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되찾은 빛

되찾은 빛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말다툼으로 서먹해진 두 자매. 리베리의 불행이 정해진 그날,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조금씩 변해가기로 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아스테시아, 아스트젠, 듀나


컬럼비아, 트리마운츠

아스테시아

더는 고칠 부분이 없는 것 같아.

아스테시아

수고했어, 지니.

아스트젠

아니야,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걸.

아스트젠

솔직히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어. 언니를 도와 데이터 모델을 제공하고 조금 손봤을 뿐이야.

아스트젠

구체적인 틀과 내용은 언니가 구상했잖아.

아스테시아

일주일 후면 점성술 연구 협회 회당에서 논의가 시작될 거야.

아스트젠

트리마운츠 상공에 생긴 공동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아스테시아

우리 집엔 별 영향이 없었어. 엄마랑 아빠가 공상 펼치는 걸 워낙 싫어하시니까.

아스테시아

음…… 근데 두 분이 트리마운츠에 오신 지도 좀 됐는데, 보고서를 쓰느라 여태 못 뵀네.

아스테시아

혹시 만나러 가고 싶어, 지니?

아스트젠

아니, 우르비카 성씨만 보면 머리가 지끈거려. 언니만 빼고 말이야.

아스트젠

그나저나 언니, 이…… 연구 내용이 담긴 보고서는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생각이야?

아스테시아

연설 후에 학계에 무상으로 제공할 생각이야.

아스테시아

트리마운츠 공동 너머의 별하늘은 운행 규칙이 완전히 달라. 하지만 구멍이 작아서 모든 별이 그렇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

아스테시아

하지만 우리가 연구한 환산 모델만 있다면 모든 연구원이 두 체계의 별자리에 대한 대략적인 좌표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운행 규칙과 상대 관계를 더 깊이 추론해 낼 수 있겠지.

아스테시아

어쩌면 앞으로 별하늘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

아스트젠

확실히 언니가 할 법한 일이네.

아스트젠

참, 공동 너머의 별하늘 덕분에 새로운 점성술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트리마운츠에 온 목적도 이뤘으니…… 내 오늘의 운세를 좀 봐줄래?

아스테시아

언제 또 이런 거에 흥미를 붙였대?

아스트젠

재밌잖아. 얼른 봐줘, 언니.

아스테시아

알겠어……

아스테시아

(생각에 잠긴다)

아스테시아

(혼잣말을 한다)

아스테시아

(천구의를 높이 든다)

아스테시아

점성술 결과가…… 기존의 형식과 좀 다른 것 같아……

아스테시아

“오늘은 리베리의 재앙이다.”

아스테시아

이게 별들에게 전해 받은 소식이야.

아스테시아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자세한데, 이상하다……

아스트젠

왠지 불길하네…… 휴, 신경 쓰지 마. 심심해서 물어본 거니까.

아스트젠

전에도 언니가 나한테 무슨 재앙이 닥친다고 했는데, 그때도 아무 일도 없었잖아. 너무 담아두지 마.

아스트젠

아침은 다 먹었어? 커피 내려올게.

아스테시아

응. 고마워, 지니.

아스테시아

나가요.

집배원

안녕하세요. 아스테시아 우르비카 씨 되시나요? 우편으로 보내실 서류를 받으러 왔습니다.

아스테시아

여기요.

집배원

네, 잘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할게요. 받는 분이 이 주소의 프랑수아 우르비카 씨, 맞으시죠?

아스테시아

네,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집배원

도시 내 우편인 데다 급행료까지 지불하셨으니, 문제가 없는 한 오늘 안에 받아보실 거예요.

아스테시아

네, 감사해요.

집배원

별말씀을요.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배원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아스트젠

누구야? 옆집에 사는 빅토리아 노부인이 다녀가셨어?

아스테시아

에반스 씨? 아냐. 그냥 집배원이었어.

아스테시아

아버지한테 보낼 서류를 받으러 왔더라고.

아스트젠

…………

아스트젠

언니, 제정신이야?!

아스테시아

왜 그래, 지니?

아스트젠

보고서를 우르비카 씨한테 넘기면 분명히 언니 이름 앞에 자기 이름을 쓸 거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아스테시아

아버지를 너무 나쁘게 얘기하지 마.

아스트젠

나쁘다고? 하, 그럼 얘기해 봐. 언니 이름으로만 올라간 보고서가 있기는 해?

아스테시아

……이런 중요한 내용은 아버지 같은 전문가가 훑어봐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야.

아스트젠

그래. 뭐, 그렇다고 치자.

아스트젠

그럼 요약본만 보내도 되잖아. 왜 원고를 통째로 복사해서 보낸 거야?!

아스트젠

언니, 내 말 좀 믿어줘. 그 사람은 언니의 보고서를 점성술 연구 협회에서 발표할 거라니까? 그때가 되면 우리와 무관한 보고서가 되어버릴 거야.

아스테시아

이건 우르비카 가문의 명예야. 그러니 가주인 아버지가 발표해도 딱히 문제는……

아스트젠

그래도 난 동의할 수 없어!

아스트젠

내가 무엇을 위해 집에서 도망쳤는지 몰라? 그 사람 눈치를 살피거나 구속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였다고!

아스트젠

근데 이제 와서 뭐? 우리가 몇 달 동안 힘들게 연구한 성과를 “훑어봐야 할 것 같다”는 이유로 줬다고?

아스트젠

이기적인 말이지만 거기엔 내 연구 성과도 있잖아. 최소한 보내기 전에 나한테 물어는 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스테시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어……

아스트젠

생각을 못 했다고? 언니처럼 철두철미한 사람이 이런 것 하나 생각 못 했다는 게 말이 돼?

아스테시아

지니, 걱정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아.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라니까. 우리는 대가족이잖아. 이런 중요한 내용은 아빠도 가문의 이름으로만 서명하실 거야.

아스테시아

그리고 전에도 아빠는 내 원고를 여러 번 훑어본 후 의견을 내고 직접 수정까지 하셨어. 아빠의 이름을 앞에 올리는 것에 대해선 이미 얘기가 된 부분이고.

아스트젠

그렇겠지. 안 봐도 뻔해. “널 위해서다”라는 말을 늘어놓고 이루지도 못할 약속을 했겠지. 거기에 언니는 홀라당 넘어갔을 테고.

아스테시아

말조심해, 엘레나!

아스트젠

하, 그거 알아? 지금 그 말투, 그 사람이 날 혼낼 때랑 똑같다고, 아스테시아.

아스테시아

난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을 뿐이야, 지니. 그러니 괜한 망상은 하지 말아 줄래?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날 좀 믿어줘.

아스트젠

언니는 그 사람 앞에서 한 번도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잖아. 처리? 나더러 어떻게 믿으라고?

아스트젠

이 일은 여기까지야. 더는 얘기할 것도 없어.

아스테시아

어디 가?

아스트젠

라인 랩으로 돌아갈 거야.

아스테시아

지니……

아스테시아

이건…… 지니의 통신기네.


라인 프런트

안녕하세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아스테시아

라인 랩 직원 숙소는 어느 쪽인가요?

라인 프런트

어느 분을 찾으시나요? 현재 라인 랩에 있는 직원이라면 숙소나 사무실로 바로 연결해 드릴 수 있거든요.

아스테시아

그럼 부탁드릴게요. 에너지과 엘레나 우르비카 연구원을 연결해 주시겠어요?

라인 프런트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인 프런트

……

라인 프런트

찾으시는 분이 엘레나 우르비카 연구원이 확실하신가요?

아스테시아

맞아요. 무슨 일 있나요?

라인 프런트

음…… 우르비카 연구원은 파견 임무를 신청하셔서 숙소에서 나가신 것 같아요.

라인 프런트

라인 숙소에 묵었다는 기록이 없네요.

아스테시아

그럼…… 오늘 오긴 했나요?

라인 프런트

그전에 신원부터 확인해도 될까요?

아스테시아

그럼요.

아스테시아

주재원이자 문헌학 고문인 아스테시아 우르비카예요.

아스테시아

(신분증을 건넨다)

라인 프런트

……확인되셨어요. 지금 바로 확인해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인 프런트

죄송하지만 우르비카 연구원은 오늘 그 어떤 라인 랩 시설에도 출입하지 않으셨네요.

아스테시아

라인에 돌아오지 않았다고요?

라인 프런트

그런 것 같아요.

그녀의 마음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다.

아스테시아

(“오늘은 리베리의 재앙이다.”)

라인 프런트

더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아스테시아

아뇨,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아스테시아

(지레 겁먹지 말자. 괜찮을 거야.)

아스테시아

(통신기를 놓고 가서 잠시 연락이 안 될 뿐이야.)

아스테시아

(혹시 트리마운츠에서 산책 중일 지도 모르잖아?)

아스테시아

(기억대로라면 경찰서는 이쪽일 거야.)

아스테시아

(우선 동생을 찾아야 해……)

그녀는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애써 삼켰다.

가설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 점성술 학자들은 트리마운츠에 모여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중에서도 특출난 존재였다.

이런 시기에 그의 반항적인 딸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기자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뉴스거리는 없을 것이었다.

그건 가문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여동생에도 뜻밖의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경찰서 앞을 그대로 지나쳤다.

아스테시아

(미안해, 지니. 난 정말 쓸모없는 언니야……)

아스테시아

(다시 생각해 보자, 아스테시아.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

이봐, 비켜! 어서 비키라니까! 차가 고장 났다고!!!

아스테시아

(이런 상황에선 누굴 찾아가야 할까?)

???

으아아아아아악!!!

듀나

후아,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어?

아스테시아

아, 미안.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아스테시아

듀나…… 씨? 여긴 어쩐 일이야?

듀나

왠지 뒷모습이 낯익다 했더니 아스테시아였구나.

듀나

대낮부터 차에 치일 뻔하다니 오늘 운이 정말 없나 봐.

듀나

저 운전기사도 그래. 아무래도 부품에 문제가 생겨서 차가 고장 났나 봐. 한참을 피했는데 결국 사람을 칠 뻔했잖아.

아스테시아

기사님은 괜찮아?

듀나

막판에 브레이크가 작동하긴 했어. 차가 완전히 전복되긴 했지만.

듀나

사람은…… 무사한 것 같네. 기어서 나온 후에 차 옆에서 통화 중이야.

아스테시아

운이 나빴네. 로도스 아일랜드였다면……

아스테시아

로도스 아일랜드?

아스테시아

아, 로도스 아일랜드에 부탁해도 되겠다!

아스테시아

듀나 씨, 혹시 시간 있어?

듀나

아…… 별일 없긴 해.

아스테시아

그럼 로도스 아일랜드에 일을 부탁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듀나

여기서 얘기하긴 곤란하니 우선 트리마운츠 사무소로 돌아가자.


듀나

자, 여기 물.

아스테시아

고마워……

듀나

내가 보기엔 단순히 자매끼리 싸운 후 화가 난 동생이 나간 것 같은데.

아스테시아

그런 단순한 얘기가 아냐. 오늘 점성술 결과가 좋지 않았거든. 어쩌면 위험에 휘말릴지도 몰라.

듀나

위험에 휘말린 건 너 아니야?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잖아.

아스테시아

난 괜찮아.

듀나

어떨 때 보면 너도 우리 가족의 그 사람처럼…… 고집이 정말 세다니까.

아스테시아

듀나 씨의 언니 말이야?

듀나

동생 얘기야. 사실 난 트리마운츠에서 그 수상한…… 크흠, 점성술 학자들이 장사를 한다길래 온 거거든.

듀나

마침 예비 오퍼레이터도 대부분 휴가 중이라 한가하길래 여기 와서 일을 도와주게 된 거지.

아스테시아

그렇구나……

아스테시아

혹시 동생이랑 친해?

듀나

친하긴 한데 가끔 간섭이 너무 심할 때가 있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날 위해 이것저것 해주고 싶어 하거든.

아스테시아

그러니까, 동생…… 맞지?

듀나

혈연으로는 동생이 맞지만, 관계성으로 보면 언니 같다고 할 수 있지.

듀나

집에 동생 같은 기둥이 있어서 다행이야. 아빠가 돌아가신 후 장사가 잘되긴 했지만, 난 언니로서 이룬 게 아무것도 없거든.

아스테시아

그럴 리가. 오퍼레이터들에게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줬잖아. 우리 모두 고마워하고 있어. 처음엔 듀나 씨가 날 단칼에 날려버리기도 했었지.

듀나

그땐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야. 네가 겉만 번지르르한 검술만 펼치고, 공격은 안 하길래…… 됐어, 이 얘기는 그만하자.

듀나

트리마운츠 사무소에서 아스트젠을 찾아주길 바라는 거지?

듀나

사무소에 임무가 없는 정찰 오퍼레이터들이 있을 거야. 여동생이 갈 만한 장소를 알려주면 거절하지 않겠지.

듀나

공개적으로 알리기 싫다면 사적으로 임무를 맡겨볼게. 말이 통하는 오퍼레이터들이니 네게 큰 도움이 될 거야.

아스테시아

고마워……

듀나

아냐,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는 법이잖아.

듀나

개별적으로 메일을 보내뒀으니 우리도 출발하자. 나머지 장소에 가보면 뭔가를 찾아낼 수 있겠지.

아스테시아

응, 알았어.

듀나

걱정 마, 누구도 다치지 않을 테니까.



듀나

아스트젠 말이야, 숨바꼭질의 귀재인가 봐. 공공장소 대부분을 찾아봤는데 그림자조차 안 보이네.

듀나

밤이 깊었으니 계속 찾는 것도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우선 데려다줄 테니까 내일 계속 찾자.

아스테시아

조금만 더…… 찾아보고 싶어.

듀나

곧 있으면 새벽이야. 생각해 봐, 네 점괘대로라면 오늘만 운이 안 좋은 거잖아?

듀나

집에 돌아가서 따뜻한 밥을 먹고 푹 쉬면 내일은 운이 좋아질지 누가 알겠어?

듀나

이만 돌아가자. 데려다줄까?

아스테시아

괜찮아…… 오늘 하루…… 정말 고마웠어……

듀나

그럼 이만 가볼게.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고.

듀나

내일 아침 일찍 찾아갈게. 잘 자.


아스테시아는 홀로 집 쪽으로 향했다. 트리마운츠 상공의 공동 너머에는 이미 별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앞만 바라보며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킬 때, 그녀도 마지막 골목을 돌아 렌트한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그러자 잔뜩 웅크리고 있는 깃털 뭉치가 보였다.

아스트젠

언니, 왔어……?

아스트젠

깜빡하고 열쇠를 두고 나와서……

아스트젠

어, 언니?

아스테시아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의 품으로 안겨 눈물을 흘렸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지만 동생에게 우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그걸 눈치챈 아스트젠도 자신의 옷이 눈물로 젖는 걸 신경 쓰지 않은 채 언니를 꼭 안아주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문 앞에 서 있었다.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아스테시아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집안에 들어온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았다.

결국 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스테시아

미안해…… 지니, 내 잘못이야……

아스트젠

굳이 따지자면 나도 잘못했지…… 아빠한테 서류를 보냈다는 소리에 열이 받아서 아무 말도 안 들렸어.

아스테시아

네가 집에서 나가기 위해 많은 걸 희생했고, 더는 아버지와 얽히고 싶지 않다는 거 알아.

아스테시아

내 행동은 네 등에 칼을 꽂는 것과 다름없었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아스트젠

논문 보고서를 권위 있는 스승에게 보여주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전에 박사 과정을 밟을 때, 교수님들도 내 논문을 많이 고쳐주셨거든.

아스트젠

에휴, 다 내 탓이야. 박사라면서 기본적인 감정 관리조차 못 하다니. 맨날 언니더러 바보라고 말하지만 정작 조언을 제일 안 듣는 건 나였어……

아스테시아

나…… 내일 아빠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어. 원고를 다 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내일 아침까진 다 못 보실 거야. 내가 가서 아빠를 설득할게. 그럼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을 거야.

아스트젠

아…… 언니, 그게 말이야……

아스트젠

사실…… 아직 우르비카 씨한테 원고가 도착하지 않았어.

아스트젠

집배원이 리베리였잖아. 조금 전 날이 어두워졌을 때 와서는, 나한테 사과하면서 우편비를 환불해 줬어.

아스트젠

오늘 재수가 정말 나빴대. 아침에 곳곳에서 우편물을 받은 후에 이동하는데, 차가 고장 나서 전복됐다더라.

아스트젠

언니의 급한 서류가 생각나서 동료들이 다른 우편을 처리하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서류를 전달하러 갔대.

아스트젠

그런데 상업 지구를 지나는데 갑자기 내린 비에 자전거가 미끄러져 인공 호수에 빠졌다는 거야. 그래서 원고도 다 젖어버렸대.

아스트젠

자기도 어쩔 수 없었다면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사과하더라. 내가 잘 달래서 돌려보냈어.

아스트젠

언니 말이 맞았어. 오늘은 정말 리베리의 재앙이었던 거야……

아스테시아

됐어,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아스테시아

자, 여기 네 단말기.

아스트젠

고마워, 언니.

아스트젠

휴, 이게 다 트리마운츠에서 학위를 취득할 때 생긴 나쁜 습관 때문이야.

아스트젠

가끔 생각이 막히거나 남과 갈등이 생기면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일거든.

아스트젠

그럴 때면 난 통신기를 치워두고 전화와 메일을 멀리한 채 자유롭게 트리마운츠 곳곳을 돌아다녔어.

아스트젠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은 시간에게 맡겨둔 채로.

아스트젠

간혹 오늘처럼 열쇠를 깜빡하는 바람에 숙소 앞에서 친구들이 오길 기다릴 때도 있었지만……

아스테시아

하루 종일 굶었지?

아스트젠

응…… 아까 나갔을 땐 밥 생각이 없었는데, 돌아오니까 먹을 게 없더라……

아스테시아

문밖에 있는 저 상자는 뭐야?

아스트젠

언니한테 사과하려고 산 아이스크림이야. 그런데 언니가 날 찾느라 늦게 올 줄은 몰랐어. 이미 녹았을 거야.

아스테시아

돈은 있었을 거잖아. 굶고 다니면 어떡해.

아스트젠

선물을 사느라 다 써버렸어……

아스트젠

언니, 나 배고파……

아스테시아

지금 차려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아스트젠

응……

아스테시아

지니, 약속할게. 이건 우리의 성과이니 절대 다른 사람에게 순순히 넘겨주지 않겠다고.

아스테시아

설령 그 사람이 아버지라고 해도 우리의 성과를 가져갈 자격은 없으니까.

아스트젠

응, 믿을게.


일주일 후

아스트젠

언니, 연설문을 확인해 봤는데 아무 문제 없었어.

아스트젠

내가 외우라고 했던 전문용어는 다 외웠지?

아스트젠

좋아. 이러면 고지식한 학자들이 괜히 트집 잡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아스트젠

그나저나 오후 연설이라고 하지 않았어? 일정표에 언니 연설 시간이 안 적혀 있던데.

아스테시아

옆집에 살던 에반스 씨 알지?

아스트젠

그 노부인 말이야? 그분한테 무슨 좋은 수라도 있대?

아스테시아

그분이 빅토리아 점성술의 권위자인데 오늘 오후에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거든.

아스테시아

설득 끝에 내가 그 시간에 연설할 기회를 받아냈어.

아스트젠

그럼 우르비카 씨 옆자리는 비어 있겠네?

아스테시아

그렇지 않아, 지니.

아스트젠

저기…… 언니,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스트젠

설마……

아스테시아

아버지를 놀라게 해드리지 않을래?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딸이 동생한테 물든 모습을 보여줘야지.

아스테시아

부탁할게, 지니.

아스트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점성술 연구 협회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 날 기다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스테시아

따라와.

아스트젠

아, 안 가면 안 될까……?

아스테시아

도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지니. 이러면 아버지와 정정당당하게 겨룰 기회가 생기잖아?

아스테시아

자, 고글과 기기는 내려놓고.

아스테시아

외투랑 셔츠도 갈아입어야지.

아스트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스테시아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해. 너 장난치는 거 좋아하잖아.

아스트젠

아니거든! 내, 내가 언제 장난치는 걸 좋아했다고!

아스테시아

머리도 풀고. 착하지?

아스트젠

언니, 이건 좀 과한 것 같은데……

아스테시아

조용히 하고 검과 천구의나 잘 챙겨. 화장은 내가 해줄 테니까.

아스테시아

음, 완벽해.

아스테시아?

……

아스트젠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 언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아스테시아

미안해, 지니. 회의가 머지않아서 이제 다른 방법을 생각할 시간이 없어.

아스테시아

내 말투로 한번 얘기해 볼래?

아스트젠

시아. 아, 아무래도 이건 좀 부적절하지 않을까……?

아스트젠

에베베, 안 되겠어. 이런 말투는 나랑 안 어울린다니까.

아스테시아

완전 잘 어울리는데. 완벽해.

아스트젠

내가 우르비카 씨를 정말 속일 수 있을까……

아스테시아

아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만 속이면 돼.

아스트젠

근데 언니는 뭘 입을 거야? 언니 옷은 내가 입었잖아.

아스테시아

그야 가장 격식 있는 옷을 입어야지.

아스테시아

'스타라이트 시커' 말이야.




아스트젠

후아, 역시 가볍고 편한 옷이 좋다니까.

아스테시아

어땠어?

아스트젠

잘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논문 토론에 대부분 시간을 쓰는 것 같더라……

아스트젠

언니의 연설만 없었다면 진작 나갔을 거야.

아스테시아

아버지의 발표는?

아스트젠

아빠는……

아스트젠

확실히 좋은 학자이긴 해.

아스트젠

남들이 기존의 관념이 최고라고 할 때, 아빠는 단상에 올라 눈앞의 변화를 인정하고 지식도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잖아.

아스트젠

고지식한 학자를 질책할 때나 우리를 혼낼 때나 다를 게 없는 걸로 봐선 적어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스트젠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퍼디낸드 주임처럼 구제 불능의 바보라는 건 변하지 않겠지만.

아스테시아

그럼 어머님은?

아스트젠

엄마는 늘 그렇듯 조각상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보고 있더라.

아스테시아

두 분 다 네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없으셨고?

아스트젠

인상만 살짝 찌푸리셨어. “왔구나, 아스테시아”라는 얘기조차 없더라.

아스트젠

아마 날 보자마자 눈치챘겠지.

아스트젠

이런 시시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아스트젠

언니의 연설은 정말 멋졌어. 우르비카 가문의 두 고집불통은 끝까지 아무런 반박도 내세우지 않았고,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금세 떨어져 나갔잖아.

아스트젠

기자가 찾아와서 인터뷰도 했다며?

아스테시아

응, 일반인들이 물어볼 법한 질문을 했어. 그런 것보다, 다른 나라에서 온 두 학자한테 질문을 받았지.

아스테시아

앞으로 모델을 어떻게 개선하고 학계에 보급할지 더 깊이 논의하기 위해 연락처를 교환했어.

아스테시아

아빠랑 엄마는……

아스테시아

앞만 바라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네게 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겠지.

아스트젠

늘 그랬잖아. 어떻게 십여 년이 흘렀는데도 변함이 없을까.

아스트젠

(비꼬는 말투로) “아스테시아가 가문에서의 위치를 깨닫길 바라마.”

아스트젠

언니 때문에 화가 잔뜩 난 것 같더라.

아스테시아

하하, 너무 그러지 마. 지니.

아스트젠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아스테시아

트리마운츠에 좀 더 있자. 바빠서 주변을 구경하거나 쇼핑할 시간도 없었잖아.

아스테시아

아직 집 렌트 기간도 남았고 말이야.

아스테시아

이곳에서 할 일을 마칠 때쯤이면 아버지도 화가 거의 풀리셨을 거야. 그때 돌아가서 내가 설명할게.

아스테시아

이번 연구는 여동생과 함께 노력한 결실이니 아버지 이름을 적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분명하게 말할 거야.

아스트젠

언니도 드디어 깨달았구나. 정말 다행이야.

아스테시아

그럼 지니, 넌? 라인으로 돌아갈 거야? 네 지도 교수가 다시 라인 랩의 주임이 되었다며.

아스트젠

말도 마. 동료한테 들었는데 전보다 사람들을 더 험악하게 부려 먹는대.

아스트젠

솔직히 퍼디낸드 주임의 프로젝트는…… 매력적이긴 해.

아스트젠

건물을 하늘로 보낼 에너지원을 연구하는 건 모두가 꿈꾸는 일 아니겠어?

아스트젠

하지만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긴 싫어. 기회를 잡겠다고 다시 그 부담감을 견딜 필요는 없잖아.

아스트젠

난 이미 결심했어. 후회할 생각도 없고.

아스테시아

앞으로는 널 롤모델로 삼아야겠어, 지니.

아스트젠

언니는 이미 내 롤모델인걸.

아스테시아

후훗, 가끔은 동생한테 칭찬받는 것도 나쁘지 않네.

아스테시아

오늘은 요리하지 말고 외식이나 할까?

아스트젠

참, 언니.

아스트젠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나한테 먼저 얘기해 줘.

아스테시아

집으로 돌아갈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어?

아스트젠

우르비카 씨한테 우리 자매가 한마음으로 반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지.

아스테시아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스트젠

언니가 싫다면 안 갈게.

아스테시아

지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아스테시아

그럼,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