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관심사
하루는 업무 도중 말싸움에 휘말린 쉐라. 뻔한 말싸움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문득 누군가를 떠올린다.
등장 오퍼레이터: 프라마닉스
이봐, 혹시 리모델링한 인쇄 공장에 가봤어?
아니, 왜?
어제 따라가서 살짝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더라.
설비도 전부 신상에 공간도 엄청 넓어. 전에 그 허름한 곳과는 비교가 안 돼.
봐, 인쇄소 담당자가 준 샘플이야. 지금 인쇄 품질이 이 정도래.
종이의 재질부터…… 글자의 정밀함까지…… 정말 완벽한데?!
그렇지? 우리가 쓴 글이 그곳에서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그러네? 다행이다. 예전 인쇄소는 설비가 낡아서 쓸 수조차 없었잖아.
그러니까. 담당자도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 우리가 얼마나 요청하든 전부 수주할 수 있대.
하하, 그럼 우리도 뒤처질 수 없지. 이런 품질에 맞는 글을 써내야 하지 않겠어?
나 왔어! 미안, 오늘 아침에 주방에 일손이 모자랐거든.
키야르, 어서 와.
에휴, 너도 참. 시녀장 일로도 바쁠 테니 우리 쪽 일은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면 안 되지. 이건 내가 성녀님한테 직접 요구한 일이잖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속상할 거야.
게다가 성녀님도 이 《쉐라그 관광 길잡이》를 무척 신경 쓰고 있어. 어쨌든 우리 쉐라그의 이미지와 관련된 일이니까.
안 그래도 그 얘기 중이었어. 쉐라그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으니 우리도 뒤처질 수 없다고.
……
오늘도 삼족 의회가 열린대?
네.
빅토리아가 그런 태도를 취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에휴, 엔시오데스가 뿌린 화근이 싹트고 말았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차근차근 진행해 봐야죠.
……
참, 키야르.
한 가지 상의드릴 일이 있어요.
응?
그분과 약속을 하나 하고 싶어요……
키야르, 키야르. 왜 갑자기 멍 때리고 그래?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고 보니 평소 '뒤처진다'는 말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우리 관광부 부장님은 어디 계시지?
그러게. 카하 씨가 지각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여기가 관광부인가요?
누구세요?
어라, 카하 씨의 부인 아니세요?
맞아요, 다행이다. 제가 제대로 찾아왔네요.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성녀님을 뵐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신가요?
당신은 성녀님 곁에 계시는 키야르 시녀장님이시죠?
다행이네요. 이건 제 가족에 관한 일인데요.
그이는 아들의 유학을 계속 반대했지만, 고집불통인 제 아들은 몰래 돈을 모아 학비를 마련했어요.
저는…… 후, 저도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남편을 속이고 아들 편을 들어주기로 했죠.
그런데 그 사실을 눈치챈 카하가 지금 아들을 잡겠다고 기차역으로 가고 있어요.
그이도 고집이 세지만 아들 녀석도 만만치 않거든요.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키야르 시녀장님, 성녀님께 도움을 청해 주실 수 있나요?
……
성녀님은 오늘 산에 안 계세요. 부탁드리기엔 이미 늦은 것 같네요.
이, 이를 어쩌죠!
전부 제 탓이에요. 남편을 말릴 수 있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
후, 제가 같이 가드리죠.
네?
성녀님의 걱정을 더는 것도 제 소임 중 하나니까요.
사소한 일이니 제가 성녀님을 대신해 몇 마디 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네요. 다들 키야르 시녀장님을 성녀님의 심복이라고 생각하니 분명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럼 어서 가시죠. 지금쯤 남편도 기차역에 도착했을 거예요.
네, 알겠어요.
아이고, 기차역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디서 남편을 찾는담……
몇 번이나 얘기했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유학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아무래도 굳이 안 찾아도 될 것 같네요.
세상에, 사람들이 몰려 있네요. 이웃의 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렵지도 않나 봐요.
나도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난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 어디서 그런 선진적인 걸 배워와서는!
아빠는 당연히 모르겠지. 매일 신앙 생각뿐이잖아. 아, 신앙으로 더 많은 권력을 거머쥘 생각뿐이라고 해야 하나?
그 입 다물지 못해?
아빠를 속이고 몰래 기차역에 와서 고작 그 따위 말을 지껄이는 거냐?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부끄러운 건 아빠겠지! 관광부 카하 부장님!
이 녀석이……!
아이고, 키야르 시녀장님. 어떻게 좀 해 주세요!
……
(휴, 엔야가 평소에 이런 시시한 일을 해결해 줘서 망정이지. 돌아가서 조금 전 독실하게 성녀님의 걱정을 덜어주겠다던 내 뺨을 때려주고 싶네.)
(대충 몇 마디 해주자. 나머지는 엔야한테 맡기고.)
키야르 시녀장님?
후, 알겠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한테 원하는 걸 못 받았으니 나라도 아빠 입맛대로 만들겠다는 거잖아. 아니야?
한마디만 더 해 봐라!
지금 할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알기나 해?
뭐라고?
아빠는 모르겠지.
할아버지를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이해한 적이 없다고? 아버지가 날 이해하지 못한 거겠지!
……쳇, 마음대로 말해. 비록 할아버지처럼 평생을 산에 있는 잡초와 돌멩이에 바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난 할아버지가 좋아.
선진적인 것들을 배워와서 할아버지가 더 빨리 쉐라간드 님의 발톱을 더 빠르고 잘 갈 수 있게 도울 거야.
난 아빠처럼 할아버지와 선조들이 남긴 물건을 출세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지 않을 거라고!
너 진짜……
……
실례지만 카하 씨의 아버님은……
아버님이요? 일 년 내내 산속에 틀어박혀 뭔가를 만드느라 집에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는 괴짜세요.
제가 결혼했을 때부터 부자지간의 사이가 안 좋았어요. 시아버님과 잘 지내보고 싶었는데 그럴 만한 기회가 없었죠.
한 번은 남편이 술에 취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시아버지는 자신이 쉐라간드 님의 발톱을 다듬는다고 생각하며 산에 틀어박혀 계신 거라고요.
……그럼 카하 씨는요?
그이는…… 절대 이번 생에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어리석은 아버지라고, 그런 건 신앙이 아니라면서 말이죠.
그렇군요.
키야르 시녀장님, 어디 가세요? 도와주시기로 하셨잖아요?!
더 나은 적임자가 있어요.
(나지막이) ……아마도요.
대다수 쉐라그인은 성장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쉐라그를 둘러싼 산들의 이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특별한 이유로 산을 오르기도 했지만, 그런 곳은 비교적 대개 유명한 산들뿐이었다.
유명하지 않은 산들은 쉐라그 현지인이라 해도 발을 들여놓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키야르가 서 있는 이 산도 유명하지 않은 산이었다. 이 산은 이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찾는 이들도 없는 듯했다.
만약 다른 누군가 지금 이 산길을 걷는다면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카란 무역회사에 의해 명소로 개발된 산 외에 이 산처럼 평탄한 산길이 있는 곳은 없었다.
……아니, 이미 명소가 된 산의 산길도 이곳보다 깨끗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 정말 깨끗한 길이었다.
나무는 가지치기가 되어 있었고, 수풀은 자라날 구역이 정해져 있는 듯했으며, 굴러다니는 돌은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정원과 같았다.
산 중턱에 도착하니 높은 곳에서 깡깡 하는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빨라졌다 느려지길 반복하며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거인이 산 사이에서 무기를 제련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키야르는 그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자 소리의 주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인이 아니었으며, 그가 두들기는 것 역시 무기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망치와 끌을 들고 튀어나온 돌을 두들기는 허리 굽은 노인만 있을 뿐이었다.
돌과 비교하면 노인과 그 손에 들린 망치와 끌은 아주 작아 보였지만,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묵묵히 돌을 두들기고 있었다.
후……
키야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옆에 남겨져 있는 도구를 들고 노인 곁으로 다가가 거대한 돌을 함께 두들기기 시작했다.
……
……
노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키야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생겨난 건 어색함이 아니라 형언하기 어려운 장단이었다.
끌질 한 번, 망치질 한 번. 끌질 한 번, 망치질 한 번.
후……
……
노인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한쪽으로 가서 가방에 있던 물을 꺼내 마셨다.
그리고는 기름종이에 싸인 잡곡전 두 개를 꺼낸 뒤, 그중 하나를 키야르에게 건넸다.
키야르는 사양하지 않고 노인의 곁에 앉아 건네받은 잡곡전을 먹었다.
노인은 잡곡전을 싸고 있던 기름종이를 뜯은 후 덥석덥석 먹기 시작했다.
……
……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말해줘도 모를 게야. 자네는 왜 온 겐가?
재밌어 보여서.
……
우리 가문은 대대로 한 가지 일만 해왔네. 바로 쉐라간드 님의 발톱을 다듬는 일이지.
발톱……? 손톱 말하는 거야?
노인은 고개를 들어 가장 높고 멀리 이어진 산봉우리를 가리킨 후 이어서 그 옆에 있는 낮은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이어진 산이 그분의 등이고, 등 옆쪽으로 튀어나온 낮은 산봉우리가 바로 그분의 '발톱'이라네.
하지만 쉐라간드는 인간 여성 아니었나? 호수 중앙 섬에서 그분의 조각상을 만들고 있잖아.
그건 그분이 백성에게 다가가기 위해 변한 인간의 모습이지. 물론 그 또한 쉐라간드 님은 맞네.
하지만 이 산 역시 쉐라간드 님이지.
내 선조는 그분이 검은 비 사이에서 신력으로 방패를 세워 쉐라그 백성을 지키는 광경을 목도했네.
그분께선 끝내 승리하셨으나 중상을 입는 대가를 치르셨지.
그분의 가호에 감격한 선조는 자발적으로 그분의 발톱을 다듬기 시작했네.
그렇게 가문의 전통이 되었구나.
이런 전통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만주원 사람들이 어르신을 찾아올지도 모르겠네.
아가씨는 내 아들을 대신해서 온 건가?
가서 전해주게. 선조에게 받은 물건은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
난 당신 아들이 시켜서 온 게 아니야.
그저 당신 아들과 손자가 당신의 뒤를 이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
……난 평생을 산에서 이렇게 지냈네.
처음에는 내가 아버지를 따랐던 것처럼 카하 녀석도 나와 함께하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런 모습이 되어있더군.
말주변이 없는 데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난 그냥 산으로 숨고 말았지.
……
후우.
기억이 맞다면 카하는 곧 마흔일 거야.
그 사람이 어렸을 때, 마침 실버애쉬 가문의 전임 가주 올라퍼가 빅토리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지……
음, 당신도 기억하겠지만 철도 같은 것도 그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어.
기억나는군.
하지만 이건 모르겠지. 올라퍼가 기술뿐만 아니라 사상도 가져왔다는 걸 말이야.
당시 쉐라그 전체가 그 개방적인 사상을 두고 논쟁했어. 그중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젊은 세대였지.
아마 카하도 꽤 영향을 받았을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의 가문은 대대로 쉐라간드의 발톱을 다듬어왔지.
그러니 당시엔 정말 곤란했을 거야.
그때 카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변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
……
내 탓이네.
아니, 당신 탓이 아니야.
당신은 아버지에게 끌과 망치를 받았고, 그분 또한 당신의 할아버지께 그걸 받았겠지. 그렇게 처음 그 선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될 거고……
다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겠어?
하지만……
당신 손자는 새로운 것을 배워와서 당신이 쉐르간드 님의 발톱을 더 잘 갈 수 있게 돕겠다고 했어.
……나하 녀석은 종종 날 찾아온다네.
하지만 그 아이가 내게 준 통신 단말기 같은 물건들은 아무리 써도 적응이 안 되더군.
정말 그런 신문물이 싫은 거야?
……난 철도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건설되고, 고층 건물이 점점 산보다 높아지는 걸 봐왔네.
쉐라간드 님이 정말 원치 않았다면, 몸을 뒤집어서라도 그것들을 털어내셨겠지.
난…… 쉐라간드 님을 믿네.
그럼 계속해서 믿어 줘.
한 가지만큼은 장담할게.
언젠가 쉐라간드가 산에서 몸을 일으키는 날이 온다면, 당신이 다듬은 그 손톱이 그분의 몸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될 거야.
……
……
키야르의 뒷모습을 보며 노인은 문득 낯익음을 느꼈다.
한참 생각한 끝에 그는 그 뒷모습이 선조로부터 계승 받은 그 형체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형체는 재난이 강림한 땅, 절망과 비명, 눈이 녹은 나뭇가지, 따스한 태양을 지나 쉐라그에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노인의 탁한 눈동자에 한 줄기 빛이 감돌았다.
쉐라간드, 쉐라간드시여.
노인이 품에서 손자에게 받은 통신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비록 익숙하진 않았지만, 그는 손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열심히 사용법을 익혔다.
단말기에는 집과 손자의 번호 두 개만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는 손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하. 그래, 나다.
카하가 옆에 있느냐?
녀석이 원하는 걸 주겠다고 전해주거라.
대신 널 보내주는 조건으로 말이지.
그래, 괜찮다.
그리고 단말기를 카하한테 건네주거라.
할 말이 있으니……
……
어찌 된 일인지 키야르가 몇 걸음 걷다가 이내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자 어느새 기이한 돌들이 그녀 곁을 떠다니고 있었다.
하여간, 너도 참.
옛날이었다면, 이런 말은 못 했을 텐데.
카하의 신앙은 독실하지만 맹목적이고, 나하의 패기는 강렬하지만 무모해.
넌 다하 같은 사람을 좋아했었지……
정말 많은 밤을 산 사이에 누워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잖아.
하여간.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다하를 나무랐으니 이제 누가 널 좋아해 주겠어?
키야르가 돌을 받들었다. 그녀는 돌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 같기도 했고, 거울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돌이 가볍게 움직이더니 목소리를 냈다.
그건 그녀의 목소리였다.
……
하여간, 너도 참.
네가 그 소녀를 만나고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거야?
친구와 거처, 원하는 물건이 생기니 자연스레 입장도 생겼겠지.
그건 네가 제일 싫어하던 거 아니었어?
넌 언제나 쉐라그인이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길 바랐잖아?
그들을 지켜보려고만 했던 거 아니었어?
하여간, 실버애쉬 가문이 널 망쳐놨다니까!
희망과 미래를 운운하면서 단단히 널 속였지!
고원의 찬바람이 산을 휘감자 그녀의 귓가에 쉐라간드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심술과 조롱, 자조와 무력함이 담긴 웃음이었다.
쉐라간드는 누구를 보고 웃는 것일까? 틀림없이 그 자신일 것이었다.
친구라면 너도 전에 사귀어본 적 있잖아.
관계라면 너도 완벽한 제삼자였던 적이 없지.
넌 도와주고 싶으면서도 정작 내게 나서지 말라고 했어.
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자신만의 판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지.
하여간, 네가 왜 그 아이를 선택했는지 정말 모르는 거야?
그 아이가 수천수백 년 동안 유일무이할 정도로 특별해서일까?
아니면 네가 원하는 일을 대신 해줬기 때문일까?
……
키야르, 어디 계세요?
여기가…… 아마 말해도 모를 거야.
알겠어요. 저 대신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셨다면서요?
아, 성녀님은 소식이 참 빠르다니까.
알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이 제게 알려주니까요.
휴……
성녀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서 해.
전에 얘기했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문제? 오늘 저녁 식사가 뭐냐고?
아휴,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잖아요!
약속 말이야?
네.
빅토리아에서 곧 사람을 보내올 거예요.
그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분이 나서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직 그분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거지?
네.
이런 위기조차 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은심호에 몸을 던지는 게 나을 거예요.
하여간, 너도 참. 가끔 보면 네 오빠보다 고집이 더 센 것 같다니까.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오늘 밤에 만주원으로 돌아가세요?
바로 돌아갈 거야. 성녀님을 위한 식사 준비도 해야 하는데 게으름 피울 시간이 어딨겠어.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게 느껴져?
그럼요. 저희가 안 지도 한참 됐잖아요.
별일 아냐. 그냥 날씨가 좋아서 좀 산책한 것뿐이지.
저녁에 봐.
네, 저녁에 봬요.
……
풉. 하여간, 나도 참.
맑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산봉우리를 스쳤다. 이번에는 그녀의 웃음소리였다.
그녀는 곧바로 성산 쪽으로 향했다.
할 일이 남았으니 이젠 돌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