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캄캄한 밤을 누비는 악몽, 어린아이들만 잡아가 피를 뽑는 뱀파이어님의 강림이니라!
등장 오퍼레이터: 와파린
10:32 P. M. 날씨/이슬비
체르노보그, 전후 폐허
저기요! 누구 없어요?
……
날이 너무 깜깜해졌어…… 방금 학교, 베이커리, 롤레나 어머님네 양복점을 지나왔는데……
더 앞으로 가면 이 블록을 지나가겠지?
제길…… 갈수록 길이 더 험해지네. 이게 다 가면을 쓴 미치광이 때문이야. 갑자기 다 달라졌어.
유리…… 유리! 여기 있어?
분명히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난 그냥 마실 물을 찾으러 갔을 뿐인데.
제일 어리고 상처도 심한 애가 혼자 어딜 간 거야? 맞다, 아직도 상처에서 피가 날 텐데…… 피비린내…… 으, 사방이 피 냄새야.
우웩, 지독해.
안 돼, 토하면 안 돼. 이건 올렉 형이 폐허 속에서 힘들게 찾은 저녁이야.
유리……
흐으……
벽 뒤에서 소리가 나는데? 동물인가? 말도 안 돼. 이 길가엔 우리 말고 살아있는 것들은 진작에 다 도망쳤는데.
흐으……
또 들렸어. 바람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정말로……
유리, 유리? 너야?
기척이 없어. 너무 멀어서 그런가? 이 벽 뒤가…… 백화점의 옛 창고인가?
이 창고는 계속 비어있었어. 늘 어른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잖아. 예전에 올렉 형이 몰래 우릴 데리고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유리가 혼자서 여기까지 왔을 리 없잖아? 벽 틈이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안 보여. 이런, 기어서 들어가야겠다.
안이 더 어둡네. 얼굴에 끈적거리는 건 밖에서 들어온 비인가? ……비린내가…… 우웩.
생각났다…… 학교 여학생들이 창고 안에 이상한 게 있다고 말했었어.
……가짜야. 분명 가짜일 거야.
하지만…… 요 며칠 이상한 일이 많지 않았나?
안 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안톤, 겁먹지 마. 넌 유리를 찾아야 한다고.
흐으…… 흑……
울음소리야! 저쪽에서 누군가 울고 있어! 이번에는 확실히 들었어.
유리, 네가 울고 있는 거야?
안톤…… 안톤이야?
나야. 그래, 나야. 내가 왔어. 겁먹지 마, 내가 금방 네 쪽으로 갈게.
도…… 도와줘……
조금만 버텨, 곧 갈게. 근데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왜 혼자 여기까지 온 거야?
너 다리가…… 다리 다친 거 아니었어?
흑…… 괴, 괴물이 있어……
괴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혹시 열나는 거 아니야?
괴물이…… 날 잡아왔어……
……
네가 말한 괴물이 어떻게 생겼는데?
내…… 내가 분명히 봤어…… 칠흑 같은 발톱이 있고…… 핏빛 눈을 가졌어! 날 노려보는데 너무 무서웠어.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겠어.
검은 발톱, 빨간 눈?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그거다. 학교에서 리나가 말한 귀신 이야기지?
응…… 리나가 그랬어. 밤에 안 자는 아이가 있으면 괴물이 침대까지 기어 올 거라고.
괴물이 널 계속 노려보고 있어. 네 눈이 그 붉은 눈과 마주치면, 네 영혼은 순식간에 흡수되고 말 거야.
넌 꼭두각시처럼 변해서 괴물을 따라 집에서 나와…… 괴물 소굴까지 가게 될 거야.
그리고 그곳에서는 괴물이 널 매달겠지…… 처마 밑에 매달린 콜바사처럼 말이야……
그러다 괴물의 배가 고파지면…… 피를 마시겠지. 한 모금 그리고 또 한 모금, 네 몸의 피를 다 빨아들일 때까지.
흑흑…… 안톤, 혹시 나도……
……겁먹지 마. 그건 다 어른들이 우리를 일찍 재우려고 한 거짓말이야. 그럼, 분명히 그럴 거야.
저, 정말?
생각해 봐, 너 지금 진짜로 매달려있어?
뭐…… 뭔가 내 다리를 잡고 있어…… 아주 높은 곳에서……
……뭐라고?!
그러니까…… 리나가 말했던 게 다 진짜인 거지?
흑흑…… 안톤…… 난 괴물한테 잡아먹히고 싶지 않아.
걱정 마, 내가 곧 갈 테니까. 좀 더 서두른다면 그 괴물이…… 그 뭔지 모를 게 돌아오기 전에 내가 널 업고 돌아갈 수 있어.
알겠어…… 아, 아니야…… 안톤, 오지 마. 빨리 돌아가!
이미 네가 보이는걸, 유리……
이건 뭐야?!
캄캄한 밤을 누비는 악몽.
어린아이들만 잡아가 피를 흡수하는 괴물.
그것들의 몸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그것들은 핏빛 눈을 가지고 있다.
아아……
잡았다.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너…… 너 유리를 해치지 마!
이 몸이, 걔를 해친다고? 꼬마야, 그대는 이 몸이 뭘 하려는 것 같은가?
피를 마시려는 거잖아, 이 흡혈 괴물!
흠,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군.
그래, 그래. 맞다, 이 몸은 뱀파이어.
오, 허약해 보이는데 반응은 느리지 않군그래?
하지만 이 몸에게 벽돌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이 몸은 뱀파이어다, 뱀파이어! 우리는 속도가 아주 빠르고, 힘으로는 살카즈 중에서도 손에 꼽지. 그리고, 이 몸의 이가 보이느냐?
이 몸은 치스티비스트의 목덜미도 손쉽게 물어뜯을 수 있지.
……
움직이지 않는구나? 현명한 선택이야.
이 괴물아, 유리는 풀어줘. 쟤는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어. 분명 나보다 피가 없을 거야.
대신 날 매달았다가 배고플 때 내 피를 마시면 되잖아.
하지 마. 안톤…… 그건 안 돼……
좋아. 이 장소가 발견된 이상.
……너무 빨라! 손도 못 움직이겠어……
윽…… 아파!
애초에 피할 수가 없네…… 이게…… 물린 느낌인 걸까?
됐다.
……됐다고? 난 아직 서있는데…… 어지러운 느낌도 없어……
이 정도 피면, 네 몸도 괜찮네. 부작용도 없겠어.
그럼, 날 잡아서…… 콜바사처럼 매달아 둘 거야?
콜바사? 우르수스 특산물? 듣고 보니 맛이 꽤 괜찮은 모양이구나. 야근이 끝나고 기회가 되면 맛볼 수 있겠지.
……
컴퍼스? 컴퍼스 아직 거기 있느냐?
콜록, 닥터 와파린, 있습니다.
이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그대는 옆에 숨어서 구경만 하는군.
하하, 저도 온 지 얼마 안 됐는걸요. 닥터 와파린은 상당히 즐거워 보이네요.
닥…… 터?
그러니까, 이 흡혈 괴물이 닥터라고?
이거 보게나, 컴퍼스. 이 아이가 이 몸을 흡혈 괴물이라고 불렀잖나. 난 살짝 겁만 줬을 뿐인고, 이 정도면 충분히 인자하지 않나?
우리를…… 겁준 거 라고요?
제가 설명하죠.
꼬마야, 난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네 친구를 발견했어. 그때는 걔 혼자였고, 크게 다친 것처럼 보였지.
난 혼자 밖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데리고 온 거야. 계속 몽롱해 하더니, 중간에는 완전히 기절해버렸다고. 나도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었어.
닥터 와파린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의사 중 하나야. 저분은 경험이 아주 풍부하니까 안심하고 친구의 치료를 맡겨도 돼.
아, 그리고 방금 닥터 와파린이 네 피를 조금 뽑은 건 검사하려는 것뿐이야.
……검사?
좋아, 결과가 나왔어. 우르수스 속담으로 뭐라고 하더라? 음, 이 젊은이는 야생 버든비스트만큼 튼튼하다.
축하한다, 꼬마야. 넌 감염되지 않았구나.
감염이라면…… 광석병 말이야?
그래. 지금껏 체르노보그에 살아있으면서도 감염되지 않았다면 진짜 운이 좋은 거라 할 수 있겠지?
그대의 친구처럼 상황이 심각한 건 아니구나.
유리는 어때요?
대처가 너무 늦은 건 아니야. 어쨌든 이 몸이 있으니 말이지. 폴리닉이 이 구역을 맡았다면 이 몸처럼 이렇게나 아름답게 처리할 수 없었을 게다.
콜록, 그 말을 닥터 폴리닉이 들었다면 불같이 화냈을 거예요.
불쾌하면 또 어떤가? 폴리닉은 더 배워야 해.
폴리닉이 이 몸처럼 신속하게 혈액 냄새의 변화로 오리지늄 결정이 체내에서 축적된 방향을 확정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갓 감염 조짐을 보인 환자는 신속히 상처를 치료하고 감염 확산을 억제하는 것 외에도, 이미 체내에 들어간 오리지늄이 고체화되는 것까지 막아야 한다.
시중의 억제제는 증세만 완화할 뿐이다. 이 몸도 환자를 악화시킬 위험을 상대적으로 낮게 억제시킬 수밖에 없지.
유리의 다리를 이렇게 매달아둔 것도 유리를 구하기 위한 거였어?
이건……
음…… 그렇겠지? 이 몸이 줄곧 해보고 싶었던 방법이거든. 오늘의 이 케이스라면 효율이 몇 퍼센트 정도는 올라갔을 텐데……
아니면 오차일 뿐인가? 아, 역시 사람을 몇 명 더 찾아서 실험해야겠어……
쿨럭, 닥터 와파린, 그러다간 이 아이들이 또 벌벌 떨겠어요.
흑……
그럼, 둘이 우릴 도와준 거구나.
……고마워.
급하게 인사 안 해도 된다. 유리라는 아이는 추후 상황을 잘 지켜봐야 하니까.
정말로 감염자가 되었다면……
됐어,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
안톤, 일단 유리를 데리고 가서 좀 쉬어. 날이 밝으면 내가 야영지까지 바래다줄게.
야영지?
그래. 우리는 조만간 체르노보그에서 철수할 거야. 그때 너희를 근처 우르수스 도시로 데려다줄 수 있어.
……유리의 감염 증세가 더 심해지지 않는다면 말이야.
올렉 형이랑 다른 애들도 있어. 우리는 다섯 명이야. 같이 있어야 해.
그래? 좋아. 그럼 일단은 내가 찾아볼게. 닥터 와파린도 검사를 해줄 거야.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잘 살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더 커질 거야.
저기……
응?
질문이 하나 있어……
무엇이냐?
정말로…… 흡혈괴물인 거야?
콜록, 콜록콜록.
(이빨을 드러낸다)
……
물러설 거야? 의외로 잘 참네. 진짜 용감한 아이구나.
솔직히 말하면, 닥터 와파린을 안 지 오래돼서 좀 엉뚱하다는 건 알지만……
어이 어이!
콜록, 의술이 아주 뛰어난 의사야. 하지만 가끔…… 수술대에 묶여 있을 때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 있긴 하지만.
흠, 그건 본능이니 용서하게나.
갯지렁이가 메탈 크랩을 만나고, 다른 소형 동물이 더 흉악한 야수를 만난 것처럼, 너희도 뱀파이어를 만나면 당연히 두렵겠지.
그리고, 두려움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이다. 밖에 나가면 이 몸과 클로저같이 좋은 뱀파이어는 보기 드물거든.
하…… 하하.
음…… 다시 꼬마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반반이라고 할 수 있지.
반반?
이 몸이 지금 피에 대해 관심 갖는 건 단순히 먹고 싶어서가 아니니라.
그럼…… 괴물?
자기를 괴물이라고 부르면…… 화 안 나?
그건…… 그대들에게는 이 몸이 괴물 아닌가?
이 몸은 그대들 같은 부류로 봐주길 원하지 않는다. 이 몸 또한 다른 종족을 같은 부류로 보지 않지.
더군다나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괴물 취급을 받는다면…… 누구든 괴물로 불릴 수 있다는 거겠지.
만약 그대의 친구 유리가 진짜 감염자가 됐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친구를 그렇게 부를 거다.
……
아니, 난 내 친구를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은 어떤가? 그대가 친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유리를 괴물이라 부르면, 내가 다 쫓아낼 거야.
봐라, 화가 나지 않는가?
그대가 그들을 때리면, 그들도 그대를 때리겠지. 그렇게 싸우면 헛수고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시간 낭비가 아닌가?
시간…… 낭비?
그래, 시간 낭비. 그대가 화를 내는 동안, 그대의 친구는 병세가 악화돼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서서히 알게 될 것이다. 화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낫다는걸.
그대들이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 같으냐?
살아간다…… 맞아, 살고 싶어.
그게 맞는 것이다! 더 잘 살고 싶으면, 자신이 다른 부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남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그리고, 그대가 좀 더 자라면 더 많은 곳에 가서 둘러보도록 해라……
설마 괴물이라는 게…… 화낼만한 일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