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다리로
글라우쿠스의 레이시언 공업 면접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고 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글라우쿠스
테스트 완료, 이상 없음.
여기에 오리지늄 배터리까지 설치하면 끝인데…… 어디 뒀더라?
응?
밀레이 교수님?
뭔 소리야?
아, 죄송합니다. 사람을 잘못 봤어요. 이 시기엔 밀레이 교수님만 들어오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어……
너 혼자 있네. 여긴…… 레이시언 공업의 제조 작업장 맞지?
아마도 그럴 거예요. 들어올 때 문패에 그렇게 적혀 있는 걸 봤거든요.
너…… 이 첨단기술 제품을 알아?
아마…… 어느 정도는요?
......
어이, 이곳에서 만든 무기가 있는데 망가졌어. 고칠 수 있겠어?
무기를 고쳐 달라고요?
(이 사람 왜 갑자기 말투를 바꾸는 거지?)
안 돼?
(실기 시험 시간이 3분의 2정도 지났는데…… 설마 내가 미리 끝낸 걸 보고 추가 테스트를 하는 건가?)
(디자인과 개조로도 모자라서 수리까지 해야 한다니…… 레이시언 공업의 장비 디자이너가 되는 건 정말 쉽지 않네……)
뭘 멍하니 있어? 할 수 있어 없어?
아마 문제없을 거예요. 뭘 고치시려고요?
(고객 대응 시뮬레이션까지, 내 태도를 보고 점수를 매기는가?)
자, 여기.
보증서라면 그 안에 있어. 제일 밑에 있을 테니 확인해 봐.
고든이라고 적혀있네요…… 고든 씨 본인인가요?
맞아.
와, 이런 무기는…… 처음 봐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석궁이지만 격발장치가 개조되어 있네요. 연결되어 있는 건…… 근전도 센서고요!
여러 개의 근전도 센서를 사용해서 모드 식별 시스템을 만들었군요. 손을 다친 사용자도 무기를 조작할 수 있게 말이에요. 정말 천재적인 디자인이에요.
조작할 때 팔을 들어 무기를 적절한 위치까지 들어 올리기만 하면 팔 위쪽에 장착된 감응 모듈이 근육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신호를 읽어 내죠.
사용자가 팔을 흔들어서 알맞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전술 석궁의 차지와 격발을 제어할 수 있어요. 조작하는 사람만 무기에 능숙하다면 손을 쓰지 않아도 원활하게 사격을 진행할 수 있는 거죠.
……이런 디자인으로 생산한 무기는 제식화 양산도 가능하겠는데요. 신체가 불편한 병사를 위해서도 대량으로 공급할 수도 있을 거고요.
하.
그래봤자 이 공장에서 생산한 불량품이지. 그쪽이 말한 근전도 센서가 망가졌어.
고장이 난 건가요? 방금 테스트 해봤는데 아직 작동하는 것 같았어요.
됐다 안됐다 하는 걸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테스트 신호에 따르면……
설명은 필요 없어! 빌어먹을, 첨단기술이니 뭐니 전혀 모른다고. 제대로 고쳐놓기나 해!
말해두는데, 난 오늘 오전 내로 다시 그걸 돌려받아야겠으니까 게으름은 피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는 간단하니까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아요. 잠시만 거기 계세요.
아니면 옆에 잠깐 앉아 계시겠어요? 금방 해드릴게요.
……알겠어.
너, 다리가……
네? 이 외골격 장치 말인가요?
제 다리로는 일어설 수가 없어서 이 아이의 도움을 받고 있죠.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지?
유전병이에요.
다리에 계속 지지대를 대고 있는 게…… 불편하지는 않나?
물론 제 다리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레이시언 공업에는…… 첨단기술을 사용한 휠체어 같은 것도 많지 않아? 사람을 태우고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제품은 보니까 안마 기능도 있다던데……
그런 걸 타고 다니면 좋잖아? 이렇게 무거운 금속 덩어리나 달고 다니면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말이야.
휠체어가 편하긴 하겠죠.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있어봤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인걸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전 일어서있는 느낌이 좋아요.
우수한 이동 수단, 물론 좋죠. 하지만 제게는 외골격 장치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예요.
발밑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느낌…… 달릴 땐 지면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귓가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죠.
처음 두 다리로 땅 위를 걸었을 때, 몸으로 느껴지는 이 감각들이 정말 놀랍고 즐거웠어요.
그 감각들은…… 제가 그저 무력하게 떠도는 것도, 풍랑에 휩쓸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려줬어요. 제가 이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죠.
죄송해요. 이상한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네요.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컬럼비아 욕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난…… 이미 글렀어.
미안하군……
뭐가요?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감정이 격해져서 듣기 거북한 말을 해버렸어……
어…… 전혀 그렇지 않았는 걸요…… 음……
고든 씨.
왜 그래?
이 무기는 당신이 사용하는 건가요?
맞아.
손을 다치신 거죠? 손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래.
그건 수많은 경험을 담고 단단하게 다져진 손이었다. 투박한 피부는 빛 속에서 마치 먼지 한 층을 뒤집어쓴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양손의 손등에는 눈에 띄는 흉터가 있었는데, 마치 사막을 가르는 협곡 같았다.
엄지를 제외한 다른 손가락은 이제 움직일 수 없어.
손가락의 굳은살을 보니…… 뛰어난 용병이셨겠는데요. 그렇죠?
훗.
1년 전, 림 빌리턴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실수로 그 망할 녀석들에게 잡혔고, 그놈들이 내 힘줄을 끊어버렸어.
평소에 생각 없이 돈을 쓰고 다닌 탓에 치료할 때 저축해 둔 것도 없어서 빚쟁이가 된 다음에야 간신히 이 정도까지 치료할 수 있었지.
……방아쇠도 못 당기니 장난감 같은 석궁이라도 들 수밖에. 일해서 빚은 갚아야 하니까.
사람이 쓸모가 없어지니 재수도 더럽게 없더군. 결국 이 장난감조차 날 배신해서 그 꼴을…… 쳇.
하지만…… 하하. 이제 상관없어…… 끝내야 할 일은 곧 전부 끝날 테니까.
저기…… 괜찮으시다면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더욱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게 지금 이 무기를 개조해 드릴게요.
별로 상관없어. 쏠 수만 있게 해주면 돼.
알겠습니다.
10분 후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여기요.
다 된 건가?
개조는 다 했어요……
대체 미디어 개방일 같은 건 누가 기획한 거야? 이런 행사가 정말로 의미가 있는 건가? 그것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늘어났잖아!
이미 충분히 짜증 나는데…… 그 사람 추천만 아니었다면 오늘 같은 날 면접을 잡지도 않았을 거라고.
밖에 사람이 있어?!
아마 밀레이 교수님일 거예요.
그거 줘! 빨리!
아, 잠시만요!
새로운 모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아직 설명해 드리지 못했는데……
글라우쿠스 씨.
글라우쿠스 씨!
아, 죄송해요. 방금 실기 시험에 관해 얘기하셨어서, 당시의 과정이 떠올랐어요.
……괜찮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은……
바구니에 간식이 잔뜩 있는데, 평소에 면접 볼 땐 안 드시는 건가요?
전…… 간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제가 막대 사탕 하나 먹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다음 질문이에요. 저희 쪽은 팀 단위로 연구 개발을 진행합니다. 팀에 들어가 연구 개발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팀 단위의 연구 개발이라는 건 이곳도 함께 협력해서 일한다는 건가요? 꽤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일할 때도 팀 단위의 작전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관련 경험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예전에 진행했던 팀 작업에서 함께 작업한 동료에게 당신에 대한 평가를 들은 적이 있나요?
아, 있어요.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음……
제게 단독 행동을 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했어요.
……
여기까지입니다. 제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없다면 그만……
(잠깐. 클로저 씨가 마지막 질문 단계에서 면접관의 생각을 물어봐야 한다고 했어. 그럼 그 대답을 통해 면접에 통과할 확률을 추측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아……)
프로 장비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봤을 땐, 글라우쿠스 씨는 엔지니어 기술 면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어요.
면접에서 보여준 전문 영역에 대한 대답도 그렇고, 실기 시험에서 선보인 제품에 대한 테스트 또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죠. 전자 응용 부분에서도 물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줬고요.
하지만 작업 습관과 연구 부분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더군요.
예를 들자면, 당신은 디자인의 커스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당신이 디자인한 제품에서도 그 부분이 드러나고 있죠.
당신은 고객의 상황에 따라 모듈을 다시 커스텀하려고 해서 디자인을 훨씬 복잡하게 만들어 버려요. 하지만 대부분은 사용자가 무기에 적응하면 충분히 해결되는 사소한 문제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은 원가와 수익 구조를 뒤틀어 버리죠. 게다가 그렇게 디자인한 장비는 애초에 생산 라인에 투입할 수도 없고요.
레이시언 공업은 대기업이에요. 일 잘하는 사람은 부족하지 않아요.
그 밖에 업무 스타일도 독특해서, 다른 직원들과 팀워크를 맞출 수 있을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네요. 대충 이 정도예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시면 돼요. 대기실에서 잠깐 쉬고 있으면 인사부의 동료가 밖으로 안내해 줄 거예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아, 네.
그리고 바구니의 간식은 마음껏 드셔도 돼요.
(아무래도 면접은 높은 확률로 떨어지겠네. 계속 클로저 씨를 도울 수밖에 없겠어.)
(됐어.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먹을 거나 좀 먹자.)
응?
실례합니다. 잠시 청소 좀 하겠습니다.
그쪽은……
당신……
아아, 알겠다.
오전에는 임시로 제 테스트에 참여하신 거죠? 정말 실례했어요.
……
손은…… 일하기에는 괜찮나요?
도구를 잡을 수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지.
아, 맞다. 그 무기는……
쉿, 잠깐 비켜줘.
옆에 종이 부스러기가 있어서.
자, 됐다. 내 일은 끝났어.
오전의 일은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염원이 이뤄졌어. 앞으로는 날 본 적 없는 사람으로 대해줬으면 좋겠어.
미안. 말이 길었군. 이만 가지.
잠깐……
(뭔가 이상하네. 오전에는…… 시험때문이 아니었나?)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밖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아, 네.
맞다. 오늘은 미디어 개방일이에요. 관심 있으시면 나가는 길에 회사의 각 부서를 구경시켜 드릴게요.
이쪽은 저희 지부의 야외 테스트 장소예요. 개발한 장비와 무기는 모두 이곳에서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죠. 디자이너분들이 계속해서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당신이 제작했던 그 무기도 이곳에서 전문가들이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다들 호평인 것 같던데요.
그 무기…… 하나뿐이었나요?
맞아요. 그 전자 펄스 발사기 말이에요. 적이 아닌 적군의 전술 설비를 공격한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참신했어요. 현장을 참관하던 몇몇 베테랑 디자이너도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뛰어난 디자인은 본부에서 넘어온 밀레이 교수님 제품 이후로 처음이었다고들 했어요.
설마요……
뜻밖이죠? 밀레이 교수님은 명실상부한 천재 디자이너예요. 겨우 몇 년 만에 저희 지부를 위해 성공적인 생산 라인을 몇 개나 만들어 내셨거든요. 덕분에 이윤이 10배는 올랐죠.
아뇨…… 그 얘기가 아니에요. 저기, 이 직책에 지원한 다른 사람들의 테스트 내용은 뭐였나요?
그건…… 함부로 알려드릴 수 없어요.
테스트 중에 고객 대응 시뮬레이션 테스트가 있었나요?
그 부분은…… 진행했던 적이 없는데……
큰일이에요! 이 회사에……
어, 미디어들이 막 이곳에 도착했나 보네요. 저기 밀레이 교수님도 계시고요.
저분들이 먼저 지나가게 저희는 잠깐 대기하죠.
어라, 그런데 청소부는 왜 있지? 미디어 방문 전에 청소는 끝나야 하는데……
고든 씨? 카트 위의 저 가방!
저 청소부! 얼른 막아야 해요!
막으라고요?
늦었어……
고든 씨!
견학 대열의 맨 앞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청소부가 갑자기 위장을 벗어던지고 공격을 감행했다.
무방비한 상황에서 누구도 경험이 풍부한 용병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밀레이 교수는 순식간에 용병에게 사로잡혀 버렸다.
긴급 방어 시스템을 가동해!
전부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 자를 죽여버린다!
들었지? 다들 경거망동하지 마!
……뭐야, 이 의외의 반응은?
교수님! 걱정하지 마십쇼! 방어 시스템은 교수님께서 설계하셨으니 납치범 정도는 순식간에 사살할 수 있을 겁니다!
닥쳐…… 말이나 들어!
콜록…… 네 말대로 시켰어. 그러니까…… 손을 좀 놓아주지 않을래? 수, 숨을 쉴 수가 없어.
……
콜록, 너는…… 청소부로 위장해서 그리 오랫동안 잠복했으면서, 일부러 오늘을 골라 나를 죽이지 않고 납치만 한 걸 보면……
분명 바라는 게 있겠지?
똑똑하군.
돈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말만 해, 뭐든지 응해 줄 수 있어.
좋아.
잘 들어. 두 가지 요구 사항이 있다!
첫 번째는, 레이시언 공업에 대한 요구다.
이 종이에 적힌 계좌로 2,000만 파운드를 송금해. 당장!
비서, 제 단말기를 가져오세요. 제 개인 계좌로 돈 보내게요.
얼른!
교수님, 여기요.
……됐어, 이건 거래 명세야.
좋아. 일 처리 속도는 역시 대기업답군.
첫 번째 요구는, 콜록, 처리했으니 다음 요구는 뭔데?
두 번째는, 여기 있는 미디어에게 대한 요구다!
뭐……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그대로 보도해라.
이대로 가다간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정말 큰일입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방어 시스템을 가동해야겠습니다. 저희를 믿어주세요. 이 정도는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기다려! 절대 안 돼!
교수님!
제기랄. 이 자가 들고 있는 전술 석궁 '레이시언 내비게이터 1호'는 내가 디자인한 거야!
복수의 근전도 센서로 제어해서 발사 속도가 직접 조작하는 것보다 300배는 빠르다고!
이 정도 거리에서 이 자가 원한다면 방어 시스템이 반응도 하기 전에 나는 시체가 되어 있을 거야!
너였구나……
하하하하하.
왜…… 왜 그래?
이 무기의 디자이너를 한참 찾았어.
여러분, 나는 닥펑 시큐리티의 전 특수 부대 소속 용병, 고든 부누다. 내가 사고로 손의 감각을 잃은 후부터 '레이시언 내비게이터 1호'라는 전술 석궁을 받아서 쓰게 됐어.
하지만 이 무기는 애초부터 불완전한 결함품이었다는 거야.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고.
이 불량품 때문에 나는 제대로 사격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후배가 죽는 걸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방금 송금한 돈은 그의 가족을 위한 것이야. 레이시언 공업이 당연히 지불해야 했던 돈이지! 그의 죽음은 레이시언 공업의 책임이니 말이다!
레이시언 공업…… 이 악덕 기업과 돈벌이 때문에 불량품을 시장에 마구 쏟아내고, 정작 본인은 사무실에 앉아서 돈이나 세는 놈들……
*컬럼비아 욕설*, 너희들은 다 죽어도 마땅해!
안타깝게도…… 네놈들을 내가 전부 상대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적어도 운명이 나를 도와 널 잡게 했어……
진정해! 분명 뭔가 오해하고 있을 거야!
그 무기에 문제가 있을 리가 없어! 내가 직접 테스트 해봤는데!
닥쳐! 난……
그 석궁, 발사해 보세요.
무슨 짓입니까?
저리 꺼져!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그게 아니라, 제 말은 그 석궁을 쏴보라는 말이에요.
쏴보라고……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물러설 곳도 없어.
반평생을 용병으로 살았고, 무기와 생사를 함께했다…… 내 인생은 손이 다친 그날, 이미 끝났어.
이 망할 놈도 내 손에 있으니, 적어도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겠군……
안 돼! 진정해요!
……발사하세요.
본인의 최후가 웃는 모습이기를 바랐는지, 남자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위팔 근육이 훈련대로 수축했고, 그 움직임에는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300분의 1초 후 화살이 발사돼 인질의 몸을 관통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입 안에 감춰둔 독약을 삼킬 것이다. 모든 게 계획대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사람 살려!
잡아! 도망치게 두지 마!
입에 뭔가를 물고 있어! 어서 꺼내! 자결하지 못하게 해!
한바탕의 소동 끝에 위기가 종식되었다.
이거 놔! 이거 놔!
어떻게 이럴 수가…… 어째서…… 어째서 또 발사되지 않은 거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째서 내 무기를 고쳐주지 않은 거냐고!!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당신의 무기를 조금 개조한 것뿐이죠…… 당신에게…… 더욱 적합하게요.
그녀는 천천히 몸을 숙여 자신이 개조한 무기를 주워들었다.
'리터너'…… 이건 그녀가 임시로 이 무기에 붙인 이름이다.
그녀는 남자가 사용하지 않았던 밴드를 손목에 끼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건……
움직이지 마!
이거 놔! 보게 해 줘! 보게 해달란 말이야!
볼 수 있게 살짝만 풀어줘…… 놓아주지는 말고!
당신에게 개조한 뒤의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죠.
당신의 손을 보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용병으로 일하면서 당신에게 가장 익숙한 동작은 방아쇠를 당기는 거였겠죠. 그렇죠?
수없이 많은 임무, 무수한 위험을 뚫고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본능에 가까운 정교한 사격 덕분이었을 거예요. 분명 당신이 가장 의지하고 있던 부분이겠죠.
당신의 엄지가 아직 움직일 수 있기에 한 곳만 개조했어요.
전 근전도 센서를 정지시키고 방아쇠를 흉내 낸 밴드를 추가했어요.
이걸 사용하면 직접 방아쇠를 당겨서 당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석궁을 발사할 수 있어요.
교수님, 직접 시험하게 해도 될까요?
……너희들, 이 자를 꽉 잡고 있어.
자, 됐어요. 직접 써 봐요.
……
어때요? 나쁘지 않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직 눈물만이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교수님,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고든이라는 용병이 임무 중에 저희가 설계한 '레이시언 내비게이터 1호'를 사용한 건 맞습니다. 닥펑 시큐리티에서 대량으로 구입하여 몸이 불편한 용병들에게 지급한 거죠.
그리고 임무 중에 발생했던 상황도 저 사람이 말한 것과 일치합니다. 6개월 전, 그가 전술 배치와는 다르게 제때 사격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23세의 용병이 폭도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 사건 후에 저 사람은 닥펑 시큐리티를 떠나 용병 시절에 만들어 둔 가짜 신분으로 우리 지부에 청소부로 지원했죠.
이 일은 저 사람이 오랫동안 꾸며온 계획일 겁니다. 미디어 개방일에 일을 벌인 뒤 모든 책임을 우리 회사에 돌리고 죽을 계획이었던 거죠.
청소는 저희가 외부 업체에 하청을 준 거라 저 사람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보안이 뚫린 거나 마찬가지니, 이후 보안을 더욱 강화할 예정입니다.
보안 강화라…… 그 후보자가 무기를 개조하지 않았다면 난 이미 죽었을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됐습니다…… 그 사고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가져왔나요?
여기 있습니다.
'레이시언 내비게이터 1호'에 정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저희가 확인한 무기 작동 로그에 따르면…… '레이시언 내비게이터 1호'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완벽하기 그지없었죠.
닥펑 시큐리티의 내부 조사 문서에 의하면, 이 사건의 진짜 원인은 그 용병이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실패했고.
그 사람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교수님의 디자인에 문제가 생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
아니에요.
대외적으로는 '레이시언 내비게이터 1호'의 실행 고장이라고 발표해주세요. 저희가 이 건에 대해 깊이 사과하고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네? 교수님!
제가 말한 대로 하세요. 이후의 모든 위로금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후우……
사장님, 이렇게 해도 괜찮겠죠?
그래.
할 말이 더 남았나?
물론이죠. 글라우쿠스 씨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그 후보자 말이에요. 그 사람 때문에 연락하신 거 아니었나요?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기는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그 사람이 장비 디자이너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 마인드로는 회사의 발전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 없어요. 회사를 위해 수익을 낼 수도 없겠죠.
알고 있어.
하지만 천재인 거는 분명합니다. 본부에서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이죠.
그녀가 첨단 무기의 테스터가 되어 최신식 무기의 테스트를 맡을 수 있도록 내가 사람 보내 계약을 체결하지. 회사의 첨단 연구의 접근 권한도 모두 풀어주고.
나쁘지 않군요. 그쪽이 그녀에게 더 적합할 것 같아요.
“하이테크 기업은 과학 기술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자네를 면접할 때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나는군.
그러게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글라우쿠스 씨를 면접할 때, 그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어요. 과학 기술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과학은 제게 다리를 만들어 줬지만, 제가 달릴 수 있어야 그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