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고향으로 돌아온 안셀은 자신이 많은 이들을 구했는지, 큰아버지에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지 거듭 확인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 끝에 의사는 치료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늘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걸로 된 거야, 안셀?
네. 다음 달 예비작전팀 A4의 임무 목적지가 아이언 리스트 시티니까요. 번거롭게 고향에서 물건을 가져오실 필요는 없어요.
그건 알지만…… 가족들에게 편지도 안 보내려고?
……괜찮아요.
친구에게 보낼 이 편지만 가져가시면 돼요. 나머지는 은갈라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요.
참, 그 큰 상자만 전해주세요. 소염제가 든 작은 박스는 전달자님 몫이고요. 야외에서 벌레나 짐승에게 물렸을 때 유용할 테니 잊지 말고 챙겨가세요.
……하하, 네 가족이라도 만나면 곤란해지겠는걸.
그럼 이만 가볼게. 고마워, 안셀.
네, 저도 못다 한 준비를 계속해야겠어요.
……후우.
멜란사, 어디 있는지 안 보여요. 이래선 화력 지원을 할 수가 없어요!
북동쪽에서 글룸핀서 두 마리가 접근하고 있어요! 카디건, 그쪽으로 돌격하면 안 돼요!
안셀이 계획해 둔 의료 지원 루트에 따르세요!
걱정 마, 안셀을 곤란하게 하진 않을 테니까!
후…… 킁킁, 냄새가 나! 이건 유인제 냄새야!
멜란사, 글룸핀서를 조종하는 조련사가 북동쪽에 있어. 어쩌면 광산의 어두컴컴한 입구에 숨어있는 걸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스튜어드 씨…… 여긴 제게 맡기고 물러나세요.
안셀 씨에게 협력해서, 목표의 호위를 도와주시겠어요?
자, 누우세요.
누우라고? 지금 장난하는 거야? 선생, 우리를 다시 차로 옮겨다 줘!
저 벌레와 글룸핀서가 안 보여? 유탄이 터지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냐고!
제 팀원을 믿어주세요.
여기라면 팀원들을 제때 지원할 수 있어요. 제 동료들이라면 차량의 철판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저희를 지켜줄 거예요.
화, 확실한 거지?
……윽!
당신을 공격한 글룸핀서는 독성을 가지고 있어요. 진정하시고 누워서 혈류의 속도를 늦추고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받으셔야 해요. 그래야 중추신경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일을 막을 수 있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제게 적합한 해독 혈청이 있으니까요.
이, 이건……
……좋아. 선생 말대로 할게.
……확실하긴 한 거지? 만약 선생이 글룸핀서 종류를 착각한 거라면 어, 어떻게 책임질 거야?
그럴 일은 없어요. 전 림 빌리턴의 자연 생물에 대해 빠삭하거든요.
자, 그럼 긴장 푸시고……
잠깐만. 서, 선생, 저쪽에서 놈들이……
안셀, 머리 숙여!
다가오던 위협은 처리했고, 저쪽에 부상자가 한 명 더 있어. 우선 내가 안전 구역으로 대피시켜 뒀어!
알겠어요. 잠시만 기다려줘요!
자, 주사는 다 맞으셨으니 좀 더 쉬세요.
이제 당신의 다른 동료를 치료하러 가볼게요. 치료가 다 끝나면 임무 요구에 따라 계속 여러분을 호송해 드릴게요.
후, 하아……
고마워……
……선생, 혹시 나이에 비해…… 무서울 만큼 침착하다는 말 안 들었어?
네?
아뇨,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하지만 정말 대단해. 지금껏 많은 이들을 구해왔겠는걸.
전……
안셀, 상황은 좀 어때?
……갑자기 왜 시무룩해졌어?
……아.
체력 보충 영양제는 가방 안에 있어요. 바로 상처를 치료해 줄게요.
죄송해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하하, 네 팀원들이 믿을 만하단 뜻이겠지.
난 괜찮아. 그냥 긁힌 것뿐이야.
그나저나 너야말로…… 체력을 회복할 시간은 있었어?
……휴, 림 빌리턴에 돌아온 후로 계속 이런 상태였지. 낮에는 임무하고, 밤에는 교대로 야간 근무를 서고. 네 몸을 챙기는 일도 종종 까먹곤 하잖아.
야간 근무를 대신 서주겠다던 오퍼레이터도 많지 않았어?
야간 근무를 하는 생활 패턴에 익숙해진 것뿐이에요.
전 그저……
제가 남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의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제가 많은 이들을 구했다고 생각하나요?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멜란사 씨. 걱정 안 해도 돼요. 다들 방호에 신경 쓴 모양이네요. 임무 중 다치거나 감염이 악화된 사람은 없었어요.
내일 아침 제가 모두에게 이야기할…… 어?
다들 안 자고 뭐 하세요? 얼른 주무셔야죠!
카디건 씨, 내일 오리지늄 제품 가공 공장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나요? 또 회의실에서 잠들면 어쩌려고요!
하지만 림 빌리턴에서의 이상한 간식 먹기 대회가 아직 안 끝났잖아!
슈가 파파야잎 말이, 파울비스트 후라이를 곁들인 민들레 튀김……
다음은 히비스커스가 혈당 건강에 나쁘다고 거듭 강조했고, 안셀도 맛없으니 먹지 말라 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정기적으로 쟁여두는 간식이야. 누가 먹어볼래?
그 설명을 듣고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요.
하하.
……아이언 리스트 시티의 길거리 수제 박하사탕이야. 너도 먹어봐.
……감사해요.
사실 오늘 네가 해준 이야기 말이야. 좀 곤란하긴 하더라.
입장을 바꿔서 내가 너였다면 문 앞에 서서 집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했을 거야.
“네가 내 뒤를 잇지 않는다면, 후계자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 ……네 큰아버지 말씀이라지만 정말 난감하더라.
……하지만 그렇다고 몸을 혹사시키면 안 되지.
맞아요. 이러면 큰아버지한테 우수한 의사라는 걸 증명할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한테 건강을 챙기라고 얘기하는 말에는 설득력이 없어지게 될 테니까요.
……알겠어요. 야식만 먹고 쉴게요! 정말이에요! 더 이상 계단에서 기절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멜란사, 이번엔 안셀을 믿어도 될까?
네…… 이번엔 믿어 보죠.
그래. 안셀, 그럼 우린 먼저 갈게! 계단에서 발이 미끄러지거든 날 불러. 네가 끝까지 굴러떨어지기 전에 달려와서 잡아줄 테니까!
안셀은 우리가 아직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봐. 카우투스는 태생적으로 밤새우는 걸 싫어하는 종족이잖아!
그냥 내버려둬. 밤에 몰래 먹어도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안 먹으면 훈련을 버텨내지 못할 거야……
휴……
……안녕하세요. 림 빌리턴 아이언 리스트 시티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입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아니, 안셀! 안셀 맞지? 단번에 알아차렸어! 드디어 도착했구나!
……은갈라?!
이렇게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 만이지?
전달자를 통해 언제 시간이 되는지 소식을 전해올 거라 생각했는데.
하하, 전화번호부에 너희 회사 번호가 있길래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지.
어느 공중전화 부스야? 너희 집 근처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 아니면 정련 공장 입구에 불탔던 그곳?
아냐, 아냐. 이쪽 길도 완전히 달라졌어. 서두르지 마. 며칠 후에 내가 구경시켜 줄 테니까.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널 모르겠어?
후아, 이렇게 기운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야. 아무래도 회사에서 잘 챙겨주는 모양이네.
기억나? 2년 전에 네가 인턴으로 떠났을 때, 우리 중 누구도 네 회사에 관한 정보를 찾지 못했잖아.
맞아, 그땐 정말 걱정이 많았어. 우리 집 아래층에 있는 잡화점 전화번호까지 실려있는 전화번호부에도 없었으니 사기는 아닐까 생각했었지.
하여간, 넌 의대에서 녹색 채소 통조림이 체질 강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의심이 늘었다니까.
으으, 말도 마…… 몇 년 동안 희망을 품고 녹색 채소 통조림을 먹었단 말이야. 그게 사기라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몰라……
……어쨌든 어릴 땐 단체 활동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거든. 축구든 공장 파쿠르든 철통 굴리기든 말이야.
몇 번이고 얘기했잖아? 내 꿈은 너처럼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힘이 세고, 집안일을 많이 거들어도 지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고.
하지만 현실의 난, 다른 사람을 따라 몇 분만 뛰어도 어지럽고 숨이 차서 늘 관중석에 앉아있어야 했지.
네가 확성기를 주면서 해설을 맡아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늘 외롭게 관중석에 있었을 거야.
한번은 저녁에 집에서 몰래 나와서, 다 같이 토사장에 가서 우리 광산 구역 대표팀과 이웃 광산 구역 사람들 간의 줄다리기 시합을 구경하기도 했잖아.
우린 토사장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응원했어. 난 조그만 노트를 들고 내 딴에는 멋지다고 생각하는 구호와 해설을 받아 적느라 바빴지.
물론 지금 보기엔 바보 같은 일이었지만.
하하, 미안. 편지에 그렇게 자주 적었던 내용을 또 전화에 대고 쏟아내고 말았네……
……은갈라? 왜 아무 말 없어?
……아, 아니야. 아무것도.
혹시…… 어디 아픈 거야?
내가 보내준 약은 잘 챙겨 먹고 있지? 지난번에 설명해 줬던 광석병 자가 진단 기준도 기억하고 있고?
혹시 언제 시간 돼?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을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간단하게라도 진단을……
……풉, 푸하하하하! 진정해, 안셀.
네 건강은 좀 어때? 그…… 무슨 빈혈이라고 했었지?
아, 나 말이야?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완치될 수 없는 선천적인 병이라고 밝혀지긴 했지만, 가벼운 증상만 나타나고 있거든……
저기, 의사 선생님. 내가 광석병에 걸렸다고 했을 땐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잖아.
……
“지금의 방법으로선 완치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지 않겠어?
응, 네 말이 맞아.
네가 의술로 사람들을 구하고, 큰아버지한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단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의술을 배우기 시작한 건 너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였잖아?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
난……
……고향에 돌아왔다 보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가족과 친구들과 관련됐다고 생각해서 조바심이 났나 봐.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늘 그랬던 것처럼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돼. 나머지 일은 우리한테 맡기고.
내일 밤에 봐. 늘 가던 곳에서 야식이나 먹자.
잘 모르겠어요…… 정말 그런가요?
미안하군요, 로도스 아일랜드 여러분. 당신들이 제공한 이 광석병 억제제의 가치를 인정하기가 어려워요.
게다가 보다시피 우리 직원들의 방호복과 두 생산 라인은 모두 새것입니다. 당분간은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광석병 방호 조치를 추가할 계획이 없어요.
당신들의 방안은 비용도 비싼 데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아요.
잠시만요, 대표님……!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으니 이제 됐습니다, 선생님.
오늘 협상은 여기까지만 하죠.
……
……틀린 건 저 사람이에요, 안셀. 저 사람들이 직원에게 제공하는 약품 구매 루트는 신뢰할 수 없어요.
하지만…… 안셀 씨가 그렇게나 전문적으로 설명했는데도 왜 설득할 수 없는 걸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림 빌리턴에서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건 선조의 경험과 이웃의 평판일 때가 많거든요.
특히 의료 분야에 대한 림 빌리턴 사람들의 기준은 엄격했지만, 그에 비해 림 빌리턴의 의료 수준은 이상적이지 못했죠.
그래서 “큰 병이 아니면 병원에 갈 필요도 없다”라는 오해까지 생긴 거고요……
다들 집에서 병을 치료하고 싶어 하면, 결국 그 구역에서 이상한 영약이 판을 치게 되는 법이죠.
처음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뒀었어요.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요.
아, 이 회사가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을 때 안셀이 오랫동안 기뻐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네.
준비를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비용을 낮추기 위해 물류 쪽 담당자들도 설득했잖아.
맞아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거든요……
이런 림 빌리턴의 대기업에는 수만 명의 직원이 소속되어 있잖아요. 광석병 방호 보장을 받는 사람 중에 제 친구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전 제가 의사가 된 게 가치 있는 일이고, 제가 모두를 위해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내고 싶었어요.
……정말 안타깝네요.
괜찮아요, 안셀 씨…… 오늘은 이렇게 끝났지만, 내일 다시 오면 되잖아요.
당신이 늘 그랬듯이 말이죠.
맞아, 맞아.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상대를 설득할 때까지 밀어붙여야지. 안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전에도 네가 상대를 붙잡고 늘어질 줄 알았어.
게다가 안셀, 네가 직접 얘기했잖아. 더 많은 이들을 구하고 싶다고. 사람을 구하는 게 개인적인 욕심은 아니잖아.
……
전 그저……
안셀. 이 도니 씨의 차트, 알아볼 수 있겠느냐?
음…… 방사선 결과 장기에 비정상적인 음영이 있고, 흉부에도 문제가 있네요. 아무래도……
광석병이지?
……네, 큰아버지.
방법이 있나?
아니요……
제가 몇 번이나 광산에 가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모두가 너처럼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올바른 선택을 내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구나.
……너무 익숙한 곳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뭐 하나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웠나 봐요.
죄송해요, 고등학교 친구와 만나기로 해서요. 여러분은 먼저 사무소로 돌아가세요.
아, 은갈라 말대로 오래된 공중전화 부스가 정말 바뀌었네…… 풉. 색깔이 이게 뭐야? 무슨 당근도 아니고.
잡화점 창문은 여전히 새카만 기름으로 덮여있네.
앗, 은갈라가 이 음료수를 좋아하려나 모르겠어. 우선 하나만 사 가자……
……
……약을 구하는 사람들도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암시장에 연락하겠지?
저, 실례할게요.
혹시 광석병 치료제가 필요하신가요?
아, 맞아. 그게…… 동료한테 꼭 필요한 상황이야.
저쪽에 있는데 일어나질 못하고 있어……
……
상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안셀의 눈에 익숙한 형체가 들어왔다.
여보세요? 멜란사! 카디건! 다들 같이 있어요? 지금 친구를 데리고 사무소에 검사하러 갈 거예요!
으윽…… 걱정 마, 안셀. 잠깐 아프다 괜찮아질 거야. 동료가 호들갑을 떤 것뿐이라니까.
내 걱정에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자. 모처럼 만났는데 아직 네가 여행한 곳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았잖아.
내가 전달자 편에 보낸 약은 어쨌어? 지금 네 꼴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기나 해?
감염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왜 벌써 이렇게까지 악화된 거야? 엔지니어로 광산에 가면서 방호복도 안 챙겼어?
괜찮아. 병원은 큰 병이나 걸려야 가는 곳이잖아? 난 아직 괜찮은 것 같은데, 많이 아프지도 않고.
나보다 아픈데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까지 딸린 동료가 많길래…… 약을 전부 줘버렸어.
아니야, 은갈라. 그건 아니라고 그렇게나 말했잖아……
통각은 태어날 때부터 참아야 하는 평범한 고통이 아니라 신체의 경고야. 의사도 큰 병만 치료하는 게 아니고……
그거 알아? 너희 회사 약, 정말 잘 듣더라. 벌써 몇 명이나 칭찬했는지 몰라. 안셀, 네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 물론 난 이미 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
어째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지?
조금 전 그 사람…… 안셀의 친구 맞지?
상황이 심각해 보이던데…… 외투를 벗으니까 팔에도, 가슴에도 오리지늄 결정이 많이 보이더라.
하지만 의식은 멀쩡한 것 같았어요. 결국 급성 감염 발작이 아니라, 만성으로 저 상태가 됐다는 거죠.
……후. 안셀이 왜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어 했는지, 가족들의 반응이 왜 그렇게 안 좋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네요.
안셀 씨……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하기 어렵다면, 우리가 얼버무릴 수 있게 도와줄게요.
괜찮아요…… 이미 다 얘기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해둔 것 같더라고요. 이 광산 구역은 다른 곳과 달리 감염자들이 함께 모여 일하니…… 비슷한 상황을 많이 봐왔겠죠.
……이 모든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친구예요.
조금만 더 일찍 돌아왔다면…… 병을 진단하는 방법과 약 복용법을 제대로 당부했다면……
통각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단 걸 고려했다면…… 큰 병에 걸려야 병원에 간다는 사람들의 관념을 바꿀 수 있었다면……
림 빌리턴의 의료 수준과 광석병에 대한 방호 의식이 더 높았다면……
……이미 병이 중기에서 말기로 진행됐어요. 이 단계에선 제가 아는 그 어떤 억제 수단도 효과가 없죠.
아마 2년, 아니면 1년…… 제겐 더 이상 미룰 방법이 없어요.
……
죄송해요, 안셀 씨…… 도와드리고, 위로해 드리고 싶지만……
……아뇨, 죄송해요.
이런 얘기를 하지 말아야 했는데……
……몸이 약해서 보살핌을 받는 건 언제나 저였는데, 왜 병마에 먼저 쓰러진 건 다른 사람일까요?
그렇게 끌고 뛰지 마, 안셀. 당장이라도 네가 거리 한복판에서 쓰러질까 봐 걱정돼.
맞아요, 석궁을 한 번 더 개조했으니 전보다 더 강해졌을 거예요. 이러면 더 멀리서도 지원할 수 있겠죠.
이런 종류의 아츠라면, 흔적을 쫓을 수 있을 거야…… 걱정 마, 안셀. 감염이 더 심해지진 않았으니까. 그냥 아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해.
걱정 마세요. 기습은…… 저 혼자에게 맡겨 주세요. 프란카 씨에게 지도를 받았으니, 제 검도 그렇게 어설프진 않을 테니까요. 쉽게 쓰러지진 않을 거예요……
네, 안셀 인턴. 현재 로도스 아일랜드의 광석병 연구는 비교적 앞서가는 편이에요.
하지만 지금까지 저희가 도출해 낸 결과는 단 하나예요. 광석병의 진행을 돌이킬 방법은 없으며, 환자의 시간은 오직 죽음에게 약간 되찾아 올 수밖에 없다는 거죠.
물론 당신이 외과 의사를 원한다면, 광석병을 직접 다루게 될 일은 극히 드물어지겠죠.
하지만 의사로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매번 죽음에게 오늘은 안 된다고 알리는 것뿐이죠.
처음부터…… 내게 선택지 같은 건 없었어……
할 수 없는 일, 구할 수 없는 사람 같은 건…… 인정할 수 없어. 절대로.
“오늘은 아직 그때가 아니다.”
의사로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