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1낙하물
가비알의 고향으로 향하던 비행체는 정체불명의 습격을 받게 된다. 케오베와 함께 박사를 깨워 비행체가 추락한 지점으로 향한 가비알은, 뭔가에 둘러싸인 비행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여기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
네가 갈망하는 찰나의 평온함, 전쟁이 없는 땅, 어머니의 품…
너의 의식은 끝없이 확장되고, 넌 족쇄를 벗어던졌다. 넌 자유다.
- 자유가 뭐지?
- 난 자유다!
일반적으로 자유는 일종의 상대적인 상태로써 속박이 없다는 걸 의미하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 중엔 종종 여전히 육체의 속박을 받고 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넌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그렇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여. 넌 영원히, 영원토록 자유로울 것이다.
넌 마치 시간의 강 속에 있는 돌멩이처럼, 강물은 너의 책임, 숙명, 욕망 그리고 인연을 앗아갈 테지만, 너 자신만은 그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넌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그 어떤 것도 널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 책임, 숙명, 욕망, 인연……
넌 모든 걸 이해했다. 지금의 넌 미지의 존재와 대화하고 있다. 넌 경외를 표하며, 너의 가장 순결한 피를 바쳐야 할 것이다.
어쩌면 넌, 그저 충격으로 기절해 상상 속 자신과 함께 아무런 의미 없는 대화를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 난 이곳에 내 왕국을 세울 거야!
- 아니, 난 후회해. 난 고통받는 편이 더 좋아.
탁월한 선택이다, 나의 왕이여. 이곳은 대지보다 훨씬 광활하니, 여기에 네가 원하는 모든 걸 세울 수 있으리라.
그럼 일단 나라를 세워야 할 것이다. 나라 이름은 '존재의 나라'가 어떠한가?
공허의 위에 세워진 나라는 영원히 우뚝 서서 무너지지 않으리니……
오 이런 젠장, 우리의 위업이 여기서 중단될 것 같군.
커튼 사이를 파고드는 빛처럼, 강렬한 통증이 순식간에 네 모든 의식을 점령했다.
넌 고통받는 것, 주는 것, 화염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 자신을 해하는 것을 좋아하는군.
현명한 사람은 적당한 실패, 제어 가능한 범위의 손실을 원하나, 이렇게 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나의 허무부 서기여, 잘난 척 하지 말기를.
그렇다면, 우선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고통들을 선사하지……
온몸 각 부위의 근육에 극도로 쓰라린 고통이 전해진다.
병사여, 넌 무수히 많은 고통을 받았고, 무수히 많은 실패의 산증인이 되었다. 그중에서 널 기쁘게 한 일은 거의 없지.
그렇지만 널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바로 그것들이다. 그것들은 독약이자 족쇄이며, 그것들은 널 편히 쉬게 두질 않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있지만, 네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도 있다.
- 네 말이 맞아. 슬슬 쉴 때가 됐지.
- 아니야,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래, 친애하는 자여, 바로 그거다.
긴장을 풀어라. 널 위한 자장가를 불러주마. 넌 영원히 잠들어,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으리니.
그러나 잠에 빠지려던 그때, 별안간 강렬한 고통이 덮쳐왔다……
아아, 그래, 착한 아이들이지.
그러나 네가 없어도 저들은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넌 저들을 책임져온 게 아니다.
너의 책임, 숙명, 욕망, 그들과의 관계, 이 모든 것이 단지 너의 망상이라면?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구나. 그렇다면 깜짝 선물을 주도록 하지. 그래, 바로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고통을!
온몸 각 부위의 근육에 극도로 쓰라린 고통이 전해진다.
그리고, 아득하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박사!
아미야인가? 아니야, 목소리가 아미야보다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대체 얼마나 오래 누워있으려 그래, 귀찮게 정말.
……그리고 과격하군.
뺨에 몇 차례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상대방은 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듯하다.
어쩌지? 이래도 안 일어나네. 어차피 아미야도 없으니까, 일단 박사를 잡아서 풍차돌리기를 몇 바퀴 해볼까.
풍차돌리기? 그거 재미있어? 나도 할래!
상대방이 과격한 수단을 쓰려는 것 같다. 옆에서 끼어든 목소리에는 순진함이 묻어 있었다.
순진함이라는 훌륭한 기질이 이런 상황에서 갖는 의미는, 그녀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뜻이리라.
- 안돼, 난 돌아갈 거야!
- 눈을 떠야 한다.
아쉽게도, 어떤 여행은 너의 의지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넌 이미 이번 여행을 떠날 기회를 잃었으니.
하지만 긴장할 거 없어. 기회는 앞으로도 많으니까. 이제 눈을 떠볼까……
가비알, 풍차돌리기는 어떻게 하는 거야?
풍차돌리기란, 상대방의 다리나 손을 잡고 빙빙 돌리는 거야.
그리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될 때 그대로 내던지는 거지.
엄청 재밌겠다! 나도 해 봐도 돼?
물론이지. 내가 박사를 받으면 되겠…… 어?
이제야 깼네, 박사.
와, 박사가 일어났어!
케오, 박사의 몸 위로 뛰어들면 안 돼. 박사가 너한테 눌려서 또 기절할 수도 있으니까.
앗, 미안! 박사!
- 너희들은 괜찮아?
- ……
- 방금 뺨 때린 거, 너냐?
괜찮아, 이 정도 높이는 아무것도 아냐.
나도 괜찮아!
어이, 박사. 설마 또 기억을 잃은 거야?
- 기억이 나지 않아……
- ……누구세요?
잊지 마. 난 의사라고.
농담하는 걸 보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네.
어.
아무튼, 박사. 내가 상황을 간단히 설명할게.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린 추락했어.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구! 슈우욱~ 쾅! 이렇게!
- 더 자세히 말해봐.
- ……
- 너무 간단하잖아!
쳇, 알았어. 어쨌든, 박사는 운이 안 좋았어. 우리가 공격당할 때 하필 박사 자리 부근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바람에, 박사가 그대로 날아가서 벽에 부딪히고 기절해버렸지 뭐야.
걱정 마, 상처는 내가 다 치료했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게다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막 도착했을 때보다 체력이 꽤 좋아졌던데? 훌륭해, 박사.
흐으으… 미안! 내가 박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폭발 소리에 깜짝 놀라는 바람에……
네 탓 아니야. 솔직히 나도 저 꼬마들에게 대공 무기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
- 그럼 넌 공격 당할 줄 진작에 알고 있었다는 거네?
어. 내가 말했잖아? 우리 고향 사람들은 아주 호전적이라고. 뭐 그래도, 나한텐 못 이기지만.
-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추락할 때 낙하 속도를 제어해야 한다고 도중에 먼저 뛰어내렸어.
나와 케오베는 박사를 보호하려고 마지막으로 뛰어내렸고.
아, 맞다. Lancet-2가 아직 비행체에 남아있을 거야.
- 비행체는?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 저쪽 방향일 걸. 그래, 저기 저 산비탈을 넘어가면 있을 거야.
- 일단 가보자.
그래.
저기 있네, 저게 바로 우리 비행체야.
이런, 연기가 나잖아, 작동은 안 되겠는걸.
그래도 고칠 순 있을 거 같네.
박사, 가비알! 비행체 쪽에 사람이 있어!
응? 저건…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저에겐 로도스 아일랜드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긴 하지만, 전 그저 의료기기일 뿐이랍니다… 흐흑…
어이, 이 기계… 말을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그러게. 하늘에서 이렇게 굉장한 기계가 떨어질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안에 말하는 기계까지 있을 줄이야!
근데… 혹시 이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건 아니겠지?
글쎄, 아니면 이것도 같이 가져가자고. 족장님이 분명 좋아하실 거야.
그러자. 형제들, 이것도 같이 짊어지고 간다!
살려주세요~~!
동작 그만!
……&% (웬 놈이냐?!)
감히 우리 물건을 훔쳐가다니, 사는 게 지겨워진 거냐!
……¥%%#(이게 너네 건지 누가 알아? 이건 하늘에서 떨어진 거라고!)
!@#%……&(맞아, 우리가 먼저 발견했으니 우리 거야!)
쳇, 듣고 보니 그러네.
- 가비알, 저들이 뭐라는 거야?
어? 맞다, 박사는 여기 말 못 알아듣지?
여기도 사르곤에 속하긴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사르곤어 할 줄 모르거든.
박사한테 전달해야 할 말이 있으면 내가 통역해줄게.
나머지는…… 그냥 대충 눈치껏 알아들으라고!
……&*#(저기서 뭐라고 궁시렁거리는 거야, 빌어먹을!)
내 말은, 이게 설령 너희 물건이라 하더라도, 내가 너희를 모두 쓰러뜨리면 내 것이 된다는 거야!
&&……!@(뭐라고? 건방지기 짝이 없군. 형제들, 공격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