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
예술에 열광하는 귀족들은 씬을 위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촬영팀 중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씬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밤인가. 하지만, 샹들리에가 밝혀준 그대의 모습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절정이로군! 어서 들어오시오. 마침 멋진 곡이 연주되려던 참이니.
아,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주시니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저 진심 어린 찬사를 했을 뿐. 저기 피아노를 치고 있는 젊은이도 당신을 보고 나면 분명 악보조차 기억나지 않을 것이오……
저기, 저 레이디를 보았소?
누구시죠? 왜 이런 곳에?
흔히들 촬영은 고상한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진에 담긴 그 순간에 취할 때가 있지. 하지만, 그게 고상한 척하는 건지 진심으로 취한 건지는 아무도 모르오.
저 레이디는 파사도라 하오. 우리 촬영 협회 멤버인데, 최근에 두각을 나타낸 사진작가 씬 씨에게 푹 빠져있다고 들었지.
씬 씨? 아, 그 사랑스러운 아가씨 말씀이죠! 저도 얼마 전에 그분의 작품을 봤습니다. 그분의 작품을 보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고 생명의 희열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그래, 바로 그거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진작가의 이름이 연회장에서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거늘, 이미 수많은 상을 받은 경력자라니.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그렇기에 나는 이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여, 그녀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을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참된 표현이 아니겠소!
안녕하신가, 씬 씨? 일전에 편지를 드렸던 사람인데……
……
삐빅! 삐빅!
삐…… 삑……
씬 씨? 일전에 편지로 인사드린 촬영 마니아 협회 사람이오.
우리 협회에 씬 씨와 교류하고 싶은 사람이 많소. 얼마 뒤에 촬영 일정도 있다고 들었는데, 씬 씨의 창작 과정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 하고 있소.
그래서, 결례지만 씬 씨의 촬영 과정에 동행하면 안 되겠소? 씬 씨처럼 촬영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가 어쩜 이리도 깊이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꼭 보고 싶어서 말이오.
아시잖소. 많은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도 힘들고, 찾았다고 해도 어떻게 정진해야 이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은 더욱 적으니.
실제 촬영에 참여하는 것도 신인에게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오. 씬 씨 같은 선배로부터 배우는 것의 가치 또한 헤아릴 수 없고……
……
……저기, 씬 씨?
……
삐빅!
어, 어……?
……
……응.
……
삐빅! 삐빅!
아, 아, 알겠소! 동의했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정말 고맙소. 그럼 일정은……?
삐…… 삑……
……그건, 전장의 폐허 아니오? 저기, 씬 씨……
……
……
아, 알겠소. 나중에 씬 씨에게 참여 인원 리스트를 보내 드리겠소. 또 다른 요청 사항은 없소?
삐빅!
삐…… 삑……
아……
“촬영에 동의하지만, 창작 과정은 방해하지 말 것.”
그럼, 그럼. 씬 씨의 요구 사항은 알았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세히 전달하겠소.
그럼, 저는 이만……?
삐빅!
삐…… 삑……
……
……응.
……
그럼 다음에 뵙기를 기대하겠소, 씬 씨.
(상상했던 거랑 전혀 다르군. 이 사람…… 뭐지, 전혀 움직이질 않아……)
(뭐, 됐어. 신인상 수상 명성이 있는데, 실패할 리는 없겠지.)
……
삐빅!
……
도착했다
……
진정한 전장에
……
갈 수 없는 건
……
유감이야
……
삐빅!
삣……!
딩동, 딩동!
과묵한 사진작가 옆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은 로봇들이었다. 그들은 맡은 역할대로 폐허에서 각자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로봇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인간이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잽싸게 기재의 조립을 완료했고, 이어서 지형 탐사에 들어갔다.
피와 뼈는 이미 시간의 모래 속에 묻혀, 밟을 때마다 영혼에 새겨진 고함이 들릴 것만 같았다.
로봇들은 가녀린 사진작가를 태우고 무거운 분위기의 폐허와 진흙 속을 누비고 있었다.
삐빅! 삐빅……
씬 씨, 벌써 일을 시작하다니, 참 부지런하시군그래.
자, 여기일세. 씬 씨를 따라다니면서 좋은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확실하게 배워두게나!
네!
……
다들 따라갔는데, 저희는 어떡하죠?
그렇군, 우리는 이만 가세나.
그래도 좀 더 있는 편이……
이런 곳은, 손에 들거나 벽에 붙여야 감상할 의미가 있소.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오히려 그 느낌이 사라질 거요.
차도 도착했으니, 가도록 하지.
……
……
삐빅!
씬 씨는 저쪽으로 갔어요.
내레이션 자료를 준비할 겸, 뭐라도 적어놔야겠네.
“촬영 첫날, 우리는 전장의 폐허에 도착했다. 씬 씨가 여기를 촬영장으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무거운 주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특별한 관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촬영은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재 조립과 이동이 기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사진작가에게는 자신만의 촬영 방법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네 차례야, 자.
“젊은이들은 이런 곳에 오기를 좋아한다. 마치 자신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길어봤자 사흘, 사흘이 지나면 그녀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건 좀 지나친 말이 아닐까.
이 촬영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씬 씨가 이동합니다. 따라가시죠.
소재 찾기는 사진작가의 촬영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과연 카메라 렌즈를 통해 뭘 표현하고 싶을까?
마음속에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와 같은 잿빛의 땅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까?
“전장의 폐허는 다른 어떤 풍경과도 다르다.”
“씬 씨가 이곳을 선택한 건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각자 일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오늘 오전, 씬 씨는 폐허의 가장 높은 지점에 올라가 이 지역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주변 로봇들에게 중요한 지점 몇 개를 기록해놓으라고 지시를 내린 것 같다.”
“씬 씨의 오후 일정은 아직 모르지만, 전에 마크한 장소를 중점적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어쩌면 거기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얻을지도 모른다.”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할 무렵, 씬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장비 조립, 지형 탐사, 장애물 처리, 어제와 같은 흐름으로 그녀는 다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주위는 고요한 폐허와 떠들썩한 인파였다.
씬 씨가 일찍 일어났군요. 저희도 서두르죠.
물도 아직 안 끓었는데 벌써 나가야 하나?
둘째 날인데도 아직 똥폼이나 잡고 있네. 일찍 일어나면 뭐해? 결국은 어제처럼 느릿느릿 돌아다니기나 하는 거겠지?
똥폼을 잡고 나면, 우리는 돌아가서 고생하며 편집이나 하는데, 저 여자는 돈, 명예, 지위를 얻고. 이런 사람은 수도 없이 봐왔어.
내 말 잘 들어. 식견을 넓혀야 앞으로 이런 사람한테 속지 않는 거야!
그런가……
그럼 저는 먼저 가 있을게요.
쟤는 딱 봐도 초짜야. 선배 말도 안 듣고 무모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진대?
많이 배워두라고.
“전장은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것이다. 씬 씨가 이 폐허와 잔해에서 뭘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단지……”
아냐, 이 말은 여기서 하면 안 돼……
“아무튼, 촬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이번에는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점심시간이다. 우리는 씬 씨가 작업을 멈추고 텐트로 돌아와서 식사할 줄 알았다. 음식이 다 거기에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챙겨온 인스턴트식품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운 것 같다.”
“음…… 이런 걸 전부 기록해야 그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돌아가서 식사하세요. 그리고 저랑 교대하시면 됩니다. 씬 씨가 지금 폭탄 구덩이를 찍고 있는데, 저는 그 장면을 찍고 싶어요.
아, 네. 그럼 가서 불러…… 앗, 벌써 가버렸네
그럼 먼저 다녀올게요!
며칠 동안 씬은 그저 이 폐허를 누비고 있었다.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로봇들만 지휘하며, 울퉁불퉁한 전장에서 작은 먼지들만 휘날렸다.
그녀는 조용히 발밑에 묻힌 전쟁터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다.
폐허는 카메라를 통해 실물에서 그림자로 변했고, 지금 이 순간이 평평하면서도 무력한 한 장의 그림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림 이면에 있는 것은 무거운 현실이며, 힘차고 현실조차 압도할 수 있는 정지된 시간의 구현이었다.
이것은 서적에 기록된 진실보다 더 생생하며, 이 땅의 과거를 되새기면서 사람들의 양지를 일깨워 주었다.
씬은 이 전쟁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전장을 정리할 때 마지막 시체에서 뽑아낸 화살들의 무게는 시체보다 더 무거웠다고 한다.
언젠가 죽을 운명인 걸 알면서도 인간은 서로 죽이는 것에 대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새빨간 피에 대지는 검게 물들었고, 급기야 풀 조차 자랄 수 없는 거친 땅으로 변모했다.
먼 곳으로부터 아침 햇살이 옅은 구름을 뚫고 내리비추자, 이 죽음에 휩싸인 땅에 비로소 한 줄기의 금빛이 반짝였다.
높고 시든 나무에 올라, 씬은 빠른 속도로 셔터를 누르며 이 거짓된 생기를 렌즈에 담았다.
메마르게 울부짖는 파울비스트가 시든 나뭇가지에서 하늘로 날아오르자, 그 자리엔 이내 먼지가 휘날렸고 시간도 이 먼지 속에서 멈춰버렸다.
그 먼지 뒤에는 사람들의 초조하고 불안한 눈빛이 있었다.
……요 며칠 잠이 부족한 탓에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니까.
일찍 일어나면 뭐해. 소재는 변하지도 않고, 쟤는 말없이 찍어대기만 하는데.
게다가 저렇게 가까운 곳에 묵고 있는데. 장소 선택하고는.
역시 막 유명세를 타게 된 사진작가는 이렇다니까.
“촬영 9일째.”
“모든 전장의 폐허가 다 이런지 잘 모르겠다.”
“유가족들이 추모하러 올 수도 있겠지만, 씬 씨를 따라 몇 바퀴 둘렀는데도 꽃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흘러서 그런지, 아니면 이동도시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탓인지, 이제 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봤지? 저 잘난 척하는 외국인?
외국인이었어? 전혀 몰랐는데.
볼리바르에서 왔대. 촬영협회 귀족들에게 고용됐는데 이번 주제가 전장이라는 걸 듣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래. 귀족들이 직접 지정한 일이라 뭐라도 챙기려고 온 거겠지.
……뒷담화는 좋지 않아. 그만 얘기하자.
이게 뭐라고. 이런 사람은 남이 뒤에서 호박씨 깐다는 걸 다 알아.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싶을걸.
“나는 바지가 더러워졌는데 저 사람은 차에 탄 채 땅에는 발이 닿은 적도 없다. 그저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촬영이란 게 이렇게 편한 일이었을 줄이야. 그럼 내가 찍는 이 다큐멘터리는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런 말 해도 돼……?
흥, 어차피 편집은 내가 하는 건데.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았어……
씬 씨, 오늘 캠프에서 식사하시는 게 어때요? 아침에 물도 끓여놨는데 좀 따뜻한 걸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야!
물은 우리가 끓인 건데 왜 그 여자한테 줘?
로봇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네 일에나 신경 써!
……이봐, 진정해.
내가 더 끓이면 되지 뭐. 물이야 얼마든지 끓이면 되니까.
뭐?
물 끓일 새도 있나?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물을 더 끓이면 뭐, 팁이라도 준대? 감사라도 한대? 아니면 월급이라도 올려준대?
쟤는 이 촬영으로 돈과 명예를 다 얻지만, 너한테 차려지는 건 뭔데? 물을 끓이긴 무슨!
그만해. 이 건 우리 일이잖아. 내가……
제가 할게요.
봐, 눈치가 빠르잖아?!
싸우지 말자……
너한테 가르쳐 주는 거잖아!
봐봐, 이 촬영팀에서 널 생각해 주는 사람이 누구야? 한 명은 아무 말도 없고, 한 명은 자기 일만 하고. 그럼 너는? 언제까지 바보처럼 이 촬영팀에서 혹사당할 건데?
남이 주는 일을 받아서 찍으라는 걸 찍고, 정해진 틀에 갇혀 자신만의 생각을 약간 표현하고는, 그게 뭐 대단한 작품이라도 될 줄 아나 봐?
꿈 깨!
그, 그럼 우리도 찍고 싶은 걸 찍으면 되잖아……
씬 씨처럼, 자기가 찍고 싶은 대로 찍으면……
……닥쳐!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겠냐고?
왜……
하아, 관둬.
너한테는 가르칠 가치도 없고, 이 다큐멘터리 자체도 시간 낭비다.
나는……
……
삐빅, 삐빅.
삐빅.
“오늘 스터가 떠났다. “
“그는 이번 촬영에 관한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이번 촬영에 대해서만 그랬던 게 아닐 수도 있다.”
“난 아직 갈 수 없다. 나는 이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나는 그냥 이 작품에 내가 전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나마 표현되어도 매우 만족스러울 것 같다.”
“나는 씬 씨처럼 완전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니야,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지. 지워야겠다……
“최근 며칠간의 촬영을 통해, 씬 씨는 가장 마음이 고양되는 순간을 기록하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전장 폐허는 발굴할 가치가 크긴 하지만, 이곳의 여건은 생각보다 열악하다. 나도 이런 곳은 처음이다.”
“게다가 촬영 스태프도 점점 줄어, 조금 걱정……”
아, 돌아왔군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스터는 떠났어요?
……네.
스터는 처음부터 이번 촬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 촬영은…… 계속할 수 있을까요?
……
“나는 원하는 전장의 폐허 영상을 찍었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과 다르지만…… 물론 같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 전쟁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씬 씨를 촬영하는 동안, 이 폐허를 표현하고 싶은 그분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촬영이 끝나고 그분과 이야기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렌즈가 폐허에서 캠프로 달려오더니 쪽지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촬영 스태프가 한 명씩 떠나게 되면서, 촬영팀 사이의 은밀한 뒷담화가 점점 공개적인 소동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싸우기도 하고 파업하기도 하면서 한 명 한 명씩 빠져나갔다.
씬의 뒷모습은 이러한 소란스러움에서도 한결같이 조용했다. 그녀는 천천히 카메라를 들더니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녀가 경험하고 기록하는 것은 전장의 폐허뿐만이 아니었다.
……
삐빅!
삐…… 삑……
딩동, 딩동!
“씬 씨의 마무리 작업과 함께, 보름 동안의 촬영이 드디어 끝났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촬영 스태프도 사흘 전에 떠났다. 그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절대 완성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다큐멘터리 소재를 충분히 모았다. 이제부터는……”
……
……음, 씬 씨?
삐빅!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사람들은 더 떠났는데 왜 끝까지 남은 거지?”
음, 앉아서 얘기해요, 씬 씨.
……
씬 씨는 전장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문명과 야만의 충돌? 격렬한 역사의 흐름? 아니면…… 가장 근본적인, 목숨을 잃는 것일까요?
제가 전장을 찍으려고 한 건 전쟁이 저의 모든 걸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장은 아니지만, 본질은 변함이 없죠.
고향을 떠나 이곳에 와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저는 다양한 사람과 풍경을 찍었습니다. 그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적어도 그들은 살아있습니다.
저도 살아는 있지만, 삶을 실감 나게 하는 걸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전장을 와보고 싶었어요.
저는 돌아갈 용기도 없고, 그때 그 전장에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로 올 수밖에 없었어요.
먼 훗날, 사람들이 카메라에 담긴 폐허를 보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 또한 그때의 전장을 마주할 용기가 생길까요?
씬은 아무 말도 없었다. 촬영 스태프가 뒤에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때까지 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떠나려 했다.
그러자 뒤에서 조용한 셔터음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씬이 천천히 카메라를 내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사진작가가 이런 표정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는 사진작가의 느리지만 확고한 말이 들려왔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전장의 폐허, 사람들이 남긴 흔적.”
“그리고 다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