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감염자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임무에서, 베토치키는 제때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은 탓에 전투 중 혼절하게 된다. 그녀가 알약들을 왜 숨겼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등장 오퍼레이터: 베토치키
먹구름 너머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베토치키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깼다.
그것은 거의 '꿈'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저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빠르게 전환되는 것일 뿐이었다. 다행히, 마침내 그것이 끝이 났다.
……저, 저…… 얼마나, 잠들었던 거죠?
……
임시 구조대의 대장은 대답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단검을 닦는 데만 몰두할 뿐이었다. 베토치키가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단검이 가볍게 칼집으로 들어갔다.
“잠들어”?
대장은 베토치키의 손을 잡았다. 베토치키는 그제야 자신이 여전히 주먹을 쥔 채였고, 손바닥 깊숙이 손톱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 전투 중에 기절했다고.
죄, 죄송해요……
상자 좀 줘 봐.
네, 네?
약, 상, 자 말이야. 나한테 달라고.
출발 전
런디니움,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
잠시만, 이 약품들 등록만 마치고 바로 서명해 줄게.
가, 감사합니다!
임무 브리핑 자료는 받았어? 아직인 것 같으니까, 내가 한 부 출력해 줄게. 어디 보자…… 도시 밖 수용소의 아이들이 실종됐다고?
거기라면 나도 알아. 무척 선량한 어르신이 세운, 황야의 가장자리에 있는 수용소거든. 전쟁이 끝나고 갈 곳 없는 많은 감염자 어린이가 그곳에서 살았지.
그 아이들은, 스스로, 도망쳤다, 라고 들었어요……
베토치키는 입술을 깨물며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거긴 황야잖아. 그곳의 환경은 아무래도 런디니움이나 다른 이동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니까.
식량 부족, 야생동물의 습격, 활성 오리지늄의 노출…… 아무리 누군가 보호해 준다 해도 살아남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잔가지야?
네?
하아. 만약 내가 네 주치의였다면, 네 병세가 아직 안정되지도 않은 지금 상황에, 절대 그렇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허락하진 않았을 거야.
저, 봤어요, 그 아이들, 의 사진을…… 제가, 돕고 싶어요.
물론 '돕고 싶다'는 건 충분한 이유지만…… 역시 그것만으론 부족해. 자, 이 약들 잘 가져가도록 해,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지?
네, 네.
(똑똑)
대체 얼마나 더 꾸물댈 거야? 고작 동의서 한 장 가지고.
에휴…… 네 대장 때문에 너무 겁먹지 마, 잔가지야. 저 사람이 독하게 구는 건 다 연기니까.
선생님…… 대장이랑, 서로 아는 사이세요?
내 친구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부탁해 뒀으니까, 저래 봬도 가는 동안 널 잘 돌봐줄 거야…… 내 말은, 네가 약을 잘 챙겨 먹는지 감시할 거란 뜻이지.
똑, 딱, 똑딱!
잘 들어, 잔가지야. 네가 어떻게 인사부를 설득해서 외근 임무 참가 허가를 받아냈는지는 상관하지 않겠지만……
의사로서 내가 내릴 지시는 단 하나뿐이야. 그리고 친구로서도, 같은 부탁을 하나 할게……
꼭 제때 약 챙겨 먹고, 절대 네 목숨을 건 행동을 해서는 안 돼, 잔가지야.
의료부 오퍼레이터는 동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쓴 뒤, 그것을 베토치키의 손에 정중히 건네주었다.
가자, 출발할 시간이야. 약 잘 챙기고.
약상자는?
……여, 여기, 요.
……
이 약들, 한 알도 안 먹은 거야?
왜?
베토치키는 입술을 앙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번 작전의 임무 목표를 다시 한번 말해봐.
황야로…… 가서, 실종된, 감염자 아, 아이들을, 찾는 거예요.
그리고, 도시로, 데려와서, 치료를, 받게 하고요.
넌 자발적으로 이번 작전에 지원했었지. 말해봐, 왜 지원한 건지.
왜냐면,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감염자들을, 돕고 싶어요……
그러면, 왜 네가 널 데려가는 데 동의했다고 생각해?
제가, 저,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 겠다고…… 약속…… 해,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약속을 지켰어?
……
너는 전투 중에 기절했어. 널 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우린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
그 아이들은 반나절이나 더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고 말이야.
죄, 죄송해요……
아니. 지금은 사과할 때가 아니야.
난 그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네게 알려주려는 것뿐이야. 내가 널 데려온 건, 너 또한 그런 아이일 거라는 걸 알아봤기 때문이지…… 우리가 모두 그렇듯 말이야. 그게 내 이유였던 거지.
대장은 천천히 약상자를 가리켰다.
이제 네 이유를 알고 싶네.
베토치키는 대장의 시선을 피했다. 다음 순간, 전기 충격을 받은 듯한 통증이 표면의 상처에서부터 내장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굴러떨어졌다. 베토치키는 광석병으로 인한 염증이 자신의 신경을 손상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이런 고통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대장은 급히 약상자를 뜯어 낱개 포장된 진통제 알약을 여러 개 꺼냈고, 그중 하나를 뜯어 베토치키의 입에 넣어주었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베토치키는 알약을 삼켰다. 로도스 아일랜드가 중증 감염자를 위해 특수 제작한 이 진통제는 효과가 매우 좋아서, 보통 5분에서 10분이면 효과가 나타났다.
알약에는 여러 종류의 해조류 추출물이 혼합되어 달콤한 맛이 났다. 하지만 그 산뜻한 단맛에 도리어 베토치키는 곧바로 울음이 터졌다.
그녀 자신도 자기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금방 아프지 않게 될 텐데도 말이다.
내 친구가 말하길, 넌 줄곧 치료에 잘 협조했다고 하던데. 그런데 왜…… 진통제 먹는 걸 거부한 거지?
베토치키는 쌓여 있는 알약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진통제의 수량이 출발 전 의사에게 받았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전,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진통제'라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어요.
몇 년 전에는, 광산 구역에도, 알약이, 하나 있었죠. 하지만 그건…… 아주 쓰고, 먹으면, 어지러웠어요. 그래도, 아, 아픔은 좀, 가셨어요.
우르수스의 상황은 들어본 적 있어. 황제가 몇 가지 시도를 나름 하긴 했지만, 그 미약한 선의가 최하층까지 전달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
로도스 아일랜드의 약품 품질은 당연히 바깥보다 훨씬 좋을 텐데, 넌 오히려 거기에 적응이 안 되는 건가?
너, 너무, 달아서……
뭐라고?
그, 말을, 잘 못하겠, 어요…… 모르겠어요.
제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처음으로, 진짜, '진통제'를 먹, 먹었을 때, 저는, 저 자신이……
베토치키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몇 가지 단어를 이어서 말하려 애썼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 것, 같았어요.
저도, 아픈 건, 싫어요…… 하지만 그건, 오, 오랜 시간 동안, 저에게, 가장 익숙한, 느낌이었거든요.
고통을 떼어낼 수 없는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건, 내가 보기엔 불필요한 일이야. 물론, 넌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10분 더 휴식 시간을 줄게. 그 뒤에 구조대는 무조건 출발할 거야. 따라오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치료받든지 선택해.
대, 대장!
베토치키는 바닥에 흩어진 진통제를 주우며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고통이, 원래 우리의 일부, 라면……
그럼 분명, 거기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아직, 그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 으니까, 그걸…… 잃어버릴 순, 없어요.
……부대를 따라오기로 했다면, 반드시 제때 약을 먹어야 해. 내가 두 번 경고하게 만들지 마.
(작은 목소리로) 경계.
무슨 소리라도 들었나?
야생 터스크비스트의 울음소리…… 한 마리가 아니야. 울음소리의 리듬이 특이한 걸 보니, 사냥감을 포위하고 위협 중인 것 같아.
사, 사냥감이요?
위협만 하는 거라면, 아직 대치 중이라는 거네. 아이들 목소리는 들려?
(고개를 젓는다)
무리를 지은 야생 터스크비스트들이 사납긴 해도, 쫓아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다만 걱정되는 건, 터스크비스트의 울음소리가 황야에 있는 커다란 짐승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거지.
그, 맹글러비스트, 같은 거, 말인가요? 저희가……
방향 지시를 부탁할게,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베토치키, 넌 맨 뒤에서 따라와.
하지만, 저…… 저는!
이게 함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경로를 잘 기억해 둬. 만약 우리가 퇴각해야 한다면, 그땐 네가 부대를 이끌어야 하니까.
대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허리춤의 단검을 풀어 베토치키의 손에 건네준 뒤, 곧바로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
타오르는 횃불 아래, 억센 소녀가 횃불을 휘두르며 피와 살점에 굶주린 짐승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저리 가!
짐승들의 인내심은 아주 강했고, 놈들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핏방울을 노려보며, 시간이 저 횃불들을 꺼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말라고!
울음소리가 더 많은 짐승을 불러 모을 거야!
여자아이는 모래 한 줌을 집어 뒤로 내던지며, 도움을 주려 앞쪽으로 나오려던 아이들을 제지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수용소에서 도망쳐 나온 것을 후회하는지, 여자아이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죽으면…… 너희는 계속 달려. 런디니움에는 광석병을 치료하는 약이 있어…… 거기로 가면, 살 수 있을 거야!
횃불의 불빛이 줄어들자, 이내 짐승들이 어둠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가 아이를 향하던 그 순간……
버텨!
어둠 속에서 수많은 인영이 튀어나왔고, 방패 하나가 여자아이의 앞을 든든하게 막아섰다.
여자아이가 막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바닥에 쓰러졌던 터스크비스트 한 마리가 측면에서 돌연 뛰어올라 아이의 목덜미를 물었다.
안 돼!!
거, 겁내지 마……
이미, 짐승들은 다, 쫓아냈으니까. 모두, 이제 안전해.
무너져 내린 종루에는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서진 바닥과 검게 그을린 돌덩이 사이로 수많은 눈동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공기 중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한순간 아무도 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이 아이들이 맞는 것 같네. 전쟁 중에 광석병에 감염된 아이들이고, 대부분이 살카즈야.
베토치키, 인원수를 확인해.
……네.
오, 오지 마세요!
누나는……
죽은 거예요?
베토치키는 잠시 멈칫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히 죽음을 말하는 이 아이의 말투에, 그녀는 익숙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죽지, 않았어.
구조대의 다른 대원이 혼자서 횃불 하나로 터스크비스트 무리에 맞섰던 소녀를 업고 들어와, 평평한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원들은 곧바로 응급 조명 장비를 설치하고,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기도 절개 준비해.
베토치키, 내 단검 이리 줘 봐.
단검…… 이요?
그래, 단검 말이야.
삽관 준비하고, 한 명은 와서 교대하도록.
허억…… 허억……
조명의 빛을 빌리고 나서야, 베토치키는 비로소 그 아이와 종루 폐허 속에 숨어있던 다른 아이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나이는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었지만, 몸 표면은 무시무시한 검은 돌들로 뒤덮여 있었다.
짓물러진 상처, 옷감 위로 배어 나온 혈흔, 고통에 절어버린 무감각한 눈빛…… 베토치키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폐허 속에 몸을 숨겼던 아이들은 베토치키의 곁으로 와, 피투성이가 된 여자아이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누나, 살아있는 거예요?
잘 모르겠어……
일단 의식은 어느 정도 회복했어. 그래, 이 아이는 살아있어.
베토치키가 대장을 바라보자, 대장은 그녀에게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몇몇 아이들은 마치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주저앉았고, 이후론 더 이상 자신들의 눈물과 공포를 억누르지 않았다.
우리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왔어. 우들랜드 수용소의 책임자이신 화이트 씨의 의뢰를 받고 너희를 도우러 온 거야. 우리가 너희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줄게.
싫어요! 돌아가기 싫어요!
화이트 씨에게 말해주세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저희는 살고 싶다고요!
누나가 그랬어요. 런디니움에 약이 있다고, 우리를 고칠 수 있다고요!
하지만 너희는 제대로 된 방향조차 모르잖아. 런디니움은 너희가 걸어온 방향의 반대쪽에 있어. 우리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너희는 이 황야에서 죽었을 거야.
우린 런디니움으로, 가야 해요! 누나가 그렇게 말했어요!
모두, 치료, 받아야 해…… 상처가……
상처를 감싸며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던 베토치키는 문득 생각이 난 듯 급히 자기 배낭을 열어 내용물을 전부 바닥에 쏟아냈다.
지금 뭐 하는……
약, 이요! 이 아이들, 을…… 도, 도우려고요!
베토치키는몰래 숨겨둔 진통제들을 바닥에서 집어 들고, 하나씩 아이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먹으면, 금방, 아프지 않게, 될 테니까.
잔뜩, 있어! 그러니까 모두, 이제…… 더는 아프지 않아도, 돼!
베토치키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아이들에게 진통제 먹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애쓰다가, 급기야……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알약 포장지를 뜯어, 아이들의 앞에서 약을 삼켰다.
그러자 아이들도 그녀를 따라 약을 삼켰다.
베토치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은 알약 몇 개를 '누나'라고 불리던 여자아이에게 건네주려 몸을 돌렸다.
이 아이에겐 소용없어.
하지만, 분명 깨, 깨어났었잖아요……
베토치키!
(작은 목소리로) 그 어떤 약으로도 이 고통은 막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게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야……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진통제는 이런 알약이 아니야.
(작은 목소리로) 마지막으로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해주자.
(작은 목소리로) 아이들을 데리고 뛰쳐나온 것도, 아이들을 황야로 이끈 것도, 그리고 아이들을 지켜낸 것도 다 이 여자아이였으니까.
모두 더 이상 말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폐허 속에는 고장 난 풀무가 내는 소리 같은, 귀를 찌르는 듣기 힘든 숨소리만이 남았다. 그것은 죽어가는 자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었다.
베토치키는 손에 알약을 쥔 채로, 죽음을 단념하지 못하는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마주친 듯했다.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야 해.
누나,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응? '누나'?
우린…… 런디니움으로, 갈 거야.
런디니움이 이 살카즈 아이들에게 기꺼이 선의를 나누어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베토치키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병을 고칠 수 있는 그 '런디니움'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이 이 아이들을 어떻게든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사탕 고마워요, 누나. 이젠 정말 안 아픈 것 같아요.
베토치키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뒤편 종루 폐허에서 들려오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토치키.
약은, 방금, 먹었어요…… 상자, 여기 있는 거, 보세요.
그래, 봤다. 잘했어.
마침 나도 네게 보여줄 게 있어.
대장이 옷깃의 단추를 풀자, 목 부분에 뜬금없이 움푹 패인 상처가 드러났다. 거미줄 같은 흉터가 움푹 들어간 곳에서부터 아래턱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이건…… 뭐죠?
설명하자면 좀 복잡해. 탄약 파편이 살점과 이어진 뼈 하나를 도려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
많이…… 아프셨겠, 죠?
그래.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뼈에 뇌신경이 꽤나 많이 연결되어 있었거든. 전장을 떠나 병상에 누워있을 때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지.
난 그 통증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며, 심지어 막 아물기 시작한 상처를 긁어대기도 했었어. 긁어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는 바람에, 두 시간 만에 베개 절반이 피로 흠뻑 젖어 버렸지.
덕분에 담당 의사한테 욕도 꽤나 먹었어, 바로 네 동의서에 사인해 준 그 의사 말이야. 나중에는 친구가 됐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네가 이전에 나한테 물었을 때,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어떤 답은 그저 말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야. 네가 반드시 직접 가서 보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 답을 도출해 내야 해.
'고통'이, 생명에, 가지는 의미를……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넌 이미 알고 있어, 단지 그걸 아직 말로 내뱉지 못할 뿐이야.
병상에 누워 잠 못 이루던 그 밤 동안, 난 그 답을 얻었어. 하지만 그걸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데까지는, 또 십여 년이 더 걸렸지.
그건, 어떤 거죠?
네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건, 고통이 너를 변화시켜, 네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야.
아……
별로 놀랍지 않지? 말했잖나, 사실 넌 이미 알고 있었다고.
아뇨, 그런 걸, 느낀 게 아니라, 그……
예전에, 우르수스에, 있을 때……
그곳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사, 삶을 끝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어요.
그곳의 사람들, 우리에게는…… 변화할, 권리조차, 없었죠.
베토치키는 설원 위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길게 늘어선 그 대열을, 그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세어보았다.
대열의 끝까지 셀 때마다 매번, 그녀가 이를 악물며 내뱉은 그 숫자는, 이전보다 항상 조금씩 줄어들어 있었다.
“……723.”
“……722.”
“……721.”
모든 숫자 뒤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서 있다. 그녀는 그걸 알았고,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숫자가 출발할 때 9로 시작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넌 바꿀 수 있어. 너 자신을 바꾸든, 혹은 다른 이를 바꾸든 말이야.
“바꿀 수 있다”고요?
베토치키는 종루 폐허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얼굴과 자신이 건넨 '사탕'을 먹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표정들은 바뀌었을까? 자신은…… 무엇을 바꾸었을까? 자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알약들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그 단어를 반복해서 곱씹으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
대장은 베토치키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일어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베토치키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대장, 대장의 단검은……
분명 수술 중에 베토치키가 대장에게 단검을 돌려주었는데, 지금 대장의 허리에 찬 칼집은 텅 비어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그 어떤 약으로도 이 고통은 막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게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야……
(작은 목소리로)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진통제는 이런 알약이 아니야.
……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야 해.
단검은 그 아이에게 남겨두고 왔어.
그 아이는 자신이 데려온 아이들 앞에서 죽고 싶지 않았고, 그런 용기 있는 행동 뒤에 고통스러운 벌을 받아서도 안 되니까……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는 마. 만약 언젠가 내가 그런 처지에 놓여, 내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표현 수단인, 내 눈동자를 네가 바라보게 된다면, 너 역시 그게 무슨 뜻인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테니까.
대장은 말을 마치고 천막을 나섰다.
구조대 대원들은 이미 아이들에게 붕대 조치를 끝내고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는 신속히 집결하여 런디니움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을 올렸다.
어느덧 시간이 꽤 흘러 언제든 해가 떠오를 수 있는 때였지만, 베토치키는 아직 방향이 헷갈려서, 어느 쪽에서 해가 떠오를지 알지 못했다.
우리……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너희를 안전 구역까지 호송한 뒤에 내가 한번 다녀오려고. 그 아이도 데려와야 하니까.
베토치키는 대장의 빈 칼집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무너진 종루가 어떤 방식을 통해서 재조립되어 세워지고 있었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자, 종루의 폐허에 쓸쓸한 아침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렸다.
베토치키는 방패를 내려놓고, 그 방향을 향해 자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내리쳤다.
그녀는 마치 종을 울리듯 자신의 방패를 한번 또 한 번 계속해서 두드렸다.
종소리는 황야에 숨어있던 수많은 생명을 놀라게 해 깨어나게 했다.
그녀는 고통을 참으며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태양이 점차 완전하게, 커다래지는 모습을, 그녀는 눈물이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울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