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앞으로
가족 중 가장 '못난' 아이로 꼽히는 제시카는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블랙스틸을 떠날 준비를 한다. 바로 그때, 리스캄이 그녀에게 자신의 어시스턴트가 되어달라고 청한다.
응, 난 단번에 알겠더라고, 너희 오빠도 그랬어.
그래도 괜찮아. 제일 어리잖아. 지금은 당연히 우리처럼 잘하지는 못할 거야.
천천히 하면 돼.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하면 되고, 하루로 안 되면 이틀 하면 되겠지.
마지막에 알 수만 있으면 되지, 빠르든 늦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보고드립니다……! 마지막 식각 탄환 상자의 입고를 마쳤습니다. 설비와 물자는 모두 제자리에 돌려놨습니다.
알았다.
제시카, 정말 떠날 생각이야?
네? 네, 맞아요. 죄송합니다……
후우, 신입이 훈련 시험을 통과하는 건 쉽지 않은데 말이지. 블랙스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 한창 패기가 넘치고 열심히 싸워야 할 때 아닌가?
게다가 넌 그 아일랜드가 가르쳐낸 신입이잖아.
하지만 전 시험을 간신히 통과했을뿐더러…… 아일랜드 교관님도 제게는…… 으……
아직 신입이잖아. 모든 일을 단번에 해내길 바라면 안 되지.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블랙스틸을 떠나려고 하는 거야? 전에 임무에서 다친 것 때문에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아뇨. 그때의 상처는 별거 아니었어요…… 전……
……죄송해요.
……휴, 알았어. 누구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곤란해하니 더 이상 묻지 않을게.
방금 테스트한 방폭 방패는 어때?
네? 음…… 레이시언 공업의 최신 연구 개발 재료를 사용했네요. 어떤 투척물이든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좀 무거운 감이…… 앗,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근력운동을 두 세트씩 더 했어야 했는데……
필라인에게는 확실히 좀 무겁게 설계되긴 했지. 너의 판단력은 여전히 아주 정확하네.
수고했어, 제시카. 네가 이것을 들고 모든 테스트를 마친 덕분에 이렇게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어.
아, 아니에요. 제가 해야 할 일…… 마지막 일이니까요.
그러게. 이렇게 훌륭한 테스터인데, 정말 아쉽게 됐어.
전……
전 아직 부족해요. 죄송합니다……
……이만 인사부로 가볼게요.
휴우, 그래. 나중에 또 보자, 제시카.
저기요, 혹시 제시카 여기 있나요?
제시카? 방금 나갔는데. 아마 인사부로 갔을 거야. 제시카한테 볼일이 있는 거라면 대신 말을 전해줄까?
괜찮아요, 제가 직접 찾아갈게요.
(여기서 기다리면 되겠지……)
……감사합니다. 블랙스틸과 기술적으로 협력하는 건 예로부터 레이시언 공업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의 일부입니다. 그걸 추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립' 씨.
하하, 그것도 다 오래전 이야기인걸요. 게다가 저도 레이시언 공업 외에 블랙스틸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한 기술력을 가진 무기 공급업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건 그렇죠. 지금도 식각 탄환의 설계와 개량은 저희 연구 개발의 중요 과제 중 하나입니다.
다음 분기의 주문을 받을 때도 이렇게 편하게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분의 따님을 만나러 가는군요…… 브린리 씨는 잘 지내고 있나요? 저 대신 안부 인사를 전해주세요.
하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린리 씨한테 전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제시카' 아가씨. 전……
레, 레이먼드 씨, 안녕하세요,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의 차리실 필요 없어요……
하하, 역시 브린리의 딸이십니다. 역시나 머리가 좋고 소탈한 분이시네요.
전……
어때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네…… 블랙스틸의 훈련 방식은 엄격하지만, 덕분에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정식 용병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지만요……
보아하니 여기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버님을 만나지 못한지도 이제 2년 정도 되었겠네요. 브린리 씨는 언제나 아가씨가 집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퇴사 절차는 다 밟았나요? 짐은 어디 있죠? 사람을 불러 수송기에 실으라 하죠.
레이먼드 씨, 자, 잠깐만요……
무슨 일이죠? 말해보세요.
지난번에 오셨을 때 그러셨잖아요. 아버지는 제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블랙스틸 월드와이드에서 제 길을 찾게 되면 이곳에 남아도 된다고요.
그럼 지금은 어떤 생각이신지……
사실 브린리 씨도 처음에는 아가씨의 야심을 인정하고 블랙스틸에 가입해 시야를 넓히고 자신의 사업을 개척하는 데 동의를 하셨습니다.
지난번에는 아가씨가 블랙스틸에서 재능을 썩히고 있는 걸 알게 되면서 안타까워했지만, 그래도 블랙스틸에 계속 머물지 결정하도록 삼 개월이라는 시간을 주셨죠.
……알겠습니다. 역시나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에는 한참 멀었군요.
죄송해요. 정말 노력했는데, 그래도……
죄송합니다, 제시카 아가씨. 이미 여러 번 한 얘기지만 그래도 들어주셨으면 해요. 브린리 씨께서 아가씨가 집으로 돌아와야 된다고 한 건 여러모로 생각해 얻은 결론일 겁니다.
지금 장비 및 응용기술부에서 일하고 있는 건, 블랙스틸에서 볼 때는 아가씨의 출신이 가져다준 장점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가씨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재능을 썩히는 거나 다름없어요.
재능이라 할 것도 없는 걸요……
아가씨가 블랙스틸에서 접하게 되는 최신 설비도 결국은 레이시언 공업 내부에서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이루어진 성과일 뿐입니다.
그 분야에 관심이 있고 성과를 거두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레이시언 공업으로 돌아가 실력을 펼치는 게 낫지 않나요?
무엇보다 아가씨 가문의 기업이기도 하고요.
브린리 씨 곁에서라면 분명 충분한 자원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평범한 장비 테스터부터 시작해 분투할 필요도 없고, 지금처럼 오랫동안 묻히지도 않을 겁니다.
지금 아가씨의 상황을 보세요. 브린리 집안의 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겠습니다.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능해서……
이런, 제시카 아가씨, 그렇게 함부로 자신을 낮추지 마세요.
그러고 보니 최근 외근 임무 중에 다쳤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네. 제가 훈련이 부족해 실전 중에 너무 긴장하다 보니…… 죄송해요. 더 열심히 훈련을 받겠습니다.
그랬군요. 보세요. 용병이라는 직업은 결국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엄격한 훈련을 거쳐도 다칠 수 있다는 뜻이겠죠.
저도 어린 딸을 두고 있다 보니, 브린리 씨가 딸을 유난히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물론 브린리 씨는 자식들이 밖으로 나가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걸 응원하고 계십니다. 만약 아가씨의 언니처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면, 브린리 씨 역시 무척 기뻐하겠죠.
하지만 아가씨가 막내다 보니, 브린리 씨는 그래도 아가씨가 경험해 본 자들의 경험을 빌려,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고 틀린 길은 피했으면 하는 생각일 겁니다. 그래서 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거고요.
아가씨의 오빠나 언니에 비하면 교제에 그리 능한 것도 아니고, 기계 설계도 깊이 연구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아가씨가 신체 능력과 전투 실력으로 일인자가 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고요.
맞는 말씀이에요……
죄송해요, 레이먼드 씨…… 전 항상 레이먼드 씨와 아버지를 실망시키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돌아가면 레이시언 공업에서 아가씨를 위한 장비를 맞춤 제작해 줄 거예요.
더 좋은 방호 장비를 갖췄었다면 그런 소규모 작전에서 다칠 일은 없었겠죠.
하지만 좋은 장비를 갖춘다고 해서…… 제가 과연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설계사가 심혈을 기울인 제품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걸로 충분해요. 굳이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배런 기지는 꽤나 외딴곳에 있네요. 여기서 일류 셰프가 만든 디저트를 먹을 수는 있나요?
몇 년 전에 아가씨가 사무실에 왔을 때 브린리 씨가 특별히 저에게 디저트를 구입해두라고 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 훈련 기간에는 식단 관리가 많이 엄격해서……
간식을 조금 사 먹기는 하지만…… 흑, 제 자신한테 더 엄격한 사람이었으면 좋을 텐데.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시카 아가씨.
훈련 기간 동안 아가씨를 맡은 아일랜드 교관한테 물었더니, 아가씨한테 특별한 인상이 없었는지 필사적으로 훈련에 임한다고만 말하더라고요.
아일랜드 같은 유명한 엘리트 용병조차도 아가씨는 지적할 만한 점이 없다고 하잖아요. 특별히 뛰어난 건 아니어도 아가씨가 훈련에 필사적으로 임했기에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심사를 넘을 수 있었죠.
그러니 어찌 자책할 필요가 있겠나요?
아일랜드 교관님……
죄송해요…… 교관님만 생각하면 조금 긴장돼서……
아아, 브린리 씨가 걱정하고 있는 게 바로 그거입니다. 이곳에서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 견뎌낸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네요. 단련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기품을 갈고닦아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분명……
……죄, 죄송해요.
퇴사 절차를 아직 끝내지 못해서…… 그리고 떠나기 전에 저의…… 친구들이랑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시간을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아아, 그럼 일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아가씨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뭐, 물론 아가씨의 일정이 우선입니다.
네, 네. 죄송해요……
지금 바로 인사부로 가볼게요……
……후우…… 하아.
……황무지의 바람.
……
아무도 없는 실외 훈련장 한편에서 제시카는 눈을 감고 오리지늄 화약 냄새가 풍기는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탈락률이 80% 가까이 되는 신병 심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그녀는 이곳에서 수많은 휴식시간을 보냈다.
(내가 이 끝없는 땅을 제대로 경험해 봤다고 할 수 있을까? )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 )
(소규모 충돌 작전에 몇 번 투입됐을 뿐, 그 외의 시간은 모두 기지에서 훈련하거나 테스트만 했으니. )
2년 전, 자신이 내디딜 다음 걸음을 위해 그녀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대화를 청했다.
집에서는 이미 그녀가 진학할 학교와 전공을 정해줬을 뿐만 아니라 졸업 후의 취직자리까지 마련해 줬지만, 그녀는 블랙스틸 월드와이드에 이력서를 넣고 싶어 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한층 더 갈고닦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늘 이 땅은 끝이 없고, 사람들의 삶에도 끝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짐은 이미 다 챙겼어.)
(작별 인사를 나눌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죄송해요…… 결국 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어요……
앗……!
……왜 그래?
아, 아……
정말 죄송해요! 저, 저는 그저……
잠깐, 도망가지 말고.
난 B.P.R.S. 부서에서 온 코드네임 '리스캄'이야…… 너는 제시카, 맞지?
네! 안, 안녕하세요…… 리스캄 선배님……!
널 찾고 있었어.
네 부서의 동료는 네가 훈련장에 갔다고 하던데, 훈련장 쪽의 직원은 널 못 봤다고 하더라고. 실외 테스트장을 지나가면서 살펴보니 마침 네가 보이더라고. 정말 다행이야.
죄송해요……
너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거든.
내 직무 변동 때문에 어시스턴트가 필요해졌어. 블랙스틸의 인재 데이터뱅크에서 선별하고 보니, 네가 이 직책을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네, 네…… 네?
그러니까…… 선배님의 어시스턴트를 맡아달라고요? 제가요?
응. 종합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하거든.
하지만 전 그런……
데이터 뱅크에 있는 시험 데이터 외에 너의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난 잘 몰라. 하지만 요제프랑 얘기를 해봤더니, 네가 이 자리에 어울릴 거라 그러더라고.
요제프…… 아일랜드 교관님요? 분명 큰 인상이 없다고 하셨는데……
응? 그럴 리가. 엊그제 마침 시간이 나서 같이 밥 먹었는데 네가 꽤나 좋은 어시스턴트가 될 거라고 그러던데. 나와 업무 스타일도 잘 맞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야.
너도 자신이 블랙스틸의 선발 테스트를 절대 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훈련장을 뛰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더라고.
……괜찮아? 괴로워 보이길래.
죄, 죄송해요……!
사실 블랙스틸을 떠나려던 참이었거든요……
……분하지 않아?
네?
이 훈련장에 미련이 많은 것 같아서. 떠나려는 이유가 뭐야?
……전 잘 못하니까요.
총은 이미 반납했어?
아, 아직이요……
그럼 총을 꺼내서 보여줘 봐. 실전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여, 여기서요? 하지만 이곳에는 방어할 만한 것이……
걱정 마. 나에게는 방패가 있어. 게다가 네가 실전 훈련에서 요제프를 공격했을 때 막아 내지 못한 공격이 한 번이라도 있었어?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나쁘지 않네. 격발 성공에 사격 정확도도 합격이야.
하지만 탄환의 위력이…… 많이 부족하네.
으……
긴장하지 말고.
시선도 피하지 마. 네 상대를 주시해……
반응 속도가 좋네. 훈련을 통해 조건 반사 능력을 제대로 키웠는걸.
하지만 실전은 언제나 훈련보다 훨씬 더 복잡해.
으앗!
죄, 죄송해요…… 피하지 못해서……
이 정도면 합격이야. 넌 내 오리지늄 아츠를 모르잖아.
자, 일어나.
정말…… 합격인가요?
그래. 네가 말한 것처럼 '잘 못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넌 단지 경험과 연습이 부족할 뿐이야. 하지만 신입 때는 다 그래.
경험이 부족하다……
……리스캄 선배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응? 내가 너를 훈련시킨다고 해서 내가 좋은 교관인 건 아니야…… 됐어, 그래서 뭐가 궁금한 거야?
선배님은…… 자신이 용병에 적합하다는 걸 어떻게 깨달았나요?
적합? 내가 적합한지 아닌지는 몰라, 난 그냥 용병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적합하지 않으면요? 먼 길을 돌아가는 게 두렵지 않나요?
……아니면, 사람의 삶이란 단순히 계획에 따라 가장 편한 길을 선택해 걸어가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절 인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전……
그날 아버지의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을 때처럼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블랙스틸 용병 '제시카' 자신만의 생각이다.
……선배님이 주신 이 기회를 잡고 싶어요.
그래, 좋아.
하지만 그전에 분명히 말해둘 게 있어. 내가 속한 B.P.R.S.는 아주 특별한 부서야…… 중심부서는 아니지만 업무는 항상 아주 위험하지.
감염 생물과 싸워야 하고 급성 오리지늄 오염 사건도 처리해야 해. 그 리스크는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아, 알고 있습니다……
보통은 임무에서 입은 상처라면 대부분 완전히 회복될 수 있겠지만, B.P.R.S.의 임무에서는 심한 부상이라면 광석병에 감염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하지.
너의 모든 파일 기록을 살펴봐서 네가 지난 임무에서 경상을 입었다는 걸 알고 있어.
물론, B.P.R.S.에는 최고의 방호 조치가 갖춰져 있을 거야. 자넷 주임도 계속해서 부서의 긴급 사건에 대처하고, 감염 위험을 낮추는 방안을 개선하기 위해 힘쓰고 있어.
게다가 네가 내 조수가 된다면 나도 한층 더 엄격히 훈련시킬 생각이야. 내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위험성이 높은 임무에는 보내지 않을 거야.
상황은 대충 이렇고 부서간의 이동 신청을 하기 전에 널 찾아온 건 바로 네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야.
감사해요…… 하지만 전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전 계속해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더 엄격한 훈련을 받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품은 의문에 대한 답도 찾고 싶고요.
저, 저에 관한 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의문이에요…… 임무 중에 본 것들이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당혹스러워서요.
그래? 미안, 나한테서는 그 답을 얻지 못할 것 같네.
하지만 내 어시스턴트도 이런 걸 생각할 줄 안다니 기쁜걸.
선배님의 어시스턴트……
응.
인사부로 가서 퇴직 관련 사항을 처리하려던 거 아니었어? 같이 가자, 그럼 퇴직 신청 철회가 더 쉬울 거야.
앗, 조, 좋아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레이먼드 씨 쪽에는 아버지한테 뭐라고 전하면 된다고 말해야 할까요……
제시카 아가씨, 무슨 일인가요?
어…… 왜 여기에 계세요?
블랙스틸 내부에서 돌아다니기 불편하다 보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방금 퇴직 신청을 철회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
리스캄 선배님……
……아니, 괜찮습니다. 죄송해요, 레이먼드 씨, 집에는 돌아가지 않으려고요.
아버지에게는…… 이렇게 전해주세요. '제시카'는 어떻게든 블랙스틸 월드와이드에 남아 보안 회사의 용병으로 사람들을 보호하고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요.
전 아직 제 '가능성'을 찾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찾아 나가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전해드리도록 하죠.
그 아이가 계속해서 블랙스틸 월드와이드의 '제시카'로 남고 싶다 했다고?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 브린리 집안의 아이라고 할 수 있지.
이것저것 찬물 끼얹는 말을 하느라 자네도 수고했네. 하지만 그 아이의 의지가 충분히 확고하다는 걸 알아야 했거든. 그래야 어디에 던져지든 휩쓸리지 않을 테니까.
그래, 물론 나도 그 아이가 고생하는 건 싫네. 이 땅에는 수많은 아픔이 있어. 그 아이 역시 답을 찾기 어려운 의문을 많이 품게 되겠지.
하지만 그 아이가 도전자가 되고 싶다 하니 그렇게 하라 해야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 집안에서 가장 늦게 깨달은 아이가 될지라도…… 어쩌면 영원히 깨닫지 못한다 해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