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옛날 일은 말하지 마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어린 시절과, 이들이 탈룰라를 만나게 된 이야기.
이노, 이건 무슨 책이야?
아, 난 이미 읽은 책이라서, 너 주려고 갖고 왔어.
사샤도 마음에 들 거야! 이 책은 '이상'에 대한 책이야.
이상?
응.
이노의 이상은 뭔데?
글쎄…… 이상이라……
모르겠어. 나도 이상이란 걸 가질 수 있을까?
당연하지, 왜 가질 수 없겠어!
아, 이런, 집에 돌아갈 시간이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집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집에 안 가면 너희 아빠가 때린다고 했잖아……
내일 만나자, 내일 다시 만나면 되잖아.
알았어. 빵이랑 책은 여기 두고 갈게.
……사샤,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너무 아픈걸…… 지금 돌아가도 어차피 또 때릴 거야.
……
그럼 오늘 네가 돌아가서 또 맞으면, 내일 날 때려. 어때?
어? 하하하…… 사샤, 걔네들이랑 싸우다 머리라도 다친 거야?
네 몸은 이미 상처 투성이잖아, 이렇게나 잔뜩.
이러면 네가 아프단 걸 아는 사람이 생기잖아. 적어도, 누군가는.
응,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어. 그래도 그럴 순 없어.
만약에 애들이 길에서 널 괴롭히면 바로 나한테 말해! 내가 혼내줄 테니까!
알았어!
내일 만나자! 내일은 노래 불러줄게!
나는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내게 먹을 것을 주었다.
그는 책을 읽을 줄 알았고, 나도 책을 읽고 싶어 하자 내게 책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다른 아이들이 그를 괴롭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내게 빵을 주었기 때문에 난 더 강하게 그 아이들을 때렸고, 나 역시 그 아이들에게 얻어맞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했다.
무서워. 사샤, 너무 무서워……
난 아무래도… 아무래도 그 집 가족이 아닌 것 같아. 몰래 들었는데, 엄마가… 내 엄마는 애초에 그 집에 없었대……
내 눈빛을 본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해. 돌아가기 싫어. 더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여기엔 먹을 것도, 잘 수 있는 곳도 없는걸. 여기는…… 하수도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
너도 내가 싫어?
뭐? ……무슨 소리야?
내가 자주 웃으니까?
아니…… 그럴 리 없잖아?
나는 웃으면 안 되니까.
아니야! 이노는 계속 웃어야 해.
그래?
그럼.
그날 그가 돌아가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여기가 너무 더럽고 춥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그를 돌아가게 한 걸까?
그가 돌아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을까?
다쳤잖아! 네 배에 있는 그 상처는……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사샤, 나…… 계속 웃었어.
봐봐, 네가 나한테 웃어도 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계속 웃었어.
계속…… 웃고 있었어……
사샤, 아직도 내 노래가 듣고 싶어?
그 뒤로도, 그는 계속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의 몸에 새겨진 흉터는, 갈수록 늘어났다……
갈수록…… 늘어만 갔다.
내가 하는 말이 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기에, 난 점차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이러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네 등!
네 등에…
……
…아프지?
……
더는 안 되겠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널 괴롭히는 건데!
죽여버리겠어! 널 괴롭히는 놈들은 누가 됐든 전부 죽여버리겠어!
이노, 앞장서!
……알았어.
어?
그렇게 할게.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지 못했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내가 뭘 한 거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많은 책을 읽었지만, 어떤 책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었다.
아무것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었다.
잘 봐, 사샤……
날 다치게 하는 모든 걸 없애버리고 싶다 했었지?
……
빨리 와.
네 상처……
괜찮아. 별거 아니야.
이렇게 입으로 후~ 하고 불어주면…… 봐봐, 괜찮아졌잖아.
빨리! 붕대를 감아줄게! 천…… 남은 천이 어딨더라…!
그 남자한테 내 다리를 잘렸지만…… 한 번 후~ 해주면 괜찮아질 거야.
어떤 할아버지가 내 등을 그었지만 괜찮아…… 조금 쓰다듬으면 나을 거야.
이것도 다 그 뚱뚱한 여자가 내 목구멍에 욱여넣은 오리지늄 덕분이야!
말하지 마, 이노, 그만……
이제는 노래는 못 부르게 됐지만, 이거 봐봐, 그래도 이 오리지늄 덕분에!
이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노!
……안 기뻐? 왜? 네가 말한 대로 했잖아.
왜 기뻐하지 않는 거야?
그 사람들은 기뻐했는데…… 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만 하면, 그 사람들은 다들 기뻐했는데……
그건 네 가족들이 다 나쁜 놈들이니까…… 전부 다.
그렇구나!
그래서 아이들이 그 사람을 죽인 거구나.
……뭐라고?
그 감염된 아이들, 아직 도시 밖으로 쫓겨나지 않은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지금 뭐라 그랬어?
걔네들이 날 때렸잖아, 너도 다치게 했고.
근데 이제 걔네들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체스 말 같이 됐어. 체스할 때 체스판에 올려놓는 거 말이야.
내가 걔네들을 치료해주면, 걔네는 내가 말하는 대로 움직여 줘.
그래서 그 추하고 역겨운 사람들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사샤, 이거 봐, 나 잘했지?
모두 다 태워 버렸어!
……
사샤, 왜 그래?
다신 이런 짓 하지 마.
그치만 네가……
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이노,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 이런 것 말고.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다시는 이러지 마.
그치만 나는……
다시는 이러지 마!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억지로 하는 거 말고, 피눈물 흘리고 복수하는 거 말고! 진짜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넌 원래 이런 걸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사샤……
나는……
나는… 노래가 부르고 싶어……
흐흑……
……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난 정말 쓸모없는 놈이다.
이노……
이젠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됐어.
우리, 같이 가자. 같이 살아남자.
살아남자고?
……그러면 뭐가 좋은데?
……
없어.
하지만 우린 함께 살아남을 수 있어.
너는 뭘 하고 싶어?
이거, 오리지늄이야. 원래는 나중에 먹을 거랑 바꾸려고 광산에서 훔쳐온 건데……
사샤!
크헉!
이제…… 우린 다 감염자가 된 거야.
우리, 함께 살아남자.
그 일들? 깊이 물어보진 않겠어.
네가 했던 모든 일에 이유는 없었어. 무슨 이유가 있어서 네가 이 땅에 살게 된 건 아니잖아.
아니, 넌 애당초 누군가가 구해줄 필요가 없었지……
좋아하는 이름을 골라라.
이거? 알았어.
메피스토……
메피스토. 이제부터 넌 메피스토다. 과거의 넌 더 이상 없는 거야.
나는 널 믿지 않아. 내겐 널 믿을 자격 따윈 없어. 널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너 자신뿐이다.
네가 했던 모든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 넌 그 모든 일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거야. 설령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잊는다 하더라도……
네가 하는 모든 것, 네가 겪는 모든 것이 너의 장작이 되겠지. 그들이 널 핍박한다면, 네 마음속에 있는 불꽃은 계속해서 타오를 거야……
온 세상을 해방시킬 때까지, 다른 사람이 네게 준 모든 것을 너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네가 드디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때가 되면 넌 이 이름마저 포기할 수 있겠지. 떠날지 남을지, 죽을지 살지는 모두 네가 선택하도록 해.
메피스토, 나는 네 이상을 바꿀 수 없어. 만약 네게 이상이 없다면, 이상을 찾아. 우리를 구원하는 건 우리 자신이니까.
내가 누구냐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탈룰라.
난 단지 반항하는 자이자,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 지금 당장은, 탈룰라라고 부르면 돼.
탈룰라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안고, 내 등을 세 번 두드려주었다.
탈룰라는 나를 믿어주었다. 옐레나, 불드록카스티, 류드밀라…… 다들 나를 믿어주었다.
나는 그 도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게 변했다. 그 마을에서 벌어졌던 그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건 한 편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비극 때문에 그녀가 이토록 변해버린 걸까?
어째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시킬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허락하지. 너는 메피스토니까.
하지만 전에는 나한테……
그건 몇 년 전 일이잖아.
사정이야 우리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할 수도 있는 거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린 도태되어 버릴 테니.
그러니까, 우리, 그리고 우리 감염자 동포들은 반드시 미래를 손에 넣어야 해.
나는 이 이상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희생시킬 수 있어.
널 믿어도 되겠지, 리더?
그래. 난 탈룰라니까.
반드시 해낼게!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난 널 믿어.
너 없이 우린 해낼 수 없어. 넌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거다.
들어와.
……
전부 봤겠지.
넌 누구지?
물론, 탈룰라지.
예전의 탈룰라는…… 지금의 너와는 달랐다.
탈룰라는 이름일 뿐이야. 탈룰라는 탈룰라일 뿐이지.
그를 도와줘. 메피스토는 너의 도움이 필요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메피스토에겐 네가 필요해. 그가 믿는 건 나와 너뿐이니까.
탈룰라는 절대 이렇지 않아, 넌 메피스토의 신뢰를 이용하고 있는 거다!
우리에게 선택할 권리 따윈 없어.
……
넌 메피스토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겠지.
메피스토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건가?
아직도 모르겠어? 그 마을을 지나치던 그때부터 탈룰라는 변했어!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아직도 이러는 건데?
너랑 탈룰라 누나 빼고, 난 누구도 믿지 않아.
나도, 선택하기 싫어.
……
파우스트,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
살아……
파우스트, 말해줘.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살아남자.
살아남으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고통스럽겠지.
그래도 우린 함께 살아남을 수 있어.
이 책은 '이상'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내 이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