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 자국
처음 쎄루에르차에 도착했을 때, 파죰카는 과거와의 이별을 위해 두린 장인에게 만년필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하지만 장인들은 오래도록 주문서를 건네주지 않았고, 이에 파죰카는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알아보기로 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파죰카
“검보다 날카롭고 설원보다 차가우며 기억보다 무거운 것.”
“내가 과연 심장을 찌르는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그것을 들어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그것으로 뭔가를 써 내려가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내 지난 세월의 마지막 단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의뢰의 세부 사항이야. 장담하는데 한 글자도 빠짐없이 적었다.
확신할 수 있어? 특히 맨 뒤의 이 부분, 엄청 작게 말했었잖아. 제대로 들은 거 확실해?
글쎄.
벌써 보름이나 지났는데, 그때 작게 말했다는 건 어떻게 기억하는 거야?
이상하지 않아? 처음에는 만년필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스타일대로 만들어달라고 했었잖아.
뒤에 있는 이 말, 정말 우리에게 한 말 맞아? 혼잣말 아니야?
글쎄.
……아, 잠깐만.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고?
그런데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고?
겨우 보름일 뿐이잖아. 그때는 내 연필도 제대로 안 깎아놓은 데다…… 벌꿀주도 다 마셔버렸었으니까.
그렇긴 하지. 자, 우선 한잔하자고.
건배! ……끅. 형씨, 그 요구 사항은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이 단어들을 봐…… 엄청 강하고, 엄청 차갑고, 엄청 무겁다는 뜻이잖아.
음, 그렇다면 모종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무기라는 건가?
거기에다가 만년필의 디자인을 약간 더해주는 거지.
약간이면 된다고? 그럼 이 부분에 더하면 될 것 같아.
그래! 그냥 대충 선을 그은 것뿐이지만 멋진 스케치인 것 같아!
그래서 이게 뭔데?
보기에는…… 석궁 같아. 넌 어떻게 생각해?
비슷하긴 하네. 구조를 디자인해 봐야겠어. 날 믿어, 분명 위대한 작품이 될 거야, 《기담괴론》에 기록된 그 무엇보다도 더.
당연히 그래야지. 아니면 어떻게 지상인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
맞는 말이야. 다시 건배!
오늘의 작업이 끝난 것을 축하하며!
“……그건 쎄루에르차 역사상 가장 커다란 형광 버섯이었다.”
하아, 《전설의 탐험가가 밝히는 쎄루에르차의 비밀》에도 쓸만한 정보는 없네요.
3년 전의 17판 광산 노선도로는…… 이 도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권력자들이 어떤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 보여줄 수 없어요.
어쩌면 더 이른 시기의 외부인이 남긴 서적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두린어를 배워야만 이 조각조각 거짓으로 포장된 낱말 속에서 쎄루에르차의 역사를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어찌 됐건, 내가 직접 목도한 건 거짓이 아닐 테니까요.
이곳 사람들은 진짜 하나같이 주정뱅들 뿐이에요!
아니죠…… 난 이미 그곳에서 빠져나왔어요…… 그 땅은 이제 잊어야 합니다.
……
이 두린족들 역시 똑같을지도 몰라요. 공통적인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고, 그래서 다 같이 술을 마시는 것으로 도피하는 거죠.
저들의 고통과 금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들 사이에 녹아들 수 없어요.
겉으로는 무사태평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날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심지어 적의로 가득하죠.
그렇지 않다면 보름이 지나도록 의뢰한 만년필이 아무런 소식도 없을 리 없잖아요.
안녕, 아브도티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도서관에서 너무 시끄럽게 굴었죠?
길고도 외로운 여정을 겪고 나니 혼잣말하는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네요.
자…… 이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 우리가 견과류 아이스크림 먹기 시합했던 건 1201호에 실린 게 맞다니까!
아니, 책이 뒤집어졌잖아. 이건 1051호야. 게다가 이 사진은 너도 아니고.
네 목소리가 그렇게 큰 편도 아닌 걸.
그나저나 전에 도서관의 로봇이 무슨…… 군사 시설 같아서 봐 무섭다고 했잖아. 그래서 네게 다가오지 말라고 해놨어.
찾고 싶은 책이 있다면 나한테 얘기하면 돼.
고맙습니다.
제게 도서 분류법을 알려주시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럼 필요한 책을 직접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음, 도서 분류법이라…… 거기에 대한 책이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잠깐만, 사다리 좀 가져올게.
분류법에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나요?
음, 그것도 기억이 잘 안 나네.
왜냐하면 80%의 책이 분류법에 맞지 않는 곳에 놓여 있거든.
……
도와주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냥 거리를 좀 돌아보고 올게요. 당신들에게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브도티야, 도서관에 있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데, 쎄루에르차를 위해 책을 써볼 생각은 안 해봤어?
《기담괴론》에 기록된 것과 같은 지상인들이, 이 두린족의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쓰고 싶지는 않아요.
내…… 내가 실례되는 말을 했나?
아뇨. 그냥 제 스스로 마주해야 할 문제일 뿐이에요.
지상에서의 기억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 위해, 과거에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은 하기 싫거든요.
아쉽네. 넌 문학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구나. 그럼 탁 트인 곳에 가서 한 번 돌아다녀 봐.
읽던 책은 전부 저 책장에 두고 가면 돼. 그리고 나갈 때 조심해. 요즘 입구에서 술 취한 두린족들이 늘 경주를 하거든.
……알려줘서 고마워요.
참, 궁금한 게 있어요.
무슨 일인데, 아브도티야?
두린족들의 성씨에는 어떤 규칙이 있나요?
별다른 규칙은 없어. 예를 들자면 내 성은 실버민트잖아. 장로님의 성은 어스하트고……
전부 사물의 이름에서 비롯된 거군요.
(두린족들에게는 평범한 성씨겠지만, 나는 단어 속의 의미와 은유를 지나칠 수가 없어.)
……고마워요, 이해했어요.
모든 곳을 비추는 인공 햇빛과 영원히 겨울이 찾아오지 않는 도시.
어떻게 해야 내 몸에 배어든 눈보라의 기운을 숨기고 두린족의 날카로운 시선을 벗어날 수 있을까?
만약 과거의 모든 것을 털어내고 추방도 배신도 없이 저들의 지붕 밑에 머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도착했네.
그 두 장인의 집이 이쪽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응?
커다란 미끄럼틀…… 하지만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없어……
울타리가 없는 반쪽짜리 트램펄린……
……이것들은 다 뭐지?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째서 반쪽짜리 놀이 기구만 모여있는 건가요?
그리고 예전에 이곳에 주문 제작을 하는 장인들이 있었지 않았나요……
오! 한 명 더 잡았다!
……잡았다고요? 절 어디로 잡아가려는 거죠?!
당연히 투표 현장이지!
오! 그렇게 놀라는 걸 보니, 너도 은둔형 외톨이인가 보지? 이 거리의 재건 대회를 놓치다니!
벌써 세 번째 시합 작품이라고.
이 거리를 어떤 식으로 재건할지 투표하기 위해, 이번 대회는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어.
모든 참가자가 자신이 디자인한 설계도의 반쪽만 짓는 거야. 그리고……
……관객들이 '완성본을 가장 보고 싶은 디자인'에 투표하는 거지!
어때? 더 매력적이지 않아?
아니요, 전 그냥 원래 이 거리에 있던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가 궁금해요.
그대로 추방당한 건가요? 아니면 두린족의 어두운 광산에 유배당한 건가요?
자, 투표하러 가자!
하아……
만약 이게 두린족의 생활 방식이라면, 거절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전 키가 크니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띌 거예요. 만약 제 선택이 대다수 사람의 선택과 다르면…… 두린족들은 절 어떻게 생각할까요……
맞네, 넌 키가 크니까
투표 기록 담당자로 딱이겠어!
미리 기록원 세 명을 찾아두기는 했는데, 오늘 잔뜩 취해서 세 명 다 안 왔거든.
그래서 지금 기록원 자리가 비어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어서 가죠.
……'슈퍼 알코올 회오리 범퍼카', 20표!
그리고 기권표, 309표!
절반이 넘는 사람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네요!
……하아, 두린족의 대화 방식은 너무 흉내 내기 힘들어.
내가 아무리 두린족의 삶에 녹아들고 싶다고 해도…… '기록' 같은 단어를 내 성씨로 삼기는 싫어.
역시 기권자가 많군. 아무래도 네 번째 시합을 할 수밖에 없겠어.
놀이 기구는 이제 유행이 끝난 거 아니야? 다음에는 조각상을 주제로 하는 게 어때?
흐음, 어차피 내 디자인이 네 것보다는 항상 인기가 많으니까.
시합에 참여한 디자이너니까 저 거리에 익숙하시겠네요?
당연하지.
그럼 보름 전에 저 거리에 있던 두 명의 장인이 운영하던 가게를 알고 있나요?
그 가게에 만년필을 의뢰했는데 그대로 사라져 버렸거든요.
오……
아무래도 그거겠네.
그렇겠지.
뭔가요?
실수로 네 의뢰를 잊어버린 것 같아.
네?
그게 아니었다면 집을 허물 때 너한테 연락해 줬을 거야.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잊어버려도 별문제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제게는 중요한 일이에요.
오, 만년필 애호가구먼!
서예를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거야?
저는……
자자자. 왜 그렇게 우거지상이야? 어차피 큰 공사를 할 때는 취하지 않은 장인이라면 다들 도와주러 온다고. 그때 녀석들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예를 들어 이 시합의 결과가 나올 때쯤 말이지.
참, 시합이라고 하니 네가 내게 영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서 알려 줘. 지상은 어떤 모습이야?
이봐, 그건 내가 물어보려던 거란 말이야!
그러면 지금 투표해 보는 건 어때? 지상으로부터의 영감을 누구에게 줄지 말이야.
좋아.
……잠깐만요. 그럴 필요 없어요.
말하고 싶지 않은 거야?
……두 분께 들려드릴게요.
전 그냥 누구든 모든 두린족을 납득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그래야 제가 의뢰를 맡긴 두 장인을 빠르게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찾아서 죽인다고?
아…… 알겠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방해할 수 있는 추월 레이스 말이구나!
높은 벽! 하지만 좁은 길에서 대치 상황!
커다란 연회장에서 모두가 취해서 쓰러지는 거지!
폭력! 엄청난 폭력!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어서 가자!
두린족들은…… 설마 정말 '찾아서 죽인다'와 '독을 쓴다'라는 말이 뭔지 모르는 건가?
그런데 난……
잠깐만. 나 방금 이 추악한 지식을 저들에게 알려준 거야?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차가운 공기를 차단하는 높은 돌담이었다. 인테리어 액자가 가득한 복도에는 뜨거운 음식과 술이 차려진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작되는 그녀의 문장은 높은 벽을 무너뜨렸고, 자애로운 그림은 불길 속에서 타올랐으며, 붉은 술은 새하얀 냅킨을 물들였다.”
……
이미 엎지른 물이야. 죄악이 가득한 생각은 시작된 이상 끊을 수 없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들이 쎄루에르차에 이 이야기를 퍼뜨리지 못하게 막는 것뿐이야!
왜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던 거지! 분명 이런 시합 방식이 있는데 말이야!
맞아. 이러면 오래도록 서로 겨룰 수 있겠어.
이게 바로…… '초대형 물대포 대결'이다!
봐, 모든 창문에 물총을 배치했어. 길 맞은편에 있는 네가 디자인한 작품을 쏠 수 있지.
하지만 모두가 가장 원하는 시설로 우리 둘 중에 한 사람만 뽑히게 된다면, 대결할 수 없게 되잖아?
아, 그렇네.
그러니까 우리 둘이 팀으로 네 번째 시합에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좋은 생각이야!
새로운 벌꿀주 판매를 도와주고 싶다고? 음…… 넌 누구야?
저…… 저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오…… 우리가 만든 벌꿀주를 좋아하다니, 뭘 좀 아네.
이곳에 온 뒤로 두린족들이 이런 술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있어요. 한 잔이면 쓰러지는 것 같던데…… 분명 엄청나게 독한 술이겠죠.
하하하, 맞는 말이야. 나도 두 잔이면 며칠은 취해 있다고!
제 생각엔, 당신의 잔이 좀 큰 게 아닌가 싶은데요.
하지만 정말 좋네요.
일이 급해서 미룰 수 없으니 지금 바로 술을 가지고 출발할게요.
(홍보 형식이라면 두 디자이너에게 술을 계속 줘도 의심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신나게 마시고 잔뜩 취하겠지)
(디자인 대회의 마감일을 놓치게 만들면…… 그들의 디자인을 통해 지상의 이야기가 퍼질 일도 없을 거야. 어쩌면 완벽하게 잊을지도 몰라.)
좋아. 우리의 순조로운 홍보를 위해, 일단 건배!
잠시만요, 저는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는데……
(방금까지 그렇게 날카로운 눈을 했으면서, 왜 이 타이밍에 술을 마시자는 걸까요? 대낮부터 잠들어 버릴 수는 없어요.)
아니, 그러니까…… 일하려면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건배는 나중에 해요!
이, 이만 가볼게요!
거기 두 분, 한번 시음을……
오, 오!
핀치 씨, 훌륭해!
……할 생각이 없군요.
엄청나잖아, 우아하고 간결한 건축 라인이라니. 불필요한 곡면 때문에 공간이 낭비되는 일도 없을 거야.
게다가 핀치 씨의 말대로 디자인을 마치면 이 상가 거리의 채광도 인조 직사광선과는 좀 달라질 거야. 그런 빛 속에서라면 상품들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지.
핀치 씨의 천재적인 디자인을 하루빨리 보고 싶어!
처음에는 거기에 놀이 시설을 만들고 싶긴 했지만 말이야.
그럼 이 디자인에 동의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엄청 많잖아.
대충 봐도 대부분이 지지한다는 걸 알 수 있겠어.
하지만 저 디자이너, 무대에서 계속 두린족들의 생활 방식을 질책하지 않았었나?!
하아, 그럼 우리 디자인은 물거품이 됐네.
핀치 씨의 말이 맞긴 해. 지금 쎄루에르차의 4분에 1이 놀이 시설이잖아.
어, 키다리, 언제 왔어? 핀치 씨의 연설 들었어?
네, 조금은요.
예전에 그 디자인은 포기했다고 들었는데요……
새로 빚은 벌꿀주잖아! 이 향, 확실해!
우리도 이제 꽤 친한 사이니까, 사양하지 않을게!
아, 방금 그 연설자가 말했던 '절제하는 삶'이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건가요?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요.
비켜, 저리 비켜! 이건 핀치 씨가 우리에게 만들어달라고 했던 판매 차야. 이제 성능을 시험해 볼 시간이라고!
달려, 더 빨리! 앞쪽에 있는 복도 기둥을 끼고 급커브!
커브를 돌기엔 공간이 부족하지 않나?
그럼 충돌 테스트나 한번 해보자고.
음, 안전한 편이네. 뒤쪽의 적재함에 아직 아무것도 없어서 그럴 수도 있어.
……안녕하세요.
이 거리 공시가 시작된 뒤로 계속 기다렸어요.
응? 음…… 뭔가 익숙한 사람인데.
어이, 누군지 기억나?
뭐라고?
모처럼 바닥에 누웠으니 한숨 자야겠는데……
하아, 다시 알려드려야겠네요.
저는…… 그러니까 제가 아는 사람이 이 거리에서 두 장인에게 두린 스타일의 만년필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어요.
그 사람의 짐에는 책이 담겨 있었고, 머릿속에는 고향의 언어가 있어요. 하지만 더는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펜을 드는 순간, 눈에 젖은 망토를 두른 자신이 보낼 곳 없는 편지를 써 내려가던 모습이 떠오르거든요.
왜 보낼 곳이 없는데? 이웃 마을로 향하는 길이 전부 끊어진 거야?
……죄송해요. 주제를 벗어났네요.
아무튼 자신이 봉인한 과거를 기념하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음, 그리고 뭐……
서기라도 되고 싶은 건가?
그건 과거와 완벽하게 작별한 게 아니에요.
그럼 그 사람은 그 만년필을 원한다는 거야, 원하지 않는다는 거야?
……됐어요.
이 이야기에서 그녀는 벌꿀주 판매원이 되는 걸로 하죠! 그리고 모두와 함께 즐겁게 술을 마시는 거예요. 술 향기가 인공 호수 전체를 가득 채우는 거죠!
오, 정말? 좋은 결말이야! 마음에 들어!
다행이야. 차에 다른 건 없지만 벌꿀주 두 통은 있었네.
뭐라고? 네가 가져온 거야? 빨리 말했으면 진작 일어났을 거라고.
자, 건배!
……저도 한 잔 주세요. 감사해요.
사실 20일 전에 두 분께 만년필을 만들어달라고 했었어요.
그래서…… 제 만년필은요?
아아, 앗! 너였구나, 생각났어!
완성하기는 했는데, 누가 의뢰했는지를 까먹어서……
……잠깐만. 만년필?
우리가 만든 건 만년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하자면 만년필인 부분도 있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만든 건 석궁이야.
석궁이요?
제가…… 왜 무기를 원하겠어요?
누구의 의뢰였던 지는 까먹었지만, 그때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나.
너무 생생한 묘사였거든. 어째서 만년필로 심장을 찌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가슴에 화살이 박힌 것처럼 아팠어!
……네?
……그래요. 역시 다시 만년필을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타자기도 필요해요.
아브도티야, 또 왔네.
네. 두린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잡지를 찾고 있어요. 어떤 슬로건이 매력적인지 궁금해서요.
그런 책은 입구에 있는 책장에 있어. 아마 맞을 거야, 매일 많은 사람이 보는 책이니까!
감사합니다!
맞다, 아브도티야. 아브도티야…… 최근 어디선가 네 이름을 본 것 같은데?
네. 투고를 위해서 두린족 스타일을 흉내 제 성씨를 만들어 봤거든요.
그렇다면 최신 잡지에서 봤었겠네.
더는 글을 쓰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두 명의 두린족이 제게 과거의 추억을 봉인하기에 더 적합한 소장품을 만들어 줬거든요.
만년필과 타자기는 계속 사용해도 나쁠 것 없으니까요.
아, 찾았다! 아브도티야……
……'라조르펜'.
저는……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걸 진정으로 버릴 수는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