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깃털과 노래
라이타니엔의 오지에서 또 한 명의 위독한 아이를 치료해 희망을 되찾아 준 나이팅게일과 니어. 하지만 정작 의사인 나이팅게일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마는데……
4:37 P. M. 날씨/맑음
라이타니엔 동북부의 한 마을
콜록, 콜록콜록……
어떡하지, 루카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엄마, 나 너무 아파…… 아파…… 다리가 불타는 것 같아.
쉿! 루카, 목소리를 낮추고 조금만 참아보렴. 안 그러면 옆집 토마스에게 들릴 거다.
넌 사내대장부잖니. 못 참겠으면 베개를 물려무나.
하도 물어서 솜이 다 뭉개졌어요! 땀도 잔뜩 나고 열도 아직 그대로인데…… 루카를 마르코스 선생님께 데려가는 건 어떨까요?
안 돼. 그건 절대로 안 돼.
루카의 다리를 봐…… 거무스름한 점들……
이건 광석……
쉿, 조용히 해. 말하면 안 돼. 루카가 들어선 안 된다고.
야닉네 벤의 손에도 이런 게 생겨서 끌려갔지. 당신도 알다시피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잖아.
흑…… 루카…… 우리 루카를 데려가게 할 순 없어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 그냥 이렇게……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엄마…… 엄마……
내 손을 물어라. 루카, 조금만 더 참아보렴…… 우리 씩씩한 루카는 금세 괜찮아질 거야.
기적이 일어날 거야…… 분명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그렇게 믿어야 해.
계신가요?
누가 문을 두드렸어요! 이럴 때 찾아왔다는 건 우리 루카를 데려가려는 걸까요?
겁먹지 마. 창문으로 살펴볼 테니까. 당신은 루카를 안고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마.
아무도 안 계십니까.
쿠란타? 옷차림을 보니 기사인 건가? 우리 마을에서는 별로 본 적 없는데……
너무 경계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떠돌이 의사인데, 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 하여……
그…… 그렇군요. 물이라면 당연히 드리죠.
컵은 가져가셔도 됩니다. 다 마셨으면 얼른 가주십시오.
……
왜 그러지, 리즈? 물에는 아무 문제 없던데.
소리 없는 고통이…… 느껴져요…… 바로 여기서요.
맞아요. 희미하지만 또렷해요.
누군가 도움을 청하고 있어요.
모두 그렇게 말한다면……
……혹시 집에 광석병 환자가 있나?
광석병!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무척 아파하고 있죠? 그래도 아직 절망적인 상태는 아니에요.
제가…… 고쳐드릴 수 있어요.
이…… 이 뿔…… 이 뿔 모양! 너, 그리고 또 너, 너희들 모두 살카즈인 거냐!
진정해라. 아까 말했다시피 우린 의사다. 병세를 완화할 수 있으니, 집에 광석병 환자가 있다면 대가 없이 치료해 주겠다.
우리 집엔 환자가 없다고 했을 텐데! 치료 같은 건 필요 없어!
당장 나가!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는 쿠란타! 그리고 너희 살카즈들도 모두 내 집에서 당장 꺼져!
보아하니 아픈 식구를 우리에게 맡기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 것 같군.
그런 일은 자주 겪었잖아요.
일반적으로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신뢰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거겠죠.
꽤 긴장한 것 같던데, 아무래도 우리 신분 때문에 경계하는 것 같군.
언제나 환영받는 니어 씨의 말도 통하지 않았는데 저랑 리즈 씨는 두말할 것도 없겠죠. 살카즈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니까요.
그동안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거다.
우리가 헌병대를 만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래, 헌병대를 설득하는 게 아픈 환자를 둔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니까.
지금 그런 '설득'은 가급적 피해야 해요.
그래, 그동안 리즈의 건강이 좋지 않았으니…… 나도 같은 생각이다.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애석하지만 저 아이를 계속 저렇게 둔다면 상황은 점점 나빠지겠지.
……괴롭네요.
리즈, 어디 안 좋나?
저 아이, 무척 괴로울 거예요…… 좁은 방안에 갇혀서 아픔을 참아야 하니까요.
리즈 말이 맞다. 아이는 갇혀 있다. 신음조차 마음대로 내지 못한 채로 말이지.
감염자를 학대하고 있는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아이 아버지가…… 광석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얼굴에서 증오의 빛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다른 곳에는 증오가 넘쳐나고 있죠.
그렇다면 아이를 지키려는 건가?
라이타니엔 사람들은 감염자를 끌고 가 격리시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이가 병에 걸린 게 맞다면, 절대 헌병대에 아이를 내주지 않으려 할 거다. 그래서 어떻게든 말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그 걱정 때문에 아이의 생명이 점점 꺼져가고 있어요.
사랑이라는 굴레에 갇혀 희망의 끈을 놓치고 있는 거죠. 생기는 점점 메말라가면서요……
으윽……
리즈!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죠. 계속 이러다간 몸에 무리를 줄 거예요.
오늘 먼 길을 걸어온 터라 척 봐도 힘들어 보이네요. 쉬는 게 좋겠어요.
나한테 기대라. 텐트는 거의 다 설치했다.
모닥불을 피워서 뭐 좀 먹도록 하죠.
날이 곧 어두워질 거예요. 라이타니엔의 헌병대는 발이 빨라요. 어쩌면 내일 이곳에 들이닥칠지도 몰라요. 그들이 오기 전에 조용히 떠나는 게 좋겠어요.
맞아. 그들 앞에 나타나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니지.
리즈, 내가 부축할 테니 여기에 좀 눕도록. 여기가 훨씬 따뜻할 거다.
네.
제가 보초를 설 테니 모두 쉬어요.
헌병대에요. 역시 예상대로네요.
샤이닝, 일어난 건가? 방금 막 잠든 것 같았는데……
충분히 잤어요. 당장 떠나야겠어요. 리즈 씨, 걸을 수 있겠어요?
네. 괜찮아요.
윽……
안색이 창백한데 어젯밤에 푹 쉬지 못한 거 아니에요?
괘…… 괜찮아요, 그냥 조금 어지러워서.
헌병대가 어제 만난 그 사람 집으로 갔다. 샤이닝, 우리 정말 이대로 갈 건가?
……관목 뒤편이라면 눈에 잘 띄지 않을 거예요.
여기에 숨으면 우리를 찾아내지 못할 거예요.
니어 씨, 리즈 씨를 부축해 주세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임기응변하시고요.
라이스 씨, 문을 여십시오.
아……
라이스 씨!
제 말이 맞죠? 뭔가 수상하다니까요.
요 며칠, 이 집 아들 루카라는 아이가 근처 들판에서 놀다가 돌아와선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더군요.
그 후로 며칠 동안 문을 굳게 닫더니, 아무리 불러도 내다보지도 않더라고요.
저…… 전 그저 아이를 정성껏 돌보느라……
흥,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대체 어떤 병에 걸렸길래 멀쩡했던 애가 온종일 드러누워 있는 건데?
게다가 루카가 그냥 아픈 거였다면 왜 마르코스 선생님께 데려가지 않은 거지?
확실히 뭔가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고 말고요! 모두의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죠.
이렇게……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에 광석병이 창궐하는 걸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네, 모든 감염자는 반드시 근처의 격리 지역으로 집결해야 합니다.
그렇다마다요! 라이스, 자네도 들었지? 그냥 격리 지역에 가는 것뿐이라고. 거기라면 루카를 더 잘 돌봐주실 거야. 집에 숨어있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하지만……
하지만이라뇨? 라이스 씨, 지금 당장 문을 여십시오.
맞아, 아빠. 얼른 문 열어 줘.
너무 배고파. 빵이 먹고 싶어. 다섯 여섯 조각은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어, 어엇?!
앗, 토마스 삼촌 미안! 얼른 집에 가서 아침을 먹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날 거야. 다치진 않았지?
루카,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이랑 나가 놀다가 이제 온 거니?
죄송합니다, 헌병님. 이쪽이 제 아들 루카랍니다. 일부러 문을 닫은 게 아니라 아이가 집에 없던 터라……
이 아이가 루카입니까? 이렇게나 건강한데, 정말 아팠던 것 맞습니까?
하하, 감기 기운이 좀 있긴 했죠. 저 또래의 아이들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잔병치레를 하곤 하니까요.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본 감염자분 중에 이렇게 활기 넘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르코스 선생님?
어, 어엇? 검사해 보라는 뜻인가? 어디 한번 볼까……
팔 좀 볼까? 온통 땀투성이로군. 그래도 반듯하네.
이번엔 다리를……
크흠.
다리가 온통 진흙투성이군. 정말 정신없이 놀고 왔구나.
……
진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자아,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이보게, 이른 아침부터 자네한테 끌려다니느라 배도 고프고, 눈도 침침하군. 더 이상 봐봤자 똑같다고.
아이를 돌려보내는 게 어떤가? 배고프다는데……
걱정 말게. 루카가 나중에 또 아프면 그때 자세히 검사할 테니. 문제가 있으면 자네한테 꼭 알려주겠네.
후우, 위험했다……
루카, 우리 씩씩한 루카야! 정말 괜찮은 거니? 아빠한테도 보여다오!
정, 정말 괜찮아진 건가? 마음껏 달리고, 밥도 잘 먹고……
광석이…… 아직 남아있지만, 많이 사라졌어. 부기도 많이 빠지고…… 그래서 마르코스 선생님도 못 알아보셨나 보다.
이, 이런 게 기적인 건가?
아빠, 기적이 아니라 새가 고쳐준 거야!
……새?
응, 엄청 예쁜 새! 가장 푸른 호수보다도 파란 새! 그렇게 예쁜 새는 처음 봤어!
어젯밤에 창문을 통해 내 침대로 날아왔어.
새하얀 빛에 둘러싸인 새였어. 반짝거리는 게 엄청 예쁘고, 따뜻하고……
둘이 가까이 오니까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새? 빛나는 새?
응, 맞아!
루카, 네가 많이 아파서 환상을 봤나 보다.
환상이 아냐. 노래도 불러줬는걸! 파랑새가 예쁘게 노래했다구!
그래그래, 알았다……
고맙다, 파랑새야.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 아니, 진짜일 리 없지만, 어쨌든 루카한테 아름다운 꿈을 선물해 줘서 정말 고맙구나.
……
가야 할 것 같네요.
……화 안 났어요?
제가 왜 화를 내죠? 한밤중에 환자한테 날아간 새 때문인가요?
아……
아, 맞다. 새가 빛난다고 했죠.
흠, 크흠 크흠……
미안하다, 샤이닝. 어젯밤에 리즈가 잠을 설치는 걸 봐서……
샤이닝 씨, 제가 니어 씨한테 아이를 치료해 주자고 했어요.
안 그랬다면…… 잠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아파하는 아이의 신음이 머릿속에서 밤새 떠나지 않았거든요.
다리…… 다리에 힘이 있었다면 혼자 갔을 텐데……
그러니까 니어 씨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사과는 됐어요. 우린 의사니까요. 두 사람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오늘 헌병대가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아이와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번엔 무사히 넘어갔지만, 아마 얼마 있다가 이사해야 할걸요.
의사는 잠깐의 고통만 치료해 줄 뿐, 뒤틀린 건 바로잡을 순 없어요.
알아요, 샤이닝 씨. 하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진 못했어요.
아이가…… 무척 아파했어요.
그런 아이를 보니 저도 무척 아팠고요.
저는……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그래서 아이를 돕고 싶었어요…… 아픔을 덜 수 있게…… 방에서 나와 다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리즈 씨, 궁금한 게 있어요. 솔직하게 말해봐요. 자신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건가요?
네?…… 꼭이라고요?
예전처럼요.
예전처럼…… 예전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는 그들이 절 찾아와서 절 가둔 거였어요…… 어디도 가지 못한 채 그들을 치료해야만 했죠.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지금은 많은 곳을 돌아다니죠. 제가 그들을 찾아갈 거예요.
아프고 다친 사람들을 찾아갈 거예요. 그들의 아픔이 느껴져요. 더는 아프지 않게 돕고 싶어요.
그들에게…… 두 손을 내밀어 상처를 감싸줄 거예요. 저의 파랑새가 그들의 귓가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지저귀도록……
아이가 새를 봤을 줄은 몰랐어요. 아이는 꿈에서 활짝 웃었어요.
그때, 제 눈앞에서…… 늘 저를 괴롭히던 조각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새도 경쾌하게 춤추기 시작했고요.
이런 게 기쁨인가요, 샤이닝 씨? 그런 거라면 전 아주 기쁜 것 같아요.
……그렇군요. 제가 원하는 대답이네요.
네, 리즈 씨. 그런 게 기쁜 거예요. 기쁘다는 감정을 이젠 알았네요.
그런가요? 이런 게 기쁘다는 건가요? 그럼 전 이젠 으…… 으읔……
괴로워하고 있군요.
네, 샤이닝 씨…… 괴로운 것 같아요.
왜…… 리즈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일어설 힘도 없다니……
리즈 씨가 선택했으니까요.
……어젯밤에 아이를 치료해 준 것 때문에?
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 터라 간단한 치유술로도 부담이 됐을 거예요. 게다가 급하게 광석병을 치료했으니 점점…… 나빠질 거예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말렸을 거라고요?
……아이를 치료해 주고 싶었어요.
그게 리즈 씨가 원하는 거였죠, 설령 그 때문에 자신이 다치더라도……
그래, 샤이닝…… 난 리즈를 말리지 못했을 거야.
네. 그게 바로 선택이죠. 두 사람의 선택이요. 리즈 씨처럼 눈에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은 아픔을 치료해 주기 위해 두 사람은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쪽을 선택했어요.
저는 두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겠죠.
샤이닝 씨……
하지만…… 하지만 리즈 씨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있었으면 해요.
그리고…… 마가렛 씨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요.
더 많은 선택권, 그건 무슨 뜻이죠?
바깥세상을 줄곧 보고 싶어 했죠, 리즈 씨는……
네, 그게 제 가장 큰 소원이에요. 샤이닝 씨, 니어 씨와 함께 있으면서 이미 많은 곳을 다녀봤고요.
그곳들은…… 무척 아름다웠어요. 가끔은 증오와 아픔이 세상을 뒤덮기도 했지만 전 그런 상처 아래 새로 돋아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어요.
전…… 더 많은 걸 보고 싶어요. 새들이 불러주는 노래로만 듣는 걸 말고도요.
네, 더 넓은 세상을 볼 때가 됐죠.
마음을 정한 거 같군, 샤이닝.
니어 씨, 지난번에 그 환자가 말했던 제약회사 기억해요?
그러니까…… 로도스 아일랜드 말인가?
네, 로도스 아일랜드요.
함께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몇 명이나 치료했을까요?
……기억나지 않아요.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리즈 씨.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싶은가요?
네…… 그러고 싶어요.
좋아요. 니어 씨는요?
로도스 아일랜드라면…… 나도 같은 생각이야.
너를 믿고 너의 결정도 믿고 싶다. 리즈가 가고 싶다면 우리 같이 가면 되겠군.
같이……
네, 같이요.
이렇게 결정됐으니 그럼 출발해 볼까요?
네, 좋아요!
가죠…… 로도스 아일랜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