, 그렇지?”
......
미안, 램프를 걸지 않았어…… 재판소가 그란파로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예배당에 이 램프를 걸 수 없었어.
게다가 램프도 망가졌고. 주둔하던 징벌군이 예배당에서 뛰쳐나온 이후로 다시는 불이 켜지지 않았거든.
난 램프와 두 사람의 노트를 상자에 넣어둘 생각이야. 행운이 따라준다면 아마 오랜 세월 보관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절대 그걸 위해 기도하진 않을 거야.
……계속 읽고 있거라.
난 이만 가볼 테니.
아, 전달자 씨. 일어나셨군요……
그 선교사들은 이미 그란파로를 떠났어요.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참, 소포도 주인에게 전해줬어요. 전달자 씨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소포에 담긴 물건을 봤는데,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랄드.
네?
랄드. 내 이름이야.
미안해, 명색이 전달자가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봐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했어.
……전 조르디예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음, 어쨌든 상처도 많이 아물었으니 이틀 정도만 지나면 평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조르디, 넌 이 마을이 마음에 들어?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그건 왜요?
이 마을은 재판소와 가까워서 계속 놈들과 부딪혀야 할지도 몰라. 여긴 너무 위험한 데다 사람들을 쥐 죽은 듯이 살라고 만들잖아.
너 같은 에기르인에겐 오죽하겠어.
난 하루도 여기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아. 정말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란파로를 떠나 어디로 갈지 몰라서 그러는 거라면 나와 함께 가도 돼.
북쪽 황야가 위험해 보여도, 내가 나름 안전한 길을 알고 있거든.
에기르인에게 관대한 도시 몇 곳도 알고 있고.
너 같은 에기르인에게도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질 거야.
꿈……
랄드 씨, 바깥세상의 사람들은 바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혹시…… 거대한 등대와 '이베리아의 눈'에 관한 전설 얘기도 하나요?
바보 같긴. 조르디, 사람들은 함부로 바다 얘기를 하지 않아. 거대한 등대에 관한 얘기는 너희 그란파로 사람들만이 자식들한테 들려주겠지.
……알겠어요.
랄드 씨, 호의는 감사하지만……
아직은 안 될 것 같아요. 바다와 등대가 보이지 않는다면 전 떠날 수 없는걸요.
하지만 그란파로는 이미 실패했어. 황금의 시대, 이베리아에 가득했던 꿈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라지고 말았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이베리아의 꿈일 뿐만이 아니라……
한 에기르인의 꿈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