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S-2애도
화재 현장에서 폴리닉과 스즈란은 헌화를 하러 온 머드락과 마주치게 된다. 모두가 이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렇게 되는 걸 막지 못했다.
머드락, 놈들이 남은 도주범들을 체포하고 있다.
……분명 도망치게 놔둬서 산에서 자멸하게 놔둘 수 있었는데, 잡아간다는 건 도주범들의 목숨을 구하려는 거겠지.
저짓거리를 하는 건 대체 인정이 많아서야 아니면 잔인해서야?
……따라오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우리와 별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놈들의 조사는 될 수 있는한 피하도록 하지. 우린 겨울이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난다.
벌써 추워졌군.
여기 떠나면 또 어디로 가자는 거야?
이렇게 오래 떠돌았는데, 결국 또 도돌이표인가? 우리에게는 언제쯤 좋은 날이 올까.
……그럼, 고향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조용한 숲 속에서, 우리끼리 살아가는 거다.
우리의 투쟁은?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살아남기 위해, 이 땅과 투쟁하는 거다.
……그래서 어디로 가려고? 고향? 누구 고향을 말하는 거야?
……카즈델.
아……
하지만 우리는? 우린 살카즈가 아냐. 거긴……
너희는, 살카즈의 동료다.
다른 곳은 살카즈를 받아주지 않겠지만, 카즈델이라면 우리를 받아줄 수 있다.
카즈델이 관용이 넘치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즈델은…… 도시나 국가를 나타내는 이름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카즈델은 그저 한 지역일 뿐이야.
고향이 없는 방랑자들의 땅이지.
그곳은…… 돌아갈 집도 고향도 없는 모든 뿌리 없는 자들의 종착지다.
너희의 종착지가 되기도 하겠지.
……고맙다.
살카즈 감염자들이 모이는 카즈델이라면, 우리도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감염자들에 대한 라이타니엔의 온화한 태도는 그저 혈통과 아츠 보급 때문일 뿐, 그들이 진정으로 네 녀석들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나 보군.
그놈들이 가면을 벗어던지면, 가장 먼저 배척당할 것은 결국 감염자겠지.
……비단 광석병뿐만이 아니야. 나라는 번영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국민의 비참한 일면 따위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월루몽드의 비극 역시…… 귀족들의 시빗거리나, 상류계층의 안줏거리 정도밖에 안 되겠지.
우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참고 싶지 않았다.
떠날 거면 어서 떠나지. 카즈델이라, 너희의 고향이 어떤지 구경해볼까.
……그러지.
라이타니엔 놈들이 귀찮게 하진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실제 사정이 어떻든, 파괴된 도시에 나타난 살카즈 감염자 무리는 원흉으로 몰아가기 딱 좋은 희생양이니까.
세버린은 진상을 알고 있잖아. 설마 우리한테 죄를 뒤집어씌울까……?
그는 그럴 사람이다.
……
……그게 그의 방식이다…… 그는 언제나, 마을에 피해가 가장 적게 가는 쪽으로 판단을 내리지.
그럼 어서 여길 떠야겠군. 라이타니엔에서 우릴 수배할지도 모르니.
그래, 최대한 빨리 대열곡을 지날 루트를…… 아……
미안하군. 잠시만 기다려주겠나. 들릴 곳이 있어서……
잠시면 된다.
……
여기 있었구나.
폴리닉……
아, 일어날 필요 없어. 가까이 가진 않을 테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구나, 그렇지?
응.
리유니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난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에 없었지만…… 너, 많이 변한 것 같아.
소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거든.
소문?
용문에서 어떤 정예 오퍼레이터랑 많은 일을 해결했다면서.
……정예는 무슨, 그냥 여기저기 무모하게 덤벼대는 바보 고양이지.
그리고 우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어.
……고마워.
다시 한 번 고맙단 인사를 하고 싶었어. 너와 리사가 없었다면, 내가 모두 망쳐버렸을지도 몰라.
……
로도스 아일랜드도, 세버린 씨도, 리유니온마저도, 일이 이렇게 되길 바란 사람은 없을 거야……
모두가 참극을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었지.
아트로…… 아트로 언니는……
너무 마음 쓰지 마,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이제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자고.
……우린 범인을 법의 심판대에 올리지도 못했고, 아트로 언니가 지키던 이 마을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어.
아트로 언니도 나를 탓하겠지.
널 탓하는 건 너뿐이야. 아트로는 사람이 밝아서 그럴 리 없으니까.
그래, 그녀라면 분명 네 어깨나 두드리면서, 함께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이나 마셨겠지.
후후…… 그건 그래. 둘은 원래 잘 아는 사이였어?
난 그녀랑 뻗을 때까지 술 마시는 '정예 오퍼레이터'랑은 잘 알지.
……이 일을 덮어두기로 한 건 우리뿐만이 아냐.
……
역시 왔군.
여기, 새로 딴 들꽃이다……
당신도 지금 상황은 알고 있겠지. 임무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로도스 아일랜드는 곧 이곳을 떠날 테고, 월루몽드로 물자 지원을 요청할 거야.
하지만 그때……
아무도 우리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세버린을 탓하진 않는다. 귀족들에게 그렇게 보고하지 않는 이상, 불이익을 당하게 될 테니까……
우린 이곳을 최대한 빨리 떠날 거다. 단지, 이곳에서 죽은 우리의 동료에게…… 작별 인사라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여덟 명의 감염자.
하지만 지금 월루몽드의 사상자는 '여덟 명'의 몇백 배는 되겠지……
……미안하군.
아니…… 이건 당신 탓이 아니잖아…… 당신을 비난하는 게 아니야.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자신을 되짚어보고 있을 뿐이야.
좋은 일엔 무조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이런 식의 자멸은, 나도 거의 본 적이 없어.
자신의 의지도 아닌 분노와 복수심 때문에 모든 게 망가질 뻔했어…… 심지어 나 자신도…..
아직도 자책하고 있네.
아니……난 이미 진정됐어. 다만 '해내지 못한' 게 아니라, '해낼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줄곧…… 켈시 선생님께 배워왔지만…… 난 해낼 수 없었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다.
나도 그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막으려 해봤지만, 몇 번의 저지로 그들의 복수심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됐지.
……
이제 어쩔 생각이야? '리유니온'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야. 그 표식은 철저히 숨기는 게 좋을걸.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리유니온'이 사라지지 않았단 소문이, 이미 라이타니엔의 감염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항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설령 그것이, 왜곡된 것일지라도 말이야. 하지만 우리도 지금은 한숨 돌려야겠어.
나를 따르는 자들 중에는 전사가 아닌 자도 많다. 그들의 운명까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 그들은 아마, 그저 평범한 생활을 꿈꾸고 있을 거다.
그러고 보니…… 로도스 아일랜드, 빅 밥이란 자에 대해 알고 있나?
……없어.
만약 무슨 연관이 있는 거라면, 돌아가서 조사해볼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내 친구라서……
리유니온? 아니면 살카즈?
……리유니온이다. 경험이 풍부한 바운티 헌터지.
그들은 전사가 아니니 발을 뺄 명분이 있었지…… 그들은 압박을 피해, 컬럼비아의 황무지 개척자 무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 그들에겐 맥주 홉도 있었지.
뭐? 홉?
홉이란 걸 본 적이 있나? 그건 어디에 쓰는 거지? 맥주가 식물로 만드는 술인가?
맞아, 대단한 식물이지…… 맥주의 거품과도 연관이 있고, 아,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도……
……아니, 이걸 내가 왜 열심히 설명하고 있어야 되는데? 내 전문 분야도 아닌걸.
……뭐, 유용한 정보였어.
그렇군…… 정말 좋겠어.
맥주 홉…… 거품…… 맥주……
……갑자기 맥주에 정신 팔리지 말라고. 어쨌든 우린 적이니까.
뭐, 입장이 다르긴 하지.
아…… 미안하군.
하지만 너희는 전사다. 살카즈 역시 전사지.
그렇긴 하지만…… 네 언행에서 전사로서의 결연함이 느껴지진 않았는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우리에게 확고한 신념이 있거나, 지켜야 할 대상이 있다면, 우린 싸울 수밖에 없다.
싸움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럼…… 우리의 동포들은 뭘 위해 희생됐지? 평화로운 설득만으로, 그 악인들이 우릴 위해 집과 도시를 마련해 주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우린…… 싸울 수밖에 없다…… 감염자 동포들을 위해서.
……'감염자 동포'라.
어디로 떠날 생각이야?
카즈델.
카즈델이라, 좋은 곳은 아닌데.
우리도 그리 좋은 녀석들은 아니지, 로도스 아일랜드.
진짜 '좋은 곳'은, 우릴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택지가 하나 더 있어, 머드락.
……아니, 아직은 아니다.
라이타니엔인과 살카즈는, 모두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분노는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고,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도 않지. 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살아남겠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야.
……유감이네.
아니, 로도스 아일랜드의 제비여, 우리는 아마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감염자를 위해 싸우는 자니까.
……날 제비라 부른 리유니온은 당신이 두 번째네.
……그런가.
내가 여길 떠나면, 우리는 다시 적이 되겠지.
아니면 라이타니엔이 너희를 의심이라도 하는 날엔,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까…… 적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마라.
난 그저 꽃 한 송이 놓으러 왔을 뿐이니, 이제…… 가봐야겠군.
행운을 빌겠다.
……
할 말 있으면 지금 해.
……아냐, 없어.
그냥, 계속 악몽을 꾸다가 머드락이 떠나니까 갑자기 잠에서 깬 느낌이야.
이렇게…… 끝났네.
남 위로해주는 건 전문이 아니긴 하지만……
나도, 사실 네 과거에 대해 알고 있었어. 너도 날 위로해줄 처지가 아닌데…… 미안해.
……슬픔을 끊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그게 좋은 일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타협해야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얼마나 지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 같은 경우는…… 좀 길었어. 더 많은 걸 잃을 때까지 되게 오래가더라고.
……
……
……이제 어쩔래?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가야지.
아트로 언니도…… 함께.