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임무
공증소에 갓 입사한 리켈레는 비밀 임무를 받는다. 바로 라테라노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는' 문서를 지정된 장소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 것인데……
선배, 절차는 모두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신입.
제가 할 일인걸요. 그 분 상태는 좀 어떠신가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병실로 옮겨진 이상,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럼……
……저희 현재 임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집행자라면 공민을 대신하여 유언을 집행해야 하는 것이겠죠?
그럼. 그게 우리의 주 업무지.
유언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리켈레, 차렷!
네…… 네!
음, 그렇지, 근무 중엔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이게 첫 임무인 거 알아. 원래는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 안 되는데……
리켈레, 이제 네게 비밀 임무 한 가지를 맡길 거야.
……비밀 임무요?
그래! 자 이거 받아.
베테랑 집행자는 봉인된 서류봉투를 꺼내더니, 메모장 한 장을 뜯어 주소를 적었다.
그런 다음 서류 봉투와 메모를 신입에게 엄숙한 표정으로 건네주었다.
시간이 없어, 당장 출발해야 해. 반드시 오늘 안에 이 문서를 이 주소로 전달하도록.
시간이 되면 여기서 누군가 나타날 거야. 그럼 넌 그 사람에게 이걸 건네주기만 하면 돼.
선배, 이 문서는……
말해 줄 수 없어. 좋은 집행자는 비밀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법이지.
한 가지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이번 임무는 정말 중요하고, 이 서류봉투 안의 내용은…… 라테라노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거야……!
……라테라노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진짠가……)
그래.
잠시만요, 선배!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왜 저같은 신입에게 맡기시는 거죠?
이건 선배가 직접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난 다른 급한 임무가 있어서 너에게 맡기는 거야.
공증소에 선발되었다는 건 네가 이미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거니까, 넌 이제 그 실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이것도 공증소의 정규직 전환 심사 같은 건가요?
심사?
음……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이번 임무만 제대로 완수하면 넌 그야말로 훌륭한 집행자가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선배 말대로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그럼, 조심히 잘 다녀와!
하하, 최선을 다 할게요……
행운을 빌어, 신입.
(이 주소는…… 도시 외곽 같은데.)
(이론적으로는 이 큰길을 건너, 주요 도로를 따라가는 게 가장 빠르겠는데.)
(하지만 그 전에……)
그 얘기 들었어? 스테보누스 구역에 새로운 매장이 오픈했는데 그 집 도넛 맛이 끝내준대.
안 그래도 아침 댓바람부터 줄 서서 사왔어, 자 먹어봐!
아, 이거 먹어 봤어. 진짜 맛있긴 한데……
……
그런데? 뜸들이지 말고, 뭔데!
난 새로 오픈한 그 집보다 다리안 아저씨가 만들어준 도넛이 훨씬 맛있는 것 같아!
그건 한번 맛보면 잊을 수가 없는 맛이라고……
그렇게 맛있다고? 못 믿겠는데.
이 도넛 한 번 먹어봐.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지 않아?
어, 나 말이야?
미안, 내가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 줘.
아, 잠깐만 잠깐만!
그렇게 오래 안 걸릴 테니……
……
인턴 집행자는 무의식 중에 손을 움직였지만 정신을 차린듯 재빨리 다시 내려 놓았다.
리켈레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정말 미안, 내가 진짜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조금만 비켜줘.
잠깐……!
(쳇, 달리기가 왜 저렇게 빠른 거야!)
(놓치면 안 돼, 잡아야 돼!)
허억…… 허억……
난 안 되겠어…… 녀, 녀석은 어디로 간 거지?
하아…… 후우…… 내가 어떻게 알아, 정말 빠른 놈이군……
그러니까 그런 얕은 술수로는 통하지 않을 거라니까! 뭐야 이게…… 하아…… 잡담하는 척 접근하자더니!
방금 붙들어서 강제로 그걸 뺏었으면 되는 걸 가지고!
지금 원망할 때가 아니야! 일단…… 하아…… 다른 놈들에게 이미 알렸어.
우선 우린 계속 쫓자고!
……역시 날 노린 건가……
음……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노리는 거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표적이 될 만한 건 이 기밀 문서뿐이야.
마음의 준비는 진작에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쫓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상하네, 내 정체와 위치는 어떻게 안 거지?
공범이 있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 또 누구지?)
안녕하십니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방금 강도를 당했다는 공민의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혹시 수상한 사람을 못 보셨습니까?
난 그저 여길 지나가던 중이라 잘 모르겠는데.
(이 사람 하필 내가 지나가는 길목에 서서,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하지만 유일한 현장 목격자셔서, 죄송하지만 협조를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미안, 시간이 없어서.
잠시만요!
잠시만요.
곤란한 상황이신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까요?
(또 한 놈 추가인가.)
윽…… 곤란이라고 한다면 지금 상황이 곤란하긴 하네.
나 지금 엄청 바쁘거든. 두 사람, 별 일 없으면 먼저 실례할게.
거기 서!
이대로 보내드릴 순 없습니다.
……아하하, 두 사람, 대체 어쩔 셈이야……?
시치미 떼지 마시고요, 저희가 뭘 원하는지 알고 계시잖습니까.
들고 있는 걸 넘기시죠!
(아이고, 정말…… 이거 큰일인데.)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얘네 표정엔 적의가 별로 없는데. 이번 임무는 대체……)
아, 어쨌든, 새로 입사한 직장에서의 첫 임무니까……
이렇게 망칠 수야 없지.
힘을 쓰려는 건가?
그럼 공증소 집행자의 사격 솜씨를 한 번 볼까?
……
흠 그게, 도시 안에선 가능하면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두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맨손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리켈레, 그간 호위대에서의 너의 활약을 모두 알고 있다.
병사로서 큰 성과를 거두었더군.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사의 역할만으로 만족하나?
아,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까지 자네는 자네가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해 주었네. 그렇지만 우리 라테라노는 병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네.
우리는 일개 병사가 필요해서 자네를 시라쿠사의 변방 마을에서 라테라노로 데려온 것이 아니야.
……
자네가 보기에 라테라노는 어떤가?
……라테라노는…… 아주 좋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좋습니다. 생활도 풍족하고, 또…… 음, 모종의 질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안에서 질서있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계율을 말하는 것인가?
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종종 거리의 장식품 같은 것을 폭파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모두 그것을 구경하는 걸 즐기는 이상, 이것 역시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누군가 죽고, 다치고, 거리 전체가 혼란에 휩싸여 살아갈 수 없는, 그런 나쁜 일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 이곳이 좋습니다.
(……여기서라면 괜찮겠지.)
(사람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어도 문제 없겠지? 적어도 살아는 있을 테니까, 흠, 괜찮을 거야……)
(비밀 임무에, 강도라니…… 하하, 이게 진정한 라테라노의 삶인 건가?)
휴……
(입사 후 첫 임무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생길 줄이야……)
(정 아니면 교황 기사님께 호위대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지 뭐.)
(우선 빨리 물건을 건네주고, 그 다음엔…… 응?)
……또 누가 올 줄이야.
거, 거기 서!
여긴 지나갈 수 없어…… 윽, 아니, 그게, 아무튼 거기 서!
물건이나 내놔!
(……응?)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 같진 않은데. 강도라고 하기엔 실력이 형편 없고.)
(설마 위장인가? 뭔가 이상해……)
미안하지만, 무슨 말인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서류 봉투를 내놓으란 말이야!
이 서류 봉투를 원하는 거라면, 미안하지만 줄 수 없어.
내 일이거든, 이해해 줘.
……나도 이유가 있어……
순순히 넘기지 않는다면 나도,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참! 말로 해서 안 된다고 손을 쓰면 쓰나……!
크윽……! 이거 놔!
미안하지만, 안 된다고 했어.
방금 공격은 동작도 어설픈 데다, 하반신도 불안정하고, 힘도 부족했어.
듣기론…… 라테라노의 기본 교육 과정에 격투 과목도 있다 하던데. 졸업은 어떻게 한 거야?
합격만 하면 됐다고! 애초에 위험한 직업을 가질 생각도 없었고……!
얼른 놔!
위험한 직업은 가질 생각이 없었다고?
집행인에게 강도짓을 하려는 사람의 말치곤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데……
이건 어때? 너랑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내 물건을 빼앗으려고 한 게 누군지 말해주면 놔 줄게.
그건…… 안 돼!
난 말할 수 없어. 넌 네가 들고 있는 물건이 뭔지도 모르지……
“라테라노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는 물건”이라던데.
그럼, 무기 설계도 같은 거 아닐까?
그말도 맞긴 한데……
포기해, 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니까!
……
자네 말이 맞아, 그것이 라테라노와 다른 나라와의 차이지.
자네는 라테라노가 아주 특별하다고 했는데, 그럼 자네 자신은 어떤가?
저요?
저는 산크타입니다. 또…… 라테라노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 이유만으론 충분하지 않은 것 같네만.
……흠, 공증소로 가게, 리켈레. 내가 추천서를 써 주지.
방관자로서뿐 아니라 진정한 라테라노인의 삶이 무엇인지 직접 겪어 보게나.
진정한 라테라노인의 삶……
그래.
자네라면 분명 좋아할 거야.
휴……
길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어. 서둘러야겠어.
라테라노가 아니었다면 더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했을 텐데…… 처리 방식에 신경 써가며 일하는 건 정말 싫네.
……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인턴 집행자는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총구를 상대의 눈썹 사이에 들이댔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안녕하세요? 중정 공증소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전에 의뢰하신 일이요? 현재 저희 집행자가 임무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오늘 내에 의뢰인의 요청은 완료될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다고요?
……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해보고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안심하세요. 비록 신입이 합류한 지는 얼마 안 됐고,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리켈레라면,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라 믿습니다.
……!
…………
……살아 있는 건가……?
으앗! 무, 무너지겠어!
저 자식…… 총으로 옹벽을 뚫은 거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야야…… 팔 부러질 뻔 했네.
여보세요, 나야.
나도 실패했어, 놓쳤어.
아…… 진작에 말했지. 내가 집행자를 어떻게 막냐고. 게다가 물건까지 빼앗으라니, 정말 말도 안 되잖아.
하지만, 최선을 다 했으니 다리안 아저씨도 만족하셨겠지?
(위험했다. 하마터면 못 참을 뻔했어……)
(여긴 라테라노야…… 예전처럼 하면 안 돼.)
(……후우……)
(……목적지에 거의 다 왔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다른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잘못 찾아온 건 아니겠지?)
실례지만, 유언장을 받으실 분이신가요……?
네, 맞아요.
여기까지 가져다 주어서 고맙군요, 젊은이.
아닙니다. 제 일인 걸요.
그럼 의뢰대로 우선 이 서류 봉투를 받아 주세요.
……
안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나요?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아주 값지고 귀중한 물건이죠……
제가 알아선 안 되는 내용이겠네요……
아, 물건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이가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요.
모두가 자리에 모이면 모두의 앞에서 이 안에 든 내용을 읽기로 하죠.
모두의 앞에서 읽는다고요?!
후훗……
젊은이, 먼저 열어서 봐도 괜찮아요.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
계란 1개, 설탕 3 스푼,이스트 약간……
밀가루 1컵…… 메이플 시럽 2 스푼……
……이건……
……도넛 레시피?
맞아요. 훌륭한 레시피죠, 그렇죠?
우리 집 양반이 그때 이 레시피를 들고 와서 내게 청혼을 했어요.
그때 그 사람은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쫓기고 가로막혔었죠. 도착했을 때 얼마나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던지……
부인의 남편 분께서…… 이 일을 의뢰하신 건가요?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우린 아이가 없었어요. 물론 조금도 후회되지 않아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만으로 충분히 행복했으니까요.
다만, 이 레시피에 기록된 도넛 맛이 우리가 떠난 라테라노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렇다고 해도 그 내용을 집행자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던 길에 만난 그 사람들, 모두 계획되어 있었던 것 같네요. 맞나요?
하하, 남편의 마지막 변덕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줘요.
그이는 내가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모두의 축복 속에서 이 레시피가 계속 이어지게 하고 싶었겠죠……
……
내가 만든 도넛이에요, 한 번 먹어 봐요.
분명 좋아할 거예요.
기분이 어때?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건 미안해. 하지만 이것도 의뢰인의 유언 중 일부였어.
선배……
아직 잘 모르겠어요. 라테라노인은 왜 항상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거죠?
전에 단 걸 좋아한다고 말했었지? 물론, 라테라노에서 단 걸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의뢰인 할아버지도 네가 말 한 걸 들으셨나 봐. 그래서 마지막에 이 레시피를 전해주는 일을 네게 맡기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 같아.
네가 레시피를 배워서 평소에도 자주 만든다면 더 좋아하시겠지.
……
이게 바로 라테라노인이야. 이 일을 계속 한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있을 거야.
자, 어때, 이 직업이 싫어졌어?
……아니요.
마음에 들어요.
하하, 그럼 잘 됐네!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친 걸 축하해, 신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