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홀로 가는 사람

홀로 가는 사람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방학 동안 대학생인 아그니와 친구들은 마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림 빌리턴의 가난한 마을로 간다. 하지만 그녀는 학생들이 한 일은 처음부터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마을을 떠나기 전날 밤 알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파이어휘슬


우쭐대는 학생

드디어, 우리가 드디어 건물을 완성하는 날이 왔구나!

우쭐대는 학생

우리가 처음으로 대학과 이동 도시를 벗어나, 2주 내내 우리 손으로 벽돌 하나하나를 쌓았다고……

우쭐대는 학생

가난과 고난 속에 살아가는 이 마을을 위해 학교를 세웠어, 그것도 우리가!

우쭐대는 학생

아, 벌써부터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을 끝자락 공터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십여 명이 둘러 앉아 신나게 재잘대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이제 막 완성한 2층짜리 건물이 삐딱하게 서 있었다.

차분한 학생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해, 귀에 딱지 앉겠어.

차분한 학생

솔직히 말해서 이 학교를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아그니라고.

아그니

하하, 무슨.

차분한 학생

진심이야.

차분한 학생

고상한척 토론 밖에 할 줄 모르는 우리같은 대학생한테 림 빌리턴 빈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종일 떠들어 봐야 뭘 알겠어. 이동도시 밖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본 적조차 없는걸.

차분한 학생

만약 네가 우리에게 현실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마을이 얼마나 빈곤한지 결코 알지 못했을 거야……

우쭐대는 학생

제군들, 우리의 마음이 담긴 이 건물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때!

차분한 학생

윽, 쟨 또 뭘 하려고……

우쭐대는 학생이 품에서 샴페인 병을 꺼내 흔들었다.

코르크가 빠지며 사방으로 샴페인이 튀었고, 그것은 우연히 학교의 기울어진 정문과 문틀 사이에 박혀버렸다.

학생들

와하하하하하하……

차분한 학생

하하하…… 아그니, 이 녀석은 정말…… 못 말린다니까……

차분한 학생

아그니, 무슨 일 있어? 하나도 안 기뻐 보이는데.

아그니가 멀리 있는 마을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이제 막 지어진 학교도, 그 학교를 지어준 대학생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듯 무표정한 얼굴로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다.


촌장

누구지?

아그니

촌장님, 안녕하세요? 전 아그니라고 합니다. 학교를 지은 대학생이에요.

촌장

너무 늦었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일 얘기하지.

아그니

저희는 내일 가보려고요. 인사드리러 왔어요.

촌장

인사는 무슨,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나면 돼.

아그니

인사만 드리러 온 건 아니고, 다른 일도 있어서요……

아그니

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이걸 드리려던 걸 잊고 있었어요.

아그니

학교 준공 축하주예요.

촌장이 술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자 아그니는 할 수 없이 술병을 탁자 위에 놓았다.

촌장

촌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네. 그냥 가져가게나.

아그니

맛이 좋은 샴페인이에요. 한 번 마셔보세요.

촌장은 고개를 저으며 탁자 위의 술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알아볼 수 있는 수 있는 그림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촌장

이건 무슨 그림이지? 포도밭인가? 포도밭과 '샴페인'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아그니

와인 제조상이 편한 대로 갖다 붙인 그림과 이름일 거예요. 그냥 일반적인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촌장

흥, 우리가 직접 담근 술도 샴페인 못지 않아.

아그니

그럼…… 내일 떠나기 전에 한 번 바꿔서 시음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저희도 마을에서 담갔다는 술맛을 보고 싶은데……

촌장

진작에 씨가 말랐지.

촌장

이 주변에 철광석이 발견된 이후로 홉을 심는 건 고사하고 원석충조차도 이곳에 둥지를 틀려 하지 않아.

아그니

그럴 리가요.

촌장

“그럴 리가”?

촌장

여기 그렇게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채굴 플랫폼에서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 진동이 발생하면서 땅이며 산도 다 흔들리는데 원석충이라고 살 수 있을까?

아그니

며칠 전 채굴 플랫폼에 움직임이 있는 것 같긴 했는데, 저희는 전혀 몰랐어요……

마을 사람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멀리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촌장

이젠 알겠나?

촌장

아가씨, 와인은 도로 가져가게.

아그니

하지만……

촌장

다른 볼일이 더 남았나?

아그니

사실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처음에는 다들 환영해주셨던 것 같은데, 학교를 다 짓고 나니까 오히려 차갑게 대하시는 느낌이 들어서…… 저희가 뭘 잘못한 게 있을까요?

아그니

학교가 잘 지어지지 않아서라면 저희가 책임지고 더 믿음직스러운 시공팀을 찾아 볼게요……

촌장

이제 떠난다고 하니 솔직하게 말하지.

촌장

이 마을엔 처음부터 학교따위 필요 없었네.

아그니

네?

촌장

우린 학생들이 오면 마을의 수입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지. 먹고, 자고, 혹시라도 기부까지 한다면…… 그게 다 돈이니까.

촌장

그런데 그 학생들은 마을에서 먹지도 자지도 않는 데다 공터에 천막을 쳤지……

촌장

최근 며칠간 자네들을 도와 나무를 베고 벽돌을 굽는 일 외에 마을에서 한 장사는 바비큐 구운 것뿐이었는데 무슨 돈을 벌었겠나? 누가 기분이 좋겠나?

아그니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학교에서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면 지금의 삶을 바꿀 수……

촌장

지금의 삶이 바꾼다고? 우리가 왜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하나?

촌장

됐어, 다 헛물 들이키는 소리지. 내 하나만 묻지.

촌장

누가 그 아이들을 가르치겠나? 미래도 없는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선생이 있을까? 이동 도시에 가는 편이 낫지 않겠어? 자네들 같은 부잣집 애들을 가르치는 편이 낫잖아? 아닌가?

촌장이 '탕'하며 술병을 탁자 위에 다시 올려 놓았다.

아그니

아……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아그니

학교를 짓고 합리적인 급여만 준다면 분명 누군가 와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촌장

여긴 광산도, 광업 회사와 진행 중인 계약도 없어. 장삿길조차도 모두 이곳을 우회하지. 돈을 얼마 더 준들 매일 이런 외진 곳까지 와서 아이들을 가르칠 사람이 있겠나?

촌장

우린 자네들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야, 괜히 헛수고하지 말아. 가보게.

촌장

술도 가져가고.

아그니

아니에요, 이거라도……

아그니

잠시만요!


우쭐대는 학생

남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라고?

우쭐대는 학생

그건 도저히 안 되겠어, 미안해, 아그니.

차분한 학생

선생님을 고용할만한 돈을 좀 모아서 주는 건 어떨까?

아그니

나도 생각해 봤는데, 여긴 교통이 안 좋아서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차분한 학생

아그니, 까먹은 건 아니지? 5일 뒤면 개학이야.

아그니

……개학?

차분한 학생

난 빨리 돌아가서 몇 학점을 더 들어야 해. 안 그러면 졸업이 지연될 거야.

아그니

개학? 학점? 졸업 지연?!

차분한 학생

아…… 아그니?

아그니

(하아……)

아그니

너희한테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고, 여기 아이들은 애초에 학교를 다니지도 못 하는데, 우린 개학이니까 가야 한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지 않아?

차분한 학생

하지만 우린 학생이야. 학생이 개학에 맞춰 학교에 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그니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아그니를 위로했지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녀를 두고 이내 하나 둘 흩어졌다.

챙겨야 할 짐이 있고, 따야 할 학점이 있으며, 취득해야 할 졸업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곳에서 아그니와 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촌장

지금이라도 소리 지르며 쫓아가면 차에 탈 수 있을 게야.

아그니

남기로 결정한 이상, 생각을 바꾸진 않을 거예요.

촌장

말하는데, 남아서 선생이 되어도 소용 없네.

아그니

적어도 지금은 있다고 생각해요.

촌장

고집이 세군.

아그니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어요. 뭐든 한다고 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라 부모님이 골치 깨나 썩으셨죠.

두 사람은 뒤돌아 천천히 마을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학교나 교사라는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어른들이 생계를 잇느라 바쁜 낮 시간에는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을로 돌아온 아그니는 마을 사람들의 허락을 얻어 그럴듯한 시간표를 짜고 수업 계획을 세웠다.

아그니는 사칙연산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아직 가장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도 못 한다는 사실을 수업 시작과 함께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도 안 지나 그녀와 아이들은 모두 지쳐 버렸다.


촌장

모두 자네가 아이들을 진지하게 가르친다는 걸 알고 있네. 자넨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강인한 것 같군, 아그니.

촌장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아이들과 놀아주기만 해도 되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 뭐 있나?

아그니

제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요?

촌장

그럼 자네가 뭘 더 할 수 있나?

촌장

아이들에게 쓰고 셈하는 걸 아무리 가르쳐봐야 무슨 쓰임이 있겠나?

아그니

왜 쓰임이 없죠?

아그니

이건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에요. 이걸 알고 있어야 더 높은 수준의 학습을 할 수 있고 삶도 바꿀 수 있어요……

촌장

또 나왔군, 삶을 바꾼다는 말.

촌장

아그니, 마을 사람들이 자네를 좋아하는 건 열정적이고 선량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지 자기들의 삶을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야.

촌장

지난 수년간 맥주로도 못 바꿨던, 우리의 삶을 바꾼 게 뭔지 아나? 공업 회사야.

아그니

하지만 아이들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면 분명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촌장

어떻게 더 나아지지? 대학에 가서?

아그니

물론이죠, 그것도 '더 나은' 삶의 일부예요.

촌장

그럼 자네같은 대학생을 길러내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아그니

……저도 제가 바보같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한텐 도중에 포기하는 게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려워요.

촌장

정말 고집이 정말 세군. 내가 자네 아빠였다면 나도 골치 깨나 썩었겠어.

촌장

자네 마음대로 하게나.

아그니

그 샴페인 아직 여기 있는 거 맞죠?

촌장

마시고 싶나?

아그니

하하, 그건 축하용으로 남겨 둔 건데요. 지금 마셔서 뭐해요, 위로용?

아그니

사실…… 오늘이 대학 개강일이거든요.

아그니

오늘부터 한 학기동안 아이들을 가르칠 테니까……

아그니

아이들이 뭘 배웠든 아니면 배운 게 없든, 학기가 끝나는 그 날, 마을 분들이랑 함께 이 샴페인을 따서 마시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촌장은 아그니를 바라보고는 부서진 찬장 깊숙한 곳에 놓여 있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샴페인을 바라보았다.

멀리 채굴 플랫폼에서 시추하는 소리와 함께 병 속 거품이 액체 표면에서 벗어나려는 듯 보글보글 떠 오르고 있었다.

촌장

자네가 가져온 술이니 자네 뜻대로 하게.

그날 이후, 아이들은 이름을 쓰는 법을 배우고, 덧셈과 뺄셈을 배웠으며, 몇몇 똑똑한 아이들은 곱셈과 나눗셈도 배웠다.

아그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어려서부터 줄곧 해온 불장난으로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적어도 배는 고픈데 젖은 장작에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피어오르면 일단 “아그니에게 가 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아그니

(기지개를 켠다)

아그니

오늘 수업도 다 끝난 건가……

촌장

피곤한가?

아그니

견딜만 해요.

아그니

보세요. 일반 학교에서 한 달 반 교육 과정을 저흰 한 달 만에 마쳤어요. 게다가 한 한기 진도의 반을 벌써 다 진행했다고요!

아그니

한 달만 더 지나면 샴페인을 딸 수 있겠어요……

활기 넘치는 아이

아그니 선생님, 아그니 선생님!

아그니

왜 그러니?

활기 넘치는 아이

아그니 선생님, 마을 입구에 자동차 여러 대가 왔는데 거기서 내린 한 단정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선생님 이름을 부르면서 찾고 있어요!

아그니

……

활기 넘치는 아이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그니

……아니야.

활기 넘치는 아이

그럼 전 갈게요!

촌장

부친이신가?

아그니

……그런 것 같아요.

아그니

이 샴페인은 못 마시겠네요.

촌장

(아그니의 어깨를 토닥인다)

촌장

자네 대신 맡아 두지. 어서 부친께 가보게.


아그니

아빠.

아그니의 아버지

어디 보자…… 괜찮은 거니? 다친 데는 없고? 살이 좀 빠졌구나.

아그니의 아버지

이제 충분히 봐준 것 같은데, 돌아가자꾸나.

아그니

전 돌아가지 않아요.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을 사람들과 약속했는데 아직 절반밖에 하지 못했다고요.

아그니의 아버지

(한숨)

아그니

한 달 동안 반 학기 과정을 마쳤어요. 아이들이 이제 이름도 쓰고 덧셈과 뺄셈도 할 수 있어요! 한 달만 더 하면 돼요!

아그니의 아버지

아그니,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거 너도 잘 알잖니.

아그니

의미가 없다고요?!

아그니의 아버지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쓰고 셈을 할 줄 안다고 해서 자기들 부모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아그니

……

아그니의 아버지

학교로 돌아가거라.

아그니의 아버지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는단다. 네 졸업이 1년 늦어지면 너에게 광산 업무를 넘겨 주는 것도 1년이 늦어지게 되겠지……

아그니

말씀드렸잖아요, 광산은 물려 받을 생각 없다고!

다른 차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이렇게 부녀가 싸우는 장면은 익히 보아오던 터였다.

아그니의 아버지

아그니, 나도 몇 번이나 말했잖니. 이렇게 착한 딸이 있어 행복하다고. 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알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도 알고 있지.

아그니의 아버지

그런데 남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려면 자신이 더 높은 곳에서 전체 상황을 조정하면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려 하지 않는구나.

아그니

그 얘기는 그만 하세요. 얘기해 봤자 결론도 나지 않잖아요!

아그니의 아버지

……이제 심지어 아비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는 게냐.

아그니

……

아그니의 아버지

아그니, 그럼 약속을 하나 하자.

아그니의 아버지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이 없는 게 걱정인 거지? 마을이 선생을 고용할 수 있도록 내가 도우마. 돈을 더 주면 분명 오려는 사람이 있을 게야.

아그니

드디어 시작하시는 건가요? 제가 아끼는 사람을 협상 카드로 써서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

아그니의 아버지

이러지 마라, 얘야.

아그니의 아버지

난 그저 네가 내 말을 잘 생각해 봤으면 하는 거란다.

아그니의 아버지

네가 내 위치에서, 심지어 나보다 더 많은 걸 갖게 된다면 이 마을과…… 더 많은 가난한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거라.

아그니

……

아그니는 아버지의 눈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아그니

(이를 악문다)

아그니

마을로 돌아갈게요…… 이런 얘기 하실 거면.


아그니

갈게요, 절 찾으러 온 거예요……

촌장

그러니까 자네 집안이……

촌장

광산 사업을 한다는 거군.

아그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촌장은 찬장 깊숙한 곳에서 샴페인 병을 꺼내 아그니에게 안겨 주었다.

촌장

아그니, 이제 가게.

촌장

우린 처음부터 학교가 필요하지도 않았어. 광산 소유자가 지원하는 학교는 더더욱 필요 없네.

아그니

이러지 마세요……

촌장

어쩔 수 없네.

촌장

주변 지역에서 철광석이 발견된 이후로 원석충조차 마을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고 말했었지. 그럼 마을에 홉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말해줬었나?

아그니

아니요……

촌장

나가게나. 둘러 보면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촌장

이 황무지를 보게. 예전에는 홉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버려졌지.

아그니

……

촌장

채굴 플랫폼이 처음 세워졌을 때, 우리는 광업 회사가 오면 마을에도 분명 광부들이 늘어날 것이고 물질적 수요도 훨씬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네……

촌장

광업 회사가 생업에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 거지.

촌장

하지만 그들은 이리로 오지 않았네.

촌장

그들은 공급체인과 거래소를 세우고는 모두에게 개방했지. 그 안엔 없는 게 없더군. 음식, 과일, 광목…… 그래, 그리고 맥주까지.

촌장

게다가 우리보다 가격도 낮았네!

촌장

그렇게 광업 회사와 거래는 커녕, 우리와 거래하던 마을들조차도 우릴 찾지 않게 되었지. 광업 회사 물건이 더 싸고 좋았거든.

촌장

그래서 홉을 심지 않는 걸세. 어차피 아무도 우리 맥주를 사지 않고, 마을 사람들조차 마시고 싶으면 광업 회사 맥주부터 생각하니까.

촌장

그때 광업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서 토지 양도계약만 하면 보상금도 주고 광업 회사에 고용 시켜준다고 하더군. 우대해 준다면서 말이야……

촌장

흥, 우대는 개뿔!

촌장

하지만 고용이란 게 광업 회사가 원하면 언제든지 짐을 싸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지. 그때 가서 쫓겨나보니 수입도 없어지고 농작물을 재배할 땅도 모두 없어져있더군!

눈앞에 있는 촌장을 보며 아그니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내 위치에서, 심지어 나보다 더 많은 걸 갖게 된다면 이 마을과…… 더 많은 가난한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거라.”

촌장

아그니…… 난 자네를 믿고 싶네. 자넨 정말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라고.

촌장

하지만 자넨 곧 떠날 것이고 자네 부친의 광업 회사가 학교를 지원해 줄 거라고 내게 말하고 있는 지금…… 내가 어떻게 자네 부친과 그 회사를 믿을 수 있겠나?

촌장

그리고……

촌장

지나친 말이라는 거 알지만, 아그니……

촌장

자네와 자네 부친 그리고 부친의 경쟁 상대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그니

어떻게?! 제가 그 사람들과 같다는 거죠?!

촌장

자네도 그 사람들도 모두 우리의 후손이 땅을 잃고, 채굴 플랫품이나 이동도시로 가서 불안정한 삶을 살길 바라지.

아그니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많았지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아그니는 마을에 오래 머물면서 이런 굉음과 진동에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이번 굉음은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

촌장

젠장, 이번에는 왜 이렇게 심하게 흔들리는 거지?!

마을 근처에서 대형 채굴 플랫폼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마을을 지나갔고, 마치 재앙을 예고하는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휘청이던 아그니는 원석충조차 이곳에 둥지를 틀지 않으려는 이유를 마침내 이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곁눈질로 다른 것을 보았다.

아그니

학교가!!

촌장

학교?!

대형 채굴 플랫폼은 점차 멀어졌고, 진동도 점차 가라앉았다.

그리고 풋내기들이 지어 안 그래도 곧 무너질 것 같았던 2층 건물이 진동으로 무너져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아그니

……

진동이 모두 멈추고 나서야 아그니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촌장

하교한 뒤라 안에 아이들이 없었던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촌장

……

촌장

아그니, 우리 걱정은 말고 이제 돌아 가게나.

촌장

자네가 좋은 사람이란 건 알지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린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야.

촌장은 아그니를 혼자 둔 채 마을로 돌아갔다.

그가 걸아가다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뒤를 돌아보니 아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고집 센 아가씨라며, 저 아가씨의 아버지보다는 싫지는 않지만, 결국엔 더 체면을 차리는 위험한 인물이 될 것이라며 촌장은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뒤돌아 가려는 순간 아그니가 바닥에 놓인 샴페인을 집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그니가 양손으로 샴페인 병을 잡고는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모습을 봤다. 병 속에 갇혀 있는 거품이 마치 누군가의 영혼이라도 된 듯이.

샴페인 병을 흔드는 데 그녀는 모든 힘을 다 소진한 것 같았다. 마침내 마지막 기운이 다한 순간 그녀는 병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병 입구를 하늘로 향하게 했다.

펑.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코르크 마개가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것은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학교의 잔해 어딘가에 떨어질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그니가 샴페인 병을 거칠게 던지고는 어딘가로 성큼성큼 가 버린 모습이었다.


아그니의 아버지

아그니, 벌써 몇 시간째 아무 말도 하지 않는구나.

아그니

……

아그니의 아버지

그렇게 불평하는 걸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단다.

아그니

……

아그니의 아버지

아그니, 현실을 직시해라. 광산업이 발전할수록 이런 마을의 희망은 점점 사라지는 법이다.

아그니의 아버지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과거를 포기하고, 조금만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미래를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후손 모두 진정으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게다.

아그니의 아버지

그리고 나와 미래의 너는 이러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아그니의 아버지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그 사람들을 과거의 환상으로부터 꺼내야 한다는 사실을 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이 과정은 짧을수록 고통이 덜 한 법이야.

아그니

(헛웃음)

아그니

……그렇다면 이미 큰 진전을 이루셨다고 말씀드려야겠네요.

아그니

우리가 마을에 지은 학교가 무너졌거든요. 채굴 플랫폼이 마을을 지나며 흔들어댄 덕에요.

아그니의 아버지

무너졌다고?

아그니의 아버지

그때 정말 심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난 몰랐단다. 학교 재건을 도와주마……

아그니

혹시…… 아빠와 저 사이의 약속이 아직 유효한지 걱정하시는 거예요?

아그니의 아버지

……

아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그니

말씀하신 내용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요. 차에 탔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생각해 봤는데요.

아그니

이해한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거의 아무것도요.

아그니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깨달았어요.

아그니의 아버지

……

아그니

아빠는 좋은 고용주이자, 좋은 시민이고, 그리고…… 좋은 아빠예요. 이건 진심이에요.

아그니

하지만 림 빌리턴은 체면 차리는 좋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아그니

전 두려워요. 제가 체면 차리는 좋은 사람인 게 너무 익숙해져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지 못할 까봐요. 예를 들면…… 학교가 무너지는 일들 같은 거요.

아그니

그래서 사업을 물려 받고 싶지 않은 거예요……

아그니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