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조
제시카는 소설에서 본 와이번에 관해 더 알고 싶어 한다. 지금 와이번의 현실을 알고 있는 것은 리스캄이 유일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리스캄이 단지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 부족의 상황이요?
그래, 실례가 됐다면 미안해.
딱히 특별한 건 없는데, 혹시 리스캄 선배가 궁금해하시는 건가요?
맞아. 사실 최근에…… 조사를 한 적 있어.
제 부족과 관련된 일인가요?
하지만 저흰 누구와도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데……
제가 커서 부족을 떠나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용병이나 상인은 거의 없는 걸요. 하물며 스스로 떠난 다른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요.
내가 궁금한 건, 바닐라가 와이번 연맹 제한구역 밖에서 살았던 때의 상황이야.
관련된 문헌도 드문 데다, 혼란한 상황에서는 각 부족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려운 편이라……
네가 말하는 그런 부족은 세상과 거의 단절된 채 살아온 게 맞지만……
전 아무렇지 않아요.
하지만 리스캄 선배는 그게 왜 궁금한 거죠?
생각나는 거라고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건조함, 굶주림,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술 같은 것뿐이에요.
그런 것도 내게는 도움이 돼.
으음, 나쁜 의도 같은 건 없어.
그저 와이번 연맹과 관련된 모든 걸…… 기록하고 조사하려는 것뿐이야.
와이번으로 돌아가려는 건가요, 리스캄 선배?
그, 그럴 생각은 당분간 없어.
나중이라면……
어쨌든 네가 속한 부족의 식습관, 조리법, 훈련 방식, 양식 기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
……꺅!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다치진 않았나요?
괜찮아요, 쉽게 다치는 편은 아니거든요.
엣? 제시카 선배!
앗…… 바닐라.
선배,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별거 아니야, 그냥……
리스캄 선배한테 예전에 빌렸던 책을 돌려드리러 가던 중이었거든.
책이요?
정말 부럽네요. 제시카 선배랑 리스캄 선배는 책을 많이 읽으셨잖아요.
그렇게 많은 글자를 읽는다는 게 전 아직도 어려운데……
제시카 선배가 읽은 건 어떤 책인가요?
와이번에 관련된 건데……
와이번? 어떤 이야기죠?
혹시 예전부터 내려온 《와이번 경작 및 양식법》 같은 건가요?
김새게 해서 미안하지만……
내가 읽은 건, 와이번의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소설이야.
와이번의…… 로맨스 소설이요?
맞아.
전쟁의 포화가 번지면서……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용병 조직 간 경쟁이 치열한 혼란한 시대, 사랑을 위해 애인이 몸담은 용병부대에 홀몸으로 뛰어들어 대장에게 사랑을 허락해 달라고 애걸하는 여주인공…… 뭐 그런 이야기!
실화를 배경으로 한 책인가요? 그렇다면 그건 어느 용병 부대인 거지……
아마…… 모티브만 따온 거지 않을까?
특이하네요, 와이번 하면 모두들 커다란 체구의 용병을 흔히 떠올리는데.
다들 와이번의 이야기엔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요.
하하…… 스토리가 나름 괜찮아.
기회가 된다면 와이번에 직접 가서 둘러보고 싶거든.
바닐라, 와이번을 여행하려면 뭘 주의하면 될까?
와이번을 여행한다고요?
좀…… 이상할까?
제시카 선배가 '지옥'을 느껴보고 싶다면, 제가 '경호'해드릴 수는 있어요.
그, 그 정도야?!
제가 살았던 곳은 '화장실'이나 '욕실', '주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전부였어요.
으윽, 그런 생활이라면 좀……
아, 맞다. 리스캄 선배는 와이번 연맹 제한구역 출신이니, 어쩌면 그곳이 소설 속 배경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제가 지냈던 곳에 비하면 그곳의 적은 자연 같은 게 아니라, 그보다는 한결 더 혼란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제한구역이 외부보다 더 혼란스럽다니…… 그건 소설에도 없는 묘사인데?
솔직히 말해서 제한구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몰라요.
예전에 리스캄 선배한테서 질문을 받고선 고향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었는데, “그렇게 평화로운 곳은 아니었다”라고 말했었죠.
저는 부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늘 생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나진 못했어요. 그것만 빼면 그래도 자유로운 편이었죠.
하지만 어른들의 말로는, 지금의 와이번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만큼 혼란스럽다네요.
이것보다 더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서…… 그런 일이라면 리스캄 선배한테 여쭤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절 찾아와서 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거든요.
어? 그래?
리스캄 선배라면 저보다 잘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로맨스'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바닐라도 관심 있으면…… 기꺼이 들려줄게.
(소설 때문인가? 엄청 궁금한가 보네.)
(그런데…… 바닐라는 와이번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소설에 나온 것보다 훨씬 끔찍한 것 같은데.)
(리스캄 선배는 고향에 대해 또 어떻게 생각할까……)
실례합니다. 선배, 저 제시카예요.
……
리스캄 선배?
안에 있어, 들어와.
머리 말리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네, 알겠어요.
(와아……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책이 더 늘었네.)
(게다가 보고서도 이렇게 잔뜩.)
(리스캄 선배는 전투력도 대단하지만 지적인 능력은 더 대단한 것 같아. 게다가 언제나 이렇게 열심이라니……)
엇? 이 보고서는……
《와이번 연맹의 용병 조직 지명도 및 평가 고찰》?
그리고 이건, 《와이번 지역의 부족별 현황》…… 찾았다!
뭘 찾았다는 거야?
앗! 죄, 죄송해요…… 제가 함부로……
후우…… 훈련이 방금 끝난 터라 샤워하던 중이었어.
제시카가 여기 온 건, 아마도……
지, 지난번에 선배한테 빌린 소설책을 돌려드리려고요……
탁자 위에 올려 둬, 내가 정리할 테니.
네.
엇, 이건……
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음…… 아니, 내가 잘못 기억했나 싶어서……
제시카가 빌려 갔다가 다시 돌려준 책이라면 문제없겠지.
감사합니다, 선배.
……
저기……
……아직 더 궁금한 게 있나, 제시카?
네, 그러니까……
그렇게 뻣뻣하게 서 있지 말고, 앉아서 말해봐.
여긴 블랙스틸이 아니야,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도 없고.
어쨌든 우린 친구인 셈이잖아.
저기, 선배……
……
역시 내 말이 믿기 어려운가……
아, 아니에요! 선배 말 믿어요 저!
푸흡!
제시카는 여전하네. 예전 그대로야.
저도 바꾸려고 노력 중인걸요……
알아. 예전이랑 비교하면, 지금은 모두에게 보여 줄 만큼 충분히 강해졌는걸.
하지만.
놀라면 자신도 모르게 '머리털이 쭈뼛 서는 건' 여전하네.
너무해요, 리스캄 선배마저 프란카 선배처럼 절 놀리기나 하고……
난 그 녀석처럼 짓궂지는 않아.
네…… 아, 아니죠!
프란카 선배도 나쁜 의도는 없지만, 매번 짓궂은 장난만 치고……
게다가 농담은 엄청 썰렁하지.
……
크흠…… 프란카 이야기는 그만할까? 제시카가 영 곤란해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방금 저 책장에 꽂혀 있던 책 중에서 어떤 책이 보고 싶은 거야?
어떤 책이라기보다는…… 전, 와이번에 대해 알고 싶어요.
와이번?
소설을 읽고 난 뒤에 그 배경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졌어요.
리스캄 선배는 와이번 지역과 와이번 조직에 대해 줄곧 관심이 있었던 거죠?
어? 그걸 어떻게……
죄송해요, 방금 전에 탁자 위에 올려진 보고서 제목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뭐, 특별한 자료 같은 건 아니야.
이건 뭐랄까, 나만의…… 습관 같은 거?!
어쨌든 와이번은 내 고향이니까.
고향을 떠나서야 고향에서 겪었던 그런…… 귀찮았던 상황이 외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거든.
다만 와이번의 지금 현실에 대해서는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이 파악한 뒤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뿐이야.
리스캄 선배가 블랙스틸에서 들려줬던 말이 생각나요.
와이번에는 남들과 다른 보안업체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블랙스틸에서 근무하면서도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참으로 경솔하면서도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
그, 그건 원대한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리스캄 선배는 장비 부서에서 절 찾아내서, 프란카 선배와 선배의 팀에 초대해 주셨잖아요.
선배의 그 제의 덕분에,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게 됐으니까요.
그때의 저는 꿈은커녕, 마음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었는데.
선배한테는 항상 고마울 따름이에요. 프란카 선배가 바닐라를 스카우트하신 것처럼요.
바닐라는 프란카가 신병 무리에서 찾아냈던 거였지.
난 그저 블랙스틸의 인재풀을 필터링하다가 쉽게 찾아낸 것뿐이고.
뛰어난 잠재력을 지녔는데도 장비 테스트 부서에서 그 재능을 썩히는 건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하아……
하아……
돌이켜보면 다 추억이네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너무 유치했던 것 같아.
블랙스틸의 운영 방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만 하면 보안업체를 금방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제멋대로 판단하기도 하고.
지난 몇 년 동안 블랙스틸의 동향을 줄곧 주시하고 있었거든.
그렇다면 선배는 왜 생화학 부서를 선택하신 거죠?
……한계에 부딪혔달까?
지금이야 똑똑히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막막하기만 했어.
내가 알고 있는 '평화'와 블랙스틸의 작전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닫곤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망설이곤 했지.
그때 롱펠로우 박사의 제안으로 생화학 부서로 옮기지 않았다면…… 아마 난 혼란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
제시카…… 로도스 아일랜드에 와서 어땠어?
전,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리스캄 선배, 프란카 선배와 같이 일할 수도 있고,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날마다 달라지고 있는 제 자신도 느낄 수 있고요.
블랙스틸에 있을 때는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없었는데……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친구가 있어요……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죠.
로도스 아일랜드에 온 게 제게는 삶의 전환점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선배는요? 그러고 보니 프란카 선배와 같이 로도스 아일랜드를 가장 먼저 밟은 블랙스틸 대원이시잖아요?
쿨럭, 쿨럭!
뭐, 맞아. 그땐……
그때 갑자기 인사도 없이 떠나셔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리스캄 선배가 우리를 버린 건 아닌지 제멋대로 걱정하기도 하고……
나중에야 리스캄 선배가 프란카 선배처럼 로도스 아일랜드에 파견됐다는 걸 듣게 됐죠.
어쩔 수 없었어. 나의 유일한 파트너였으니까……
게다가 그땐 나도 블랙스틸의 일부 작전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지. 아마 제시카보다도 더 헤맸을걸.
그때의 꿈도…… 한동안 잊고 지냈고.
설마 블랙스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블랙스틸은 훌륭한 조직이라고 생각해.
다만…… 언제부터인가, 내 생각이 변하기 시작한 거겠지.
난 블랙스틸의 이념은 다른 용병 조직과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거든. 이것이야말로 와이번에 흩어져 있는 용병을 한데 모으고, 생존을 개선할 수 있는 최선의 이념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신념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더라. 원칙과 행동 역시 백 프로 일치하는 건 아니었어.
저, 저도……
겉에서 봤을 때 블랙스틸은 각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고 나서야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 때문에 나도 그런 경솔한 발상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게 됐어.
그저 단순히 일자리만 늘려주는 보안업체보다는, 사명과 책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제시카,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와이번의 전시 상황이나 무질서한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나?
예전에 들어 본 적은 있긴 한데 이번에 소설을 읽은 뒤로는……
더 많은 걸 알고 싶어졌어요.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와이번의 현재 상황을 보곤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돕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처음 고향을 떠나 블랙스틸에 오고 나서야 와이번 지역의 심각성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지.
그래도 난 와이번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와이번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힘을 합칠 수 있게, 외부의 도움 없이도 자신을 지킬 힘을 가질 만큼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그래서 리스캄 선배가 취할 때마다 와이번에 평화를 가져다줄 보안업체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린 것도……
그…… 그건 그냥 헛소리야!
와이번의 자료…… 는 최근부터 정리하기 시작한 거야.
자, 자료 수집하는 건 그냥 습관일 뿐이지 별 대단한 의미는 없어!
……한심하다고 비웃진 말아주라.
그럴 리 없잖아요! 리스캄 선배가 하는 일이라면 분명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블랙스틸에서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기까지, 선배를 알게 된 첫날부터 지금까지 선배가 게으름 피우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는걸요.
로도스 아일랜드에 온 뒤로 프란카 선배와 어울리는 시간도 늘긴 했지만……
그건 다 그 녀석 때문이라고.
꽉 막힌 성격을 고쳐야 한다면서 굳이 그런 한심한 방법을……!
하지만 리스캄 선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지내고 계시잖아요.
게다가 훨씬 자주 웃으시게 됐고요.
전 프란카 선배가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
사실 그 녀석, 감염자가 되긴 했지만 좀 더 멋지게 살 방법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거든.
진지할 때는 진지하게, 즐길 때는 화끈하게.
블랙스틸에 계속 있었다면 감염자가 된 대원에게 이런 대우는 주어지지 않았을걸.
파트너로 계속 출근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프란카는 감염자가 되긴 했지만 대신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즉각 깨달았어.
난 아직도…… 많이 부족해.
하지만 리스캄 선배는 이미 목표를 찾은 게 아니었나요?
고향으로 돌아가서 와이번에 평화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방법……
리스캄 선배라면 저보다는 더 현명할 거라고 생각해요. 틀림없어요!
난 아직……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지금의 나는 프란카처럼 명확한 목표도 없고.
스스로 조직을 세우고 젊은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걸.
그래도 내 힘으로 와이번의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해.
분명 그럴 거예요!
바닐라 씨가 와이번에는 특별한 춤과 음식이 잔뜩 있다고 했어요…… 인적이 드문 곳에 사는 부족들도, 초라하지만……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요.
아무래도 와이번에 푹 빠진 것 같은데?
왜냐면…… 와이번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이야기도, 주인공도 특별하거든요.
앞으로 와이번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 저 그리고 와이번에 여행도 가고 싶어요.
물론이지…… 시간만 된다면 내가 제시카를 '경호'해 주고 싶네.
리스캄 선배마저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으으…… 와이번은 정말 그렇게 무서운 곳인가요?
지금이라면 확실히 위험하긴 해.
강도나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지. 용병 간의 싸움에 휘말려 들기라도 하면……
그, 그건……
그래도 와이번은 제시카가 한 번쯤은 둘러볼 만한 곳이 될 수 있어.
전문 보디가드를 고용하지 않아도, 황무지와 도시 곳곳을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거든.
그렇게 하려면……
흐아암~ 하이~ 리스캄, 여기 있어?
왜 제멋대로 문을 여는 거야?
뭘 쓰고 있었어?
내 보고서 함부로 들여다보지 마.
응? 이 소설은?
내 책장도 함부로 건드리지 마.
《와이번의 사랑》…… 아, 이건!
역시 네 것이었구나.
이건 내가 네 탁자에 올려둔 연애소설이잖아?
……역시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었구나.
이 책, 정말 감동적이라니까. 사람들이랑 읽은 소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정도로.
지난번에 빌려줬을 때는 전혀 관심도 없더니 웬일이래?
제시카가 빌려 갔다가 다 읽고 방금 돌려준 거야.
그럼 제시카랑 이야기하면 되겠다. 너처럼 김빠지는 애한테 다신 추천하나 봐라.
흥, 뜬구름 잡는 이야기잖아. 꼭 봐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다고.
이건 요새 인기몰이 중인 여성 히어로의 러브 스토리란 말이야. 게다가 드물게 와이번이 배경이기도 하고.
그래, 컬럼비아 저자가 쓴 와이번에 관한 글이니 현지인이 보기엔 좀 이상하긴 하겠다만.
하지만 네가 책의 비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하든 말든 난 별로 상관없는데?
그래도 네가 좋다고 했던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 같은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고.
쳇.
그래도…… 제시카는 소설을 다 읽고 와이번의 지명과 가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꺼내던데.
게다가 와이번에서 일어난 일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더니 연구 보고서를 잔뜩 빌려 갔지……
그게 바로 소설의 매력이니까.
맞아, 새로운 연구 소재로 써도 괜찮을 것 같아……
너 말이야, 연애 세포는 완전히 죽은 거니?
선호하는 소재가 다른 것뿐이잖아.
SF물이라면……
사랑 같은 건 쥐뿔도 없는 그런 장르 따위.
……무기나 장비를 연구하는 게 뭐 어때서!
그, 그러고 보니…… 왜 날 찾아온 거야?
으음…… 그러니까…… 왜 왔더라?
하아?
장난이야, 장난!
임무가 새로 내려왔어, 돌연변이 원석충과 관련된 거야.
흐음, 그러니까…… 내가 혼자서 처리하거나 너한테 얘기하지 않으면 머리끝까지 화를 내려나?
……
어때? 나랑 같이 갈래?
(스으으읍……)
(후우우우……)
그래.
마침 보고서도 다 썼거든.
오케이, 그럼 바로~?
그래……
꾸물거릴 거 없이 바로 출발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