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속에서 살길을
구조 임무 중 재앙 때문에 붕괴된 곳에 갇히고만 압생트는 로사와 힘을 합쳐 탈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뜻밖에도 강인한 겉모습 아래 감춰진 동료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지하 폐허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반복한다,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와 오퍼레이터…… 로사.
약 2시간 30분 전, 우리는 우르수스 국경에서 재앙 대피 임무 중 부대와 헤어지게 되었고, 무너진 지하 공동에 빠져버렸다……
……현재 아직 인명 피해는 없으며, 마지막 위치 좌표는……
……
들린다면 응답 바람.
……
안 돼, 여전히 연락이 닿질 않아.
아마도 자리를 다시 한번 바꿔봐야 할 거 같아……
……왜 일어서있어?
넌 좀 앉아서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해, 네 다리가……
나탈리야.
나가 있던 30분 동안, 뭐라도 발견했어?
……안타깝게도, 여기서 나가는 데 도움이 될만한 건 딱히 발견한 게 없어.
네 말대로 여기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 맞다는 걸 확인했어. 그렇지만 빛이 들어오는 방향은 동굴 끄트머리가 아니라, 더 깊은 곳의 윗부분이야.
그러니 동굴을 따라서 나가는 건 무리야. 게다가 머리 위 빛이 들어오는 곳은 너무 높아서, 외부의 도움 없이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
이쪽 상황과 비슷한 거 같네. 알겠어, 확인해 줘서 고마워.
천만에.
나야말로, 오히려 너한테 고마워해야지……
그나저나 압생트, 좀 괜찮아졌어? 상처는 어때?
내가 후방지원부에 있을 때, 제한된 환경에서의 응급 처치를 배운 적 있거든. 우선 지혈 상태부터 확인하고 나서 약 바꿔줄게.
괜찮아……
그리 서둘러 거절할 필요 없어. 날 구하려다가 다쳤는데도 그 상태로 내가 후속 여진에서 대피할 수 있게 도와줬잖아. 이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동쪽은 이미 대피 완료, 남아있는 주민도 없는 걸로 확인했어!
산자락의 마지막 집도 안전하게 이동 완료. 시간이 부족하네, 우리도 최대한 빠르게 대피하자, 안 그러면 재앙이……
……조심해!
아……!
압생트!
……날 잡아!
스읍…… 아.
다리에서 전해오는 심한 통증에 목소리가 일그러졌지만, 압생트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억누른 채 우선 주변부터 살폈다.
갑자기 닥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
분명 곧 여진이 있을 거야, 어서 자리를 이동해야 돼.
앗…… 형광봉이 나한테 없구나. 로…… 나탈리야! 내 말 들려?
나탈리야?
손을 뻗어 맞잡은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추락하긴 했지만, 뿔뿔이 흩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른 한 손의 주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기절했나?
피비린내가 나고, 끈적거리네…… 머리에 출혈이 있는 것 같아.
머리에 출혈이라……
우선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옮겨야겠어. 그래야 상처 부위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무너진 벽을 두드린다)
무너진 벽과 기둥이 만들어내는 공허한 메아리가 압생트의 머릿속 혼란스러움을 가시게 해주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조금 전보다 시야도 더 선명해졌다.
……자, 어서. 적어도 더 안전한 방향이라도 알려줘.
압생트는 의식을 잃은 동료를 부축하여 희미한 빛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던 것뿐이야.
로도스 아일랜드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행동했을 거야. 동료를 데리고, 좀 더 안전한 구조의 지하 공간을 찾아 구조대가 오길 기다린다…… 매뉴얼 대로의 절차일 뿐인걸.
그리고 네 머리 위 부상처럼 내 다리 부상도 단순외상일 뿐이라 그렇게 심하지 않아. 이미 출혈도 멈췄고, 탈구도 안 됐으니 응급처치까진 안 해도 괜찮아.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그럼…… 통신기는?
아직 바깥과는 연락이 안 돼.
그리고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계속 켜놓은 상태로 무작정 신호가 잡힐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다시 시도해봐야 할 거 같아.
그럼 지금은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일단 기다릴 수밖에.
알겠어……
……
묻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바로 물어봐.
그렇게 티 났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피시켰던, 그 산자락에 살고 있던 모자 말이야. 안전하게 대피했겠지? 지진이 너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바람에……
그리고, 만약에 결국 바깥이랑 연락이 안 되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첫 번째, 그 모자는 내가 이미 너와 합류하기 전에 안전지대로 대피했다는 걸 확인했어.
두 번째, 이쪽이 연락에 실패한다 해도, 점호할 때 우리가 없다는 걸 파악하면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 우릴 찾을 거야.
이것도 모두 매뉴얼로 정해져 있는 거야, 내가 널 구한 것처럼.
응.
항상 이렇게 믿음직스러워?
……뭐라고?
너 말이야, 엄청 믿음직스러워. 어떠한 어려움도 널 무너뜨리지 못할 것 같아. 만약 나 혼자 이곳에 남겨졌다면, 분명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을 거야.
아니, 넌 알고 있어.
뭘?
만약 네가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다면, 체르노보그…… 그런 곳에서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겠어?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걸.
네가 그걸 어떻게…...
아, 너도 체르노보그에서 왔었다는 걸 자꾸 까먹네……
맞아.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일을 하긴 했었지. 하지만 그만큼 도움도 많이 받았어.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가. 왜 그때 되돌아온 거야?
뭐가?
분명 무사히 떠날 수 있었는데도, 다시 돌아와서 우리와 함께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려고 했잖아.
구조 임무 경험이 없는 오퍼레이터는 이곳에 남을 게 아니라 재앙이 들이닥치기 전에 부대와 같이 돌아갔어야 해. 만에 하나 내가 널 구하지 못했거나, 나중에 우리가 정말 탈출하지 못하게 된다면……
네가 예전에 살아남기 위해 했던 노력도, 너를 도와준 사람들의 노력도 모두 헛수고가 돼버리잖아.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매번 도망가기만 한다면, 난 영원히 경험 없는 신입으로 남을 거야. 안 그래?
영원히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영원히 더 많은 사람을 돕지 못하겠지.
나도 너희처럼, 더 많은 걸 하고 싶어…… 그래서 후방 지원부에 있었다가 전투원 전환 신청을 한 거야.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해도, 네가 충분한 능력도 없이 '위험'한 일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결국 넌 자신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거야.
(작은 목소리로) 정말 모르겠어, 너를 도왔던, 심지어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말이야.
뭐라고?
……
아니야.
아직 할 말 아직 남았잖아. 왜 마저 말하지 않는 거야?
됐어. 딱히 나랑 상관없는 거였는데, 괜히 내가 말이 많았네.
어쨌든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다시 위치 바꿔서 통신기를 조정해 볼게.
……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와 오퍼레이터 로사, 반복한다,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통신기를 더 높이 들어보겠어?
지금 시도 중이야……
……탐지기……
……치직……
……?!
여보세요?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와 오퍼레이터 로사! 우리는 우르수스 국경에서 재앙 대피 임무 중 부대와 헤어지게 되었으며, 무너진 지하 공동에 빠져버렸다!
마지막 위치 좌표는……
……치직……
여보세요? 들리나? 우리의 마지막 좌표는 61.700.20.450……
……여보세요?
젠장, 쉽지 않네……!
그래도 통신을 받았다는 건, 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거니까.
내가 통신기를 들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서 해볼게, 빛이 들어오는 곳 밑쪽이 통신 상황이 더 좋을 수도 있잖아?
동굴…… 그럼 우리 같이 가자.
근데 네 부상은?
말했잖아, 문제없어.
이런 상황일수록, 우린 더욱더 함께 행동해야 돼.
가자.
그럼 내가 부축해 줄게, 힘이라도 조금 덜 들어야지……
……괜찮아.
압생트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자신에게 내밀어 진 손을 피했다.
앞에 있는 사람은 거대한 공성 무기를 들 정도로 충분히 힘이 세니, 당연히 가벼운 부상자를 부축하는 정도야 차고 넘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도움을 받아 나아가는 것이 분명 지금 가장 적합한 선택임에도, 어째서인지 압생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아, 알겠어.
그럼 우리 지금 바로, 가보자.
……여기는……
아까 혹시 통로가 있는지 보려고 가장자리를 따라서 찾다 발견한 곳이야.
봐봐, 제법 적당한 크기의 평평한 돌이 있어서, 그 위로 올라서면 머리 위 빛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어. 물론 그래도 빛이 통하는 곳과는 아직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아무튼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올라가 볼게……
조심해……
……됐다! 통신기 좀 건네줘.
……좌표는 기억하고 있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음? 이거 어떻게 켜는 거야? 내가 예전에 사용하던 통신기랑 조금 다르게 생긴 것 같아.
……미안, 그거 내가 개조한 통신기거든.
주파수는 내가 이미 조정해놨으니까, 측면의 직사각형 버튼만 누르면 작동될 거야.
여보세요?
……치직……
소리가 들려! 이거 들리는 거 맞지?
신호가 잡혔어. 아까처럼, 내가 알려준 대로 보고하면 돼.
응, 맡겨줘.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와 오퍼레이터 로사. 우리는 우르수스 국경에서 재앙 대피 임무 중 부대와 헤어지게 되었고, 무너진 지하 공동에 빠져버렸다……
마지막 위치 좌표는 61.700.20.450.
반복한다, 마지막 위치 좌표는……
……여보세요? ……
들려요? 여기는……
……재앙정보전달자…… 여보세요?
우선 들린다 대답하고, 다시 좌표를 반복해.
들려요!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와 오퍼레이터 로사, 지원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위치 좌표는 61.700.20.450!
……알겠습니다……
제자리에서……
……기다려……
여보세요…… 미안,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잘 못 들었어.
괜찮아.
좌표 전송만 성공해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야.
이제,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자. 여기보단 그쪽이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인 데다가, 앞서 2차례의 여진에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아서 더욱 안전할 것 같아. 무엇보다 구조를 기다리기에 적합하기도 하고.
통신이 또 끊겼네, 아무래도 재앙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는 거야.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내가 맨 처음 머물던 곳에 표시를 해뒀거든.
혹시 붉은색 천 조각이 보여?
아직 안 보여. 그래도 나한테 형광봉 두 개가 있으니까, 그걸 비춰서 찾아보자.
나한테 한 개 줘볼래?
……
왜 그래?
아니다, 우선 가지고 있어. 구조대의 정확한 도착 시간을 모르니까, 물자를 미리 다 써버리지는 말자.
내 기억으로는 분명 이 주변이었을 텐데……
뭐지…...?
……여진이야! 젠장……
압생트, 너……
오지 마! 몸을 숙이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
내 말대로 해!
앗……
콜록콜록…… 콜록!
붕괴가 그리 심하진 않은데……
광원이 막혀버렸어, 다행히 쇠파이프랑 기둥은 더 부러지지는 않을 거 같고……
나탈리야?
나탈리야, 왜 그래? 내 말 들려?
그녀의 물음에 되돌아온 건 먼지가 부스스 떨어지는 소리와 점점 가빠지는 숨소리뿐이었다.
후우……
……으윽……
여기, 여기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자, 손 이리 줘……
아, 마침 형광봉을 들고 있었구나. 여기야, 보여?
너……
희미한 빛 속, 압생트는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아이가 머리를 감싸 안은 자세를 유지한 채 웅크리고 있는 걸 보았다.
자갈과 먼지가 그녀의 등과 몸에 떨어져 있었지만, 외상의 흔적은 뚜렷하지 않았다.
그 고통스러운 신음은 결코 그녀의 입에서 나올만한 게 아니었다.
……아니, 정말 그럴까?
……으윽…… 아……!!
나탈리야!
세상에, 엄청 떨고 있잖아. 어디 다친 거야?
내가 도와줄게…… 윽…… 곧 구조 대원이 올 거야, 조금만 버텨!
……날 죽여……
날 죽이라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왜…… 너무 아파서 그래?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니야……
부탁이야…… 도와줘……
네가 어디를 다쳤는지 알아야 도와줄 수 있어. 그런데 지금처럼 이렇게 날 계속 피하기만 하면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는걸……
나…… 난……
……흑……
나탈리야.
땅에 웅크려있던 여자아이는 압생트에게 붙잡히고 나서야 비로소 머리를 감싸고 있던 두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얼굴을 들어 어둠 속 어딘가의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로사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무수한 의문이 압생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너……
……왜 그래?
흑, 흐윽……
나…… 안…… 안……
부탁이야, 부탁할게…… 제발 날 여기에 혼자 내버려 두지 말아줘……
안……
난 널 여기에 내버려 두지 않아, 절대로.
그러니까, 말해줘……
안돼……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면, 나도 널 도와줄 수 없어.
나, 앞이 보이지 않아. 안 보인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는다고? 설마 눈을 다친 거야? 아니면 혹시 머리가 충격을 받아서, 어혈이 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건가?
가만히 있어봐, 내가 좀 봐줄 테니……
안……
여자아이는 멍하니 중얼거리기만 할 뿐, 그 눈동자에는 누구의 모습도 비치지 않았다. 만약 압생트가 형광봉을 조금 더 일찍 들고 자세히 살펴봤다면, 쉽게 이 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머리에 새로 생긴 상처는 없는데, 눈에 초점이 보이질 않아……
혹시 너 어디 또 다쳤어? 왜 이렇게 아파하는 거야?
천천히, 최대한 정확하게 말해줘.
안돼……
안돼? 뭐가 안 되는데?
……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역시……
그냥 날 죽여줘.
……
왜?
……날 죽여……
도대체 왜 계속 그런 말만 하는 거야?!
압생트는 돌연히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듯 흙먼지가 공중에서 심하게 요동쳤다.
우리가 조금 전 이곳에서 이야기했던 그 말들 모두, 아무 의미 없었던 거야?
맞아……
살아가고 싶다고 했던 것도,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던 것도 전부 허울뿐인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래!
……! 뭐……
그러니까 날 죽이라고! 네가 불을 질렀던 것처럼!
이렇게 구차하게 살 바엔, 차라리 단번에 날 죽여줘. 내가 죽인 그 사람들, 그 사람들처럼 말이야……
그 사람들은 내가 살아있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너도 내가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네 그 도끼로 충분해, 여기에 대고 내려쳐……
압생트는 여자아이가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 부분을 힘껏 긋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미처 막지 못했고, 긁힌 상처가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형광봉은 밝지도 않았다.
이렇게 말이야, 빠르게.
압생트는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녀는 마치 무언가가 조금씩 깨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지금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었으니, 깨진 것은 둘 사이에 있던 무언가일 것이다.
침묵이 흐르던 중, 압생트는 앞으로 나와, 옆으로 돌아가 있던 로사의 몸을 강제로 바로잡았다.
……후우……
고작 이런 부탁 하나도……
들어줄 수 없는 거야?
잘 모르겠어……
난 도대체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네 말을 들은 이상, 그 말들을 모른 척할 순 없어.
왜냐하면 내 목숨과 마찬가지로, 네 목숨도 너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니까.
이성은 그녀가 내뱉는 그 말들을 도로 주워 삼키길 바랐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과감히 이성을 버렸다.
우리의 목숨은 영원히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야.
……부탁이야……
체르노보그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 혹시 넌 사후 보고서를 읽은 적 있어? 난 읽었어. 아무리 세어도 다 셀 수 없을 만큼 끝없던 희생자 명단의 작은 이름들을, 하나하나 세어 나갔다고……
발레리 아저씨의 이름을 찾고 싶었는데, 찾다 보니……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찾게 됐어.
페테르헤임에 가셨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목숨을 잃으신 거야.
난 그때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추측하는 것과, 너와 같이 페테르헤임에서 온 생존자들을 계속해서 관찰하며 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었어……
……누가 말하고 있는 거야……?
아버지의 희생으로 얻게 된 게 무엇인지, 도대체 너희에게 아버지가 희생할 만한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
난 그걸 알고 싶어. 아니, 반드시 알아야만 해…...
하지만 난 답을 찾지 못했어! 계속 찾지 못했지…… 그래서 이제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었어, 그런데……
후방 지원부에 있었던 네가 갑자기 전투원 전환 신청을 하더니, 이런 임무에 나온 거야……
난 네가 앞으로 나아가는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네.
날 죽여……
그만해!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기껏 선택해놓고는, 어째서……
……
어째서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거야?!
……부탁이야……
정말로 죽고 싶거든, 그래. 이곳에서 나간 후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가 되면 셀 수 없이 많은 방법이 있을 테니……
죽여줘, 소냐.
……네 맘대로…… 응?
그냥, 날 죽여줘.
싫어, 이곳에서 살아남긴 싫단 말이야……
……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흑…… 아……
……'소냐'……
내 이름은 그게 아니잖아, 너……
너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체르노보그? 페테르헤임?
너……
……
압생트는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녀는 침묵한 채 마지막 남은 형광봉을 부러뜨렸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라면, 왜 전투원 전환 신청을 한 거야? 왜 이런 위험 속에 몸을 던진 거야?
설마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거란 걸 예상하지 못한 거야?
압생트는 로사의 팔을 꽉 붙잡았다. 손바닥의 뜨거움이 로사의 팔에 전해지도록, 그녀는 세게 더 세게 움켜쥐었다.
고통이 느껴지게끔 팔을 꽉 쥐자, 넋이 나간 로사의 몸이 마침내 심하게 떨려왔다.
이내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나……
……여기가 어디야?
학교 식당…… 그런 건가?
아니, 기억이 안 나……
……아니야.
체르노보그에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대체 어디인 거야? 넌 또 누구고?
네가 지금 있는 곳은 지하 어딘가고, 난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라고 해.
지하. 왜지?
……네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했으니까.
내가……
이제 우리는 이곳을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혹시 내 말대로 할 수 있다면, 우선은 눈을 감고 나를 따라 심호흡을 해봐.
내가 널 데리고 나갈 테니까.
압생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호흡을 반복했다.
넋이 나갔던 여자아이는 처음엔 이 행동의 의미를 몰랐지만, 압생트가 끊임없이 반복하자……
마침내 천천히 따라 하기 시작했다.
……후우……
후……
……후우.
좁은 공간에 커다란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후……윽……
콜록…… 콜록콜록!
어때? 좀 괜찮아졌어?
엇, 압생트……
나…… 어떻게 된 거야?
……왜 울었던 거지? 정말 미안해……
아니야, 그저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을 뿐이야. 이제 다시 바깥이랑 연락을 시도하자.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와 오퍼레이터 로사, 마지막 위치 좌표는 61.700.20.450.
반복한다,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압생트와 오퍼레이터 로사……
어? 주파수에 연결된 것 같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기는 로도스 아일랜드 재앙수색구조대입니다, 좌표를 바로 보고해 주세요……
……연결됐다.
마지막 위치 좌표는 61.700.20.450이며, 서쪽에 내려앉은 지반을 수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2명이 있고, 상태는……양호합니다.
나…… 로사, 아까 내가 말한 박자대로 네 주변에 있는 쇠파이프를 두드려줘.
약하게 두 번, 강하게 한 번…… 이렇게?
응.
이전에 받았었던 그 구조 신호의 좌표입니다…… 적외선 탐지기 표시로는…… 좋네요, 가깝습니다!
……여보세요? 아직 들리시나요?
들리시면, 방금 전의 박자대로 쇠파이프를 두드려서 응답해 주세요……
수색구조대가 도착했다.
압생트는 소리를 따라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고, 로사는 계속해서 주변에 가장 가까운 쇠파이프를 두드렸다.
있습니다! 아래에 사람이 있습니다! 저희가 수신했던 좌표 바로 근처예요, 아마도 여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잠시만요, 저희가 금방 구조해 드릴게요.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고, 제자리에서 기다려주세요……
들리셨으면 쇠파이프를 두드려 주세요!
(쇠파이프를 두드린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후우……
넌 다리를 다쳤으니까, 먼저 올라가.
내 몸 상태가 너보단 좀 더 나은 거 같으니까 말이야, 난 괜찮거든.
……
알겠어.
재난에서 살아남은 기쁨이라는 것이 책에 묘사된 것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압생트는 문득 깨달았다.
구름이 마치 불꽃처럼 퍼져가는 하늘 아래서, 그녀가 이 찰나의 기분을 깊게, 그리고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있음을.
……오퍼레이터 압생트 상태 확인했습니다. 일단 경미한 부상으로 판단되며, 구조 성공했습니다.
옆에서 우선 쉬고 계세요, 격하게 움직이시면 안 돼요. 오퍼레이터 로사도 구조하고 나서, 제가 다시 종아리 쪽 상처를 봐 드릴 테니……
……오퍼레이터 압생트?
내가 도와줄게.
네? 아직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아.
……어? 압생트, 다친 데는……
별 거 아니야.
손 이리 줘, 내가 끌어올려 줄게.
오퍼레이터 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