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죄수의 환상

죄수의 환상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어린 시절 친구의 도움 요청을 받은 그레이스는 난민 대열에서 그녀의 행방을 찾으며 난민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귀족 집안의 영애로 자란 그녀는 신분으로 인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선택, 그것은 아리조나의 숙명이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브리즈


07:22 A.M.

토룬 카운티, 록부룩 마을 북부 아리조나 저택

집사

크흠……

집사

아가씨, 편지가 왔습니다.

메이드

아가씨는 옷을 갈아입는 중이세요.

집사

주인님과 마님이 안 계신 며칠간 매일 몰래 나가시는 것 같던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메이드

창밖의 저 나무부터 베어버리는 게 어때요? 나무를 타기 힘든 옷을 입히는 방법은 이미 해봤으니 포기하시고요.

집사

노력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메이드

안과 의사를 불러달라는 말을 그렇게 꼬아서 할 필요는 없어요, 카운셀 씨.


메이드

아가씨, 여기 편지요.

???

테이블에 놔둬.

메이드

읽어보지 않으실 건가요?

???

안 봐도 돼.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으니까.

그레이스

우선 안부 인사가 있을 거고, 그다음에는 부모님의 근황을 물어보겠지. 마지막으로 모종의 이유로 안타깝지만 내 요청을 거절했을 거야……

젊은 불포는 화장대 앞에 앉아 우울하게 손에 든 수신기를 만지작거렸다. 수신기의 표시등이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만약 어제나 그저께에 반짝였다면 정말 기뻤을 것이다.

그레이스

휴……

그레이스

지금은 편지를 쓰거나 답장을 확인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레이스

참, 부모님은 언제 돌아오셔? 미리 내려가서 기다려야겠어.

메이드

앗! 죄송합니다. 아래층이 너무 바빠서 알려드리는 걸 깜빡했어요!

메이드

주인님이 어제 사람을 보내셨어요. 주인님과 마님께서 한 서점의 테이프 커팅식에 초대받아 참석하게 되었는데, 사례금이 꽤 두둑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레이스

아버지는 필명을 써야 한다니까. 그게 아리조나 남작 신분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걸.

메이드

주인님이 그 필명을 사용하신 건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노하셨을 때였어요. 그래서 헨리 아리조나 나이트가 되기로 하신 뒤로 더는 그 필명으로 글을 쓰지 않으셨어요.

메이드

그래야만 안전하니까요. 아마 남작님도 남작님이 비평했던 일들에 얼마나 많은 귀족이 관여됐는지는 모르고 계실 거예요!

그레이스

아버지는 신분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가 선택해 준 방식대로 살아야 하네.

그레이스

잠깐만. 그럼, 얼마나 늦게 돌아오시는 거야?

메이드

하루요.

메이드

아가씨, 그렇게 웃으면 또 몰래 나가시려는 거라고 오해할 거예요.

그레이스

미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메이드

아가씨……!


07:51 A.M.

토룬 카운티, 록부룩 마을 밖의 임시 거점.

마을 밖의 숲은 문명과 야만이 교차하는 곳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버려지거나 방치되어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습하고 차가운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햇빛이 잿빛 숲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레이스

여러분! 내가 돌아왔어!

시끄러운 노인

세상에, 또 너구나. 이번엔 무슨 일로 귀찮게 하려고 온 게냐? 이곳이 더 어지러워져야 만족할 게야?

그레이스

내가 저번에 개인 정보 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시끄러운 노인

정확히는 '4일 전'이다. 그동안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

그레이스

아니야. 내가 제때 답장을 하지 못했던 건……

시끄러운 노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마리안의 정보를 원하는데 우리가 숨긴다고 생각해서 괴롭혔어. 이제 슬슬 입을 열거라고 생각해서 온 거 아니냐?

점잖은 신사

진정하게, 친구. 저 아이는 자네 작업반장이 아니잖나. 보게, 그냥 작은 소녀일 뿐이야. 그 정도의 노림수는 없을 테지.

시끄러운 노인

겉모습은 믿을만한 게 못 돼. 그 속에 뭘 숨기고 있을지 어떻게 아나?

점잖은 신사

불포 아가씨, 왜 개인 정보가 필요한지 제대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그레이스

저번에 말한 대로야. 많은 의사에게 부탁했는데, 딱 한 사람만 대놓고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거든……

그레이스

우선 당신들에게 개인 정보를 받아서 몸 상태를 살펴보라고 했어. 그럼 당신들을 도와주겠다고 말이야.

그레이스

미안해. 자료를 잘 정리해서 가져갔을 땐 마침 의사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어. 며칠간 계속 없더라고……

시끄러운 노인

참 대단한 우연의 일치군!

점잖은 신사

계속 얘기하게 하세.

그레이스

……그동안 계속 기다리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어.

그레이스

문을 열기만 하면 신호가 오도록 진료소 문에 발신기를 달아놨어. 이 붉은 램프를 봐 봐. 오늘 아침에 반짝였거든!

점잖은 신사

그러면 왜 그 의사를 찾아가지 않고 여기로 온 건가?

그레이스

몸 상태를 다시 확인하려고. 4일 전의 정보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으니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편이 더 안전할 것 같아서.

시끄러운 노인

애초에 우리를 도와주러 온 것도 아니었고, 마리안의 정보를 알아내려고 왔던 것이잖냐. 그런데 우리가 왜 너를 믿어야 하지?

그레이스

난……

점잖은 신사

변명할 필요는 없네. 이 친구는 귀족들이 우리를 구해줄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으니까.

시끄러운 노인

쳇! 분명 그럴 거야. 지금은 그저 우리의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뿐이라고.

점잖은 신사

꼬마 아가씨, 마리안은 실종된 지 오래됐네. 우리에게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 봤자 다시 불러올 수는 없을 걸세.

그레이스

나도 알아. 마리안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 지금은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점잖은 신사

마리안도 자네와 비슷한 어린아이일 뿐이네. 게다가 숲에서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지.

그레이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알던 사이였어. 종종 빠져나와서 같이 놀고는 했지. 마리안은 식물을 좋아해. 숲에는 식물이 잔뜩 있으니 최소한 굶지는 않을 거야.

그레이스

게다가 처음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당신들 모두를 도와달라고 했었어. 그러니 난 모두를 돌봐야 해. 그래야만 다시 만났을 때 잔소리를 듣지 않을 테니까.

점잖은 신사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난 자네 편이 돼주겠네. 저들이 거절한다면 함께 설득해 줄 수도 있네.

그레이스

고마워.

점잖은 신사

그럼 나부터 등록해 볼까? 이 일을 처리한 뒤에 더 큰 나무를 베러 가야 하니 말이야.

그레이스

그걸로 뭐 하려고?

점잖은 신사

커다란 나무집을 지을 걸세. 그러면 모두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생길 테니까. 모든 게 더 좋아질 걸세.

그레이스

그렇네. 분명 더 좋아질 거야.


01:32 P.M.

토룬 카운티, 록부룩 마을의 샤오가 진료소.

깨끗한 길모퉁이의 벽 안쪽에는 낡은 사무실이 있다. 그레이스는 4일 전에 이곳에 왔었다. 4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는 한층 더 두꺼워져 있었다.

사무실 창문은 두꺼운 기름때로 덮여있었다. 이 사무실은 본래 마을을 향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공업의 음표도 서쪽의 몇몇 창문에 흘러 들어가 있었다.

한 여윈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건 다른 나라의 언어였으며, 가끔 빅토리아어가 섞여 있기도 했다.

의사

계산서……

의사

계산서……

의사

*빅토리아 욕설*!

???

크흠……

의사

오늘은 예약이 끝났어.

???

저번에 말한 거 가져왔어.

의사는 급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동쪽으로 난 창에 의해 햇빛이 사다리꼴로 투영되었다.

금발의 불포가 그의 사무실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의 머리끝은 햇빛에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의사

너는……?!

그레이스

여기. 정리해서 제본해 뒀어.

의사

……정말 했군.

의사

아직 어린아이인 네가 어떻게 이 의료 보고서를 준비한 거야? .

그레이스

우리 집에 의학 관련 서적이 조금 있어. 근신하는 동안 읽어봤지.

그레이스

아마 잘못된 부분도 많을 거야. 참고만 해.

의사

……좋아. 아주 좋아…… 정말 훌륭해……

그레이스

이제 당신 차례야.

의사

그게 말인데……

의사

펠햄가에 가야 해서 말이야. 돌아와서 대답해도 될까?

펠햄이라는 이름이 마치 번개처럼 그레이스를 내리쳤다.

불길한 신호였다.

그레이스

어째서?

의사

내 고객들은 보통 방문 서비스를 좋아하거든.

그레이스

그러니까, 어째서 돌아와서 대답하겠다는 거야?

의사

……

그레이스

그러니까…… 또 그 여자가 문제야?

그레이스

당신은 그 여자의 개인 의사도 아니잖아. 게다가 평소에는 이동도시에 머물면서 매년 한 달 정도만 이곳에 와서 공장을 감독할 뿐인데, 어째서 전부 그 여자 눈치를 보는 거지?

의사

하아,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그레이스

내가 보기엔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여자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아.

의사

난 조종당하는 게 아니야.

그레이스

하지만 그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면 일이 더 쉬워지는 거잖아?

의사

……

의사

잘 들어, 꼬마야.

의사

녀석들은 나를 사치품 정도로 생각해. 일종의 유행이자 생활 방식, 부가가치라고 할 수 있지. 내 일과 가정은 전부 그 기초 위에 세워져 있어. 이젠 빠져나갈 수도 없는 지경이야.

의사

집세, 아이들의 학비, 아내의 광석병을 치료하기 위한 비용까지…… 난 지금의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의사

이건 악당을 쓰러뜨리면 모든 게 좋아지는 동화 같은 게 아니야. 진정한 적은 형태가 없어. '삶'의 부산물이자 생활 그 자체거든.

그레이스

……

그레이스

하지만 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어째서 귀족들의 이익을 건드린다는 거야?

의사

내가 펠햄 부인과 동등한 입장이 아니라서 전체적인 그림은 알 수가 없어.

그레이스

그 사람들은 무해하고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야.

의사

그 사람들이 정말 무해하다면 그런 대우를 받을 것 같아?

의사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야. 아무도 펠햄가에 시집간 데다 많은 공장을 운영하는 신문사 따님의 눈밖에 나고 싶지 않을 거라고.

그레이스

샤오 씨, 난 시간이 없어. 오늘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이었고, 나는 이 '우연'과 당신이 내게 준 희망을 잡고 싶어. 그래서 더 노력해 볼 거야……

그레이스

만약 내가 해온 게 부족하다면 말해줘. 더 할 테니까.

의사

그동안 어떤 일을 했어?

그레이스

다양한 사람에게 부탁했어.

의사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본인의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을 뿐이네.

그레이스

……

그레이스

……그 말이 맞아……

의사

내가 네게 뭐라고 할 자격은 없지만……

의사

정말 부럽네. 넌 능력도 있고 아직 순수한 데다 동기도 간단하지. 풋풋한 데다 활력도 넘치고 열정이 가득해. 삶이 아직 네게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어.

의사

그런데 왜 직접 행동하지 않는 거야? 뭐가 무서운 건데?

그레이스

……난……

그레이스

가족들이나 펠햄가가 싫어할 수도 있어.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의사

잠깐, 잠깐만. 너는 그냥 평범한 어린아이일 뿐이잖아. 복잡한 것들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아도 돼.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마.

의사

잘 들어……

의사

너와 약속한 날 밤에 편지로 부인에게 이 일에 관해 얘기했었어. 그랬더니 사치품의 가치는 꽤 복잡한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고 내게 암시하더라고……

의사

만약 공장에서 자신의 사치품을 무료로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한다면 사치품의 가치는 그대로 사라져 버리지.

의사

내게 자신의 '소비자층'을 제대로 보라고 하더군.

그레이스

위협당했네.

의사

위협이 아니라 일깨워 준 거지. 그 여자는 나를 위협할 필요가 없어. 내가 갑자기 망나니가 되겠다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가지 않으니까.

의사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의사

네게 잘못된 희망을 심어줬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아……

의사

……

의사

꼬마야, 이런 얘기를 해서 미안하다. 처음에 너와 그런 약속을 했던 건 너 같은 아이가 정말 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레이스

그러니까 애초에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대놓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네?

의사

거짓된 희망을 심어줘서 미안해.

그레이스

……난……

그레이스

아리조나 가문 알아? 아리조나 가문의 아가씨가 내 친구야. 내 부탁으로 그녀가 직접 도움을 청하러 온다면 받아들일 거야?

의사

귀족 친구가 있다면 더더욱 귀족을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돼.

의사

이 일은 아리조나의 이익에 직접적인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러니 굳이 펠햄과 척질 필요도 없겠지.

그레이스

하지만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그대로 둬서도 안 돼. 귀족들이 말하던 명예는?

의사

귀족이 귀족일 수 있는 건 동질감 때문이지. 그러한 동질감은 서민들이 아닌 다른 귀족으로부터 얻는 거야.

의사

명예는 권력과 돈을 따라가는 장식품일 뿐이고.

그레이스

만약 아리조나 가문이 일반적인 귀족이 아니라면? 난 아리조나의 아가씨와 엄청 친해. 그 사람들은 달라!

의사

현실을 봐. 녀석들도 똑같아.

의사

아리조나 부인과 남작이 진짜 서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의사

가장 일반적인 경우지. 서로의 이익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 말이야. 한쪽은 신분을, 한쪽은 오리지늄 아츠라는 힘을 제공하는 거야.

의사

난 녀석들이 다른 귀족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굳이 말하자면 녀석들은 아직 발버둥 치고 있어.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그레이스

그러니까 내……

그레이스

아니, 그 아리조나 부부가……

그녀는 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문장의 구조와 논리가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와 함께 점차 무너져 내렸다……

카운셀이 그녀를 위해 쌓았던 무수한 눈의 성이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것처럼……

녹아버린 눈이 그녀의 눈가를 맴돌았다.

의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서 펠햄가에 일하러 가야겠어. 그리고 도시로 가서 학교에서 말썽 피운 아들 녀석의 일도 처리해야 하고……

의사

무슨 소식이라도 알게 되면 편지로 알려줄게.

의사

다시 한번 사과할게. 아직 어리지만……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그레이스

나…… 난 다른 사람을 더 알아보도록 할게……

의사

미안해.


03:44 P.M.

토룬 카운티, 록부룩 마을, 마을 공원.

그레이스

휴……

낯선 마을 사람

신사 숙녀 여러분!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오늘 이 사람이 우리의 나무를 베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낯선 마을 사람

우리의 재산을 파괴하고 있었다고요!

점잖은 신사

……

낯선 마을 사람

오늘 우리의 나무를 베어내면 내일은 우리의 음식을 강탈하겠죠. 그럼, 그다음은요? 우리의 일과 땅을 빼앗을 겁니다!

낯선 마을 사람

우리의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일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마을을 지켜야 합니다!

모여든 마을 사람들

우리의 재산을 지키자! 우리의 일을 지키자! 우리의 마을을 지키자!

그레이스

잠깐,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집사

아가씨, 가지 마세요!

그레이스

카운셀? 여긴 어쩐 일이야?

집사

저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펠햄가의 사람입니다. 분명 알아볼 거예요.

그레이스

저기 잡혀 있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이야. 구해야 해!

집사

……

그레이스

이거 놔!

집사

아가씨…… 저기 있는 사람 중에 아가씨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아가씨는 아리조나가의 영애입니다. 아가씨의 일거수일투족이 가문 전체를 대변할 겁니다.

집사

아가씨의 신분으로 이번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레이스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하면 어쩔 거야?

집사

하지만 저택의 하인들은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안정적인 일이 필요하니까요.

그레이스

……

그레이스

저 사람들을 봐. 애초에 나무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야.

집사

펠햄 부인이 일을 제대로 벌인 것 같군요. 마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저 사람들을 배척하게 하는 걸 보면요. 부인이 원하는 일은 대중이 원하는 일이 된 거죠.

집사

만약 아가씨가 지금 멋대로 끼어든다면 아리조나 가문이 마을 사람들과 대척하게 되는 겁니다.

집사

복잡한 일이에요. 정말 이번 일에 간섭하겠다면 주인님과 마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절 믿어주세요. 저들도 저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묶어두는 건 위험하니, 그러진 않을 겁니다.

그레이스

……

집사

제발 진정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주인님께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그레이스

난……

그레이스

알겠어.

집사

주인님과 마님께서 돌아오시는 날이 늦춰졌다는 소식이 고모님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존 계획대로 주인님과 마님을 환영하기 위해 오시는 중이죠.

집사

중간에 다시 돌아가시라고 전할 수도 없어서…… 하인들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메뉴와 식사 과정을 간소와 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야만 간신히 준비를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집사

하지만 그렇다 해도 손님을 맞이할 주인 한 분은 계셔야 예법에 맞습니다. 그래서 모셔가기 위해 왔습니다.

그레이스

……아리조나의 아가씨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건가 보네.

집사

함께 가시죠. 저택에는 아가씨가 필요합니다.

그레이스

하지만……

남자는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레이스는 한 줄기 시선이 자신을 꿰뚫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카로운 느낌은 마치 검 한 자루가 그녀의 몸을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같이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 짙은 슬픔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레이스

……


04:12 P.M.

토룬 카운티, 록부룩 마을 북부 아리조나 저택.

메이드

이건 안 되고…… 이것도……

메이드

이건……

그레이스

그냥 이전 걸 입으면 안 되는 거야?

메이드

요즘 너무 바쁘셔서 피부 상태가 좋지 않아요. 혈색이 좋아 보이는 옷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레이스

……

집사

손님께서 7분 정도 뒤에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슬슬 정문으로 나가서야 할 것 같습니다.

메이드

카운셀 씨, 재촉하지 말아요!

그레이스

……

메이드

아가씨, 찾았어요. 이 옷으로 해요!

'아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상태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인들은 이미 줄지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더 먼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마을의 공장이 하늘을 향해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고요함……

여름도 겨울도 약속대로 찾아오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시선은 가까운 곳에 있는 화장대로 다시 돌아갔다. 오늘 아침에 받은 편지는 여전히 그곳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메이드

오후에 막 수선을 마친 치마예요. 새로 붙인 반짝이 좀 보세요!

메이드

아가씨, 편지를 읽으시려는 건가요? 종이칼을 가져올게요.

그레이스

아니야. 이미 열었어……


메이드

카운셀 씨, 어서 아가씨를 막아요!!

집사

뭐야?

메이드

후…… 후아…… 콜록콜록…… 더는 못 뛰겠어요. 어서……

집사

새로 온 하인을 불러서 이곳의 물건을 정리하라고 해.


그레이스

……비켜!

집사

아가씨, 곧 연회가 시작됩니다. 아리조나를 위해서라도 아가씨가 마음대로 하도록 둘 수 없습니다.

그레이스

……

집사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그레이스

비켜!

집사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대로 설명하시지 않는다면 명령에 따를지 말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레이스

……

그레이스

전달자가 숲에서 발견됐는데……

그레이스

그중에 한 여자애가 편지를 엄청 많이 가지고 있었대. 내용은 적혀있지 않지만, 발송인과 수신자는 적혀 있었나 봐. 수신자는 나고, 발송인은……

그레이스

마리안은…… 2주 전에 이미……

집사

아가씨…… 진정하세요……

그레이스

다 나 때문이야……

집사

아가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가씨의 노력은 제가 똑똑히 봤으니까요.

그레이스

과연 그럴까? 대체 내가 무슨 노력을 했는데……?

그레이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처한 상황조차 잘 이해하지 못했어.

그레이스

그 사람들의 고통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어. 누군가는 도와줄 거라고, 결국 좋아질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레이스

지난 몇 달간 나는 아리조나 아가씨로서 편지를 썼을 뿐이야, 결과적으로는 별 의미 없었지만.

그레이스

하지만 며칠간 그 사람들과 진짜 접촉하면서 그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됐어.

그레이스

카운셀, 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해. 저 사람들은 마리안과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집사

그래도 아가씨가 가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아리조나의 아가씨니까요.

그레이스

아가씨와 평민은 없어, 카운셀. 이런 고통 앞에서는 사람과 사람만이 있을 뿐이야.

집사

아가씨, 주인님과 마님께서도 이 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그레이스

몰라. 부모님이 화내는 게 두렵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집사

주인님과 마님이 돌아오신 뒤에 말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레이스

……아니.

그레이스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들었어……

그레이스

내가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던 사람들과 부모님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그레이스

귀족들의 사랑도, 귀족들의 인자함도 다 가짜야…… 샤오 씨조차 내게 거짓말을 했어……

그레이스

하지만 샤오 씨 덕분에 그 사람들에게 가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기초적인 약을 처방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었어.

그레이스

오늘 찾아갔을 때, 몸 상태가 좋아진 사람도 몇 명 있었지.

그레이스

그거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 같아…… 최소한 내게는 그거야말로 진짜 의미 있는 일이야.

그레이스

와 다른 사람이 뭔가 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거야? 살아갈 희망을 남들 손에 맡길 수는 없어. 더는 자신을 속이면서 미룰 수만은 없다고.

집사

아가씨, 주인님과 마님을 기다려야……

그레이스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그레이스

내 친구가 죽었어! 내 친구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몸부림칠 때, 나는 사교 활동과 정중한 표현에나 열중하고 있었어. 아리조나와 다른 귀족 간의 관계나 신경 쓰고 있었다고!

그레이스

계속 집에만 있어야 하고, 멍청하고 쓸모없는 방식으로 체면을 차리면서 도움을 요청해야 해. 심지어 날 믿는 사람이 비난받는 상황도 보고만 있어야 하지……

그레이스

카운셀…… 귀족의 신분도 일종의 속박이야.

집사

아가씨, 사교 활동이나 예절은 모두 가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아리조나의 빛이 더 많은 사람을 비출 수 있을 겁니다.

그레이스

그 사람들은 태양이 뜰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거야. 나도 마찬가지고.

그레이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땅을 빼앗겨서 어쩔 수 없이 방랑하는 거라고 들었어. 그 사람들 모두가 마리안처럼, 내가 향락에 젖은 사이에 죽어갈 거야……

그레이스

귀족들의 눈치를 보며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면, 결국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 사람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길을 개척해 낼 수도 있잖아.

집사

아가씨……

그레이스

미안해, 카운셀. 카운셀에게 화내는 건 아니야……

그레이스

그냥 내가 어떻게든 내 슬픔을 풀어내려 하는 거라 생각해 줘.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사냥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레이스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면서 아무런 변화 없이 사는 게 아니라,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해.

그레이스

적어도 며칠 동안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해줘……

집사

……

집사

알겠습니다. 그럼 이 책들이 필요하시겠군요.

그레이스

이건……

집사

서재에 있던 책입니다. 기억하시죠? 주인님이 번역했던 책은 이미 몇 번이고 읽어보셨잖습니까.

집사

수십 번을 본다 해도 세부적인 내용은 잊기 마련이죠. 이 책들을 가져가서 참고하십시오.

그레이스

카운셀…… 이건……

집사

이런 장면은 익숙합니다. 전 아가씨를 막을 수 없어요.

집사

전 아가씨를 잡지 못했다고 할 겁니다. 그러니 아가씨도 제가 일부러 놓아줬다는 말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레이스

……고마워.

집사

잠시만요, 아가씨.

그레이스

마음이 바뀐 건 아니지, 카운셀?

집사

샤오 씨의 집에서 남겨두고 오신 '장난감'을 가져왔습니다.

집사

그리고 샤오 씨가 '아리조나 아가씨의 불포 친구'를 만나면 진료소의 창문이 열려 있으니, 약과 도구를 마음껏 가져가도 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레이스

……응……

집사

아가씨, 이렇게 떠나면 더는 숨길 수 없습니다.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어떻게 할지는 생각하셨나요? 말다툼 정도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레이스

잘못했다고 할 거야. 아직은 싸울 때가 아니니까.

집사

조심하십시오. 신분도 잘 숨기시고요.

그레이스

고마워, 카운셀.


집사

우리 아가씨는 아직 서재에 계시나?

메이드

네. 예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지셨네요.

집사

어쩌면 나쁜 짓을 한 걸지도 모르겠군. 자네를 실직하게 만들다니 말이야.

메이드

실직이요? 지금 아가씨는 엄청나게 얌전해지신걸요. 매일 서재에만 계시는데 실직할 리가 있나요.

집사

천만 번의 가출보다 목적을 품은 한 번의 여정이 무서운 법이지. 지금의 아가씨는 예전의 어린 소녀가 아니야.

메이드

정말 다행인 일이네요.

집사

불안하지는 않나?

메이드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아가씨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저만의 태양으로 남겨둘 수는 없겠죠.

집사

자네……

집사

태양이라……

카운셀은 서쪽을 바라봤다. 찬란한 석양의 빛이 아리조나 저택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집사

헨리, 자네의 딸은 자네를 정말 많이 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