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파울비스트
처음 시에스타에 온 앤 마이어는 구직난을 겪는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고향”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던 그때, 그녀에게 첫 번째 일이 찾아온다.
이건…… 옛 시에스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네.
하늘에서 날고 있는 바다 파울비스트도 여기로 날아와 정착했나 봐.
난……
할아버지…… 드디어 찾았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끝에 결국……
스으으으읍……
내가 돌아왔다…… 시에스타……!
재수 없는 일은 전부 지나갔어! 두 번 다시 날 괴롭히지 마!
앞으로는…… 좋은 일만 펼쳐질 거야!
어, 어라?!
내…… 내 이력서가 왜 쓰레기통에 있는 거지?
저기요, 여러 루트도 찾고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저한테 맞는 일자리를 못 찾았다면서요?
그렇다고 하기엔 아무도 제 포트폴리오를 읽어보지 않은 것 같은데요? 게다가 이렇게 이력서랑 같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채로!
앤 마이어 씨, 우선 진정하세요.
방법을 찾아드린다고 한 건 사실이에요. 모든 구직자를 최대한 돕는 게 저희 시에스타 인력 사무소의 일이죠.
하지만…… 당신과 협력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왜…… 다들 절 써주지 않는 거죠?
담당자님, 제 기분은 신경 쓰지 말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제가 나아갈 방향만 알려주시면 절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게요!
알겠어요…… 고치기 어려운 문제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그 이유는 바로……
당신의 운이 나빠서입니다.
……네?
운이 나쁘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이 서류 더미가 보이세요? 오늘 하루에만 접수된 이력서가 이만큼이에요! 이 많은 서류를 어떻게 저 혼자 다 보겠어요?
그래도 나름 좋은 방법을 찾았죠. 바로 이렇게……
직원이 서류더미에서 한 뭉치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리자 서류 더미가 조금 줄어들었다.
……
이…… 이력서를 읽지도 않았으면서!
어쩔 수 없죠. 제게도 한계라는 게 있으니.
하지만 이력서를 보는 게 담당자님의 일이잖아요?
한 가지 정정하자면 고용주가 인재를 고를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일이죠.
현재로선 고용주에게 운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이에요.
지난 몇 년간 시에스타에 불운한 일이 정말 많았잖아요. 그래서 고용주들도 더는 뜻밖의 사고를 겪고 싶어 하지 않아 해요.
하지만 당신의 이력서는 이렇게 '운 좋게' 쓰레기통에 버려졌답니다…… 어떤 고용주가 당신 같은 재수가 없는 사람을 고용하겠어요?
재,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당신…… 정말 최악이야……
오늘은 한껏 기대하면서 왔단 말이야……
작은 시공팀 팀원이든, 인턴 월급을 받는 조수든 닥치는 대로 뭐든 해 보려고 했다고.
근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가 단순히 운이 나빠서라고?!
……뭐 하시려는 거예요! 우선 진정하고…
두고 봐. 제가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어떻게든 스스로를 증명해 내겠어…… 프로젝트가 없다면 직접 찾으면 되고, 팀이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지!
이런 곳 따위는……
아앗! 이게 무슨……
앤 마이어 씨, 진정하시라니까요! 안 돼……
내 휴지통이…… 무, 물어내세요!
파울비스트 같은 놈!
진정하자…… 진정해……
무능한 시청 직원일 뿐이잖아. 그쪽 말만 믿을 수는 없지.
시에스타 공공 건설사에 일자리가 없대도, 민간 건설사에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민간 기업도 어렵다면 작은 시공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물어보면 돼.
시에스타에 널린 게 공사 현장인데, 나 하나 받아줄 곳 없진…… 않겠지?
……후우.
시에스타는…… 정말 할아버지 말씀대로인 걸까?
아가씨, 그렇게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다니면 안 되지! 시에스타 특색 간식이나 먹어보는 게 어때?
……응?
우리 집 파이는 시에스타 여행 필수 먹거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필수 먹거리?
아휴, 사양 말고 어서 받아. 첫 손님은 공짜로 시식할 수 있거든!
아아, 그래. 고마워!
(와삭)
이건……
소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왜 그래? 입맛에 안 맞는 모양이네……
아, 아니야. 맛있어.
근데…… 왜 이렇게 달지?
이렇게 단 사워 오렌지 파이는 처음 먹어봐.
이건 사워 오렌지 파이가 아니라 개량된 '스위트 오렌지 파이'야.
'스위트 오렌지 파이'?
사워 오렌지 파이에 달콤한 잼을 더 넣은 거지.
하지만…… 새콤한 사워 오렌지 파이야말로 시에스타의 특색 간식 아니야? 기억 속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건 새콤한 사워 오렌지 파이였는데.
파이 속을 만드실 땐 새파란 오렌지만 쓰셨어. 살짝이라도 노란빛이 돌면 안 쓰셨지.
이렇게 달콤한 잼은 말할 것도 없고……
아, 그런 틀에 박힌 레시피는 구식이지.
아가씨의 할아버지는 시에스타인이야?
응.
나도 시에스타인이야.
어? 그럼 시에스타에 안 온 지 오래됐다는 거군.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컬럼비아로 이사를 갔거든.
어쩐지, 컬럼비아 말투가 느껴지더라.
……
행크 씨! 스위트 오렌지 파이 하나 줘!
오, 루트구나. 왜 또 왔니?
쉿……! 헤일리한테는 비밀이야!
(작은 목소리로) 제일 단 걸로 부탁해!
그래, 그래. 자, 여기!
고마워, 행크 씨!
남자아이가 노점상 주인 손에 들린 포장지를 낚아채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꿀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다니……
그뿐만이 아니야. 속에는 연유가 세 배나 더 들어가고, 파이 밑에는 캐러멜을 발랐지.
단 이유가 있었네. 이래선 사워 오렌지 파이라고 할 수 없겠어.
하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이들도, 젊은 관광객들도 점점 더 달콤한 것만 찾으니까. 하나라도 더 팔려면 사워 오렌지 파이의 맛을 개량할 수밖에 없었어.
요즘 시에스타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
그러게.
이 이동 도시는 할아버지가 얘기하셨던 시에스타와 정말 다른 것 같아……
모든 게 달라진 건 아니에요.
시에스타인이 새로운 맛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가끔은 옛 맛이 그리울 때도 있거든요.
아, 이게 누구야. 시청의 새로운 유명 인사잖아?
웬일로 이런 누추한 노점상에 올 시간이 있었대?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 사워 오렌지 파이도 하나 포장해 주십시오, 행크.
쳇,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돼. 옛 시에스타에선 이렇게 지내지 않았잖아.
(이 사람도…… 시청 소속인가……)
패션가의 노포를 완전히 바꿔버리고 나서도 예전처럼 대해줘서 기쁜걸.
됐어, 재건축 일도 나름 잘 처리됐잖아.
시청에서 휴업 보조금도 많이 준 데다 앞으로 더 많은 지원 정책이 있을 거란 소식에 다들 만족해하고 있어.
나같이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도 이렇게 노점 일을 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잖아?
자, 사워 오렌지 파이야. 이가 빠질 만큼 시큼하게 만들었어. 패션가 사람들 입맛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다들 협조해 준 덕분이지.
고마워, 행크.
저기……
어? 아직도 여기 있었어……?
실례지만 방금 얘기한 패션가, 아직도 재건축 중이야?
'아직도'가 아니라 밤낮없이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패션가가 재건축되면 외국 거상들이 그곳에 테라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를 만들 거라는 소문이 쫙 퍼졌어!
행크, 그 정도는 아니야……
재건축의 목적은 옛 거리 주민들이 하루빨리 이동 도시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돕는 거니까.
시에스타가 언제까지고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에 빠져 있을 수는 없잖아.
……
(패션가에 가면…… 시에스타의 과거를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추억마저……)
혹시 패션가에서 아직도 인부를 모집하나요?
살살 좀 다뤄줘. 세상에…… 이것들은 내가 제일 아끼는 보물이라고!
보물들을 새로 지은 창고로 보낼 수는 없다고 했잖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단 말이야.
계속 어두컴컴한 창고에 처박아둘 수는 없어. 안 그래, 자기야?
괜찮아, 자기야.
어차피 우리의 '용암 균열' 음악 바비큐 식당이 지어지기 전까진 쓸 일도 없잖아. 안 그래?
이 보물들은 할머니가 엄마한테 물려주고, 엄마가 다시 나한테 물려준 거란 말이야.
내가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관리하고 광을 낸 덕분에 살짝만 쳐도 맑은 소리가 나는 거라고!
아무래도 역시……
걱정 마세요, 사장님! 기타든 드럼이든, 또…… 실로폰이든 하프든 확실하게 포장해 드렸습니다!
완충재를 몇 겹 두르고 포장도 단단히 해뒀으니 습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아마…… 음악 바비큐 식당이 개업하기 전까지 악기들도 무사할 겁니다. 절대 가게의 상징을 망가뜨리지 않을게요!
어머! 내가 언제 이 악기들이 보물이라고 했어?
내 보물은 저 바비큐 그릴이라고! 제대로 포장한 거 맞지?
……네? 그거 폐품 아니었나요?
지금…… 뭐라고 했어?!
……
여기가 패션가구나……
맞아요.
보아하니…… 공사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나 봐.
싸움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가서 말려야 하지 않을까?
걱정 마세요. 싸우는 게 아니니까요. 주민들에겐 '옛 시절'과 작별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뿐입니다.
어쨌든 이 거리의 대부분 가게는 저희 둘의 나이를 합친 것보다 오래됐으니까요.
시에스타가 해변가에 있을 때…… 그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모래사장의 알록달록한 파라솔 아래에는 바비큐 그릴이 늘어져 있었고, 주민들은 파도보다 높은 음악 소리를 들으며 함께 파티를 즐겼다고 했지.
할아버지는 아직 시에스타가 완공되지 않았을 때라 아름다운 건물이나 오가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지만……
즐거움만큼은 모자라지 않았다고 했어.
……
왠지 저희 할아버지랑 이야기가 잘 통하실 것 같은 할아버지시군요.
코스타 씨의 할아버지?
네.
낙천적이면서도 괴팍한 분이셨습니다.
아…… 나이가 들면 다 똑같나 봐. 괴팍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낙천적이지…… 젊었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지금의 나는……
소녀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들어 시내 쪽을 바라보았다……
먼 곳의 빌딩은 높고 아름다웠다. 깨끗하고 널찍한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 다녔다.
오가는 인파 사이로 유행하는 옷차림의 몇몇 관광객이 모퉁이에 서서 누군가가 남긴 화산 그라피티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할아버지가 바라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곳의 모든 것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길처럼 여전히 까마득했다.
그 순간, 소녀는 껍질이 벗겨진 사워 오렌지가 통째로 목에 걸린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제 동료들이 시청 단체방에 '쓰레기통 파괴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봤습니다.
……
듣자 하니 그 소녀는 온갖 우여곡절 끝에 시에스타에 온 것 같더군요.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으니, 그 소녀도 분명 낙천적인 사람이겠죠?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
그 사람 이름도 앤 마이어였다죠?
……알겠어.
그땐 너무 화가 나서 그만…… 나중에 직접 찾아가 그 직원한테 사과할 생각이었어.
미안, 코스타 씨. 시청 물건을 망가뜨렸으니 제대로 변상할게!
손해배상 때문에 당신을 찾아온 게 아닙니다.
응?
전 그저 가는 길에 사워 오렌지 파이를 사고, 무책임한 동료가 못다 한 업무를 대신해……
시에스타에 취업하러 온 젊은 사람이 구직난을 극복할 수 있게 도우려는 것뿐이죠.
능력은 있지만 발휘할 수 없어서, 가는 곳마다 가로막히는 느낌이 뭔지 저도 알거든요.
……
고마워, 코스타 씨……
근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앤 마이어 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나……?
원래는…… 패션가 재건축 공사에 인부가 부족한 가게가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어.
그런데 조금 전 악기점을 지나다가 일어난 일을 보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해
어째서죠?
난 뉴 시에스타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옛 시에스타에 관해서도 할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가 전부니까.
옵시디언 뮤직 페스티벌에서 이동도시를 거쳐 여기에 도착한 후에, 주민들이 시에스타 화산과 작별하던 그 파티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어……
난 많은 것들을 놓쳤고…… 지금의 시에스타에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
확실히, 모르시겠죠.
하지만 그게 뭐 대수입니까?
……
어쩌면 당신의 할아버지가 처음 해변가의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는 게 없으셨을 겁니다.
지금 당신도 젊은 시절 할아버지와 똑같지 않을까요?
당신에겐 이 도시를 알아갈 시간이 충분합니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미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걸.
너무 깊이 생각할 것 없습니다. 우선 가시죠.
……어디로?
당신이 처음에 하려 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 드리죠.
낮과 달리 밤이 다가오자 패션가의 공사 소리는 점차 작아졌고, 곳곳에서 몰려든 주민들로 활기찬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단 한 곳만 예외였다……
여긴……
이 가게는…… 간판까지 뜯어져 있네요. 그리고 이건……
……커피?
맞아요. 한때 카페였던 곳이죠.
앞으로 한동안 여기서 일해주시면 됩니다.
여기서? 이 가게를 재건축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카페 주인은 어디 있어? 대략적인 재건축 계획은 있는 거겠지?
재건축 후에도 계속 카페로 운영하는 거야?
얼마간의 침묵 후에 시청 직원이 대답했다.
아뇨.
전 주인은 이미 떠났고, 이 카페를 물려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업무는 재건축이 아닙니다.
재건축이 아니라면…… 뭐야?
철거입니다.
철거?
그러니까…… 이 가게를 완전히 허물라는 뜻이야?
시청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는 없어. 내가 어떻게……
다른 인부가 도와줄 테니 일손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급여는…… 시청 패션가 재건축 자금에서 지급될 겁니다.
이 업무를 받아들이신다면 전 시청을 대표해 당신과 노동계약을 체결하고, 당신의 권익을 보장할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 가게 말이야.
이 책상, 의자, 수납장을 보면…… 전 주인이 얼마나 세심하게 관리했는지 알 수 있어.
근데 전부 철거하기엔 너무 아쉽잖아. 이것들도 옛 시에스타의 아름다운 추억인데……
……
앤 마이어 씨, 혹시 웨이 파울과 홈 파울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웨이 파울과…… 홈 파울……?
낯익은 단어이긴 한데, 무슨 뜻이야?
어릴 때, 할아버지가 제게 파울비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한때 그 해변가에는 고대 파울비스트들이 살았다고 하죠.
해변가라면…… 옛 시에스타 말이야?
네.
다만 파울비스트가 하늘과 숲을 누비던 그때에는 아직 시에스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시에스타 화산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일 거예요.
……화산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라면 정말 오래전 일이네.
그 파울비스트한테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원래 그 파울비스트들은 '같은 종의 파울비스트'라고 불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건 복잡하면서도 형태와 습성이 제각각인 종이었죠. 이 대륙의 각지에서 날아온 다양한 품종의 웨이 파울이 속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해변가의 숲에 모여들었죠.
그사이에도 다툼이 있었을 겁니다. 파울비스트 중 일부는 떠났고, 일부는 그곳에 남아 공동으로 후손을 키웠죠.
그렇게 하나의 종족이 되어 같은 열매를 먹고, 같은 노래를 부르다…… 결국 이곳에서 홈 파울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그 고대 파울비스트가 시에스타와 닮았다고 생각하셨죠.
지금도…… 그 파울비스트를 볼 수 있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이야기 후반부에 몇 년 동안 이어진 폭우로 바닷물이 넘쳐 숲이 잠겼다고 했으니까요.
그 파울비스트들도 그렇게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
……앤 마이어 씨?
난…… 괜찮아.
……이건 전설일 뿐입니다.
현실의 시에스타는 그 파울비스트보다 훨씬 운이 좋죠.
알아……
'웨이 파울'과 '홈 파울'을 어디서 들었는지 문득 떠올라서 그랬어.
할아버지, 사워 오렌지잼 통에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아, '시에스타'라고 적혀 있단다.
'시에스타'? '시에스타'가 뭐야……?
하하, 우리 앤 마이어가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시에스타'는…… 덜 익은 오렌지야.
……'시에스타'는 우리 웨이 파울을 홈 파울로 만들었지. '시에스타'는 우리가 세운 터전이란다.
웨이 파울…… 홈 파울……? 할아버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조급해할 필요 없단다. 언젠간 너도 깨닫게 될 테니까.
앤 마이어 씨의 할아버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셨군요……
미안, 코스타 씨…… 또 옛날 일을 떠올리고 말았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여전히 할아버지와 지내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영원히 변치 않을 이 기억들도 제 앞길을 막진 못할 겁니다.
……응.
갑자기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녀는 선율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홍빛 문이 활짝 열린 악기점 안으로 흐릿한 불빛이 크고 작은 포장을 비추고 있었다.
바닥에 앉아 있는 사장과 인부들의 손에는 기타, 탬버린, 마라카스와…… 이름 모를 현지 악기가 들려 있었다.
불협화음이 생기자 모두가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잠깐, 또 누가 틀렸어?
엥? 난가……
하지만 우리 고향에선 그 소절을 이런 식으로 연주했는데……
그래? 그럼 다 같이 조정해 보자고!
몇몇 이들은 코드를 바꿨고, 몇몇 이들은 박자를 늦췄다. 인부가 자신의 음계를 바꾸지 않았음에도 그 소절은 다시 화음이 되었다.
셋, 둘, 하나, 다 같이……
그건 밧줄이 손바닥에 남긴 굳은살이자, 벽돌이 어깨에 남긴 재♪
그건 우리가 만날 때 웃으며 기울이던 술이자, 우리가 헤어질 때 작별을 고하는 노래♪
이곳은 우리의 고향, 시에스타♪
여기가…… 시에스타구나.
네, 여기야말로 시에스타입니다.
여보세요?
아…… 네, 앤 마이어예요.
사과의 의미로 건설사 면접을 잡아두셨다고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거절해야 할 것 같아요.
아뇨…… 오늘 일은 저도 잘못했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네, 다시 연락드릴게요.
시청에서 온 전화입니까?
응……
왜 거절하셨나요?
어쩌면 웨이 파울과 홈 파울의 의미를 깨달아서 그런 걸지도 몰라…… 아니, 완전히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코스타 씨 말대로 아직 이 도시를 알아갈 시간은 충분하니까…… 우선 천천히 이 도시를 알아가고 싶어.
그러니까…… 이 철거 업무, 내가 맡을게.
소녀가 먼지로 뒤덮인 가게를 바라봤다.
정해진 기간 내에 오래된 가구를 비우고, 벽을 칠해서 가게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을 거야.
……이게 내가 시에스타에서 하는 첫 번째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