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진행 중
엘레나는 실험실 안전 규정을 위반해 방위과의 책임 확인서를 받게 됐다. 그때, 에너지과 퍼디낸드 주임이 실험실로 찾아오면서 그녀를 향한 '테스트'가 시작되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아스트젠
“라인 랩 방위과 책임 보고서: 인턴 연구원 엘레나 우르비카는……”
“실험실 운영 지침, 연구원 생명 안전 규정, 방위과 구조 계획을 위반하고……”
“무단으로 오리지늄액 유출 사고 핵심 구역으로 진입해 버려진 실험 장치를 재가동하여……”
“방위과의 구조 과정을 방해하고, 구조 난이도를 높였다……”
엘레나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망했네.
방위과에서 책임 보고서를 보내왔잖아. 사리아 주임님 성격이라면……
해고되겠네.
엘레나가 실험실을 둘러봤다.
몇 사람이 공용으로 쓰는 공간 한구석에는 그녀의 기계와 기구가 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못다 쓴 보고서와 어젯밤 먹다 남은 각성제 반 봉지가 남아 있었다.
아…… 너무 아쉽다. 내 첫 대형 프로젝트였는데, 결과를 보기도 전에……
게다가 언니도 곧 이 일을 알게 되겠지. 그럼 또 걱정할 테고……
……그래도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지……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은 그녀는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주섬주섬 챙겼다.
퍼디낸드 주임님……!
(주임님이 왜 오셨지? 사태가 심각한가……?)
인턴 연구원…… 엘레나 우르비카?
네.
주임님, 이 정도 등급의 실험은 직접 보실 필요가 없으실 텐데요……
엘레나, 현재 데이터가 어떻게 돼?
……여전히 1.39야……
대체 뭐가 문제지? 벌써 23일째야. 다른 데이터는 아무 문제가 없었잖아. 계획대로라면 결과는 지난주에 나왔어야 하는데, 왜 아직도 아무 반응이 없는 거냐고!
초조해 죽겠네……!
아휴, 와서 차나 마셔.
됐어, 월리…… 지금은 별생각이 없네……
아니면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게. 이걸 쓰면 초조함이 싹 가실 거야.
……'실험 프로젝트 신청서'?
내가 이걸 왜 써!
네가 더는 버려지다시피 한 실험에 목매지 않길 바라니까. 차라리 다음 실험에서 뭘 할지, 어떤 결과를 낼지 생각한 후에 잘 마무리하는 게 좋잖아.
나처럼 출근해서 차 한잔 마시고, 실험에 실패하면 곧바로 다음 구상으로 넘어가면 되는 거야. 우리가 하는 건 연구잖아. 어떻게 매번 성공할 수 있겠어?
……
엘레나, 퍼디낸드 주임님이 자를까 봐 걱정되는 거면 더는 이 실험에 집착하지 마. 이 실험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을 분이니까.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거야. “라인 랩에서는 매일 천여 개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 난 그 마지막 결과만을 원하는 것뿐이야.”
풉, 방금 완전 비슷했어.
하지만 이 실험은 이전 실험들과는 차원이 달라…… B25 프로젝트의 기초 데이터 실험이자 내가 처음으로 합류한 대형 프로젝트라고. 이걸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나한텐 정말 중요해. 대형 프로젝트에 참가할 기회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
향후 개선 방안만 제대로 준비한다면 실험 하나쯤은 포기해도 괜찮아. 기껏해야 면전에서 욕먹는 게 전부겠지……
(몸을 부르르 떤다)
난 아직까지 퍼디낸드 주임님과 대화해본 적이 없어. 근데 보니까 에너지과 사람들은 다 주임님을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얘기해보면 알게 될 거야. 욕보다 칭찬을 듣는 게 더 괴로울 걸.
그런데 왜 에너지과에 온 거야?
……주임님이 대단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분이 담당하는 프로젝트에 한 번이라도 참여하면 홀로 몇 년 동안 연구한 것보다 더 발전할 수 있어. 그저 그분 눈에 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거지. 일 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아마 대부분이 이런 이유로 에너지과를 선택했을 거야. 너도 그렇잖아?
맞아. 대학생 때부터 그분의 성과를 많이 들었거든. 대단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에너지과에 가서 꿈을 이뤄야겠다 싶었지.
그리고 원래 그런 뛰어난 사람들이 대체로 성격이 괴팍하잖아, 안 그래?
……흥.
엘레나가 책상을 짚고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든 이 실험의 문제점을 찾아내겠어.
내 첫 번째 실험이자 B25 프로젝트의 기초 데이터 실험이라고. 내가 이 기회를 어떻게 잡았는데!
집에 있는 두 꼰대가 이 사실을 알면 분명 자기들 선택이 옳았다면서 나한테 가업을 맡기겠지…… 언니도 날 걱정할 거고……
말도 안 되잖아! 의미 있는 결과를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그럼 힘을 내 봐, 열정 소녀. 꼭 성공하기를 바랄게……
삑…… 삑…… 삑……
……무슨 소리지? 경보음인가?
어라, 뭐가 잘못된 거지? 온도? 습도? 내가 수치를 조정해볼게.
……'실내 오리지늄 농도'……?
뭐?!
엘레나가 급히 몸을 일으켜 경보기 쪽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거지? 실험실 내부 오리지늄 농도가 위험치를 초과했어! 오리지늄액이 샜나?
어서 가자. 우선 방독면부터 쓰고!
방위과죠? 013호 실험기지인데, 내부 환경 오리지늄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어요. 아무래도 오리지늄액이 누출된 것 같아요! 이미 경보를 울리고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통보했어요. 방위과의 지원이 필요해요!
네, 013호 실험기지예요. 오리지늄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는데 아직 누출원을 찾지 못했어요. 지원이 시급합니다!
오리지늄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한 것을 발견한 직후 곧바로 경보를 울렸고, 방위과에 상황을 설명한 후 기지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전했어요.
전 실험을 멈추고 반응도 높은 원료를 폐쇄해서 후속 처리의 어려움을 최소화했어요. 그리고 하청 직원과 개척자 기지에도 이 사실을 알렸죠.
하지만 라인 랩에서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인데, 결국……
난 그런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야.
퍼디낸드의 시야에 거의 다 정리된 엘레나의 책상이 들어왔다.
짐을 싸고 있었나?
네……
7분 줄 테니, 정리하던 걸 멈추고 이걸 보도록.
이건…… 데이터 보고서? 결과가 벌써 나온 건가요!
주임님, 가치 있는 데이터인가요? 중요한 데이터예요?
아니.
넌 내가 준 자원을 정성껏 낭비하고, 방위과의 책임 보고서로 내 우편함을 가득 채웠지.
벽에 붙어 있는 안전 수칙을 잊은 건가?
……
……주임님, 지정된 기간 내에 실험 데이터 결과를 내지 못해 죄송해요. 남은 부분은 정리해서 후임에게 인계할게요.
……제 실수로 지연된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발생한 문제는 담당자를 찾아가 조속히 해결하고, 어떻게든 손실을 막아볼게요.
마음대로 해. 그런 건 상관없으니.
내가 궁금한 건 네가 실험실에 돌아갔던 이유야.
그때,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거든요……
삑…… 삑…… 삑……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실험 반응 측정기가 울린 건가……?)
겨우 나왔네. 세상에…… 이번 사고로 얼마나 잘리려나……
(그게 이제서야 반응하기 시작한 걸까……?)
이제 끝났어, 엘레나. 이젠 진짜 실험 결과 따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기지의 모든 프로젝트가 미뤄질 것 같거든.
……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월리…… 전에도 혹시 이상 환경에서 오히려 실험이 성공한 케이스가 있었어?
응, 우린 그걸 '진리의 가호'라고 하지. 어쩌다 운이 좋으면 그런 경우가 생기기도 하거든.
잠깐, 방독면이 제대로 씌워졌는지 한 번만 더 확인해줄래? 좀 불안해서……
……알겠어.
(안 되겠어……)
(분명히 들었단 말이야. 내 실험에 반응이 있었던 거야!)
여기로 대피하면 안전한 건가요? 좀 더 멀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안전가옥으로 가지 않는 거죠?
다들 단단히 미쳤어요……! 이렇게 감염될 수도 있다는 건…… 계약 내용에 없었다고요!
쯧, 살아있는 걸로 만족하라고. 적어도 이번엔 도망치라고 통보한 여자애라도 있었잖아.
……잠깐, 혹시…… 엘레나 본 사람 있어? 왜 안 보이지?
삑……! 삑……! 삑……!
엘레나가 자신의 책상으로 달려갔다.
텅 빈 실험실 안에선 경보와 측정기 알림이 뒤섞여 울리고 있었다. 오리지늄 농도는 이미 감염 가능한 수치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사람들이 급하게 대피하느라 엉망진창이 된 실험대 위. 오리지늄액 누출 환경에서,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던 실험이 빠른 속도로 반응하기 시작했고, 측정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지 못했던 결과를 단번에 보여주려는 듯 구석의 단말기 화면에는 다양한 실험 데이터가 표시되었고, 경고등이 끝없이 깜빡였다.
……역시! 콜록,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콜록…… 분명히 움직였어! 결과가 나왔다고!
엘레나는 나동그라진 의자를 끌고 올 시간도 부족하다는 듯 책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급박하게 데이터를 기록했다.
수치 1.97을 이 공식에 대입하면……
환경 농도……
저장……
안에 누구지?
엘레나가 몸을 숙이고 숨을 죽인 채 더 빨리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구역은 비어 있어야 하는데. 안에 누가 있는 거지?
……구조 목표물 위치 확인. 누락자로 확인된다.
……!
시간이 없어. 어서 마지막 줄을……!
……저한텐 정말 소중한 프로젝트였어요. 처음으로 참여한 실험이었거든요.
그때 드디어 반응이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실험 환경을 너무 이상적으로 설계한 탓에 반응을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던 거죠.
오리지늄 농도가 짙은 환경에서 얻은 결과는 제가 가서 기록할 만한 아주 값진 수치였어요. 잘못된 데이터라 해도 분명 향후 실험에 도움이 될 거예요.
설사 이런 데이터가 없었더라도, 전 확인하러 갔을 거예요.
그래서…… 돌아갔던 거예요.
이제 4분 남았어. 할 이야기는 마친 건가?
그건 특별한 이유가 아니야.
……음.
그렇다면 네가 보고서를 받은 후 내게 가장 먼저 물은 질문이 뭐였지?
“가치 있는 데이터인가요?”
아니었지. 이건 안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가지러 갈 건가?
……네, 주임님.
그 이유는?
오랫동안 노력한 성과를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설령 모두가 포기했다고 해도.
전 오랫동안 노력했고, 사실 그렇게 깊이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런 환경에서 반응을 일으켰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데이터나 공식이라는 거고, 그게 제 성과인 셈이니까요.
그걸 가진 순간, 전 더 발전할 수 있을 거고, 계속 제 실험을 이어가거나 더 핵심적인 실험을 맡게 될 수도 있겠죠…… 어쩌면 그걸 계기로 성공할지도 몰라요!
잠깐, 시간 낭비하지 마. 그런 것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어.
퍼디낸드가 창밖을 가리켰다.
이 기지에는 너만한 소질, 영리함, 결단력,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연구원이 널렸어…… 그들이 매일 몇 톤의 폐지를 만들어낼까?
그런 소질이 보편화하는 순간, 그것들은 가장 평범한 것으로 전락하게 돼.
데이터를 가져가겠다는 결정을 한 건,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난 목숨 걸고 폐지를 가지러 가는 데 시간 낭비하는 사람은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그땐 오리지늄액이 누출돼서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
아니, 네가 판단한 건 실험 데이터의 가치야.
그게 아니라면 이런 결정은 충동일 뿐이지.
……
한가할 때 실험실 밖을 거닐며 생각해 봐.
네 결정을 뒷받침하는 건 장기적인 안목과 탁월한 식견이어야지. 그것들로 인해 넌 네 목숨을 간과해도 될 만한 결과일 거라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거고.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주임님. 앞으로는 충동적으로 굴지 않고 가치 있는 결과인지 먼저 판단한 후에 결정을 내릴게요.
그런데……
주임님, 그런 환경에서 그게 가치 있는 데이터라고 판단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퍼디낸드가 창밖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엘레나는 가르침을 바라는 학생처럼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퍼디낸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라면 경보를 더 늦게 울렸을 거야.
그게 무슨……?
퍼디낸드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들도 판단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대상이니까.
……7분. 자, 서류를 받도록.
……네.
……지난번 실험에서 남은 데이터와 관련 보고서는 이미 정리해뒀으니 최대한 빨리 인계 작업을 마칠게요.
에너지과에 민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만두기 전에 문제는 잘 처리하겠습니다……
……흥.
엘레나가 마지막으로 실험실을 빙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가닿은 곳은 경보장치였다.
“나라면 경보를 더 늦게 울렸을 거다”라니……
……
엘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난 경보부터 울렸을 거야.
퍼디낸드의 발소리가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후……
계속 정리나 하자.
어? 이게 뭐지……?
이미 정리를 마친 책상 위에는 서류 두 장이 놓여있었다.
그건 엘레나가 가져온 실험 데이터 보고서였다.
아쉽지만 실험 재료가 훼손됐으니 나중에 다시 복원해보자. 다음 회사에 이런 조건이 갖춰져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건……
에너지과 퍼디낸드 주임 직속 프로젝트 전근 확인서……?
앗!
어?
으아앗!! 진짜야?
이게 진짜라고?!
엘레나가 전근 확인서를 들고 폴짝 뛰어올랐다가 캐비닛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으악……!
그녀는 환호하며 자신이 챙겨둔 가방 위로 몸을 던지고는 허공에 발을 동동거리며 몇 번이고 서류 내용을 확인했다.
시간이 흐르고 호흡이 안정되자 그녀는 전근 확인서를 조심스레 챙긴 후 조금 전 호들갑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이터 보고서를 치우지 않는 건데.
크흠, 진정하자……! 진정!
대체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왜 끝에 가서야 반응이 일어났는지 확인해보자……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