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게으름 피우려는 사람은 항상 뜻밖의 일에 부딪히는 법.
어느 한가한 아침
로도스 아일랜드 함선
어쩌다 보니 또 크루스한테 말려들었네……
저기…… 팀장, 화내지 마세요. 크루스도 악의는 없었을 거예요.
어? 화난 거 아니야.
분명…… 내가 크루스 일하는 걸 보고 있었는데 어쩜 매번……
크루스는 단지 좀 더 쉬고 싶었을 뿐이에요.
다음에는 비글이 크루스를 감독해 줘. 그래도 비글 말은 듣는 것 같으니……
에? 저도 딱히 한 건 없어요. 그냥 크루스가 일하는 걸 보는 것뿐인데요.
크루스에게 일이 있으면 저도 같이 도와주긴 하는데, 조금 있으면 저한테 또 하지 말라고 그래요.
그게 끝이야? 모처럼 도와줬는데도?
네…… 특별한 건 없어요.
역시 너답다. 비글.
이유는 모르겠는데 크루스가 게으름을 피우려고 하면 난 항상 속아 넘어간다니까……
어떤 날은 배가 아프다고 하고, 또 어떤 날은 도베르만 교관이 찾는다고 하고. 난 또 그걸 매번 믿고 있고.
내가 알아차릴 때쯤이면 이미 도망치고 없다니깐.
휴……
크루스!
!
드디어 찾았다.
도망치지 마!
비글, 넌 저쪽을 막아!
어?
네! 알겠어요.
하아, 하아하아……
크루스, 거기 서! 나랑 당직 서야지!
(조금 쉬어도 괜찮잖아~)
거기 서!
(아, 팽은 어떻게 점점 더 빨라지는 거지?)
(이러다 잡히겠는데.)
씬 아가씨, 더 듣고 싶으신 곡이 있나요?
응……
알겠습니다. 렌즈가 음악 보관함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씬…… 인가?)
(흠……)
(좋아. 해보자.)
얏호~
아, 크루스 아가씨, 안녕하세요.
씬 옆에 앉아도 될까?
음……
씬 아가씨께서 상관없다고 하시네요. 앉으세요!
고마워~
하아…… 후우……
크루스 아가씨, 힘드신가 보죠?
쿠란타한테 쫓기고 있으니까~
크루스!
아, 저도 들었어요. 팽 아가씨네요.
사실 팽이랑 숨바꼭질하고 있었거든.
근데 하다 보니까 레이스가 돼버렸어~
렌즈, 좀 도와줘~
그건……
음……
씬 아가씨께서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크루스 아가씨를 도와드리라고 하시네요.
고마워~
하지만 팽 아가씨한테 안 들키게 할 자신은 없습니다.
잡히면 어쩔 수 없지. 그때는 얌전히 패배를 인정할 거야~
정 그러시다면…… 미력하나마 도와드리겠습니다.
삐빅!
삑…… 삑…… 삑……
딩동!
(이 작은 애들이 계속 옆에 있었어? 눈치 못 챘네.)
삐삐!
삑……!
딩동딩동!
이쪽으로 뛰어온 것 같은데, 그새 어디로 사라진 거지……
어디로 갔지 대체?
진짜…… 갈수록 잘 숨네……
……
……
……
크루스라면……
분명……
숨을 곳은……
……
크루스가 식당 쪽으로 가는 걸 봤어요!
알았어! 바로 갈게!
……
휴……
축하합니다! 크루스 아가씨가 안 잡힌 것 같군요.
전에 임무 중에 씬이 몸을 숨기는 걸 본 적 있거든.
역시 대단해~
렌즈가 사용한 건 최신 기술로 개발된 복합 은신 기술입니다. 위장색, 광선 굴절 등 여러 과학기술을 융합했죠. 주로 씬 아가씨의 요구를 만족하기 위한 것입니다.
……
아, 미안합니다, 씬 아가씨. 음악 재생을 깜빡했네요.
이 곡은 어떠십니까?
하~ 진짜 좋다~
나 여기서 좀 쉬어도 될까?
응……
씬 아가씨께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근데 씬은 뭐하고 있었어?
씬 아가씨는 작품 구상 중입니다.
멍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씬 아가씨는 이때도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럴 때 렌즈는 씬 아가씨께 음악을 틀어주거나 음식을 갖다 줍니다.
씬을 쫓아다니며 일하라고 재촉하는 사람은 없어?
렌즈 기록에는…… 없는 것 같네요.
있다면, 렌즈가 씬 아가씨를 위해 은신 기술을 사용할 거예요. 그럼 아무도 찾을 수 없겠죠.
와~ 좋겠다~
나도 씬처럼 살고 싶어.
씬 아가씨도 비슷한 말을 하신 적 있습니다.
“카우투스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대략 이런 말이었어요.
카우투스가 뭐가 좋아.
되게 피곤하다구~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한테 카우투스인데 왜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냐고 자주 한 소리 들었거든.
난 그냥 머리를 비우고 소파에 온종일 느긋하게 있고 싶었거든.
이러면 얼마나 좋아~
음……
크루스 아가씨는 선택할 권리가 있어서 충분히 행복하다고 씬 아가씨가 말씀하셨어요.
응?
렌즈를 예로 들어볼게요.
렌즈의 포착 속도는 엄청 빠릅니다. 시스템 연산을 통해 아무리 빨리 질주하는 쿠란타라도 렌즈는 성공적으로 포착해 사진을 앨범에 보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씬 아가씨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인물을 촬영해도 씬 아가씨는 스케치처럼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씬 아가씨가 풍경 촬영을 잘하는 것은 풍경만 좋아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씬 아가씨는 뭐든 찍고 싶었지만, 거의 정지한 것만 찍을 수 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아가씨가 다 찍을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릴 수 있는 건 그것들뿐이니까요.
이게 바로 그 이유입니다.
크루스 아가씨는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시지만,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아주 민첩하죠.
그렇…… 긴 하지~
렌즈는 클릭 아가씨와 함께 크루스 아가씨의 작전기록을 편집한 적 있습니다.
평소에는 예정지 근처에 계시지만, 요청을 받으면 아주 빠르게 이동하죠. 일반 카우투스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건 그냥 열심히 안 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깐~
임무가 너무 힘들거든~
그런데 씬 아가씨는 렌즈가 돕지 않으면 이동조차 할 수 없습니다.
렌즈는 '할 수 없다'와 '하기 싫다'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응……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야.”
……라고 씬 아가씨가 말씀하셨죠.
안타깝지만 씬 아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비교적 적고, 모두 간단한 일뿐입니다.
크루스 아가씨는 자신의 한계를 아시니깐 자기 노력이 가장 필요한 곳에 열정을 쏟는 거 아니신가요?
그럴지도~
렌즈의 판단이 정확했나 보군요.
아니면 일하기 싫어서 그럴 수도 있지.
렌즈는 크루스 아가씨를 믿습니다.
치, 치직……
왜 그래?
아, 미안합니다. 여기는 신호가 안 좋네요.
렌즈가 방금 크루스 아가씨를 위해 선…… 선택한 격…… 격려 프로그램이 실행 오류가 떴…… 떴어요.
윽……
혹시 필요필요필요필요요요요……
……
어?
렌즈?
……
(옆에 있는 작은 애들도 안 움직이네.)
(고장…… 났나?)
……!
씬,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무……
천천히 말해봐. 내가 듣고 있어~
으……
어……
내가 맞춰볼게~
음…… 메이어……?
응……
알았어. 메이어를 데려올게. 씬은 여기에서 렌즈를 지키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이따 봐~
으……
응……
미안해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어떻게 하면 레온하르트 씨랑 크루스를 헷갈리는 거야……
아무리 둘 다 카우투스라 해도……
진짜 미안해요. 너무 급해서 잘못 봤어요.
괜찮아, 계속 찾아보자고. 정 못 찾으면 메테오 씨나 기타노 씨한테 부탁해야지.
오늘만큼은, 절대 안 놓친다! 크루스.
팀장, 오늘따라 크루스 씨한테 불만이 많아 보이네요.
평소에는 눈감아주지 않았나요? 오늘은 유독 많이 화가 난 것 같네요.
화내는 게 아니야.
오늘 크루스가 도망갈 때 나한테 말했어.
무슨 말요?
오늘은 내가 모두의 리더가 된 기념일이니까, 나를 위해 선물을 사러 가고 싶다고.
그거 좋은 일이잖아요.
결국 크루스는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어. 네가 숙소로 돌아온 다음에 내가 알아차린 거야.
오늘, 진짜 기념일인가요?
물론이지……
그건…… 크루스 씨가 지나치셨네요.
이따가 제가 혼내줄게요.
그래……
아, 맞다! 기념일 축하해요!
아, 그래…… 고마워.
어?
방금 저거 크루스 아닌가요?
내가 또 잘못 봤나……
크루스 맞아.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따라가보자.
네.
메이어의 숙소 겸 작업실, '랩 루트라'.
여기인 것 같네~
(자동문인데 왜 안 열리지?)
메이어 씨, 거기 있어~?
(앗……)
(문이 망가졌네.)
(여기 버튼을 누르는 건가?)
메이어 씨~
부탁할 게 있는데, 괜찮을까~?
메이어…… 콜록콜록……
어? 무슨 일이야?
어라, 서큘레이터를 돌렸는데도 왜 이렇게 농도가 높지.
나 지금 페인트 중이니까, 먼저 나가있어.
이것부터 마무리할게. 잠깐이면 돼!
어, 콜록, 콜록콜록.
콜록콜록.
후, 후…… 하아……
나 왔어!
말해봐. 무슨 일인데?
혹시 보수 작업이라면 엔지니어링부에 가봐. 날 찾아와도 소용없어.
아, 그러니까……
뭐……? 렌즈가 다운됐다고? 그럼 클로저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씬은 메이어 씨를 찾으라 하던데~?
그래, 알았어.
오늘 급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짜 헛걸음할 뻔했네.
기억해둬. 앞으로 저 4륜 로봇들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먼저 클로저에게 물어봐.
알았어~
그럼 가볼까.
음……
크루스한테 진짜 일이 생긴 것 같은데요!
이만 돌아갈까?
네? 안 따라가요?
일이 있다면 방해할 순 없지.
자, 그럼, 우린 크루스의 뒷수습을 끝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좋아요!
메이어 씨, 여기야~
천천히 좀 가…… 나 아침도 안 먹었단 말이야……
씬~
응……
렌즈?
안녕하세요. 크루스 아가씨.
메이어 아가씨도 오셨네요. 환영합니다!
완전 멀쩡하잖아.
어랏……?
실은……크루스 아가씨가 떠나고 나서, 렌즈는 바로 재부팅을 했습니다.
렌즈의 일부 기능이 쉽게 오류가 일어나기 때문에, 재부팅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럼……
아, 씬 아가씨 말씀이신가요? 씬 아가씨는 “괜찮아요”라고 말하셨대요.
아마도 씬 아가씨의 톤이 너~~무 길어서 뜻을 오해하셨나 봐요.
아, 그렇구나~
응……
그럼 헛걸음 한 거네.
미안합니다. 메이어 아가씨, 렌즈는 아주 건강해요.
음, 어디 보자……
외부 문제는 아니야.
좀 전에 확실히 다운된 거 맞지?
맞습니다.
그럼 기기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거네?
방금 네가 재부팅이 아주 흔한 일이라고 했지?
네.
클로저는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지?
클로저 아가씨께서 이미 렌즈를 위해 업그레이드용 부품을 주문해 주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 아……
그 부품들이 렌즈 거였구나.
어제 클로저랑 같이 반나절이나 설치했거든.
“고정밀도 이동형 촬영 기기가 극단적인 조건에서 사용하는 정밀 부품”이라면서 뭐라 떠들던데.
그게 너였구나.
마침 잘 됐네. 바로 클로저한테 가자.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게.
이제 임무 나갈 때 현장에서 다운될 일은 없을 거야.
고맙습니다. 메이어 아가씨!
그런데 씬 아가씨의 거동이 불편해서, 렌즈는 씬 아가씨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두 분과 함께 클로저 아가씨한테 갈 수 없어요.
내가 씬을 데리고 천천히 갈게~
괜찮겠습니까? 씬 아가씨~
응……
씬 아가씨께서 그러시다면……
음, 그럼 출발하자. 일찍 끝내야 빨리 잘 수 있겠지. 내일도 할 일이 산더미라고.
메이어 아가씨, 렌즈를 밀면서 뛰지 마십시오!
으……!
괜찮아, 메이어 씨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서 그래~
우리는 천천히 가도 돼~
길은 나도 아니까~
응……
예비작전팀 A1 숙소
나 왔어~
응.
왔네요.
팽, 너 주려고 산 디저트야~
기념일 축하해!
와, 머핀이네!
고마워.
테이블에 올려둬. 내일 같이 먹자.
그래~
누가 욕실 쓰나?
저흰 이제 자려고요. 크루스 만 남았어요.
알았어~
거봐요, 크루스는 하루 종일 진짜 노력했잖아요.
팀장 선물도 사왔구요.
아…… 그래.
사실 나도 원망할 생각은 없어.
정말 쉬고 싶다고 말했으면 나도 거절하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크루스는 항상 그런 방식을 쓰니까, 그래서 가끔 기분이 나쁘긴 해.
크루스는 그냥 말을 꺼내기 미안해서 그럴 거예요. 실은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꼭 나를 놀리는 것 같단 말이지.
그건…… 팀장이랑 사이가 너무 좋아서 그래요.
다른 사람한테는 이렇게 안 할걸요.
으이구, 차라리 나한테 평범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빨리 자. 우리 내일 훈련 있잖아.
일어나면 크루스 깨워줘. 아까 너무 피곤해 보이더라. 아마 내일 못 일어날 것 같아.
늦잠 자면, 도베르만 교관님이……
걱정 마요. 크루스는, 제가 끌어서라도 데리고 나갈 테니까요.
그랬으면 좋겠네……
아, 생각 그만.
빨리 자자.
잘 자.
잘 자요,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